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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회] 한국 신 수련생, 대법을 얻어 새로 태어나다

글/ 한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2017년 6월 20일 법을 얻은 신 수련생입니다. 저는 다정다감하고 자상한 남편, 예쁜 두 딸과 함께 큰 어려움 없이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은 늘 가슴 한편이 허전하고 뭔가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불교에 관심이 많아 스님들이 쓴 책을 주로 보고 법문 듣기를 좋아했으며 그분들의 청정한 삶을 동경했습니다.

2015년 4월 큰딸이 신혼여행 중에 있을 때 큰딸 방에서 혼자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이상한 기운이 저를 감쌌습니다. 온몸의 기운이 쫙 빠져나가면서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하는 공허감이 밀려와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렇게 저에게 소리 없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그 이후 삶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밤낮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지난날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떠오르며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병원도 이곳저곳을 찾았지만, 오히려 더 심해 몇 달 사이 5~6kg의 체중이 빠지면서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족들도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몇 년 동안 시달리던 우울증에서 벗어나다

어느 날 새벽 산책하러 나가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현수막 앞에 이르러 발걸음이 멈춰 섰습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보고 책자도 가져와 보고 정말 좋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다음날도 음악 소리가 듣기 좋아 한참을 서서 들으며 연공 동작이 신성해 보였지만 선뜻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 후로 책자를 침대 머리맡에 놓고 잊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어느 날 요가를 마치고 담화 중에 일행 중 한 사람이 자기는 기체조를 배운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디서 배우냐고 물었더니, 바로 내가 알고 있던 그곳이었습니다. 그때 내 마음은 격동되었고 ‘내일부터 나도 가야겠다.’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시간에 맞춰 연공장에 나가 책임자로부터 연공 동작을 배우고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연공이 처음이라 낯설기도 하고 연공이 끝나면 수련생들이 서둘러 연공장을 떠나버려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한동안 그냥 나가서 어설프게 동작만 따라 했습니다. 이후 책을 사서 본 후, 이제 막 들어선 저로서는 해내기가 무척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심한 우울증 상태에서 책을 보아도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가 연공은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장 공법 파룬쫭파(法輪樁法) 동작을 하는데, 양손에서 뭔가가 빙빙 도는 듯한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신체에도 여러 반응이 나타났는데 나중에서야 사부님이 신체를 청리해주셨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렇게 몇 개월이 지나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죽을 것처럼 마음이 답답하고 복잡했던 머리가 연공할 때 서서히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느리지만 법 공부도 꾸준히 하여 왜 이런 일이 나타났는지 법리를 알게 되니, 마음이 편해지면서 정상적인 수면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련한 지 10개월쯤 되었을 때, 오른쪽 다리에 벌레가 문 것처럼 가려우면서 종기처럼 빨갛게 올라왔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커지면서 진물이 나기 시작했고, 2개월이 지나자 온 다리와 양팔에도 번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리가 당기고 아파서 제대로 일어설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도 붕대로 다리를 싸매고 나가 연공을 견지했습니다. 책에서 본 소업이라는 걸 알지만 너무 심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가족들은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성화였지만 저는 수련 중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설명하고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6~7개월 동안 수십 번의 딱지가 앉았다가 지고를 반복하고 나서야 서서히 나았습니다.

법 공부를 하면서 수련 중에 나타나는 소업상태는 병이 아니고 업을 갚는 것이라 인식하게 되고 어떤 상태든지 다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어떠한 강렬한 반응이 나타나도 병원에 가지 않고 견뎌냈습니다.

내 몸에 나타나는 신기한 반응을 보며, 가족들도 지금은 병원에 가라는 소리를 하지 않고, 저의 수련을 지지합니다.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신체를 청리해주시고 청리해주시는데도, 여전히 가슴속에는 뭔가가 뭉쳐있는 것 같아 답답하고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공 중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가슴이 확 트이고 편안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몇 년 동안 시달리던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나, 가정도 예전의 평온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나는 정말 대법(大法)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상황이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사부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침 연공을 견지하다

연공이 단순한 신체단련 운동이 아니고 대법(大法) 수련이라는 것을 인식한 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아침 연공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동공(動功)만 하다 차츰 정공(靜功)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담이 작고 두려움을 많이 타는 성격입니다. 처음에는 일찍 나가는 게 익숙하지 않아 집을 나서면서 주위를 경계하며 긴장된 마음으로 연공장에 갔습니다. 멀리서 현수막이 보이면 안심이 되면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겨울에는 날씨가 춥기도 하고 우리 연공 시간이 일러 주위가 어둡고 인적도 드물어 그 시간에 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에 매일 말 없이 묵묵히 현수막을 걸고 전단 설치대를 가져와 전단을 정리하는 수련생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날은 나가면 혼자서 가부좌를 하는 모습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하며, 함께하지 못함을 미안해했습니다. 하루빨리 가부좌 1시간을 돌파해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다리에 소업이 와서 피가 나고 진물이 날 때 한 노 수련생은 같이 정공을 하자고 했습니다. 가부좌할 때 다리가 너무 아파 내리면 작용이 없고 수련이 헛되다는 걸 알지만 견지할 수 없어 내린 적도 있습니다. 노 수련생들은 꼼짝도 안 하고 견지하는 걸 보고 신 수련생인 내 눈에는 다 신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언제쯤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아픔을 참아 내고 서서히 돌파했습니다. 그 후로 다른 수련생들이 나오지 않아도 우리 두 사람은 매일 같이 연공하고 가끔 일이 있어 그 수련생이 정공만 하고 들어가면 혼자 남았습니다. 같이 들어가고 싶었지만, 사부님의 법신(法身)과 파룬(法輪)이 보호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끝까지 견지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은 가장 좋은 휴식이다. 당신이 잠을 자도 다 도달하지 못하는 휴식에 도달할 수 있다. 내가 연공하여 너무나 지쳤기에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저는 소업이 와 몸이 좋지 않거나 잠이 좀 모자라도 연공장에 나가 연공을 하면 몸이 가뿐하고 정신도 맑아집니다.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연공 음악에 따라 또렷한 정신으로 연공 하면 정말 효과가 좋습니다.

저는 연공장에 나가 현수막을 걸고 연공 하는 것이 제일 좋은 홍법(洪法) 활동이고 진상 알리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아침 연공장에 나가 연공을 견지할 것입니다.

씬씽(心性)관을 넘다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노 수련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수련생은 저의 수련에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저에게 필요한 대법 서적을 사다 주었고 연공 동작도 바로잡아 주며 세심하게 신경 써 준 덕분에 저는 빨리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대법 항목에 ‘요고대(腰鼓隊)’가 있는데 같이 하자고 권했습니다. 저는 생소하기도 하고 원래 동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아 내키지 않았지만, 연습 장소에 따라 나갔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적응하면서 재미도 느꼈습니다.

오래지 않아 요고대 책임자가 바뀌면서 그 수련생은 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새로 팀장을 맡으면서 저에게 요고대에 필요한 물품 구매를 도와달라고 부탁해 쉽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맡게 되었습니다. ‘팀장이 화인이라서 국내 사정을 잘 아는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돕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요고대를 새로 맡으면서 그동안 써오던 물건들이 오래되고 낡아 새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바꾸는 과정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요고대에 필요한 물건을 대만에 주문하는데 일반적인 물건이 아니다 보니 주문 제작해서 오는 과정이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한곳에서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주문해야 했습니다. 국내에서 필요한 소품들은 직접 시장에 같이 가서 사고, 어떤 물건은 공장에 직접 주문해서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인원은 계속 늘어나고 주문한 물건에 착오도 생기고 일이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일하는 과정에서 일의 스타일, 문화적 차이, 성격 차이에서 오는 마찰이 생겼습니다. 일함에 독려하고 몰아붙여 스트레스를 받았고 말은 안 하지만 표정과 행동에서 서로 못마땅해하는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을 빈틈없이 하는 성격이다 보니 옆에서 돕는 사람들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급기야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법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갈수록 두 사람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5.13 행사를 앞두고 요고 연습을 거의 빠지지 않고 참가해서 열심히 했습니다. 행사를 하루 앞둔 밤에 자리 배치도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몇 달 동안 연습한 자리를 말도 없이 살짝 바꾼 것입니다. 자칫하면 동작이 틀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앞자리도 아닌데 굳이 자리를 바꾼 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행사를 잘 마치고 행진 시간이 되었습니다. 퍼레이드 할 때 저는 앞에서 바라를 쳤었습니다. 준비하고 앞자리에 섰는데 이번에도 뒤로 가라고 했습니다. 잠시 마음의 평형을 잃고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분명 관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참아 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날 밤 팀장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지금까지 수고한 덕분에 행사를 잘 마쳐 고맙다는 인사였습니다. 저도 행사를 잘 마쳐 기쁘다고 말하고 “내가 할 일은 이제 끝났으니 이번 행사를 끝으로 요고대를 그만두겠다.”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후에도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고 연공장에서 마주치는 것조차 불편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일하면서 생긴 모순으로 감정이 좋지 않아 고의로 저를 그렇게 대했다고 생각해 화가 났습니다.

며칠 후 예술 공원에서 연공을 마치고 다른 수련생과 셋이 식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또 요고대 얘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듣고 있다 저도 몰래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남이 보는 앞에서 사람을 그렇게 난처하게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순간 분위기는 싸늘했고 식사를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대충하고 나왔습니다. 같이 갔던 수련생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다음 날 사부님의 신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이 발표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마치 직접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대륙사람은 무슨 일을 함에 있어 무슨 일이든 단번에 가장 극단적으로 맨 꼭대기가지 끝가지 해내지 못함을 한스러워하는 모두 그런 심태이다. 그것은 사람의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므로, 이런 사상과 행위를 갖고서는, 국제사회 중에서 국제사회 사람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2]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중국대륙에서 양성한 그런 습관은, 글을 쓰든 무슨 일을 하든, 단번에 끝장을 보려고 한다. 그러한 풍조와 그러한 사상은 정말로 국제사회의 사람으로 하여금 견딜 수 없게 한다.”[2]

여기까지 읽었을 때 저는 모순의 원인이 오직 다른 수련생의 잘못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말씀에서 저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을 받고 말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아무리 좋지 않은 일에 부딪쳤더라도 모두 정면으로 가서 보아야 한다. ‘아 이 일은 나의 제고에 좋은 점이 있다’ 모순에 부딪히게 되면 누구의 탓이든 우선 자신에게서 찾는다. 한 수련자로서 당신이 이러한 습관을 양성할 수 없다면 당신이 사람과 반대로 문제를 볼 수 없다면 당신은 영원히 사람 속에 있는 것이며 최소한 잘하지 못한 그 일보는 당신이 사람 중에 있는 것이다.”[2]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마치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남의 잘못만을 찾는 사람의 상태에서, 안을 향해 찾는 수련인의 상태로 깨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경문을 좀 일찍 보았더라면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모순을 좀 더 이해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연공을 마치고 우리 두 사람은 신경문에 대해 교류하면서 서로 안으로 찾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더 잘하자며 화해했습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저희를 위해서, 서로 일깨워 주며 공동제고할 수 있도록 배치하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우리들의 관계는 선타후아(先他後我)를 행하며 서로 존중하는 사이로 한층 승화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은 씻어 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몸과 마음이 투명해질 때까지 씻고 또 씻을 것입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저작: ‘북미 제1기 법회설법’
[2] 리훙쯔(李洪志)사부님저작: ‘2019년 뉴욕법회 설법’

(‘2019 한국 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19년 1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원고
원문발표: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17/3959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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