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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의 수련, 가시밭길을 헤치고 전진하다

글/ 헤이룽장 신수련생

[밍후이왕] 1982년 나는 동북의 한 농촌에서 출생했다. 1996년경 부친을 따라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했다. 그때는 비교적 어린 나이여서 피동적으로 법을 배우고 연공했다. 어른이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보고, 읽으면 나도 따라서 배웠고, 어른이 연공하면 따라서 연공했다. 또 심성을 닦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기꺼이 남을 도우며, 서로 양보하고 참아야 하는 등등을 알았다.

1998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나는 수련단체와는 멀어지고 법을 배우고 연공하고 심성을 닦는 것도 나의 세계로부터 희미해지고 세속에 빠지게 됐다.

1999년 장(江)마두가 사익을 위해 수중의 권력을 이용하여 미친 듯 파룬궁을 박해했다. 당시 나는 하늘을 뒤덮는 사악의 박해에도 마치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어떤 인상도 받지 못했다. 그 이후 친구들이 잡담하며 누군가가 대법을 모독하는 말을 하면 나는 의연하게 좋은 말로 충고했고 아울러 대법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며 한쪽 말만 듣지 말라고 했다.

2000년부터 2003년 사이, 부친이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했기 때문에 소란을 당해 해직되었으며, 불법적인 구금을 당하고 임금 지급이 정지됐으며, 2003년에는 불법적인 노동교양(勞敎) 3년을 당했다. 본래 부유하지 않았던 가정이라 이는 설상가상이었다. 게다가 나는 또 학교 다니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하나씩 있었다. 집안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고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농촌에서 2년간 농사일을 했다. 당시 나는 정말이지 삶에 희망이라곤 없다고 느꼈다.

이후 농촌에서 나와 도시로 가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술집에서 일했으나 주인은 노임도 주지 않았고 PC방에서 일하다 남에게 욕을 먹고 얻어맞기도 했다. 이때 많은 고생을 겪었는데 배를 채우려고 남이 버린 음식을 주워 먹고, 잘 곳이 없어 공원에서 자거나 친척 집에서 기숙하며 눈총을 받는 등등이었다. 인생의 고통을 겪으며 나는 돈과 지위에 빌붙고, 이기적이고, 교활하며 심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2004년 내가 결혼할 때 부친은 아직 노동교양소(노교소)에 불법 수감돼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살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악착같이 일했는데 점점 방향을 잃어갔다.

2018년은 내가 태어난 띠의 해이다. 액막이를 하고 복을 구하려고 나는 베이징의 옹화궁(雍和宮)에 갔다. 가서 보니 사람들이 아주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마다 모두 빌며 절했다. 정원의 나무에 대고 절하고, 4면 8방에 대고 절을 했는데, 나는 갑자기 염증이 생겨 반쯤 무릎 굽혀 절을 하고는 아내를 데리고 나왔다.

돌아온 후 어릴 적 함께 수련했던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사당의 거짓, 악, 투쟁을 말하면서 내게 중공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하라고 권했다. 나는 일찍이 실명으로 탈퇴했다고 했다. 그는 매달 두세 번 오겠다고 했다. 나중에는 점점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말했고, 중공의 말로를 말했으며, 그 자신이 대법수련으로 돌아온 과정을 말했다. 또 대법의 전자책과 관련 자료를 내게 주었다. 그 뒤로 방화벽을 뚫고 진상을 보게 됐다. 이로 인해 수련으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싹트게 됐다.

5월부터 나는 사부님의 설법을 듣기 시작했다. 그 뒤로 ‘전법륜(轉法輪)’과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보기 시작했다. 6월 5일에는 20년간 피웠던 담배와 술을 끊고 거의 매일 마작을 하던 것도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매일 전법륜 한 강의를 보거나 사부님의 설법 한 강의를 듣고 각 지역 설법도 한 편씩 봤다. 진정으로 수련에 입문했다.

1. 확고

나는 아주 건강해 병이 난 적이 없었다. 감기 증상이 나타나도 전혀 약을 먹거나 침을 맞지 않았지만 괴롭다가 잠시 지나면 곧 좋아졌다. 처음 수련을 시작해서는 소업 상태가 나타나지 않아 사부님께서 나를 상관하시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반년 이후 한 번은 감기 같은 증상이 있었는데 열이 나고, 목구멍이 좀 불편하고 콧물이 나는 등등이었다. 전혀 어떤 괴로움 없이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올해 정월 7일 저녁에 설사하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몇 분 만에 화장실에 가야 했는데 6일이나 계속됐다. 이상한 것은 괴롭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일을 지체하지도 않았고, 먹고 자고 일하고 운전하는 데에도 영향이 없었으며 차를 몰고 좀 멀리 가도 중도에 화장실을 찾을 필요가 없었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가게 됐다.

나의 부친께서 대법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했기 때문에 아내는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매우 두려워하며 있는 힘을 다해 나를 가로막았다. 내가 마침 단체 법학습에 참가하면서 휴대전화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녀는 전화로 나를 찾을 수 없었는데 매우 초조해하며 나의 부친에게 긴 메시지를 보냈다. 대강의 뜻은 연공을 배우지 말고 가정에 영향을 조성하지 말라고 권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이 일을 알게 된 후, 즉시 나 자신이 하는 일, 은행 비밀번호, 자금 거래 등등을 종이에 써서 그녀에게 주었고 아주 엄숙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1) 파룬따파 수련은 평생에 내가 한 일 중 가장 정확한 일이고 가장 좋은 일이며 가장 옳은 일이다. 이 공은 우주 중에서 가장 바른 것이다.

2) 나는 계속 수련할 것이며, 어떠한 사람, 어떠한 일, 어떠한 고난도 나를 가로막지 못한다.

3) 만약 당신이 보낸 메시지가 감시당해 내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긴다면 변호사를 찾아 고소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합법적이기 때문이다.

4) 이전에는 지금까지 당신에게 주지 않았고 당신이 알지 못하게 했던 가정사 전부를 지금 당신에게 맡긴다. 나의 수련이 당신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당신은 복을 받을 뿐이다.

나의 행동은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는데 왜냐하면 내가 이전처럼 크게 화를 내지 않았고 또 이처럼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묵인했으며 비록 진상은 알지 못했지만 나를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나는 두렵지는 않았지만, 박해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은 몰랐다. 다음 날 아침 밍후이 수련 교류문장을 훑어보다가 딱 맞는 문장 한 편이 있었는데 바로 수련생이 박해를 부정하는 일을 쓴 것이었다. 쓴 문장에는 매우 강한 정념이 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다 봤는데 그것이 사부님의 배치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루는 밤에 꿈을 꿨는데 혼돈 중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엄 있는 음성이 나를 불렀는데 그 음성은 마치 층층의 우주를 관통하는 것 같았고 나의 모든 세포를 진감케 하는 듯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사부님의 음성임을 알았다. 즉시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사부님을 불렀다. 사부님이 내게 물으셨다. “너는 누구의 제자냐?” 대답하기를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라고 했다. 사부님께서 또 내게 물으시는 것 같았는데 “너는 나의 진수제자인가?”라고 하셨다. 나는 답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했다.

깨어난 후 나는 뜨거운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날 저녁 단체 법학습 때 한 수련생이 자신은 20여 년을 수련했어도 사부님을 친히 뵌 적이 없으며 무엇을 보거나 감수해 본 적도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위로를 건네며 사부님은 우리 신변에 계시고, 언젠가 뵐 수 있을 거라고 했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정말로 기대하고 있었다.

네, 사부님.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당신의 진수제자입니다!

2. 법을 잘 배우고 발정념을 잘하다

매일 설법 한 강의를 배우거나 한 강의를 듣고 또 각 지역 설법 한 편을 봤다. 만약 아주 바쁘거나 다른 일로 지체되면 나는 이튿날 다시 보충했으며 빠지는 날은 매우 드물었다. 매일 또 밍후이왕에 들어가 수련교류문장을 봤다. 교류문장을 볼 때 나는 수련생들이 법을 외우는 것과 관련한 문장을 여러 번 봤다. 나는 갈망하면서도 자신은 신수련생이라 서둘러 법을 배워야 하는데 법을 외우면 통독하는 것을 지체하게 될까 봐 염려했다. 그러므로 줄곧 외울 결심을 하지 못했다.

최근의 지역 교류회 때 보도원이 모두에게 법을 외우자고 제창했다. 이튿날 밍후이 교류문장을 보는데 또 수련생이 법을 외우는 중요성과 깨달음을 말한 것을 봤다. 나는 자신의 조급함, 어려움을 두려워하는 마음, 안일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임을 깨닫고 나도 법을 외우기로 했다.

‘논어’를 외우는 것부터 시작했고 어떤 땐 한 단락을 며칠을 외워도 기억하지 못했다. 언제나 주의력이 분산되고 허튼 생각이 나고 졸렸다. 조금 위축됐는데 나는 젊은 사람이라 한 단락을 외우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찌 이다지도 어려운가? 한차례 단체 법학습과 교류에서 그들은 말하기를 “이것은 우주 대법인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겠습니까? 낙심하지 말고 견지해 나가세요!”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견지해 나가겠다! 나중에는 법을 외울 때 의도적으로 자신을 조용히 하기 시작했으며 피곤하면 그것을 곧 마로 여기고 제거했고 한 구절을 외우고 쓴 다음 한 글자씩 대조했다. 지금 비록 제1강의 제1절을 막 외웠을 뿐이지만 나는 변함없이 견지해 나갈 것이다. 정말 일부 수련생들이 말한 것처럼 법을 외우는 것은 자신을 시시각각 법 중에 있게 해줬다. 이전에 어떤 때 꿈속에서 무슨 고험을 만나면 항상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시시각각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게다가 ‘진선인(眞善忍)’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대조할 줄 알게 됐다.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 한 편을 읽고 나서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하는 중요성을 알게 됐다. 나는 특히 초조했는데 정법시기는 이미 20년이 지났기에, 사전의 서약을 완성할 수 없으면 사부님께 면목이 없을 것이며,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모든 수련생에게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다. 모두가 나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법을 많이 배우며, 정념을 가지고 안전에 주의하며, 편안하게 하고 일하기 위해 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줬다. 처음에 나는 이러한 건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신변의 가족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말하기만 하면 논쟁이 생겼다.

나는 프린터를 사서 진상 소책자를 인쇄해 두려운 마음을 안고 배포했다. 메모리 카드를 사서 진상 동영상과 자료를 다운로드해 주변 사람에게 보내줬다. 나중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좀 극단이라고 인식돼 마음을 내려놓고 수련생의 권유를 받아들여 이지적으로 했다. 모두가 할 만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지금은 진상자료 제작과 시스템 유지관리 등에 참여하고 있다.

층차의 제한으로 인해 발정념도 잘하지 못했으며, 발정념 시간도 지킬 수 없었고, 정신을 집중할 수도 없었다. 나는 이런 교란을 깨끗이 제거하고 사부님이 요구하신 일을 잘했다.

3. 명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다

나는 회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이익에 대한 추구를 극복하기는 비교적 어려웠다. 작년 상반기, 우연히 한 가지 사업을 인수했다. 결산 때 우리의 노력으로 3만 위안이 더 남았다. 당시 나는 중개인에게 이 돈을 우리는 한 푼도 갖지 않고 전부 당신께 주겠다고 말했다. 당시 중개인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3만 위안을 언급할 때도 나는 분명하게 우리는 갖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중개인은 그러면 각기 반씩 가지면 좋겠다고 거듭 말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비용 결산이 끝나고 지불할 때 중개인에게 다른 일부 비용도 줘야 했기에 나는 그에게 그 3만 위안을 함께 주겠다고 했다. 그는 동의하지 않았고 아주 진지하게 나와 의논했다. 모두를 그에게 주면 안 되며 반씩 나누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꼭 엇갈린 주장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알기 때문에 또 그렇게 많은 돈을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내게 집착이 없고 또 그가 이처럼 고집하는데 받아두자. 이후에도 합작할 기회가 많을 것인데 적당한 때 내가 다시 상대방의 사업에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돈을 인출해서 중개인에게 보내려고 연락하자 그는 갑자기 그 3만 위안을 모두 그에게 달라고 했다. 나는 잠시 멈칫했으나 좋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도리어 내게 달리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정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이 고비는 억지로 넘어간 셈이 됐다. 그러나 이후부터 이 중개인은 나의 사람됨을 매우 인정했다. 아울러 누군가 나와 우리 회사에 관해 물으면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우리의 입장에 서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런 업종은 판매 후 유지관리와 관련되는데 설 기간에 몇 대의 설비에 문제가 생겼다. 계속 고장 원인을 찾지 못하다 2주 후에야 겨우 수리할 수 있었다. 이 일은 많은 이용자의 불만을 야기했고 문제 처리를 위한 한차례 회의에서 여러 사람이 나를 향해 폭언을 퍼부었다. 나의 심태는 평온하고 서두르거나 화가 나지도 않고, 번민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나에 대한 고험이며, 명을 구하는 마음을 닦는 것이고 소업하고 있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은 큰 수리를 할 때, 나는 연이어 이틀을 현장에서 감독하느라 법공부하고 발정념하는 것을 놓쳤다. 갑자기 일념이 떠올랐는데 이후 다시 유사한 상황이 발생해도 나는 법을 공부하고 발정념하는 것을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삼일 수리해도 고치지 못했던 설비가 원인도 모르게 정상으로 회복됐다.

또 한 번은 갑(甲) 쪽에서 공사대금을 질질 끄는 바람에 회사 경영에 압박을 받았다. 지불할 임금과 사업비가 없어 내 개인 돈과 빌릴 수 있고 대출할 수 있는 자금 전부를 다 썼다. 다음 날 만약 자금이 입금되지 않으면 큰일이었다.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내가 돈에 대한 집착이 있음을 의식했다. 자금 문제로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 못하며, 온종일 돈 속에 살고 있었다. 상관하지 말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천명을 따르면 되는 것이지 뭐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밥이나 잘 먹자. 이 마음을 내려놓자 아직 식사를 마치지도 않았는데 갑 쪽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자금을 결제하겠다는 것이었다. 눈앞에 닥쳤던 한 바탕 위기가 해결됐다.

설 전, 그해의 종합 이윤은 1년 전에 비해 좀 좋았기 때문에 (연말 회사 계좌에는 남는 자금이 있었으나 이전 몇 년은 없거나 아주 적었다) 나는 당연히 직원들에게 혜택을 좀 주고 싶었다. 처음엔 직원들에게 실용적인 전자용품을 사주고 싶었으나 일부 직원들이 현금이 더 낫다고 했다. 그럼 돈으로 주면 된다. 매 직원에게 큰 붉은색 봉투를 하나씩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먹을 것, 마실 것을 많이 사주었고 또 설 기간 긴 휴가를 주었으며, 초과근무수당도 이전에 비해 배로 올려줬다.

수련하기 전이라면 나는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며, 직원에게 이렇게 많이 주지 않을 것이고 또 직원들의 필요와 요구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직원들이 암암리에 모두 말하기를 “사장이 작년보다 우리에게 훨씬 잘해 준다!”라고 했다.

현재는 명리에 대해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 일부 거래처는 밀린 돈을 주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않고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달라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어떤 사람은 나를 비꼬고 악담을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는바, 내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내 돈이 아니라면 내게 주어도 나는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법제자이며 세간의 득실에 집착하지 않는다.

4. 급한 성격을 수련하다

수련 전 나는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라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일이 있으면 불을 댕기지 않아도 스스로 급해졌다. 다른 사람은 아직 무슨 일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벌써 욕하고 악담을 시작하며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데 심지어는 손찌검도 했다. 그 때문에 내 주변에는 친구가 많지 않았고 가족들도 나를 존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멀리했다. 아내는 이미 나에 대해 어찌할 수 없어 하며 항상 참고 양보했다. 언제나 말하기를 “내가 어느 날 당신 때문에 화가 나 죽을 것이다!”라고 했다. 아이도 내 눈치를 보며 아니다 싶으면 바로 내게서 멀리 벗어났다.

수련 이후 나는 최대한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했다. 사부님께서는 분명하게 지적하셨다. “무엇이 대인지심인가?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우선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참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을 어찌 연공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 참음은 해내기가 너무나도 어렵고, 나는 성격이 좋지 않다.’ 성격이 좋지 않으면 고쳐야 하지 않는가. 연공인은 반드시 참아야 한다.”[1] 누구든지, 무슨 일이든지 간에 매번 화가 날 때 항상 이 ‘참음’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사는 도시는 크지 않으며 운전자의 자질이 비교적 차하다. 그 때문에 나는 운전하기만 하면 항상 욕을 입에 달고 다녔으며, 길을 양보하지 않고 힘겨루기를 했다. 한 번은 3차선 일방도로를 가운데 차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왼쪽 차선에도 차가 있었고 앞에도 차가 있었다. 목적지에 일찍 도착하려고 생각했기에 차를 좀 빨리 몰아 우측 차로로 변경해 추월했다. 우측으로 차선으로 변경한 후 추월을 시작할 때 앞차도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았다. 내가 경적을 한 번 울리자 그는 우측으로의 차선 변경을 멈췄다. 나는 ‘자신은 대법제자이니 참아야 한다. 화를 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시 속도를 내어 추월하려고 할 때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가 또 갑자기 우측 차선으로 방향을 바꿨다. 내가 경적을 세게 눌러도 그는 우측으로 차선을 변경했다. 나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는데 하마터면 그의 차와 우측 도로변과 충돌할 뻔했다. 그런 다음 왼쪽 차선으로 그의 차를 추월해 그의 차를 세우지도 않고 뛰어내려 그를 때리려고 했다. 차 안에 있던 아내와 아내의 친구가 나를 말릴 새도 없이 나는 그의 차 앞으로 뛰어가 쾅쾅 소리 나게 그의 차 덮개를 세게 쳤다. 손을 들어 다시 치려고 할 때 갑자기 나는 대법제자인데 어찌 참지 못할 수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니 그 차 운전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몸을 돌려 차로 돌아왔다. 마치 어린애가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몹시 후회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차를 천천히 몰고 끼어들기를 하지 않으며, 조급해하지 않고 예의를 갖춰야 함을 배워 알게 됐다.

가정의 변화도 아주 컸다. 조급하지 않고 남을 욕하지 않았으며 또 아내와 아이를 이해했다. 이전에 어떤 때는 한두 달 동안이나 그녀들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그녀들은 나의 변화를 봤으며 아내는 말하기를 “당신은 내게 잘할 거야.”라고 했다. 아이도 감히 나와 농담하며, 이따금 이전에 날마다 굳은 표정이던 아빠를 건들기도 했다. 냉랭하던 집안이 즐거운 웃음소리가 있게 됐다.

맺음말

10개월 수련하며 나는 약간의 시련도 경험했는데 많은 곤란을 겪었다. 하지만 사부님의 자비하신 점화와 대법의 지도 그리고 수련생의 사심 없는 도움으로 나는 걸어지나 왔다.

여기서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나를 대해준 수련생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아직 많은 일을 잘하지 못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진상 알리기를 적게 하고 발정념 때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며, 결가부좌를 하지 못하고 법공부 때 정신이 분산되며, 연공을 중시하지 못하는 등등이다. 하지만 나는 꿋꿋하게 나아갈 것이며, 노력할 것이고 잘할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10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 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0/31/3952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