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법 암송 중에서 착실히 수련하다

글/ 캐나다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995년 저는 어머니와 함께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나이가 어려 어머니가 법공부, 연공할 때 옆에서 어쩌다 일부 동작을 따라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저는 점차 대법을 떠나 속인 생활로 들어갔다가 2013년 어느 우연한 기회에 다시 대법으로 돌아왔습니다. 자비로우신사부님께선 속인 사회에서 길을 잃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2016년 저는 가족과 함께 캐나다토론토로 왔습니다. 아래 제가 수련한 심득을 적어 여러분과 교류하며, 사부님께 보고하고자 합니다.

1. 법 암송 중에서 착실히 수련하다

얼마 전, 매주 금요일에 있는 큰 팀 법공부에서 단체 법 암송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법을 외우기 시작해 처음 외울 때는 한 주에 한 단락만 외워 법 암송이 생각처럼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한 주에 한 단락 하던 것을 상황이 허락하면 하루에 한 단락을 외웠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매번 법 암송 때 자신의 사상 중에 각종 교란이 나타나, 평온한 마음으로 외울 수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매일 첫 마디를 외우기 시작하면, 마음속에 조급한 요소가 나타나 오늘 외우려고 한 그 단락을 외우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또 이미 외우고 나선 잊을까 봐 걱정되어 다시 또 새로 외우곤 했습니다. 이런 상태가 나타남으로 인해 저는 법 암송 중에서 수승(殊勝)과 아름다움을 느끼진 못하고, 힘들기만 했고 진정하게 법을 마음속으로 외워 넣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태는 아주 의문스러웠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이런 의혹이 풀리지 않는 마음을 보셨는지, 제가 밍후이왕 교류문장을 읽을 때 제자를 깨우쳐주셨습니다. 문장에서 그 수련생은 법 암송 중에서 조급해하지 않고 한 글자 한 글자 차례로 외워, 하루에 아주 적게 외워도 깨달음 속에 있으며 한마디 한마디 외운다고 했습니다.

그 교류문장을 보고 저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법을 외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적 달성에 급급해 법 암송을 속인의 수업으로 여겨, 자신이 지금 외우는 것은 대법, 우주의 법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동시에 이렇게 법을 외우는 것은 대법에 대한 불경(不敬)입니다. 자신의 이 속인의 집착심, 목적 달성에 급급한 이 마음을 깨달은 후 점차 그것을 닦아내야 했습니다.

매일 법을 외울 때 조급한 상태가 다시 나타나면 노력해 배척하고 부정하며, 자신에게 ‘지금 외우는 것은 대법이다, 한 글자 한마디 법을 이해한 기초에서 외워야 한다, 오늘 한 단락을 다 외우지 못해도 암송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일깨웠습니다. 그 후 점차 그 조급한 마음이 갈수록 적게 나타났습니다. 동시에 매번 법 암송 중에서 정말 점차 자신이 깨달은 층차에서 대법의 내포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최근 한 시기 법 암송 중에서, 자신이 법공부할 때 다른 상태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고, 어머니 수련생이 저를 부르고 이끌어 주어, 법공부를 마치 하나의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앉아서 읽기만 해, 마음속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다 읽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법 암송을 한 후 법공부가 마음속에 들어가고, 법공부할 때 대법의 박대(博大)와 끝없는 내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법공부 때 정말 아주 몰두해 배워 글자마다 마음속에 들어갔는데, 예전처럼 그렇게 법공부할 때 사상이 도망가지 않고 각종 외래 요소의 교란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법륜’을 읽을 때 사상이 전일(專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하며 수련 중에 전념하지 못한다.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같으며, 시간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본래는 제고해야 할 때이건만, 오히려 마음에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문제와 일부 일들을 생각하는데, 제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만약 법을 잘 배우지 못하면, 많은 일을 다 잘하지 못하게 된다.”[1]

자신도 법을 암송하고 있어 점차 진정하게 자신을 법에 용해해, 천천히 한 수련인이 어떻게 자신을 닦아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2. ‘사(私)’를 닦아내다

법공부할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배웠습니다. “사를 위하는 것은 과거 우주의 근본 속성이었는바, 성주괴멸(成住壞滅)과 생로병사(生老病死)도 이 속성이 가져온 필연성이었다. 장래의 법은 원용(圓容)한 것이고 공(公)을 위하는 것으로, 우주의 근본 속성이 개변됨으로써, 우주의 과정과 생명의 특징(特點)으로 하여금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했다.”[2]

그 전에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을 읽으면 늘 이해하지 못해, 어느 정도로 해야 ‘위타(爲他, 다른 사람을 위함)’인지를 몰랐습니다.

더 많은 시간을 법공부, 법 암송한 후 저는 이 법의 한층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련하기 전, 자신이 문제를 생각하든 일을 하든 위사(爲私, 사익을 위함)한 기초에서 했고, 무슨 일이든 자아를 높게 보고, 무엇이든 우선 자신을 만족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수련의 초기에 들어서서 점차 법공부 중에서 ‘자사(自私, 이기적)’를 반드시 닦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문제를 생각하고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자신은 기껏해야 속인 중의 좋은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비록 표면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했지만, 실질은 아직도 그 ‘사’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과 함께 밖에 나가서 식사할 때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집어주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때면 남편도 좋아하는 것이지만, 절대적으로 우선 자신을 만족시키는 기점에 섰고, 심지어 남편이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먹어 치우면 마음속으로 불쾌해하며 일부 원망하는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진일보 무엇이 ‘위타’인지 깨달은 후, 그 음식이 제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며 타인을 제1위에 놓았습니다. 동시에 일에서 뿐만이 아니라, 바로 사상에서 점차 이 ‘사’를 닦아냈습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부합하지 않는 말을 했을 때, 비록 속인의 각도에서 저는 당당하지만, 진정으로 ‘위타’하는 기점에서 출발해 문제를 생각하며, 남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많이 생각하게 되어 그 사람의 출발점이 있을 것이라며 이해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점차 ‘위사’를 닦아내는 과정에서 점차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우리는 속인 사회 중에서 수련하기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해,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이 마음은 곧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 자선지심(慈善之心)이고 자비(慈悲)이다. 정(情)은 속인 중의 것으로서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3] 예전에 ‘정’ 중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했는데 사실은 ‘위사’입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한 것은 단지 ‘내가 하고 싶어서’ 혹은 ‘내가 좋아서’였지 진정으로 ‘위타’한 기점에 서지 못했습니다. 점차 이 사람 중의 ‘정’, ‘사’를 닦아내는 과정에서만이 진정으로 ‘자비’, ‘위타’를 닦아낼 수 있습니다.

3. 진상 거점에서 자신을 수련하다

막 해외에 왔을 때 많은 진상 거점을 보았습니다. 중국의 그런 고압적인 환경에서 막 나와 이렇게 자유롭게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은 정말로 좋았습니다. 그때 일부 관련 항목에 참여했지만, 학교 수업 시간의 안배에 따라 또 다른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참여해, 점차 진상 거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마음속에 갑자기 일념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진상 거점의 진상 알리기 항목에 많이 참가하고, 대면해서 세인에게 직접 진상을 알리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자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상황에서 중식당, 차이나타운, 퀸스파크(Queen’s Park) 등 진상 거점에서 당일 당직하는 수련생들과 함께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며, 동시에 오전에 자주 퀸스파크에 가서 연공에 참여했습니다. 최근 매주 주말에 또 나이아가라폭포 진상 거점에 가서 그곳의 단체 연공과 홍법 활동에 참가했습니다.

청년 대법제자로서 ‘일선’ 진상 거점 활동에 많이 참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선 해외에서 우리는 영어 이 방면의 우세를 이용해, 진상 거점의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대법을 진일보 이해하고 공을 배우려는 서양 사람들, 그들에게 진일보 소개하거나 연공 동작을 가르쳐줄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더 많은 서양인에게 대법을 알게 할 수 있고, 인연 있는 사람을 대법 수련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반드시 인연 있는 사람을 우리 곁으로 배치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와 동시에 ‘일선’ 진상 거점에 참가한 각 대법 항목 활동 중에서 저는 아주 큰 제고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바로 더 많은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리고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제 개인으로서 말하자면 저는 예전에 서양인에게 진상을 알리는 쪽으로 치우쳤습니다. 학우, 선생님, 행인 저는 일반적으로 서양인을 택해 진상을 알렸는데 제 마음속에는 하나의 관념이 있었습니다. 서양인에게 진상을 알리면 그들은 저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고, 당장 가서 알아보지 않더라도 아주 우호적으로 대답을 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중국인은 제가 자료를 막 건네고 아직 아무 말도 하지도 않았는데, 아주 우호적이지 않은 눈빛을 던져줍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런 진상 거점에서 줄곧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들을 존경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해도 중생구도의 기점에서 출발해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있습니다.

최근 또 진상 거점의 각종 항목 활동에 참가했습니다. 저는 점차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리기 싫은 마음을 제거하고, 능동적으로 중국인들에게 자료를 건네며, 능력 범위 내에서 진상을 알리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습니다. 게다가 매번 야외 연공에 참가할 때면 파룬따파의 수련 중에서 매우 많은 청년 대법제자가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중국인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해외의 한 청년 대법제자로서 저는 청년 대법제자들이 ‘일선’ 진상 거점으로 가서 진상을 알리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나타낼 것을 건의합니다.

이상 개인의 약간 수련체험입니다. 부족한 곳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 –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5 – 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019년 캐나다 법회 교류원고)

 

원문발표: 2019년 7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28/3906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