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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이여, 당신은 법 공부하고 있는가

글/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아주 오래전부터 이 문장을 쓰고 싶었지만 각종 원인으로 계속 필을 움직이지 못했는데 아마도 기연이 성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대륙 환경은 표면에서 보면 박해가 아직 지속하고 있고 수련생은 병업 가상 박해가 생기고 사오가 나타나는 것이 점차 많아지는 추세이다. 이런 문제를 마주하고 많은 수련생이 밍후이왕에서 자신의 인식을 교류했다. 여기서 나는 다른 한 각도에서 자신의 인식을 말하고 싶고 수련생들과 교류하여 부족한 곳은 수련생들이 지적하고 원용하기 바란다.

의심할 바 없이 각종 박해 원인을 조성하는 원인은 모두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것이고 구세력이 왜 강제로 가할 수 있었는가? 나는 두 가지 가장 기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여긴다. 하나는 우리 수련에 누락이 있어 구세력이 틈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법리가 불분명하여 무형 중에 구세력의 것을 묵인하여 조성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법 공부하여 법을 얻고 법 공부가 마음에 들어가고 사람 마음이 갈수록 적어지면 법리는 갈수록 또렷해지고 정념은 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그때 당신은 구세력이 설치한 미혹 진지에서 걸어 나올 수 있는데 왜냐하면 당신은 진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바로 단호하게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행하는 것이다. 이 한 점을 나 자신의 수련에서 깊은 체험이 있고 여기서 더는 예를 들지 않을 것이고 나는 여기서 단지 수련생들과 한 가지 문제를 교류할 것이다. 왜 법 공부를 했는데 법을 얻지 못하는가?

1. 대법과 법 공부를 대하는 인식과 심태가 아주 관건적인 문제

대법에 대한 인식 정도가 당신이 법 공부할 때심태의순정한 정도를 결정한다. 어떻게 이 한 부의 대법을 대하는가. 이는 아주 관건적인 문제이다. 가능하게 일부 수련생들이 말할 것이다. 이렇게 오래 수련했는데 누가 이 문제를 모르는가! 그러나 사실상 이러하지 않은데, 일부 수련생들의 ‘전법륜(轉法輪)’을 대할 때의표현은 당신이 마음속으로 이 법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설명하며단지 관념의 인식이다. 이는 이러한 수련생들이 법 공부할 때 모두 이런 관념을 안고 책을 보기에 법을 얻지 못함을 조성했다.

한동안 나는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체계적으로 배웠는데, 특히 박해 이전의 각 지역 설법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설법 중에 모두 수련인이 이 한 부의 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말씀하신 것을 발견했다. ‘전법륜’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해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이 공간에서 본 그는 한 권 책이지만, 다른 공간에서 본다면 이렇지 않으며 그는 천법(天法)이다.”[1] 이는 나에 대한 진감이 무척 컸는데 원래 나는 계속 사람의 관념을 안고 이 한 부의 우주 대법을 인식했다. 나는 계속 사람의 글, 종이, 책의 관념으로 이 한 부의 우주 대법을 인식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예를 들어주겠다. 불교 중에서는 인류사회의 모든 현상이 모두 환상이고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어찌하여 환상인가? 이 확실하고 확실하게 거기에 놓여 있는 물체, 그것을 누가 가짜라고 할 수 있는가? 물체가 존재하는 형식은 이런 것이지만, 그것의 표현 형식은 도리어 이런 것이 아니다.”[2] 나는 항상 이런 환상 속에서 이 한 부의 신성한 우주 대법을 인식했는데 어찌 내심에서 이 한 부의 법을 존경할 수 있었겠는가? 이는 범죄이다! 어찌 법을 얻을 수 있겠는가?

내가 이 한 점이명백해졌을 때 나의 법 공부할 때의 마음 상태가 개변되었다. 하루는 두 다리를 단정하게 결가부좌하고 ‘전법륜’을 들었고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께서 이 한 부의 우주 대법을 제자에게 전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일체를 감당하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 이 한 부의 대법을 대법제자에게 전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 중생을 구출하기 위해 헌신하신 일체에 감사드립니다! 이때 나의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 시각 나는 대법과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느꼈다. 나는 법 공부할 때 자신이 책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자비롭게 설법하시는 것을 듣는 것 같았다. 매 한 마디 모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고 나는 겸허하게 듣고 있었다. 펼쳐진 것은 모두 법의 배후의 내포였다! 아울러 주변의 일체를 느끼지 못했고, 신체는 마치 모두 느낄 수 없었으며, 자신의 사유와 사부님의 설법만 남아있었다.

이번 경험에서 나는 대법에 대한 인식이 법 공부할 때의 심태를 결정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고, 아울러 법 공부할 때 심태의 순정 정도는 법이 당신에게 펼쳐주는 정도를 결정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했다.

2. 사람의 관념을 안고 법 공부

최근 나는 또 자신이 일부 수련생과 같이 계속 사람의 관념을 안고 법 공부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여러 방면에서 체현되었다. 예를 하나 들면, 내가 ‘전법륜’을 배울 때 부동한 장절에 대해 마음 상태가 달랐는데, 예를 들어 “씬씽(心性) 제고”[2], “누가 연공(煉功)하면 누가 공(功)을 얻는다”[2]를 나는 배우길 원했지만, “축유과(祝由科)” 등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갔다. 또 예를 들면, 나는 각 지역 설법을 배우길 원했는데, 높이 말씀하셨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법륜’을 배우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법륜’을 공부하면 법의 내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 마음으로 법을 대하는 것이 아닌가!

또 어떤 법 공부 팀은 법 공부하기 전에 모두 일부 속인의 일을 말했고, 법 공부할 때 시간을 채우기 위해 매일 몇 강의를 읽는 것을 규정했으며, 시간이 다 된 것을 보고아직 다 읽지 못했을 때는 속도를 내는 등등,일련의 바르지 못한 심태와 상태를 보였다. 이렇게 사람 마음으로 대법과 법 공부의 신성함을 대하면서 어찌 또 법 공부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전에 한동안 법 공부해도 법리를 볼 수 없어 아주 조급했다. 밍후이왕에서 한 수련생이 법을 외우고 법을 베껴 쓰면서 법리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교류를 보았다. 나도 법을 외우기 시작했지만, 한동안 외워도 상태는 개변되지 않았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이는 밖을 향해 찾은 것이었다. 법을 배워도 법을 얻지 못함은 자신의 수련 원인이 조성한 것이었는데, 나는 자신의 문제를 찾지 않았다. 법을 외우고 법을 베껴 쓰거나 법 공부 정도를 강화하는 것을 통해 자신이 법을 배워도 법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개변하려고 생각했는데, 이는 속인의 생각을 이용해 자신의 법 공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닌가?

3. 법 공부가 수련에서 이탈

일부 수련생은 법 공부한 후 책을 놓으면 속인과 같다. 일부 수련생은 이런 수련생은 법 공부와 수련이 이탈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보지 않는데 이런 수련생은 법 공부해도 전혀 법을 얻지 못했고 형식에 그치는 법 공부일 뿐이다. 만약 우리가 법을 마음속에 배워 넣을 수 있고 마음속에 넣을 수 있다면 우리가 문제에 부딪혔을 때 법은 당신을 점화하여 깨울 수 있고 만약 당신이 인식하면 법은 스스로 바로잡고 일체 바르지 못한 것과 부족함을 원용하여 문제에 부딪히면 스스로 법력을 펼쳐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 수련생은 왜 문제에 부딪히면 법을 생각하지 못하는가? 사실 그의 대뇌에는 전혀 법이 없기 때문이고 평소에 이른바 법 공부하는 것은 모두 사람 마음과 관념으로 책을 본 것이고 얻은 것은 모두 사람 이 한 층의 책 속의 말이기에 시간이 길어지면 흩어지게 된다.

법 공부할 때 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깨달음이 없는가. 또 한 가지 원인은 바로 이 기간 시간에 당신은 자신을 닦지 못하여 경지가 제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부님 설법에서 우리는 모두 알 수 있게 되는데 우리가 법 공부할 때 법리를 본 것은 우리가 본 것이 아니라 법 배후의 불도신(佛道神)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반드시 그 경지에 도달해야 비로소 그 경지의 법리를 알 수 있다. 나는 수련에서 이에 대해 깊은 체험이 있다. 나는 매번 한 개 집착심을 제거하면 법은 나에게 한 층의 새로운 법리를 펼쳐주었다. 이 한 층의 법리는 나를 지도하여 자신의 더 깊은 층차의 집착과 부족한 점을 인식하게 했으며, 내가 새로운 법리 속에서 이런 부족한 점을 바로 잡은 후 또 갱신된 법리가 펼쳐졌는데, 바로 이렇게 자신을 끊임없이 닦게 되고 끊임없이 법 속에서 승화하게 했다.

4. 법 공부가 법실증 중생 구도에서 이탈

대법제자오늘날의 수련은 단순한 개인 수련이 아니고 정법과 연결된 정법 수련이며 조사정법과 중생구도의 신성한 사명이 있다. 마침 이렇기에 법 속에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사부님을 돕고 중생을 구도하는가의 부동한 층차의 법리 내포를 가르쳐주고 있다. 법 공부가중생구도와 서로 이탈된 그런 수련생은 법 속에서 제고할 수 없다.

왜 일부 수련생들은 법을 배웠지만 법을 실증하지 못하고 중생을 구도하지 못하는가? 나는 이런 수련생들은 법을 얻지 못하거나 법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개인 수련 단계에 머물러 정법 노정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한동안 나는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한 번 배운 후 마음속으로 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해야겠다는 소원이 강력하게 올라왔다. 그때 나는 내심에서 미혹 속의 세인 생명 내원의 고귀함을 인식하게 되었고 동시에 그들이 정말 아주 고달프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진상을 알릴 때 정말 자비심이었고 몇 마디로 인연 있는 사람에게 아주 많은 진상을 알고 사당의 일체 조직에서 탈퇴하여 구도 받게 했다. 그때 법 공부 상태도 아주 좋았다.

5. 법 공부 중에 교란과 박해에 대해 인식이 똑똑하지 못하다

최근 며칠 동안 나는 법 공부할 때 가끔 일부 잡념이 나타났고 배척하지 못하고 누르지 못했다. 나는 처음에는 자신의 사상업과 사람 마음의 반응이라고 여겼고 되도록 그것을 배척하려고 했다. 그러나 효과는 아주 선명하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이런 잡념이 구세력의 교란이라는 것을갑자기 인식했고 이런 형식으로 나의 법 공부를 교란하고 있었는데 사실상 이는 구세력의 일종 박해 형식이었다. 대법제자가 법을 얻지 못하게 했는데 대법제자를 훼멸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박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박해일 뿐만 아니라 가장 사악한 박해이다. 내가 이 한 점을 인식했을 때 나는 구세력 박해를 부정하는 기점에서 이런 잡념을 제거했고 아주 빨리 이런 잡념이 사라졌다.

6. 변이사유와 당 문화 사유가 법 공부를 교란하다

우리 대륙 수련생들은 당 문화에 이렇게 오랫동안 젖어있었고 우리 사상 속에는 모두 많게 혹은 적게 당 문화의 독소가 존재하며 이런 당 문화는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기초를 다져주신 법을 이해할 수 있는 중화전통문화를 전문적으로 파괴하려고 구세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당 문화적인 사유를 지니고 대법의 높고 깊은 내포를 이해할 방법이 없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나는 사부님의 이런 말씀을 배우게 되었다. “당신은 그것이 천 년이나 8백 년을 수련했다고만 보지 말라. 아직 새끼손가락 하나로 비빌 나위도 없다.”[2] 이때 나는 내가 거만함을 지니고 안중에 아무것도 없고 생명을 멸시하는 당 문화의 사유를 지니고 이 한 단락 법을 읽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 자체가 바로 법에 대해, 사부님에 대한 불경(不敬)인데 어찌 법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런 당 문화와 유사한 사유가 수시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법 공부 속에 스며들었고 나는 또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이과를 배웠고 속인 중에서도 일정한 문화가 있고 일정한 속인의 이성적 사유방식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하지 않으면 이런 속인의 사유방식 역시 저도 모르게 이른바 법의 내포를 이해하는 데 사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나는 개인 수련단계에서 법의 내포는 개인이 어떻게 제고하는가를 지도하고정법 수련단계에서 법의 내포는 바로 어떻게 사부님을 돕고 중생을 구도하는가를 지도하는 것으로 아는데 저도 모르게 이런 추리의 사유방식으로 법 공부하고 법의 내포를 이해하고 있었다. 한동안 나는 문제점을 발견했고 나는 내가 법 공부할 때 항상 한 개의 병행하는 사유가 나와 함께 법 공부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은 내가 아니고 나의 법 공부에 대한 교란임을 의식했다. 그런 상태에서 전혀 법의 내포를 볼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법 공부할 때 어떤 염두도 움직이지 말아야 하고 ‘조용히 보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오로지 표면 의미를 알면 되는 것이고 임의로 무엇을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하는데, 당신이 마땅히 알아야 할 때이면 법은 당신에게 알려준다.

이전에 나는 법 공부해도 법을 얻지 못한 데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옅었다. 어제 나는 사부님의 설법을 배웠고 사부님의 이 법을 배웠다. “사실 대법과 대법제자의 정념에 부합되지 않는 일체 것들은 모두 구세력이 참여하여 조성한 것으로, 자신의 바르지 않은 일체 요소를 포함하는데, 이것이 바로 왜 내가 발정념을 대법제자의 세 가지 큰일 중의 하나로 했는가 하는 이유이다.”[3]

나는 갑자기 인식하게 되었는데, 대법제자가 법 공부해도 법을 얻지 못하는 것은 구세력이 우리가 법 공부해도 법을 얻지 못하도록 저애하는 수많은 요소를 배치하여 조성된 것이었다. 이는 일종의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실질적인 박해이다. 구세력이 배치한 일체는 모두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이고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실질적이며 또한 가장 사악한 박해로, 바로 대법제자가 법 공부하고 법을 얻는 것을 저애하고 안을 향해 찾는 것을 저애하는 것이다. 이는 내가 이전에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고 장기간 법 공부해도 법을 얻지 못한 수련생은 마땅히 놀라 깨어나야 하며 이렇게 구세력의 박해를 묵인하지 말아야 한다.

이상에서 말한 것은 단지 개인 현 단계의 한 점 인식이고, 말한 것은 아주 전면적이고 심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법제자로서 법 공부는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고 만약 법 공부에서 문제가 나타나면 아주 많은 수련문제가 일어나게 된다. 하여 나는 법 공부만이 비로소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는 근본이고 비로소 대법제자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물론, 이 일체는 대법과 대법제자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잘하기 위해서는, 법 공부를 잘해야만 더 잘할 수 있고, 이 역사적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4]

어떻게 해야 비로소 법 공부를 잘할 수 있는가? 대법에 대한 근본 인식이 가장 관건적이고 오로지 대법에 대해 법에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비로소 법을 잘 배울 수 있다. 오로지 법 공부를 잘해야 비로소 끊임없이 자신의 대법에 대한 인식을 상승시킬 수 있고 이는 상보상성(相輔相成)하는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미국동부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경문:‘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
[4] 리훙쯔 사부님 경문:‘대법제자는 사명을 이행하고 있다’

 

원문발표: 2019년 11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8/3955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