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몇 년 동안, 저는 혼자 또는 오토바이에 수련생을 태워 같이 시골이나 재래시장에 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 번에 10명에서 20여 명을 탈퇴시키고 그들을 구해서 너무 기뻤습니다.
하지만 2016년 9월 10일, 세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모함당해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습니다. 그들은 제 가족을 상대로 5천 위안(약 840만 원)을 갈취했습니다. 2017년 6월 28일, 사복 입은 파출소 경찰 세 명이 또 우리 집에 난입해 대법 책 40여 권과 작은 연공용 스피커, 일부 대법 진상 CD와 진상 달력, 소책자 등 물품을 빼앗아갔습니다. 이 일은 가족에게 큰 고통을 주었고 저도 이때부터 큰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가끔 무작위로 진상을 알리기는 했지만 더는 당당하게 대면해 진상을 알리지 못했기에 이때부터 진상을 알리는 항목을 바꾸었습니다.
최근에 사람을 구하는 항목이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자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수많은 중생이 거짓말에 속아 불법(佛法)에 죄를 짓고 있었고 곧 훼멸될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정작 본인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저는 두려움 때문에 당당하게 그들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대면해 진상을 알리기만 하면 납치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극도로 답답하고 불안했습니다.
2019년 10월 14일, 926기 ‘밍후이주간’에서 「‘능력’에 대한 나의 수련 체득」이라는 문장을 읽게 됐습니다. 수련생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법공부의 기초가 있어서 한동안 마음 상태가 바르고 평온했다. 당시 수련생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방황했다. 법리에서 사부님의 말씀 ‘정법을 전하니 만마(萬魔)가 가로막네 중생을 제도하니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 광명이 나타나네’[1]를 단번에 깨닫게 됐다. 지금은 바로 만마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생의 관념을 개변시켜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좋게 변하게 해야 한다. 만약 사람 머릿속에 나쁜 사상, 나쁜 물질이 모두 없다면 그것은 광명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각자(覺者)가 사람을 제도하는 일이 아닌가? 마음속으로 진상을 똑바로 알려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건 사부님의 심혈 어린 배치셨습니다. 수련생의 깨달음을 빌려 저에게 사부님의 법 ‘홍음-신생’의 다른 한 층 함의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예전에 사부님의 이 법에 대한 저의 인식은 다만 개인 제고 방면에 제한됐고, 사람을 구할 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관념을 개변하라고 얘기하신 줄로만 여겼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생각이 깨끗하고 단순해졌으며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중생의 관념을 개변시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또 다른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읽었는데 대체적인 뜻은 수련생이 13년 동안 진상을 알리면서 한 번도 박해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수련생은 진상을 알릴 때 먼저 이지적으로 속인과 얘기를 나눈 후 개개인의 흥미와 애호에 따라 진상을 알리는 착안점을 정확히 찾아냈습니다. 이때 저는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습니다. “이지(理智)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眞相)을 똑바로 알리며, 자비로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한다”[2]
이때부터 두려움은 마치 제 마음에서 사라진 것 같았고 오직 ‘중생의 관념을 개변시키겠다’는 간단한 일념만 남았습니다.
이틀 뒤 저는 대면해 진상을 알리기로 했고, 문을 나서기 전에 사부님께 지혜를 달라고,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가서 얘기해야 할지 몰라 아침 시장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급히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그들 모두 마땅히 진상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개개인에게 진상을 모두 알릴 수 없어 조금 유감스러웠습니다. 그때 진상을 알려 두 명만 탈퇴시켰는데 이는 예전에 한꺼번에 20여 명을 탈퇴시킨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적었습니다. 하지만 느낌이 달랐습니다. 이번에는 3년 동안 멈추었다가 다시 새롭게 걸어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진상을 알릴 때 대부분 수련원만을 생각했고, 원만하려면 법공부를 많이 하고, 반드시 사람을 구해야 하며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늘 속으로 사람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번에 몇 명을 탈퇴시켰는지 생각했습니다. 많이 탈퇴시키면 자기도 모르게 기뻤고 적게 시키면 기분이 침울했습니다. 저도 마땅히 이런 환희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버리기 힘들었습니다. 지금에야 비로소 과거의 기점이 주로 ‘나’ 여기에 있었기에 환희, 낙담, 두려움 등 집착들을 그토록 제거하기 힘들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기적인 ‘나’가 있었기에 환희, 낙담, 두려움 등 집착이 생긴 것입니다.
지금의 기점은 사부님의 정법과 무수한 중생을 어떻게 구하고 어떻게 그들의 관념을 개변시키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되는 중생이 진상을 명백히 알게 될지, 한 생명이 어느 정도 명백히 알게 될지에 신경을 썼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기(氣)와 기 사이에는 제약 작용이 없다.”[3] 사람을 구하려면 자비가 있어야 하고, 자비가 있으려면 오직 법에 동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써 자신을 빨리 잘 닦으려는 강렬한 소원이 생겼고, 고요한 마음으로 법공부하는 것을 교란하는 각종 요소를 자발적으로 억제해야겠다는 강대한 원동력이 생겼습니다. 또한 제때 안으로 찾을 수 있었고, 집착을 찾으면 자발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기점이 남을 위하는 것이었고, 마음속에 오직 다른 사람만 있었기에 이기적인 두려움이 존재할 공간이 사라졌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으므로 당신은 이런 소원만 있으면 된다. 진정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사부가 해주는 것이지 당신은 전혀 해낼 수 없다.”[3], “괜찮다.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했듯이, 매 수련생의 몸 뒤에는 모두 나의 법신(法身)이 있으며 또 하나만이 아니므로 나의 법신이 이런 일들을 할 것이다.”[3] 그 순간 저는 확실하게 사부님 법의 다른 한층 깊이 깨닫게 됐습니다.
이전에 두려움이 생긴 후 그걸 제거하려고 대량으로 법공부하고 사부님의 ‘홍음2-두려울 것 뭐냐’를 외웠지만 늘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스스로 자신에게 ‘사람을 구하고 있다면 두려움은 그대로 내버려 두자. 어쨌든 제거하지 못할 테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람을 구하는 새로운 항목이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사부님께서는 장계취계하여 순서 있게 배치해주셨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위로와 의지를 느끼는 항목이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조종하는 ‘두려움’을 직시하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도태에 직면한 중생을 구하려는 남을 위하는 마음이 아직 조금이나마 있는 것을 보시고, 이것이 법에 부합됐기에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제 공간에서 저를 조종하던 완고한 ‘두려움’을 제거해주셨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두려움’이 저를 떠난 후 어려움에 직면했던 사람 구하는 항목도 뜻밖의 어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두려움’은 사실 두렵지 않고, 오직 마음속에 남을 위하는 일념을 갖고 있으면 됩니다. 우리에게는 뭐든지 다 하실 수 있는 사부님이 계시고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신생’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 2-이성’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11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27/3963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