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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무겁고 갈 길이 먼 17세를 체득하다

[밍후이왕](밍후이 기자 선룽 인터뷰 보도) 개개인의 17세는 다 그다지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스타를 우상으로 받드는 데 빠지고 어떤 사람은 책 속에 머리를 파묻었다. 생명의 갈림길에서 수련해낸 무사(無私)와 용기에 따라 자기만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

1960년부터 타이완 수출 대공업은 경제 비약의 기적을 만들었다. 경제 기적의 막후에서 추진한 사람은 바로 열심히 일하고 땀 흘린 많은 상인과 서민이다. 정위츠의 아버지가 바로 그중의 한 분이다.

그녀는 회고했다. “저는 기억이 있을 때부터 아버지는 매우 공사다망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맨주먹으로 기업을 꾸리고 플라스틱 공장을 경영했습니다. 금형을 다그쳐 만들고 주문을 받기 위해 24시간 기계를 가동하고 주문받은 것을 생산했습니다. 잠결에 쿵쾅하는 기계 소리에 시끄러워 잠에서 깨어나면 저는 아래층에 내려가 함께 상자 포장을 했습니다. 후에 새집에 이사 간 후 아버지는 거의 공장에서 잤고 어떤 때 새벽 3, 4시에 집에 돌아와 문 여는 소리가 들려 저는 몽롱하게 침대에서 뛰어내려 아버지를 맞이했습니다.”

밤이 깊어 조용할 때 아버지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하면서 위츠를 태우고 끊임없이 회사에서 나온 완성품을 서둘러 한 집 한 집 고객 아파트 경비실에 가져다주었다. 심야에 위츠도 늘 차에서 인내심 있게 아버지가 고객과 미팅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부모가 매일 생활을 위해 전력을 다해 노력하는 것을 보고 위츠도 인생이 쉽지 않고 어려운 것을 직접 체험했다.

2005년 아버지는 황금색 책을 가지고 집 문에 들어섰다! 위츠는 말했다. “저의 부모는 결혼하기 전에 정법을 찾기 위해 많은 법문에 들어갔습니다. 그날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을 때 저는 처음 아버지 표정이 그렇게 흥분된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큰소리로 ‘나는 진법(眞法) 진도(眞道)를 찾았다.’라고 외쳤습니다!”

아버지의 추천으로 초등학교 5학년생 위츠는 하루 동안 9일 강의 내용을 전부 다 보고 다음 날 결가부좌와 다섯 가지 공법을 배웠다. “인상이 매우 깊은 것은 제가 ‘전법륜(轉法輪)’을 다 본 후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저와 교류하고 우리 꼭 용맹한 사자처럼 용맹정진하자고 격려했습니다.”

17세에 천 근의 중임을 메다

[사진]

정위츠는 연공 할 때 강대한 에너지가 손에서 도는 것을 느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위츠는 사립중학교에서 공부할 때 기숙사에 있었다. “그곳에는 인터넷이 없고 텔레비전이 없었습니다. 저는 ‘전법륜’을 가지고 학교에 가 매일 ‘논어’를 한 번 외우고 한 부를 베껴 탁자 깔개에 놓았습니다. 당시 중국공산당이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어 저는 동급생에게 중국에는 나처럼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많은 좋은 사람이 박해받고 있으며 심지어 생체장기적출을 당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또 그녀들에게 밍후이왕 사이트를 알려주고 ‘파룬따파하오!(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알려주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아버지의 공사다망한 정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파란만장한 압력이 잇따랐다. “어느 날 아버지 목소리가 갑자기 쉬었는데 한동안 지속했습니다. 그때 고객의 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나 우리 집에 주지 못한 몇백만의 밀린 빚이 있었습니다. 방대한 자금 부족에도 아버지는 악담하지 않았고 우리에게 어떤 일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아버지는 고객도 어쩔 수 없고 돈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묵묵히 압력을 감당하고 바쁘게 일해 몸이 이 때문에 점점 나빠졌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호흡할 수 없어 병원에 가서 기관지 절개 수술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녀가 의지할 사람이었는데 위츠도 차츰 성장했다. 그녀는 본인도 가족의 강력한 받침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기관지 절개 수술을 한 후 말할 수 없고 어머니가 혼자 해낼 수 없었기에 그다음 해, 저는 학교에 상황을 설명한 후 휴학하고 우리 집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저는 이것은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반드시 해야 하고 어떤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17세 나이에 동급생들은 근심 없는 나날을 보내 부럽기도 하고 갈망하기도 했다. “제가 마음을 조용히 할 수 없을 때 파룬따파가 저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인은 또 버릴 수 있어야 하며, 속인 중의 각종 집착과 각종 욕망을 버려야 한다. 단번에는 해낼 수 없겠지만, 우리는 서서히 할 수 있다.’ 저는 사부님께서 매 사람의 길을 안배하신 데에는 다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개개인의 길은 다 참조가 없습니다. 제가 끊임없이 법을 배우고 사상을 바로 잡은 후 더 많은 자신감과 힘이 생겨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깨달았다. “난관 앞에서 저는 진정하게 깨달았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부딪힌 어떤 표면 현상이든 동요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어려움 배후의 원인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지만 이미 수련했기에 이런 어려운 환경과 거대한 압력 하에서도 견정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위츠는 말했다. “그때 공장의 주문이 많아 매우 바빴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고객을 만나러 가 미약한 소리로 말해 제가 옆에서 통역해야 했습니다. 줄곧 제가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모두 1~2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나마 회사 영업은 나날이 발전하여 채무도 점차 메우고 새 기계도 사 많은 인력을 절약했습니다.”

매일 긴장되고 바빴다. 위츠는 아버지를 따라 도면 제작, 금형 제작을 배우면서 휴가엔 관광지에 가서 연공하고 법을 알렸다. 대학 생활의 다양함이 없었지만, 그녀의 생명에서 풍요로운 소중한 청춘 시기였다.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고 한고비 또 한고비를 넘다

2016년에 아버지의 병은 더 심해 다시 입원했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봐야 했기에 위츠 혼자 회사에서 중임을 맡아야 했다. “낮에는 스트레스가 매우 컸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옆에 없는데 회사 생산설비는 끊임없이 생산하고 서둘러 출하했습니다. 품질을 보아야 하고 직원의 크고 작은 문제를 처리하고 끊임없는 고객의 전화도 받아야 했기에 매일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매우 무기력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위츠는 차를 몰고 병원으로 가다가 가파른 산길을 지나게 됐다. 당시 밤이 깊었는데 길이 어두운 데다 비바람까지 불었다. “한 단락 산길이 매우 경사가 급격했고 사람도 없고 차도 없었습니다. 저의 심리적 압력이 매우 커 알 수 없는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차에서 갑자기 사부님의 설법이 울렸습니다. 사부님께서 바로 저의 옆에서 저를 돌보고 있는 것 같았고 마지막에 순조롭게 평안하게 도착했습니다.”

매일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나날을 보냈다. 매번 그녀는 압력이 커 무너질 것 같았지만 위츠는 줄곧 자기가 누군지를 잊지 않았다. “저는 늘 대법 경서를 펼친 후 참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사부님의 매 단락 법이 모두 용감하게 대하라고 저를 격려하는 것 같았습니다. 공장에 많은 돌발 상황이 나타났지만, 은연중에 한 고리 한 고리 맞물려 지나갔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1]”

손바닥이 기계에 감겨 들어갔는데 털끝만큼의 상처도 없었다

천근이나 되는 무거운 짐을 짊어졌지만 돌이켜 보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고 심지어 많은 신기한 기적이 발생했다.

위츠는 말했다. “한번은 대형 기계 위에 더러운 물건이 보여 손으로 깨끗하게 치우려고 했는데 뜻밖에 기계 축에 말려 들어가 손바닥이 안에 끼여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상식적인 도리로 판단하면 저의 손은 이미 끼여 부러졌든지 분쇄성 골절이 됐을 겁니다. 당시 첫 일념은 사부님을 생각했고 ‘아무 일 없다.’라고 생각하고 냉정하게 직원에게 말해 나사를 풀고 양쪽 회전축을 풀었습니다. 제가 손을 꺼낸 후 부어서 찐빵만큼 커졌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저녁에 예전처럼 법공부 장소에 가서 법을 배우고 손을 들어 연공했습니다. 저는 매우 강한 에너지 흐름이 끊임없이 손을 맴도는 것을 느꼈습니다. 2∼3일 지나 붓기가 사라졌고 지금은 아무 문제 없이 줄곧 매우 원활합니다.”

타이완 신베이에는 한 차례 큰불이 발생하여 아파트 8개 동의 집 26채가 불에 탔다. 마지막에 화재는 ‘파룬따파 쩐싼런’ 현수막이 걸린 집에서 멈췄다. 위츠 집 공장의 주마등에도 ‘파룬따파하오 쩐썬런하오(真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가 쓰여 있고 끊임없이 순환했다. 2017년 한 차례 생명 위험을 일으킬 수 있는 큰불은 마찬가지로 긴요한 시각에 신속하게 해결되었다.

위츠는 말했다. “우리 공장 옆에는 폐가구를 쌓아놓은 함석판 방이 하나 있는데 어느 날 어떻게 일어났는지 큰불이 활활 타오르며 아주 빨리 우리 기계에까지 붙으면서 거대한 폭발 소리가 울렸습니다. 온 거리 이웃이 다 뛰어나와 보았습니다. 당시 공장 앞은 타이완 전봇대가 있었고 맞은쪽에는 주유소가 있었으며 공장에는 대형 기구가 있었습니다. 일단 불이 붙으면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위기일발의 시각에 우리가 모르는 한 사람이 갑자기 뛰어들어 와 메인 전원을 껐습니다. 소방차도 이때 도착하여 거대한 재난이 순간 진압되었습니다. 사후 어머니는 당시 줄곧 속으로 ‘파룬따파하오!’를 묵념했다고 했습니다.”

맺는말

지금의 위츠는 직장에서 자신감 있고 침착하며 한 몫을 맡을 뿐만 아니라 고객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션윈 공연 보급도 맡아 순수한 미의 정상급 예술을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고 있다. 앞으로 그녀는 계속 진학하여 전문적 능력을 충실히 할 예정이다.

“사실 저는 이전에 매우 부끄러워하고 낯을 가렸으며 사람들을 접촉하는 것도 어려워했습니다. 어떤 때 돌이켜 보면 제가 어떻게 걸어지나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길에 사부님께서 옆에서 저를 보호하셔서 저를 끌어올리고 한고비 또 한고비를 넘긴 것입니다! 지금 일분일초가 모두 매우 소중합니다. 저는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기만 하면 난관을 넘고 자기를 제고할 수 있고 더 많은 생명이 ‘파룬따파하오!’를 알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11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1/3952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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