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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에서 뛰쳐나와 법에 동화하다

글/ 후베이(湖北) 수련생

[밍후이왕]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읽고 일부 깨달음이 있었다. 대법에 동화하는 것에 대한 나의 얕은 인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법에 있지 않은 과격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들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요즘도 나는 매일 법을 배우면서, 어떻게 하면 진정하게 대법에 동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대법에 동화하는 것에 대한 나의 인식은 온 머릿속에 대법을 가득 담고, 매일 부딪히는 일들을 법으로 가늠하고, 대법이 준 정념으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사일념, 일언일행이 모두 법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매우 어렵다.때로는 의식하지 못하고 때로는 의식해도 해내지 못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최근 1~2년 사이에 나는 밖에 나가서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길거리를 걷다가 옆을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도 입을 열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갔다. 항상 머릿속에 이 관념, 저 걱정이 가로막고 있었다. 왜 이럴까? 나는 고민이 많다.

나의 일사일념을 따라 찾아보았다. 밖으로 나와서 진상을 알려 한 사람씩 탈퇴를 권하여 사람을 구하고 싶었다.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라고 하시는 세 가지 일 중 하나인데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왜 강하게 일어나지 않을까? 나는 줄곧 매우 곤혹스러웠다. 최근에 좀 명백해진 것 같은데, 나는 이것이 아마도 대법에 순응하지만 진정으로 동화되지 않은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법에 동화된 생명은 새로운 우주의 이치에 부합되어야 하며 기점은 남을 위한 것으로,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주동적으로 해야 하며 법을 실증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간주해야 한다. 그리고 중생을 책임지는 마음이 매우 강해야 한다. 일부 수련생들처럼 사람을 구하는 일에 정말 강렬한 긴박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의 사유를 살펴보면 많은 면에서 피동적이고 사(私)를 위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하고, 잘하지 않으면 나중에 결과가 좋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이것은 남을 구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고기점은 사를 위한 것인데, 사를 위한 것은 구우주의 특성이다. 기점이 바르지 않는데 어찌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정법 수련을 한지 이렇게 오래 되었어도 자신이 지금도 한 발은 새 우주를 딛고 한 발은 낡은 우주를 밟고 있는 느낌이다.(이 예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 나는 법 학습 시간을 대량으로 늘리고 교란을 제거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배우고 법을 외웠으며, 진정으로 생명의 미시적인 곳에서부터 표면에 이르기까지 법에 동화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심지어 외출할 때의 옷차림과 사람을 대하는 것까지 모두 그것으로 확인돼 법을 실증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기점에서 생각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자신을 요구해서는 안 되며, 구세력이 틈을 타서 박해하지 못하도록 수련을 잘해야 한다.

억울한 옥살이를 마친 후 1년이 넘도록자신이 정진하려는 목적은 더 이상 구세력에 의해 박해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늘 생각했고, 마치 수련하는 것이 박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인 것 같이 생각했다.

자신도 모르게 구세력이 안배한 길을 따라 갔다. 나는 대법제자이며 사부님의 제자이다. 오직 사부님이 정해주신 길만을 걸어갈 것이다. 사에서 벗어나고 명(名), 이(利), 정(情)에서 벗어나고, 사람의 이치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대법에 동화할 수 있다.

부당한 점이 있으면 바로 잡아주시기를 바란다.

허스

 

원문발표: 2019년 10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0/19/3947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