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 과정 중에 나는 늘 일부 일들을 잘못해 가끔은 후회막급이었고, 때로는 스스로를 탓하지 않았다. 다른 수련생이 저지른 일부 착오에 대해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도 있지만, 일부 일에 대해서는 아주 화가 나서 용납할 수 없었다.
최근에 법공부를 하면서 원래 법 속에서 모두 명확하게 우리에게 어떻게 행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설법을 보았다. 경험을 써내 수련생들과 함께 공유하려 한다.
1. 착오를 저지른 자신을 대하다
내가 항상 후회하며 괴로워할 때 이는 이미 일종의 집착 속에 들어간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은 그것을 오점이라고 느껴 스스로 심리적 압력이 아주 중한데, 그것 또한 집착이 아닌가?”[1] “넘어졌다면 엎드려 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2] “나는 당신들이 자책(自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조금도 쓸모가 없다. 나는 여전히 그 한 마디 말이다. 넘어졌다면 엎드려 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2]
조금도 쓸모없는 일을 나는 하지 않을 것이고 때문에 나는 더는 자책하지 않았다.
나는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가 찾고 찾다가 남의 것을 찾고 있는 것을 항상 발견하게 됐다. 자신에게서 2개 정도 찾고 남에게서는 8개 정도 찾고 또 찾아내는데, 자신은 외부의 관객이 됐다. 한 개 조항, 한 개 조항 남의 착오만 열거했다.
나는 이는 실질적으로 사령(邪靈)의 요소가 교란하는 것임을 인식했는데 가짜, 악, 투쟁[假·惡·鬪] 속의 ‘가짜’가 나에게서 표현됐던 것이다. 서론을 말할 때 먼저 자신을 검토하지만 겉으로 사람에게 보여주는 형식이었고 남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것이 진실한 목적이었다. 구세력과 사령은 모두 정법 속에서 해체돼야 하고 도태되어야 할 것들인데 내가 어찌 그것들이 내 사상 속에 존재하도록 허락한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 속인이 어떤 일에 부딪혀도 교훈으로 삼고 많이 생각하고 생각해야 하는데, 수련인은 더더욱 구세력이 틈을 타게 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야 하며, 자신의 문제를 찾아봐야 한다.”[3] “반드시 진지하게 자신을 찾아야 하고 구세력의 빈틈을 적게 타게 해야 한다.”[3]
“앞으로 반드시 이 문제의 심각성에 주의해야 한다.”[4] “주의하라. 문제가 나타나면 책임을 찾지 말고 자신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아야 한다.”[4]
이 두 가지 설법에 대해 나는 아주 감회가 새로웠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법보(法寶: 법력이 있는 보물-역주)로서 주저 없이 단호하게 자신을 찾아야 한다! 만약 밖을 향해 찾으면 바로 삿된 길로 걸어가는 것이고 자신의 공간장 속의 사악한 생명은 도망친다.
2. 착오를 저지른 수련생을 대하다
나는 늘 자신의 관념으로 이 착오의 크고 작음을 가늠했다. 이로써 수련생을 용서할 것인지 아니면 이 수련생을 대법제자 속에서 ‘퇴출시킬’ 것인지 결정했다.
나는 사람이 되는 표준으로 어떤 사람이 거짓말하면 영원히 깔봤다. 수련인이 만약 색계를 범하면 나는 바른 눈으로 그를 보지 않았고, 만약 누가 이전에 다른 수련생들을 배신했다면 그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대법제자가 준 돈을 헛되게 쓴다면, 만약 그가 특무라면, 만약 그가 법을 파괴하는 작용을 일으켰다면 등등, 만약 그가 그렇게 큰 나쁜 짓을 했다면 그는 더는 수련할 자격이 없고 그가 어찌 또 대법제자가 될 수 있단 말이냐고 생각하며, 자기 생각이 아주 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할 때 자신의 이런 생각이 아주 엄중하게 법에서 이탈했다는 것을 갑자기 깨닫게 됐다. 내가 이것저것을 평가하고 판단할 때 사실 자신은 이미 잘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대법의 표준으로 옳고 그름을 가늠하지 않고 완전히 구우주의 표준으로 가늠했다. 내가 수호하는 것은 해체되고 있는 구우주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 이치는 구세력이 대법제자를 가늠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이치였다.
그렇다면 정확한 가늠의 표준은 무엇인가? 사부님께서는 매번 설법하실 때 모두 그렇게 평온하게 가장 바른, 새 우주의 이치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는데 이는 대법제자가 조건 없이 반드시 실행해야 하고 반드시 수호해야 할 표준이다. 우리의 상태도 반드시 법과 일치하게 유지해야 비로소 법을 수호할 수 있고 경사경법(敬師敬法)을 해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가 대법제자인지 아닌지, 수련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자신이 결정하게 되는데 이는 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이는 구세력과 한 무리가 된 것이 아닌가? 나중에는 어떻게 도태될지도 모르는데 또 자신이 맞다고 생각한다.
또 어느 수련생에 의해 용서할 수 없는 착오를 저질렀다고 ‘인정되어’ 이미 대법제자 대열에서 ‘퇴출된’ 일부 수련인들이 검은 소굴에서 오히려 사악에 협조하지 않아 박해를 당한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전해져 나왔다. 그러나 수련생들은 이 소식을 들은 후 비교적 ‘당연하다’고 여기며 대법의 표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았는데, 무의식중에 구세력을 ‘도와’ 박해를 유지했고 자신이 이미 위험 속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3. 표면을 통과해 ‘착오’의 배후 원인을 집어내다
가짜 기공 책은 어떻게 써낸 것인가? “아주 많은 것은 부체가 사람의 명리심을 지휘, 통제하여 쓴 것이다.”[5] 나의 이해는 ‘진정한 나쁜 짓은 부체와 명리심이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명리심은 다른 공간에서 진실하게 존재하는 유형적인 생명) 이 사람의 주왠선(主元神)이 한 것이 아니고 주왠선이 집을 지키지 못해서 조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제자가 저지른 착오는 어떻게 조성됐는가?
“대법제자의 표면적인 것과 본질은 구세력에 의해 격리됐기 때문에 많은 일에서 대법제자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표면적인 것이 사악한 생명의 조종으로 일부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집착심이 사악한 생명에 의해 이용당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대법제자의 본질을 따로 빼낼 것이다.”[6] “왜냐하면, 진정한 나쁜 짓은 구세력이 사악한 생명을 통해 사람의 업력과 관념을 조종하여서 한 것이기 때문이다.”[6]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이 나쁜 짓은 사실 사람의 진정한 주왠선이 한 것이 아니고 대법제자의 주체가 집을 지키지 못해 조성된 것이다. 따라서 대법제자가 자신을 바로잡는다면 이 죄는 사악이 한 것이며, 만약 최후에 이르러도 계속 잘하지 못하면 책임을 져야 하고 이 죄는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진정한 대법제자는 사존께서 제 위치에 밀어주시어 법의 표준에 도달한 것이고 가장 순정한 것임을 똑똑히 알게 됐다. 법공부가 따라가지 못할 때 법에 동화하지 못한 사람의 표면 물질은 주왠선을 매몰하고 뒤덮어서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데, 표현에서 정념이 없고 이때 쉽게 좋지 못한 생명에게 조종당해 나쁜 짓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 수련생들은 정념 어린 도움이 무척 필요하다. 만약 주변 수련생들이 이성적으로 대하고 수련생의 바르지 못한 언행에 이끌리지 않으면 사악이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다. 정념과 신통을 내보내 그의 공간장의 사악을 해체하면 수련생의 주왠선은 강대해지는데 이는 사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그 손오공이 예리한 혜안으로 한번 보면 아는 것과 같다. 원래는 요괴들이 간악한 꾀를 부린 것으로, 너는 어디로 도망가느냐며 여의봉을 들어서 바로 때리는 격이다. 우리는 비록 손오공처럼 예리한 혜안이 없지만, 우리가 만약 법공부를 착실히 하면 법 속에서 연마해낸 지혜의 눈으로 어떠한 미혹도 한눈에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혹 속에서 만약 법리마저 똑똑히 알지 못하면 사악의 표현을 만났을 때 역시 여의봉을 들어 때리지만 오히려 수련생의 머리를 때려 사악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 마치 사람들이 왜 달기가 그렇게 나쁘게 변해 조정에 화란을 일으키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한 개의 왕조를 파멸시켜 달기를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하지만, 사실은 그 여우가 한 것이다. 말은 간단하게 할 수 있어도 이런 명석함에는 깊고 두터운 수련의 기초와 착실한 심성 표준이 필요하며 비로소 해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의 상태다!
4. 정법의 각도에 입각해 수련인이 저지른 ‘착오’를 대하다
지금은 정법시기이고 예전의 개인 수련과는 다르다. 대법제자가 저지른 착오는 모두 배후의 사악한 요소가 조종해서 나타난 것이다. 병업이든 경제적 위기이든, 가정 속의 난관, 직접적인 체포와 박해이든지 막론하고 모두 그것들이 먼저 강제로 가한 것이고 더 강화하고 사람의 마음을 확대한 후 교란하고 박해한 것이다. 그 결과 정법을 겨냥한 교란과 파괴이기 때문에 우리는 간단하게 대할 수 없다.
법에서 나는 깨달았다. 지금 정법 수련은 수련 중의 어떠한 일도 모두 우주 정법의 대사와 연결되어 있고 어떠한 일도 사부님의 참여와 보호를 떠날 수 없다. 표면상에서는 수련인이 사람 마음, 집착이 있으면 해낸 일들이 법에서 위배된다. 그러나 사악이 손을 대 대법제자를 시험하고 사람 마음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박해하면(그것들은 도와준다고 부름) 바로 사부님 정법에 번거로움을 만들고 대법을 겨냥한 파괴다. 그렇다면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진지하게 자신의 문제를 찾아내는 동시에 반드시 사부님의 각도에 입각해 문제를 보고 반드시 엄숙하게 박해를 제거해야 비로소 사부님을 수호하고 대법을 수호한다. 이런 박해가 자신의 몸에 발생하든 수련생 몸에 발생하든 그것들은 참여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합격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다.
만약 사부님의 각도에 입각할 수 없고 정법의 각도에 입각해 문제를 볼 수 없으면 그것은 바로 개인의 은혜나 원망, 혹은 개인의 표준 속에서 문제를 보는 것으로서 이는 아주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법을 수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문장에서는 일부 집착심이 아주 무거운 수련인이 법에 부합되지 않는 일을 하면 구세력은 다른 일부분 사람 마음이 강한 수련생을 조종해 대법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격렬하게 반대해 대법제자 내부가 모순이 겹겹하고 서로 무너뜨리고 혼란을 가중한다고 쓴 것이 기억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모두 구세력의 박해 기획 속에 있고 구세력은 그들이 모두 사람 마음이 크게 폭발해 모두 다스려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우리 지역 한 협조인 A는 대법 일을 하다가 납치됐는데, 수련생 B와 A는 사이가 좋지 않아 다른 수련생들과 교류하는 장소에서 B는 A를 논했고 A를 어떻게 구출할 것인지 교류하지 않고 본인이 알고 있는 A가 정념이 없이 행한 가소로운 일만 이야기했다. 몇 달 뒤 수련생 B는 큰 구실이 잡혀서 박해받아 감옥에 갇혔다. 또 수련생 C는 B를 말하기만 하면 화를 내면서 B의 죄목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이듬해 수련생 C는 ‘병업’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실 수련생의 이런 법에 부합되지 않는 언행은 모두 배후의 사악한 요소가 조종해서 해낸 것이다. 대법제자는 오로지 두 가지 길을 걷고 우리가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심성 표준에 따라서 행하지 않을 때 바로 구세력이 배치한 자멸의 길을 걷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전혀 우리가 수련 성취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천방백계로 우리를 파멸시키려고 한다. 항상 이런 방면에서 정확하게 수련생을 대하지 못하면 수련 중의 기타 아주 많은 방면에서도 모두 법의 요구에 도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수련을 엄숙하게 대할 수 없기 때문으로, 다른 수련생을 해치고 또 자신을 해치고 사부님 정법에 아주 큰 손실을 조성하게 된다.
5. 신우주 표준에 부합되는 생명이 되다
수련인이 수련 중에 저지른 착오는 아주 많게는 구우주의 이치에 따르면 전혀 해결될 수 없고 오로지 도태뿐이다. 우리가 마음속에 용인할 수 없다고 느끼고 넘어가지 못할 때 사실 과거 제한적인 인식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것이며 이는 마침 우리가 바꿔야 할 사유이다. 바꾸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그럼 이 부분은 반드시 구우주를 따라서 해체된다.
한 수련생이 천목으로 보았는데 사악한 생명이 그녀를 죽기 살기로 붙잡고 사부님을 향해 크게 외치는데, 사악은 그녀의 구실을 붙잡고 그녀가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당신의 목숨으로 바꾸지 않는 한 안 된다고 했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순식간에 사부님의 피와 살, 골격을 갈아 부수어서 사악에게 던져주어 자신의 목숨을 바꿔온 것을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매 한 명의 대법제자에 대해 모두 이렇게 소중히 여기시고 애호하고 헌신하시는데 우리는 무슨 이유로 사부님께서 정성 들여 애호하시는 생명을 선하게 대하지 않는가? 사부님과 생각이 일치하지 않다면 우리는 사부님의 제자인가?
나는 사존의 무궁무진한 포용이 끝없이 홍대하다는 것을 느꼈다! 법 속에서의 무위무구(無畏無懼)는 당신의 어떠한 문제도 모두 해결해줄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사심 없이 태연할 수 있는가? 우리는 반드시 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대법의 한 개 입자이고 진정으로 자신을 대법 속에 놓아야 하고 착실하게 법 속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 행해야 하고 가서 실천해야 하는데 오로지 이렇게 해야 비로소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고 비로소 최후까지 걸어갈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생각을 움직인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면, 당신은 바로 구우주에 있는 것이고 당신이 생각을 움직일 때 원한이 있으면 당신은 사악한 생명의 조종 속에 있는 것이다. 당신의 생각이 움직인 것이 타인을 위한 것이면 당신은 바로 신우주 속에 서 있는 것으로 당연히 관용적이고, 평화롭고, 당연히 지혜가 있어 반드시 무소불위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펼쳐낸 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신우주의 대각자가 탄생한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2012년 미국수도 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시정’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6]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북미순회설법’
원문발표: 2019년 10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0/10/3944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