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법을 다시 만나 법리를 깨닫다
저는 1998년 2월 중국에서 법을 얻었습니다. 당시 저는 직업상 스트레스가 쌓이고 숨 가쁘게 돌아가는 직장생활로 인해 몸이 항상 고달파 이런저런 병에 시달리면서 약을 달고 살았습니다. 기공이나 배워 병을 치료하려던 차에,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새벽에 파룬궁(法輪功) 연공장에 다니는 것을 보고 저도 연공장에 나갔습니다.
2~3일간 연공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심장이 나빠 잠을 잘 때 손가락이 저려 잠을 설치곤 하던 고통스러운 증상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머리가 맑고 활기가 돌았습니다. 췌장염이 심해서 탕약이나 민간요법으로 치료해도 해마다 봄이면 재발했는데 그해에는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 밖에 만성위염, 신장결석, 편두통, 불면증, 변비, 관절염 등 고질병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1998년 8월, 저는 가정형편 때문에 한국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온 후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기에 연공은 견지했지만 병치료 정도로 간주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서서히 대법(大法)의 정체에서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대법은 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8년 5월, 명동 중국대사관에 갔다가 파룬궁 진상활동 장면을 보고는, 갑자기 마음이 격동되어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 파룬궁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즉시 현지 연공장보도원에게 전화하여 연공장에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단체 연공, 단체 법공부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습니다. 법공부가 깊어지면서 법리를 차츰 알게 되었고, ‘진선인(眞善忍)’은 생명의 근본으로 속세의 화려함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는 연기와도 같으며 오직 대법을 굳건히 수련해야만 진정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반본귀진의 함의를 알게 되었고 자신 역시 대법의 한 입자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일상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집안일을 해놓고 나서 동네 산에 다니고, 시장가서 쇼핑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밤늦게까지 TV 시청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던 생활이 점점 법공부를 하는 생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법은 이미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고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이 아주 중대하며 우리는 우주의 여타 생명과는 다르게 사명을 갖고 멀고 먼 대궁에서 대법을 위해 왔으며, 역사의 관건적 시각에 신의 사명을 이행하고 대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였습니다.
또한 법을 얻고서도 10년 동안 속인의 생활에 도취되어 길을 잃었던 이 못난 제자를 다시 이끌어주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이루 다 표현할 길 없이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 제자는 꼭 조사정법(助師正法)의 길에서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을 완수하는 진수(真修)제자가 되겠습니다.’라고 맹세했습니다.
중생구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진상 알리기에 전념하다
2010년 8월부터 저는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에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진상을 알려왔습니다. 인천항은 많은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한국으로 입국하는 주요 관문입니다. 이런 장소에서 저희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큰 현수막을 높이 걸고 진상 판을 펼쳐놓으며 녹음기를 틀고 진상자료를 배포한다는 것은 중국인들에게는 놀랍고도 신기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가사의하다는 눈빛으로 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우리를 응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진상초기와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예전에는 중국 단체관광객들이 우리에게 삿대질하면서 욕하는가 하면, 진상자료를 마구 찢어서 우리에게 던지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참으로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중국공산악당에 세뇌된 중국인들이 하루빨리 진상을 알고 삼퇴(三退-중국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중생들은 모두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점을 나는 아주 명백하게 여러분께 알려줄 수 있는데 대법제자들이 그들을 구도하지 않으면 그들이 세계 어느 구석에 있든지 당신들이 그들을 구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희망이 없다” [1]
저는 제가 이곳에 배치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 생각하고 이곳을 하나의 중생구도의 성스러운 장소로 꾸려가고자 다짐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곳 진상거점에서 진상자료를 접을 때부터 정념을 지니고 반듯하게 한 부, 한 부 접음으로써 한 부의 자료가 한 생명을 구도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하였습니다. 여객선이 입항하면 모든 일을 제쳐놓고 발정념을 합니다. 선상에 있는 중국관광객 배후의 사악한 요소, 썩은 귀신, 흑수(黑手) 등을 깨끗이 제거한다는 일념을 내보냅니다. 첫 번째 여객선의 단체관광객이 입국해서 다 떠나가고 나면 두 번째 여객선이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는 정체를 이루어 법공부를 합니다. 이곳에 새로 나온 수련생들은 우리 진상거점의 에너지장이 아주 맑고 깨끗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여객선 입항이 없는 일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6일 동안 내내, 저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폭우가 쏟아져도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진상거점에 나갑니다. 기상악화로 혹은 조류현상 때문에 여객선이 예정된 시간에 입항하지 못하고 두세 시간씩 지연됨에 따라 저희는 밤 9시, 10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갈 때가 아주 많습니다. 한번은 오후 3시 반에 입항 예정인 톈진발 여객선이 6시간이 지연되어 밤 9시 반에 입항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저기서 수련생들로부터 전화가 끊임없이 왔습니다. 진상 알리기가 끝나면 밤이 늦어 대중교통이 끊길 건데 어떻게 해야 되냐고.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진상을 알려야 하며 천여 명의 중국 단체 관광객을 놓치면 안 됩니다.”
결국 10여 명이 넘는 수련생들이 모두 진상 거점에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자료를 배포하는 수련생, 현수막을 들고 있는 수련생, 녹음기를 틀어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 등 각자 맡은 역할을 하며 저마다 분주히 뛰어다니면서 중국인 한 사람이라도 놓칠세라 정념으로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대중교통 막차 시간에 따라 먼저 몇몇 수련생들을 집에 보내고 나머지 5명의 수련생들, 저와 집 방향이 같은 수련생들은 마지막 중국관광객까지 원만하게 진상 알리기를 끝냈습니다. 그러고 나니 새벽 1시가 되었습니다. 부천수련생 두 분을 집까지 차로 모셔다드리고 귀가하니 새벽 2시 반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도 피로감이 없고 몸과 마음이 비할 바 없이 개운하였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가지해주심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저는 전철을 타고 진상 알리러 갈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시간이 늦어서 뛰어가다 보면 저처럼 뛰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때 저는 ‘당신들은 돈을 벌려고 뛰어가지만, 나는 중생 구도하려고 뛰어간다’라고 생각을 하면 마음이 얼마나 뿌듯한지 형용할 수 없습니다.
저의 차량에는 항상 진상자료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과 같이 여객선 운항이 없는 일요일에는 전철역, 공원, 등산로에 다니면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진상을 알렸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이 개인 사정으로 나오지 못할 때도 저는 혼자서 진상 알리기를 견지했습니다. 무거운 진상자료를 옮길 때는 힘들기도 하지만 평소에 무겁게 느끼는 것도 진상 알리기를 할 때는 무거운 줄 모릅니다. 제가 사는 부천시에서는 봄에 진달래 축제, 벚꽃축제, 장미꽃 축제, 복사골 문화축제가 있고, 가을에 어울림 한마당 축제 등이 있는데, 참으로 다양한 축제가 많이 열립니다. 이런 기회도 빠뜨리지 않고 수련생들과 협력해서 축제 현장에 나가 진상 알리기를 하였습니다.
심태를 바르게 하니 주위환경이 변하다
단체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삼퇴 권유를 맡아 하는 수련생들이 항상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제1터미널에서 일부 수련생들이 제가 있는 제2터미널로 와야만 합니다. 정확한 입항시간, 단체관광객 수를 파악해야 하기에 저는 아침 9시가 되면 선사에 전화해서 문의합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전화 받는 직원이 친절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불편하였습니다. 하루는 여직원이 “저희 업무와 관계없으니 다음부터 전화하지 마세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저는 너무 속상했습니다. 이튿날 전화기를 들고 망설였습니다. ‘전화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중생구도를 위해서가 아닌가. 천상의 신마저도 모두 부러워하고 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온 중생들은 모두 대법을 위해서 왔는데 당신들은 대법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자 다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전화기를 들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렇게 매일 전화기를 드는 순간에 저는 ‘당신들은 대법을 위해 우리와 협조를 잘해야 한다. 당신들이 위덕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라는 일념을 내보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사상변화는 곧 당신 주위의 환경에 변화를 일으킨다.”[2]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하면 상황은 변할 것이다.” [2]
그전에는 제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말을 해도 그 직원은 전화기를 쾅 하고 놓았는데 저의 일념이 변하면서부터는 상황이 확실히 변했습니다. 제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면 “예~예” 하면서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심지어 어떤 직원은 미리 단체인원수를 작성해놓고 제가 전화하면 즉시 알려줍니다. 그때부터 저는 선사로 전화하는 것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선사에서 전날 미리 문자메시지를 직접 보내주는 상황으로 바뀌었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지 모릅니다.
진상활동 초기에는 우리가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것을 가이드와 버스기사들이 못마땅하게 여겨 자료를 나눠주지 말라며 화를 내곤 했습니다. 지금은 각 진상거점에서 진상 알리기를 잘하였기에 다른 공간의 사악이 많이 제거됨으로써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초보 가이드들은 제가 녹음기를 조금 크게 틀어 버스 안 관광객들이 듣도록 하면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제가 “가이드님 좀 도와주세요. 저희는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상냥하게 말하면, 가이드의 화내던 모습이 사라지고 다시는 뭐라고 더 말하지 않습니다. 그 짧은 두어 마디 말에 다시 짜증 내는 가이드가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히 대법제자는 사람에게 유익하여 우리가 말을 할 때는 정념에 의거해 말하므로 말을 함에 따라 나가는 것은 연꽃이다.”[3]
저의 선한 마음,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겠다는 일념의 에너지가 온 공간을 뒤덮은 느낌입니다.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떠나면 저희는 손을 흔들어 배웅합니다. 두 손을 흔드는 순간 저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버스 안에 아직 삼퇴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서 빨리 진상을 알고 다른 진상거점에 가서 꼭 삼퇴를 해야한다’는 강렬한 일념을 내보내는데 저의 자비가 작용을 일으키리라 믿습니다. 또한 많은 중국인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가 펼쳐놓은 박해고문 사진들을 보면서 진상자료를 스스로 가져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사악한 중공의 독해로 깊은 수렁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이 그 얼마이며, 대법제자의 손길이 닿지 못한 곳에 또 얼마나 많은 중생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대법제자들은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임을 절실히 느끼면서 빨리 구하고 많이 구하려는 일념뿐입니다.
인천 제2국제여객터미널에는 운영본부와 항만보안공사라는 두 개의 큰 관리부서가 있습니다. 이 관리부서의 책임자들이 수시로 바뀌는 것을 알고 저는 새로 온 책임자들께 파룬궁 진상자료를 갖고 가서 진상을 알립니다. 지난 3월에는 터미널 진상 10주년을 기념하면서 저는 감사편지를 써서 그 관리부서 책임자들에게 전하였습니다. 내용인즉 저희가 하는 진상활동에 대해서 터미널 내 관리자들과 전체 직원들이 따뜻한 협조를 해주어 감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진상활동을 위해 집회신고를 한 구역은 10미터 밖에 안 되는데, 지금은 300미터도 넘는 구역에서 현수막을 들고 녹음기를 틀어 진상을 알리고 있는데 이것은 터미널 내에서 너무나 활발한 활동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사부님이 하시는 것으로써, 저희는 단지 행동만 할 뿐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재작년 가을, 우리 제2국제여객터미널 진상거점에 진상을 알리러 나온 남자수련생이 갑자기 “티엔티(天梯-하늘 사다리)! 티엔티!” 하면서 북쪽 하늘을 가리키며 흥분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습니다. 저희도 맑고 파란 하늘에 흰 구름으로 이루어진 ‘하늘 사다리’를 보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과연 그림이나 만화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입체로 된 아홉 계단 사다리는 너무나 선명하고 또렷하여 그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밖에서 진상하던 수련생들은 저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고 누군가는 대합실에 달려가서 삼퇴를 책임진 수련생들에게도 알려서 모두 보게 하였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그날 10여 명의 수련생들이 모두 다 사진을 찍고 난 후 ‘하늘 사다리’는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실로 순간 포착이었습니다. 발견해서 3분 정도 지나 다른 꽃구름들은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었는데 오로지 ‘하늘 사다리’만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천문지식이 없는 우리로서는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고 모두 좋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또 한 가지 신기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 진상거점에서 현수막을 거는 곳에 소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진상초기부터 우리는 그 소나무 숲 그늘 밑에서 법공부와 발정념을 했습니다. 8년 전부터 소나무에 우담바라가 피었는데 해마다 10월부터 피기 시작하면 몇 개월간 지속해서 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상 구역을 더 늘려서 버스주차장까지 확대해서 진상 알리기를 하였더니 3년 전부터는 버스주차장 양쪽의 소나무마다 우담바라가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담바라는 변함없이 해마다 피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고무격려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배려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당(黨)문화 독소를 제거하는데 노력하다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 40년 넘게 그곳에서 살았기에 중공 사당(邪黨)의 당(黨)문화 독소가 뼛속까지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 사회와 접촉하면서 중국과 다른 점을 많이 느꼈지만 단순히 문화적 차이라고 여겼습니다. 대법을 수련하면서 이것은 단순한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변이된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형성된 당문화임을 알게 되었고 중공 사당 문화에 젖어 사상, 관념, 생활방식, 생활행위가 모두 그런 상태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악한 당문화를 하루빨리 제거하려 노력했습니다.
저는 5남매 중 맏이로서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기세등등하게 아래 동생들을 휘어잡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2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작은 직장에서 관리직을 맡아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단적인 관념으로 일을 처리해 나갈 때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당문화는 저도 모르게 매 세포 속에 침투되었던 것입니다.
한번은 어느 수련생분이 저보고 뭘 하든지 모두 명령식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저는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수련생이 짚어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명령식인 줄 몰랐을 것입니다. 저는 곰곰이 안으로 찾아보았습니다. ‘왜 당문화의 사악함을 알면서도 막상 자신에게 그런 나쁜 습성이 있다는 걸 느끼지 못했을까….’ 저는 마땅히 이런 잘못된 습성을 제거해야 된다고 인식하고 매사에 주의해서 행동했습니다. 특히 과시심, 쟁투심, 질투심, 독단적인 처리방식,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심리 등을 반드시 제거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런 잘못된 방식을 버리려고 하니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녹음기를 메고 관광버스 주변에 갔을 때 한 젊은 관광객이 저를 밀치면서 비키라고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쟁투심이 올라왔을 텐데 그때 당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아주 평온하게 “당신은 이러면 안 됩니다. 이것은 저의 권리입니다. 우리 파룬궁은 한국정부가 지지하고 경찰이 보호하고 있습니다.”하는 말이 거침없이 술술 나왔습니다. 중국어가 서툰 제가 어떻게 이런 말을 유창하게 했을까. 그리고 경찰이 보호한다는 것은 맞는데 ‘한국정부가 지지한다’는 말은 맞는 것인가?
버스가 다 떠나간 다음에 저는 옆의 젊은 화인 수련생에게 물었습니다. 그도 딱히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순간 저의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렇지! 우리 파룬궁은 한국 사단법인에 등록되어있기에 한국정부가 인정해준 것이 아닌가!’ 제가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순간 터져 나온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인식하자 온몸이 격동되었습니다. 관광객들은 살아있는 매체입니다. 중국에서는 정부가 반대하고 경찰이 수련생들을 무고하게 잡아가는데, 해외에서는 경찰이 보호하는 다른 세상이란 걸 그들이 목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대학생단체나 학생단체가 왔을 때면 이 어구를 종종 사용하곤 합니다. 제가 당문화 독소를 제거하려고 노력하니 사부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이라고 인식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최근 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대륙에서 양성한 많은 생활습관과 행위방식을 갖고 있는 그런 사람들은 국제사회 중에서 반드시 자신을 개변해야 한다.” [4]
앞으로 저는 모든 면에서 당문화로 형성된 관념과 사상을 깨끗이 제거하는데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저작: ‘각 지역 설법 9-씬탕런방송토론회설법’
[2] 리훙쯔(李洪志)사부님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3] 리훙쯔(李洪志)사부님저작: ‘각 지역 설법 11-2010년 뉴욕법회설법’
[4]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신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2019 한국 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19년 11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원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19/3959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