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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후이왕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보고 자기의 수련 문제를 찾다

[밍후이왕]

1. 수련생의 교류에서 나는 사(私)를 버려야만 더 높은 법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바로 그가 개공개오하는 전야의 그 한순간에 그 자신의 공의 10분의 8을 그에게서 꺾어 내리는데, 그의 心性(씬씽) 표준마저도 모두 끊어 내려야 한다. 이 에너지로써 그의 이 세계, 그 자신의 세계를 충실하게 한다.”[1]

오늘 밍후이왕의 문장 한 편을 보았다. 수련생이 법에서 대법제자의 본질은 바로 중생 구도(救度)를 위해 온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 부분이 감명 깊었다. 나는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에 대한 인상이 법 공부 초기부터 매우 깊었다. 박해 후에도 이 단락 법을 통해, 나가서 법을 실증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모두 위사(爲私)의 층차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해 법을 얻은 후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보고 나는 수련 중에 고생을 겪어야 장래에 속박을 전혀 받지 않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개인 수련에서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면 이를 악물고 가부좌 시간을 연장하는 등이다. 박해가 시작된 후 어느 날 이 단락 설법을 읽으면서 갑자기 대법제자는 개인 수련의 요만한 고생보다 훨씬 더 많은 큰 고생을 겪어야 더 큰 위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걸어나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큰 감당을 해야 큰 위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수련생의 심득 체험을 보고 나는 원래 대법제자의 수련 성과는 80%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지 자기의 자유와 위덕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자기 세계를 충실하게 하는 것 역시 중생에게 더 아름다운 생존 환경을 주기 위한 것이다. 다년간 이 단락 법을 많이 읽었지만 이런 것을 깨닫지 못했다. 원인을 따져보면 여전히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이었다. 늘 자기 득실의 출발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했기에 더 높은 층차의 법리를 깨닫지 못했다. 그렇다. 당신이 온 머리에 자기가 어떻게 제고할 것이고 어떻게 위덕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할 때 법 속 배후의 더 높은 내포를 어찌 당신에게 점화해주실 수 있겠는가?! 낮은 경지의 생명이 어찌 더 높은 생명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최근 몇 년간 ‘전법륜(轉法輪)’을 읽을 때 자신이 더 많은 법리를 깨닫지 못하고 수련 상태가 한 상태에 한동안 머물러 있는 것을 느꼈다. 원인을 따져보면 위사의 요소를 제거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기에 이 각도에서 이 층차의 것밖에 볼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다. “속인의 이런 층차, 이런 각도, 이런 사상경지 중에서는 진정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1]

2. 수련생의 교류에서 나는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그 마음을 찾았다

여러분은 다 발견했을 것이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가장 쉽게는 자기가 수련을 괜찮게 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독선적인 사람은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날 본 다른 한편의 밍후이왕 교류문장에서 수련생은 말했다. 한번은 한 스님이 그에게 엎드려 절했다. 그는 얼른 그 사람을 부축하여 일으켰는데 결과 그 스님은 본인은 당신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몸 뒤에 있는 큰 부처님에게 절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나는 놀라 깨어났다.

몇 년 전 중국영사관 앞에서 연공할 때 한번은 가부좌를 다 하고 나서 몇몇 수련생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방금 행각하는 도인 같은 사람 한 명이 가부좌하고 있는 나를 보고 한참 응시하더니 갑자기 내 앞에 엎드려 절을 몇 번 한 후 떠나갔다고 했다. 나는 눈을 감고 가부좌했기에 아무것도 몰랐는데 이 말을 들은 후 나는 말했다. “그는 아마 우리 수련인 몸의 초법적인 표현을 본 것이겠지요!” 겉으로는 기뻐하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환희심이 일어났다. 내가 괜찮게 수련하여 나에게 절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수련생의 교류를 보고서야 그 사람은 사부님에게 절한 것임을 의식했다. 그 자아, 스스로 잘난체하는 것이 자기 수련이 어떠어떠하게 됐다고 여긴 것이다.

흔히 자아가 있는 사람은 비교적 뽐내기를 좋아한다. ‘자아’가 발견되면 수련인이 그것을 닦아버릴까 봐 두려워 수련인의 주이스(主意識)를 속이고 있다. 우리가 주이스가 강하지 않으면 그것에게 기만당해 무의식중에 그것을 보호하고 키워준다. 무아(無我)한 생명일수록 자기의 부족점을 보아낼 수 있고 더 겸손하다. 생각한 것은 모두 타인의 수요이기에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돕지 못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만물을 수용할 수 있듯이 말이다.

수련에서 두 가지 근본적인 집착심을 찾을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준 수련생 문장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하루빨리 그것들을 제거하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생명으로 수련성취하리라 결심했다.

개인의 체험이므로 적당하지 않은 점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11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4/3953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