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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법회] 가정에서 나와 진상지로 가서 사람을 구하다 – 타이완에서 홍콩까지

글/ 타이완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 심성을 지키고 가정 고비를 넘다

저는 타이완 가오슝 수련생이고 2000년에 법을 얻었습니다. 처음에 수련할 때 남편이 동의하지 않아 당시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족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행사가 있으면 우선 남편과 상의했는데, 제게 9살 된 딸과 7살 된 아들을 데리고 함께 참가하게 했습니다. 저는 출근해야 해서 평소에 QQ 자동진상 알리기와 진상 자료를 우편으로 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저는 매주 법공부팀에 참가하려고 노력했고, 매번 법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과 저의 심득체험을 공유하며, 대법이 제게 가져다준 좋은 점을 남편이 알았으면 했고, 그도 대법 수련으로 들어오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했는지 남편을 감동케 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법공부팀에서 수련생이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린 심득을 교류했는데 저는 큰 감동을 하였습니다. 컴퓨터를 이용하고 편지를 보내 진상을 알리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대면 진상하려니 두려웠습니다. 또 휴일에는 장을 보고 밥을 해야 해서 저는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휴일은 장을 보고 밥을 하는 데에서 하루하루 보냈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 기간에 평소에 욕을 하지 않던 남편은 불만이 있거나 저를 일깨워줄 일이 있으면 귀찮아하며 저를 바보, 멍청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저는 욕 먹는 것 때문에 자주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았습니다. ‘남편이 내게 머리가 나쁘다고 하는 것은 내가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하고, 진상을 알리러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나도 고민이 많다. 그렇지만 어떻게 원용해야 하는가? 당연히 법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다.’

또 한 번의 휴일에 남편은 저를 따라 장 보러 갔는데 고개도 돌려보지 않고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출발했습니다. 저는 오는 길에 두 손에 채소를 들고 왔는데 흔들려서 정말 무거웠습니다. 두 손이 아파 참을 수 없어 남편에게 “만약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당장 화를 냈을 것이며, 이렇게 오래 참지 않았을 것인데 당신이 보기에 제 말이 맞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제게 사과하고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며, 저를 도와 물건을 잘 걸어 놓는 것을 도와주고 다시 조심히 운전하며 저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사실 저는 남편이 왜 이렇게 대하는지 압니다. 정(情)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집에 와서 저는 남편과 상의했습니다. “저는 매일 출근하고 휴일에 집에서 같이 있어 주는데, 당신은 나를 바보라고 욕하네요. 저는 수련인인데 시간이 없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지 못해 정말 괴로워요. 시쯔완(西子灣)에 가서 진상을 알리게 해주세요. 휴일에 갔다가 저녁에 일찍 와서 밥할게요. 돼요?” 남편은 뜻밖에 허락해주었습니다.

처음 관광지에 가니 길이 익숙하지 않아 남편에게 데려달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휴일에 남편이 저를 데리고 가서 저는 진상을 알리고, 남편은 이리저리 구경 다니다 6시에 와서 저를 도와 전시판을 걷었습니다. 두 번째 주에 남편은 가지 않아 아들이 제가 길을 모른다고 하니 저를 데려다주었습니다. 세 번째 주에 “누가 저를 데려다주시겠습니까?”라고 물으니 남편과 아들이 동시에 딸에게 저를 데려다주라고 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이제 스스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광지에서 저는 전시판을 들고 진상을 알리며, 진상을 몇 마디밖에 알리지 못하는데, 다른 수련생이 제게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한번은 한 중년 여성이 제가 들고 있는 삼퇴 전시판을 자세히 보았는데, 저는 두려워하지 말고 기회를 잡아 삼퇴를 시키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며 소선대에 가입했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톈진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제가 톈진의 ‘津’을 베이징의 ‘京’으로 적으니 그녀는 틀렸다며 물수변 진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급해 얼른 베이징의 징에 물수변을 붙였습니다. 그녀는 보더니 “정말 우둔하네요.”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저는 긴장되어 잊었습니다. 베이징의 京에 물수변을 가하니 서늘할 ‘涼’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정말 둔한 것을 보고 펜을 들고 스스로 적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삼퇴해 축하해줬고 그녀도 진상을 알아 기뻐했습니다. 그녀는 계단을 올라가며 껑충껑충 뛰어 올라갔습니다. 이번에 성공적으로 삼퇴시켜 저는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고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배치에 감사드렸습니다.

관광지에서 저는 사부님의 말씀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선(善) 그것은 가장해 낼 수 없으며, 표면적으로 유지하는 하나의 상태도 아니며, 선은 진정으로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며, 그것은 수련을 통해서만 비로소 얻을 수 있고, 비로소 체현되어 나올 수 있다. 중생들 앞에서, 당신의 말이 입에서 나오자마자, 당신의 염(念)이 움직이자마자, 좋지 않은 요소를 바로 해체할 수 있고, 세인들을 독해하는 것과 사람의 사상요소 중의 좋지 않은 것을 바로 해체할 수 있어, 사람은 알게 되고 당신은 그를 구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이 진정한 선(善)의 강대한 역량의 작용이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해체 시킬 수 없고, 당신은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중에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1]

저는 집에 가면 가족에게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린 심득을 공유했습니다. 중국 중생에게 파룬궁이 박해당하는 진상을 알게 하고, 공산당의 거짓말을 알게 한다고. 점차 남편은 제가 하는 일을 알고 갈수록 저를 지지했습니다. 남편은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관광지에서 돌아오면 밥을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되고 사 먹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저의 수련환경도 점차 넓어졌습니다.

2. 유자에 핀 우담바라, 남편이 홍콩에 가는 것을 지지

2015년 저는 퇴사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이해하지 못해 1년이 지나서야 동의를 얻었습니다. 저는 우리 회사 사모님이 소개해 법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2016년 사직서를 낼 때 이해해 주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8월에 이직하면 일자리를 찾기가 힘드니 설이 지나면 다시 찾겠다고 하고, 현재 홍콩 관광지에 사람이 부족해 제가 가서 지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타이완에서 진상을 알리면 되지 홍콩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유자를 심는 사촌 언니가 유자를 수확해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저를 데리고 같이 타이난에 갔습니다. 저는 손에 든 유자에 우담바라가 가득 핀 것을 보고 세어보니 20여 송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유자를 잘 보관하고 일이 끝난 다음 남편에게 보이니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하시고 당신에게 대법의 신기함을 알게 하시는 것이라고 하니, 남편은 제가 홍콩에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홍콩에 한 달 있을 것이고 저를 데리고 간 수련생은 남편이 아는 사람이라고 하니 남편은 마음을 놓았습니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많은 수련생이 사상 중에서 고려하고 있는 많은 문제, 이런 일 저런 일들은 사실 생각만 하면 이미 경지가 떨어진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아무것도 상관하지 말라. 사부는 자비로워 반드시 당신을 가장 좋게 배치해 줄 것이다. (박수)”[2]

저는 마음만 내려놓으면 정말 이렇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문을 나서기 전 남편, 딸, 아들이 계속 신신당부했습니다. 저는 듣고 웃으면서 걱정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저는 자신을 잘 돌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정입니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3]

홍콩에서 우리는 길을 잘 몰라 차에서 내린 후 왼쪽으로 가야 할지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보도 음악이 들려와 제가 음악을 따라가니 익숙한 길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법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 홍콩에 와서 매일 ‘전법륜’을 두 강씩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읽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저는 기왕 홍콩에 왔으면 세 가지 일을 잘하자고 자신을 격려했습니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제자라, 어쨌든 간에, 어떤 정황에서든, 당신이 잘못 걸었든 바르게 걸었든,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을 잘 하고 금후에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을 잘 한다면, 당신은 끊임없이 수련하는 것이고, 바로 끊임없이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며, 끊임없이 자신을 성취시키고 있는 것이다.”[4]

한 달 후 타이완에 돌아와 남편과 상의하며, 설전에 일자리를 찾기 힘들 때 다시 한번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가서 3개월 다녀오니 설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한 달 있다 왔을 때 남편은 불평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면 비행기 푯값을 절약한다고 했습니다. 남편도 생각하더니 옳다고 했습니다. 다시 가서 3개월 있다가 오니 그렇게 더는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3개월이 금방 지나갔다고 말했습니다. 설이 지나 일자리를 찾으러 가니 딸이 알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예전에 출근도 하고 가사도 했는데, 지금은 가사만 하면 돼요. 일자리는 찾지 마세요. 가사도 일입니다.” 남편은 듣더니 더는 제게 일자리를 찾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집에서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정 관계를 잘 처리하며, 홍콩에 가야 하면 저는 출발합니다. 홍콩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도 행각입니다.

맺음말

홍콩 관광지에 초콜릿 가게 사장이 우리를 아주 좋지 않게 보며, 그의 가게 앞에서 진상을 알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조심하지 않아 가게 앞 대각선 방향에서 대면 진상을 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아파서 보니 사장이 신발을 집어 던진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말 이렇게 때리고 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기간 진상지에 있는 홍콩 수련생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를 보살펴준 홍콩 수련생들께 감사드립니다.

“수련하는 사람은 문제를 거꾸로 보는 것으로, 이런 마난(魔難)과 고통을 모두 제고할 좋은 기회, 좋은 일로 보면서 그것으로 하여금 많이 오고 빨리 오게 해서 자신을 빨리 제고하게 한다.”[5]

현재 저는 펑산(鳳山) 따지웬 사무실에서 일을 돕고 있습니다. 가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저는 마음대로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저는 한 차례 한 차례 시간을 다잡고 세 가지 일을 잘했기 때문에, 남편도 현재 함께 공부하고 연공합니다. 2018년 타이완에서 연 사부님 설 문안 행사에 남편도 참여했습니다. 하루는 법공부에 남편도 참가하더니 제가 홍콩에 가는 것을 더욱 지지했습니다. 이번에 홍콩에 와서 여러분과 저의 심득을 교류하게 이번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심득체험에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아낌없이 조언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9년 홍콩 법회 발언고)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2-2003년 캐나다밴쿠버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2년 미국수도국제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5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30/3880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