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遼寧) 선양(瀋陽)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70살이 다 된 대법제자다. 95년에 법을 얻었고, 줄곧 통독하는 방식으로 ‘전법륜(轉法輪)’을 배웠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고요해지지 않았고, 법을 읽을 때면 늘 과거의 시시콜콜한 일들이 떠올랐다.
2017년 6월 20일, 나는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했다. 법을 외우니 통독할 때와는 상태가 크게 달랐다. 법을 외울 때는 마음이 아주 고요했는데, 사부님의 <전법륜> 한 구절 한 구절을 외우고, 한 단락 한 단락을 외우고, 이 구절 저 구절, 이 단락 저 단락을 외우니 마음속 잡념이 모두 사라져 정말 마음이 물처럼 고요했다. 게다가 대법의 넓고 심오한 법리와 더욱더 깊은 내포가 시시각각 나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것은 내가 법을 통독한 20여 년 동안 없었던 상태였고, 그럴 때마다 나는 법을 외우는 것이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법을 외우기 시작했을 때는 구절 하나씩을 외우고, 작은 단락 하나씩을 외웠는데, 법이 너무 길면 외울 수 없었다. 외웠던 법을 다시 중복하지 않고 한 강의, 한 강의씩 외워가니 넉 달도 안 되어 ‘전법륜’을 한번 외울 수 있었다. 한 번 외울 때마다 외우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확실히 느꼈고, 법에 대한 기억력도 증가했으며, 늘 이 법을 외우면서 다음 법이 뭔지를 알았다.
그러나 강의 전체를 조금도 틀리지 않고 외우고 싶었지만, 해내기가 몹시 어려웠다. 내가 아주 빨리 ‘전법륜’을 다섯 번 외웠을 때 갑자기 법을 외우는 방법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통째로 한 번씩 외우던 것을 바꾸어 한 강의만 집중하여 능숙하게 외우되, 조금도 틀리지 않고 아주 숙달되면 다음 강의로 넘어갔다.
내가 제2강을 외울 때는 날마다 제1강부터 한 번 머리로 외운 후에 제2강을 외웠다. 하루, 이틀, 날마다 그렇게 계속 반복하며 외웠고, 빨리 외우기보다는 법 외우기의 질과 정확도에 신경을 썼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1] 사실 법을 외우는 것이 우리의 목적은 아니고, 법을 외우는 동시에 각종 집착심을 찾아 닦아 버리고, 법 속에서 자신의 일언일행을 바로잡고, 진정하게 대법에 동화되는 것이야말로 법 외우기의 관건이며, 근본의 근본이다.
법을 외우는 중에 어떤 때는 한 강의를 아주 능숙하게 외웠지만, 늘 법의 어떤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났고, 당시에는 기억해도 다음에 다시 외울 때는 여전히 그곳에 문제가 생겼다. 그때는 법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면 자신의 버려야 할 곳을 반드시 찾을 수 있었다.
먼저 외운 법을 확실하게 기억하기 위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날 때마다 멈추어 앞서 외운 법을 다시 머릿속으로 한번 외웠다. 바로 이런 순서로 점점 앞으로 나아갔고, 끊임없이 돌아가며 외웠다. 비록 법을 외우는 속도는 아주 느려 보였지만, 효과는 좋았고, 뒤쪽을 외우면 앞쪽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나의 씬씽(心性)은 아주 빨리 제고되었다. 대법의 비범하고 심오함을 진정으로 체득했으며, 시시각각 자신이 수련인임을 생각했고, 시시각각 자신을 법 속에 녹였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의 신변에 계시면서 우리를 보호해주셨고, 우리를 점오, 각성시켜주셨고, 우리에게 씬씽을 제고할 기회를 조금도 놓치지 않게 하셨고, 끊임없이 우리를 밀어주시고 앞으로 끌어주셨다.
내가 법을 외울 때 사부님께서 나에게 시시각각 제고하고 승화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신 일 몇 가지를 써내니 법에서 벗어난 곳이 있다면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어느 날 A동수가 나에게 말하기를 B동수의 병업 가상이 몹시 엄중해 자신들이 법 공부 팀에서 정시 발정념을 마친 후에는 모두 B동수를 위해 발정념을 한다고 했다. 이튿날 정시 발정념을 마치자 A동수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당시에는 나도 병업 가상 중에 있었고, 동수들에게 발정념을 부탁하지는 않았지만, 날마다 정시 발정념을 마치고 나를 위해 발정념을 하여 자신의 공간장을 청리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를 위해서? 아니면 그를 위해서?
순간 사부님의 법이 나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다”[2] 나는 나의 수련이 너무나 형편없어 늘 사부님께 걱정을 끼쳐드렸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수련이라, 무사무아(無私無我) 해야 하며, 다른 사람을 위하는 생명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것이야말로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며, 새로운 우주 생명의 표준이 아닌가? 자아를 내려놓고, 날마다 정시 발정념 후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B동수를 위해 발정념을 했다.
한번은 B동수를 위해 발정념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B동수를 가지 해 주시어 그녀를 정념정행하게 하시고, 절대 사악에 넘어가지 않게 하시고, 일체가 모두 가상이니 승인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로 가게 하시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실 것을 청했다. 그때 사부님의 법이 다시 나의 머리로 들어왔다. “心性(씬씽)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얼마만큼 높은데,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다.”[3]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이 단락 법의 더욱더 깊은 내포를 깨달았다. 겉으로는 내가 B동수를 도와 발정념을 했지만, 법리상으로 말하자면 실제로는 자신에게 발정념을 한 것이었다. 씬씽의 제고는 바로 자신의 위덕을 수립하고 자신의 공을 자라게 하는 것이다. 제자를 앞으로 밀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사부님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운 구도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어느 날 아침 연공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고, 나는 손을 뻗어 알람을 껐다. 마음속으로 잠깐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때 사부님의 법이 즉시 나의 머리로 들어왔다. “당신은 자신에게 엄격하게 요구해야 한다.”[3]
그때 나는 부끄러워 진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당으로 시간을 연장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빨리 수련을 다잡아 정법 노정을 따르고 반본귀진하게 하시려는 것인데, 나는 정진하지 못하고도 안일을 추구했다. 시시각각 제자를 점오해 주시고, 씬씽을 다시 한번 제고하게 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느 날 정오에, 갑자기 왼손의 두 손가락과 손바닥 절반이 마비됐다. 다섯 손가락을 펴면 그 두 손가락은 벌어진 나뭇가지처럼 서로 합쳐지지 않았고, 물건을 잡을 수가 없었다. 왼손 엄지손가락으로는 연공기의 좌우 버튼을 누를 수도 없었다. 나의 마음속에는 잘못된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 마음이 나오자마자 사부님의 법이 즉시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3]
나는 각성하고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방금 그 생각은 진정한 제가 아니고, 일체가 모두 가상이므로 저는 그것을 승인하지 않겠습니다. 업은 제거하고 마는 소멸하겠습니다. 일체는 사부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정념정행하여 절대 사악에 넘어가지 않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걷겠습니다.”
이후에는 날마다 머리를 빗는 것이 최대의 난관이었다. 고무줄로 머리카락을 좌우로 묶으려면 왼손과 오른손을 교차시켜야만 머리카락을 묶을 수 있었지만, 머리카락은 짧고 왼손에 힘이 없어 오른손으로만 머리카락을 묶으려 하니 정말 설상가상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3]
나는 반드시 할 수 있고, 사부님의 말씀에만 따르면 할 수 있다. 마음속으로 법을 외우면서 한 차례 한 차례 고무줄을 머리카락 위에 걸치고 끊임없이 견지하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나는 변함없는 마음만 있으면 좋은 결과가 있음을 믿었고, 성공하여 머리카락을 묶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비할 바 없는 감사를 사부님께 드리고, 대법에 드렸다.
매일 세수는 왼손으로 안 되어 오른손으로 했다. 밥을 먹을 때 왼손으로는 밥그릇을 받쳐 들 수 없어 왼손을 밥그릇 밑에 깔고 먹었다. 법 공부를 할 때도 왼손으로 책을 들 수 없어 왼손을 책 밑에 깔았지만, 날마다 법 공부와 법 외우기를 견지했다. 정념정행하니 사람의 감각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왼손의 부정확한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느끼지도 않았다. 매일 신사신법이라는 마음만 품은 채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체를 했다.
수련에는 우연한 일이 없어 안을 향해 찾으니 그동안 내가 이 집을 위해 많고 많은 것을 감당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몸까지 불편하다며 늘 불평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불평하는 마음을 깊이 파내면 바로 사람의 과시심, 지지 않으려는 마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 원한심, 쟁투심, 질투심으로, 결국은 위사위아하는 사심이 아니겠는가?
나는 몹시 송구스럽게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가 좋지 않은 마음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어떻게 구세력에 틈을 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이 모두 필요 없으니 대법 속에서 수련해 버리고 자신을 바로잡겠습니다.”
2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왼손이 나도 모르게 신기하게도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이번의 마난 가상은 나의 일상생활에 상상할 수도 없는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체를 꿋꿋이 견지했다.
나는 나의 왼손이 불편해 보이는 현상에 대해 가족들에게는 조금도 알리지 않았고,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은 나의 왼손이 불편한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매주 우리 집에 와서 법 공부를 하는 동수들까지도 내가 관을 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존께 예를 올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 ‘홍음-착실한 수련’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 ‘각 지역 설법 2-2002년 워싱턴DC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10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씬씽제고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9/10/20/3943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