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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소굴에서 대법을 수호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1년 4월 1일 나는 우리 시에서 법회를 조직했다가 시 국가 보안대에게 현장에서 포위당했다. 나는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지고(그 당시 층차에서 깨달음) 50여 명의 수련생을 돌려보낼 것을 요구했다. 법회에 관한 어떠한 문제에도 답하지 않았고 진상만 알렸다. 그날 저녁에 나 혼자만 구치소로 연행됐고 빠르게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나는 불법적인 3년의 노동교양을 받게 됐다.

교양소에 간 후 입교대(入教隊) 남쪽에 있는 방에 감금됐다. 거기에는 몸치장을 요란하게 한 여자들이 5명 있었는데 모두 마약을 하고 몸을 팔아서 감금된 것이었다. 교양소에서 그녀들은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담배 한 대씩 물고 온갖 추태를 보였다. 나는 마치 저승에 온 것 같았고 죄수들은 염왕전의 귀신들 같았다.

내가 대법제자라는 것을 알고 몇몇 죄수들은 고의로 대법에 먹칠했다. 그녀들이 헛소리하는 것을 듣고 나는 “입 다물어요! 대법을 비방하면 응보를 받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다음날 흉악한 마약범 한 명이 입과 얼굴이 부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정말로 응보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감히 대법을 욕하지 못했다. 그 일은 심지어 그 후에도 계속 영향을 주어 많은 간수와 관리는 나를 비교적 공손하게 대했고, 그들에게 전혀 협조하지 않아도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20일 후에 나는 노동교양소의 3대대로 이감됐고 그 대대에는 270여 명의 죄수가 감금되어 있었다. 죄수들은 대부분 마약, 매춘, 폭력 사건으로 들어온 사람들인데 거기에는 또 3명의 파룬궁 수련생도 있었다. 그들은 종일 전구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마다 정해진 수량이 있어 매일 15시간 이상 일했다. 새벽 2~3시까지 일해도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면 형기가 연장됐는데 간수들이 교대로 지키고 있었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매일 15시간의 노역을 하는 외에 감시원 죄수에게 맞고 감시당하면서 연공을 허락받지 못했다. 도착한 첫날 남쪽의 한 방으로 배정받았다. 저녁에 일어나서 정공을 연마했는데 10여 명이 와서 내 다리를 펴라고 했지만 끝내 펴지 못했다.

내가 박해를 반대하고 무죄 석방을 요구했기에 간수들은 나를 두목이라고 생각하고 밀실(독방)에 가두었다. 밀실은 높은 산의 묘지 자리에 있었다. 이전에 묘지였고 그 당시에는 산의 다른 쪽에 화장터가 있었다. 밀실은 8개월이나 사람을 가두지 않았었다. 나는 7월 3일 저녁 6시에 감금됐다. 밀실은 4㎡되는 석실이고 안에는 2자 너비의 시멘트 침대가 있었는데 위에는 먼지가 아주 두껍게 쌓여있었다. 벽 한 면에 손바닥만큼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위에는 온통 거미줄이었고 벽에는 지네와 벌레들이 가득했다.

독방은 음침하고 어두우며 습했다. 나는 가지고 있던 휴지 몇 장으로 시멘트 침대를 닦았다. 앉아보니 크고 작은 모기들이 나를 잡아먹을 듯이 득실거렸고 손에 한 줌씩 잡혔는데 잡을수록 더 많았다. 내 몸은 모기에게 물려서 온통 부어올랐다. 나중에 나는 그들도 가련하게 여겨졌고, 생명이기도 해서 더 잡지 않았다. 나는 침대 위에서 가부좌하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 큰 비단뱀 한 마리가 바닥에서 고개를 들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뱀을 무서워했기에 조금 긴장했는데 사부님께서 내 곁에 계신다고 생각하자 바로 진정이 됐다. 나는 “모든 생명은 들어라. 나는 여기에서 연공을 할 것이니 너희는 교란하지 말라. 만약 인연이 있다면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연공해라”라고 말했다. 나는 뱀이 침대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희미한 불빛으로 침대 밑을 보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모기도 마치 더 물지 않는 것 같았다. 날이 밝자 침대 밑에 굴이 하나 있는 것을 보고 굴에다 물 몇 통을 부었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끝없는 동굴 같았다. 뱀은 더 나오지 않았다. 8일 후에 나는 밀실에서 나왔고 형기가 한 달 추가됐다.

나는 남쪽 9호 방에서 잤는데 옆에는 욕실이었다. 세면용 물은 수돗물을 사용했는데 그 수도꼭지는 매일 열려 있어 수돗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나는 늘 가서 수도꼭지를 잠그는데 어떤 수도꼭지는 아예 잠기지 않았다. 잠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죄수가 열어놓고 갔다. 세면실 안쪽 바닥에 물이 아주 많이 고였는데 그 때문에 나는 교양소에 편지를 써서 그 상황을 반영하고 그 일에 대한 견해를 보냈다. 내용은 대체로 “경찰들은 매일 범인들을 압박해 국가에서 규정한 노동시간의 배가 되는 일을 시켜 얻은 수입을 밤낮없이 켜놓는 수십 개의 수도꼭지로 흘려보내고 있어 노동교양소의 수입이 내려가고 수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원래 한 수리공이 하루 이틀이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장시간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 원래 이런 일들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우리와는 관련이 없지만, 이 일을 교양소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반영한다. 만약 해결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다.” 이런 뜻이었다. 이틀 후에 그 문제는 해결됐다. 며칠이 지난 후에 한 경찰이 나에게 몰래 물었다. “당신이 뭘 했기에 우리 상사가 회의에서 우리 모든 경찰이 함께해도 당신 한 사람을 당할 수 없다고 해요?”라고 물었다.

우리 대법제자들의 선행마다 모두 세인들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가장 바른 사람이라는 것을 실증할 수 있다.

2000년 8월 16일, 교양소에서는 파룬궁을 박해하는 7대대를 만들었고 나는 바로 7대대로 연행됐다. 처음에 27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왔는데 나는 1번이었다.

우리에게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우리가 도착하자 회의실에 모여 놓고 훈계했다. 회의가 끝난 후에 부소장은 나를 불러냈고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는 “당신은 나를 욕해도 되는데 대법과 대법 사부님을 욕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당신들에게 좋지 않습니다.”라고 평온하게 말했다. 그는 웃다가 “당신은 당신 사부님에게 아주 충성하네요, 오늘 첫날이니 그만하고 이후에는 늘 이렇게 앞장서서 시끄럽게 하면 안 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부소장은 3개월 후에 간암에 걸렸는데, 다음 해에 아주 고통스럽게 죽었다.

그 당시 장쩌민 불량배 집단은 교양소에 대량의 돈을 뿌렸고 간수들에게 많은 새 주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금도 주었다. 파룬궁 수련생 한 명을 ‘전향’시키면 상금 1천 위안을 주고 죄수에게는 형기 1년을 경감해주기로 규정했다. 그리하여 그 사람들은 미친 듯이 사람의 최저선마저 잃고 잔인하게 파룬궁 수련생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농촌에서 온 한 파룬궁 수련생은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려갔고 3일 후에 갑자기 조현병(정신분열증)에 걸렸다고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우리는 이런 일은 모두 잔인하고 인도주의가 없는 박해라고 말했다. 그녀는 원래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다. 대장은 “당신들이 뭘 안다고 의사가 당신들보다 못하냐.”면서 한바탕 욕했다. 그때부터 파룬궁 수련생들은 고문당하고 시달림을 받아 장애인이 되고 미치고 죽는 일이 누차 발생했다.

사람이 하는 것을 하늘이 보고 있다. 악행을 한 간수들은 연속 응보 받기 시작했다. 암에 걸리고 교통사고가 났으며 기형아를 낳거나 가족이 병에 걸리거나 연속해서 일이 생겼는데 그들은 매우 두려워했다. 그러나 명예와 이익 때문에 파룬궁 박해는 감소하지 않았다.

2001년 설날에 나는 또 7대대에서 5대대로 옮겨졌는데 몇몇 파룬궁 수련생들은 단식하고 있었다. 초사흘 날 오후에 5대대 죄수들은 모두 3층에서 털실을 짜고 있었다. 단식하던 수련생들이 뛰어와서 수련생들이 만약 계속 밥을 먹지 않으면 사부님의 성함을 종이에 적고 사람마다 모두 발로 밟게 하겠다고 간수들이 결정했다고 했다.

그런 일이 발생해서는 절대 안 된다! 나는 즉시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들 감히 이렇게 해봐요. 나는 즉시 여기(창문)서 뛰어내릴 거예요.” 다른 몇몇 수련생도 따라서 말했다. 누군가 달려가서 당직 경찰을 불러왔고 나를 3층에서 잡아끌어 1층까지 내려오게 했다. 그때 대대장도 왔다. 경찰들은 설날인데 우리만 말썽을 부리냐며 경찰들은 우리 사부님을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즉시 “말하지 않았으면 가장 좋은 것이고 모두 평안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응보 받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한 죄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부님을 뭐라 하지 못하게 합니다. 될수록 모순을 격화시키지 마세요.”라고 말했다고 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그 당시 확고하게 목숨으로 악행을 저지했다. 그 후 유사한 일이 교양소에서 있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한번은 교양소에서 우리 회사의 몇몇 상사에게 요청해 나를 ‘전향’하게 했다. 나는 “나는 수련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내 생명은 사부님께서 구해주신 것입니다. 공산당이 나에게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나에게 죽으라는 것입니다. 교양소에서는 이틀 전에 사람을 때려죽였습니다.”라고 말했다. 한 악경(惡警)이 회사 사람에게 “그녀 말을 듣지 마세요, 그녀 말은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거짓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의 한마디 말은 속인의 몇 마디를 반박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말고 일대일로 반박한다고 칩시다. 속인들의 방식으로 저주를 걸어 내기해 보는 게 어때요? 우리 두 사람이 방금 누가 거짓말을 했으면 대가 끊어진다고 해요. 하겠어요?” 그녀는 멍해 있다가 체면을 세우려고 할 수 없이 좋다고 말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그녀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로 나를 불렀다. 그녀의 아들이 어제 오후부터 고열이 나기 시작했는데 내리지 않아 아주 위험하다고 했다. 또 밤새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쫓겨 야산 곳곳을 헤매고 다니는 악몽을 꾸어 무서워서 자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머리 삼 척(尺) 위에 신령이 있기에 오로지 속으로 다시는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아들이 좋아질 것이라고 알려줬다. 그 후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녀가 대법제자에게 악한 일을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당연히 진상을 알고 난 후에 파룬따파가 좋다고 말하면서 대법제자들을 선하게 대하는 경찰들도 있었고 몰래 파룬궁을 배우는 이들도 있었다.

2001년의 신정에 교양소에서는 반날 휴가를 줬다. 그 당시 나는 온몸이 아팠고 발에 옴 같은 것이 생겨 가렵고 짓물렀으며 보름이나 샤워하지 못했었다. 나는 보일러를 담당하는 죄수에게 머리를 감고 목욕하게 물 두 통을 먼저 나에게 달라고 했는데 그리하겠다고 했다. 내가 물 두 통을 받았을 때 한 죄수 감시원이 물을 들고 앞으로 갔고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샤워실로 가고 있었다. 죄수를 본 대대장은 “이렇게 열심이라니, 나도 아직 샤워를 못 했는데!”라고 말했다. 나는 죄수에게 형이 더해질까 봐 얼른 가서 물이 내 것이라고 말했다. 대대장은 즉시 “당신이 뭐가 그리 대단해!”라고 말하면서 당장 물을 버리라고 했다. 죄수는 물을 마당에 가져다 놓고 대야로 덮어놓았다. 대대장은 가서 두 통의 물을 모두 버렸다. ‘어떻게 하지? 나는 솜옷도 다 벗었고 머리도 풀었으며 슬리퍼를 신었는데’ 그때 갑자기 정념이 생겼다. ‘나는 대법제자다, 추운 것이 뭐 두려운가?!’ 나는 욕실로 들어가 수돗물을 틀고 찬물로 머리를 감고 샤워했다. 그러자 내 몸의 통증도 갈수록 약해졌다.

교양소에서는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가 갈수록 심해졌고 확고한 대법제자들은 모두 몇 명의 두목이 지키면서 연공하지 못하게 했으며, 미라처럼 작은 의자에 앉아있게 했다. 나는 또 7대대로 돌아가게 됐다. 입구를 향한 아래 침대에서 잤는데 여름에는 머리를 안쪽으로 향하고 발은 밖에 내놓고 잤다. 낮잠을 잘 때 당직을 서는 배신자가 복도를 오가면서 내 두 발이 왼쪽으로 9번 오른쪽으로 9번 끊임없이 도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은 270명의 대법제자 중에 이렇게 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그 일은 몇 년 후에 한 수련생에게서 들었고 오늘까지도 왜 발이 돌았는지 나도 모른다. 경찰들은 모두 나를 신으로 생각했기에 상대적으로 내 환경은 다른 수련생들과 비교해 느슨했다.

2003년 4월에 나는 정정당당하게 그 소굴에서 걸어 나왔고 그때부터 모든 정법시기 대법제자와 함께 조사정법의 큰 물결 속으로 들어왔다.

소굴에서 나온 후에 안의 수련생들이 사부님의 설법을 공부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됐다. 찾아보니 많은 신경문이 안에는 없었다. 나는 그 신경문을 들여보내기로 다짐하고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한 교양소 직원이 물건 사러 온 것을 우연히 만나게 됐다.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하고 안면이 있을 뿐이지만 오직 이 기회밖에 없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전에 준비한 경문을 안에 넣고 꿰맨 옷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교양소 식당에서 일하는 수감자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주춤하다가 옷을 손에 들고 보더니, 동의했다. 감옥 안의 수련생이 받은 여부에 대해 나는 알지 못했다.

2개월 후에 교양소에서 방금 나온 수련생을 만났는데 그 당시 신경문이 적혀있는 비단을 보았는데 그녀가 두 조각을 갖고 나왔다고 했다. 그녀는 “수련생들은 경문을 받은 후에 아주 빨리 돌려가면서 여러 부를 베껴 적었고 그중의 한 부를 압수당하자 나는 내 원고를 감췄어요. 심장 소업으로 나는 의무실에 보내졌고 이후에 가족들이 나를 의무실에서 바로 꺼내주었어요”라고 했다. 그 당시 파룬궁을 박해하는 대장은 경문 날짜를 보고 사스 기간이라 교양소는 이미 전부 봉쇄했는데 신경문이 도대체 어떻게 날아왔냐면서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고, 땅을 깊이 파서라도 수색해내라고 했다. 또 위층으로 가는 한쪽 계단도 막아버렸다. 그 일은 교양소 전체를 놀라게 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내가 정념으로 감옥의 악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정정당당하게 걸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대법이 나에게 준 힘이었다. 96년 8월에 법을 얻은 후 3년간 나는 거의 아파트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만난 듯이 파룬궁을 배웠다. 99년 7·20 이전에 나는 ‘전법륜’을 두 번 외웠고 법공부를 하는 중에서 탄탄한 기초를 닦았는데, 이는 나에게 구세력의 박해를 타파하고 대법을 수호하며 대법을 실증하는 정념과 용기를 주었다.

감옥에서 나온 지 이미 16년이 됐다. 16년 동안 나는 줄곧 세 가지 일을 생활 속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고 한 대법제자의 사명과 언약을 확고하게 실행하고 있다.

앞으로 수련의 길에서 세간의 형세가 어떻게 변하든지 나는 반석같이 확고하게 사부님을 따르고 마지막 길을 착실하게 걸어갈 것이다.

 

원문발표: 2019년 10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0/19/3946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