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의 길에서 각각의 집착심은 모두 장애물이다. 수련인은 대법의 요구에 따라 안으로 찾고 집착을 제거해 이 장애물을 없애야 한다. 많은 수련생은 이미 십 몇 년, 이십 몇 년을 수련하면서 많은 집착심을 제거했고, 속인의 것들을 담담히 보고, 세 가지 일을 아주 훌륭하게 했다. 그런데 왜 정진하는 수련생들이 번번이 난관에 부닥쳐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가? 세상을 떠난 수련생도 있는데 정말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이 현상을 수련생들과 토론함으로써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집착심을 제거하는데 반드시 주의하게 하려고 한다.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1)
3년 전,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생겨서 조금만 걸어도 아팠는데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때 아주 힘들었다. 수련인으로서 당연히 안으로 찾아야 하고 많은 집착심을 찾아 제거해 없애야 한다. 구세력의 안배를 단호하게 승인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후에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내 수련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빨리 제고해야 하고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됐다. 나는 열심히 안으로 찾았다.
어느 날 길에서 자신의 수련 상황을 돌이켜보았다. 세 가지 일을 안정되게 하고 있고, 주위환경도 무슨 특별한 변화가 없으며, 사상 염두도 큰 파동이 없고, 심지어 자신을 잘 수련하기 위해 일사 일념을 움켜쥐고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 제거해야 할 마음이 있는 것인가? 이 기간의 수련 상태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갑자기 ‘그런대로 괜찮다.’라는 몇 글자가 확대되는 것 같았고, 머리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나는 사존께서 점화해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그렇다. 이것은 아주 좋지 않은 마음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학습반에서도 현재 자신이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으며 그 말하는 태도마저 다르다. 자신이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하는 이것은 바로 불교 중에서도 아주 꺼리는 것이다.”[1]
18년 동안 걸어온 자신의 수련의 길을 되돌아보니 겪은 고난이 아주 많았지만, 사존의 보호 아래 비교적 평온하게 지나왔다. 그래서 소그룹 법회나 수련생과 토론할 때 항상 끊임없이 말했다. 자신의 깨달음이 옳고, 높이 깨달았으며, 잘 수련했고, 법리도 명석하다고 여겼다. 어떤 수련생이 관이나 난을 넘을 때 항상 어떠어떠하게 하라고 말했고, 자신이 어떻게 크고 작은 관을 넘었다고 말했다. 수련생이 관을 넘을 때 나는 안으로 찾지 않았고,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찾지 않았다. 이것들은 모두 아주 좋지 않은 마음이었다. 자만심, 자신을 높게 두는 마음,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 다른 수련생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는데 어떻게 아직도 약을 먹고, 항상 병원에 가는가? 그는 어떻게 아직도 건강보조식품을 먹는가?’ 등의 마음이었다.
나는 걸으면서 생각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리는 전혀 아프지 않았고 아무 문제도 없었다. 승화된 후의 희열은 아주 달콤했다. 나는 기쁘게 웃었다.
여기서 언급할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같은 크기의 비교적 큰 법상 두 장을 모셔왔는데 색이 누렜다. 나는 유리 액자로 표구해서 모셨다. 다른 한 장은 책 속에 넣어두고 수련생을 위해 준비했다. 그날 집에 와서 나는 사존의 법상에 향을 피워 올리고 두 눈을 감고 허스(合十)하며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마침내 제거해야 할 집착을 찾았습니다. 사부님의 점화에 감사드립니다.” 눈을 뜨고 보니 갑자기 사존께서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나는 큰 소리로 울고 말았다. “사부님, 저희는 사부님이 그립습니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이가 엄마를 만난 것 같았다. 눈물을 거둬들이기를 기다려 다시 법상을 보니 색깔이 전부 변했다. 그렇게 누렇지 않았고, 특히 사부님의 얼굴과 손은 희고 붉은빛이 돌았다. 책장 속의 법상과 비교해 아주 달라서 속인과 수련생들도 모두 놀랐다.
이 일을 통해 나는 확실히 심성이 제고되고 더러운 물질이 제거되는 것을 느꼈다. 이 층차에서 법이 나에게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했고 신체 물질에도 아주 큰 변화가 생겼다. 심성이 도달하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격려하시고 기적을 보여주신다. 나중에 수련생과 속인들은 내가 모시는 법상을 보고 모두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2)
또 한 가지 사건이 있다. 약 두 달 전, 어느 날 새벽 한 시경에 깊이 잠들었을 때 배가 몹시 아팠다. 점점 더 아파서 나중에는 꼬이듯이 아팠다. 화장실에 세 번 다녀왔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침대에서 뒹굴기만 했다. 21년을 수련한 노제자로서 나는 이것이 심성을 제고할 시간이 됐고 좋은 일임을 알았다. 나는 반드시 이 관을 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비교적 착실한 법공부의 기초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일체를 철저히 부정하고 이 일과 관련 있는 생명을 선해(善解) 했다. 발정념하고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악과 난귀(爛鬼) 일체를 해체했다. 이어서 안으로 찾아 눈앞에 존재하는 아주 많은 집착심을 찾았다. 하지만 아파서 계속 침대에 누워 뒤척였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박해하는 나쁜 것들에게 말했다. “내가 수련 초기에 엄중한 생사관도 모두 넘겼는데 이제야 또 관을 보내다니, 아직도 재미가 있니?”
나는 자신의 은밀하고 깊은 집착심을 찾지 못했음을 알고 계속해서 찾고 또 찾았다. 나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관에도 속인의 약이나, 건강보조식품, 병원에 가는 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됐다. 다른 사람을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관을 스스로 넘으려 노력했다. 남편은 다른 방에서 잔다. 남편에게 내 상황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참았다. 이렇게 세 시간이 넘게 흘렀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나는 배가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었고 온몸이 비틀렸다. 아파서 잠시도 견딜 수 없었다. 기진맥진해서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이 일념이 나오자 몇 년 전 무릎이 아픈 관을 넘은 경험이 단번에 눈앞에 나타났다. 아, 나는 깨달았다. 같은 문제였지만 지난번에는 한 층의 사람 마음을 벗겨냈다. 당시에는 자신이 수련을 안정되게 하고, 수련한 것이 그런대로 괜찮다는 등의 집착심을 벗겨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났다. 자신은 또 느슨해졌고 평상시에도 이 방면의 집착이 있었다. 하지만 비교적 얼렁뚱땅 넘어갔고 깊이 파내지 않았다. 지금, 이 좋지 않은 마음을 철저하게 제거해야 한다.
그렇다. 낮은 층차의 표준으로 요구하는 것은 괜찮다. 만약 한층 높은 표준으로 요구하면 차이가 멀다. 현실에 안주하는 마음, 평안하고 태평한 날을 보내려는 마음, 놀고 싶은 마음, 고생하고 싶지 않은 마음 등의 많은 집착심이 있었다. 어떻게 층차를 제고할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복통은 사라졌고 나는 잠자리에 들어 달게 잤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나는 평소처럼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남편 수련생에게 발생한 일을 말했다. 남편은 불평했다.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내가 대답했다. “당신도 내일 할 일이 있는데 당신한테 알리면 당신도 잠을 못 자잖아요. 나의 곁에는 사부님께서 계세요. 아무도 필요하지 않아요.” 만약 아파서 참을 수 없을 때 병원에 가고 속인의 길을 걸으며 검사해보면 어디든 다 아프고 어디나 잘못된다. 70여 세의 사람이라, 배, 내장, 심장, 간, 폐, 어디든 문제가 있고 내내 엎치락뒤치락할 것이다. 하지만 수련인의 표준에 따르면 사존의 보호 아래 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다음날 여전히 즐겁게 자신이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했다.
나중에 나는 자세히 분석했다. 21년 동안 수련하면서 약 한번 먹지 않고, 젊은이처럼 머리카락이 검고, 얼굴에는 주름이 없다. 항상 “당신은 젊어 보여서 50세 같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한 번은 잘 아는 사람이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나를 마흔여덟 살 된 조카딸로 착각했다. 이웃들도 항상 말한다. “아주머니, 몸이 정말 좋아 보여요. 우리 시어머니도 대법을 수련하는데 어떻게 수련하는지 매일 약을 먹고, 주사 맞고, 입원하고, 우리 가족은 모두 그녀가 수련하지 못하게 해요.” 수련생도 말했다. “당신이 걷는 길은 비교적 올곧아요. 게다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진상을 알려서 수련에 들어선 사람도 있고, 암 환자 몇 명이 나았고,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았어요.” 당연히 이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일이다. 나는 단지 말을 했을 뿐이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수련의 길을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자신에게 득의양양한 부분도 있었고, 자신도 모르게 내심으로 충동이 일기도 했다. “나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대법을 수련하고 잘 수련한다.” 비록 그것은 정말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또 뚫고 나왔다. 이후 반드시 더욱 노력해 그것을 제거하겠다.
(3)
여러 해 동안 우리는 대법 중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용련하고, 정성을 다해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층차를 제고하고 있다. 계속해서 향상하면 우리에 대한 요구의 표준 또한 더욱 높아진다. 그래서 아주 많은 수련생이 관을 넘을 때 아주 힘들어하고 당면한 집착심을 찾지 못한다. 많은 집착심은 아주 깊이 은폐되어 있고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많은 수련생이 대량의 법학습, 발정념을 통하거나 다른 수련생들의 도움이나 사존의 보호로 안으로 찾아 아주 빨리 당면한 집착심을 찾아 제고하고 더욱 높은 한층 법의 표준으로 올랐다. 신체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아주 빨리 비교적 큰 관과 난을 돌파했다.
어떤 수련생은 신체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속인의 길을 걸었다. 병원에 가서 자신을 속인의 위치로 떨어뜨리고 신사신법(信師信法)의 마음으로 이행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실 수 있는데 어떤 수련생은 깨닫고 심성을 제고하고 관을 넘었다. 어떤 수련생은 거듭 병원에 가고도 깨닫지 못하고 오랫동안 병업관(사실은 심성관)을 넘지 못했고 심지어 원망까지 나왔다. 내가 여러 해 동안 잘 수련했고 얼마나 많이 사람을 구하는 일을 했는데 왜 이 관을 넘지 못하는가? 가족과 주변 사람들도 말한다. “넌 아주 정진하지 않았니? 왜 이렇게 수련했어? 수련하지 마.” 여러 가지 압력으로 인해 견디지 못한다. 특히 사부님께서 생명을 연장해주셨는데 행동이 법에 있지 않아 넘지 못하기 쉽다.
우리는 비록 자신의 층차를 보지 못하지만, 법은 우리의 요구에 대하여 분명 갈수록 높아진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 찾기 힘든 집착심이 있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오래 수련했든지, 수련에 얼마나 정진하든지, 세 가지 일을 얼마나 했는지, 다른 수련생의 평가가 얼마나 좋던지, 주변 환경이 얼마나 순조롭던지, 모두 대법 중에서 수련해낸 것이고 사부님의 보호로 지나온 것이고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고 대법의 보호가 없었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내 신체의 병은 얼마나 진행됐을지 모른다. 누가 도울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층차를 제고하기를 바라신다. “마음이 괴로움을 겪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하게 층차를 제고하는 관건이다.”[1] 우리가 속인의 생활을 잘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제고하고 끊임없이 정진하기를 바라신다. 아주 많은 수련생은 이미 층차가 상당히 높게 수련했지만, 더욱 층차를 제고하고 심성에 대한 요구 표준도 더욱 높여야 한다. 하지만 관을 넘는 것은 더욱 어렵고, 집착심을 찾기도 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전진의 발걸음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속인의 층차로 떨어지지 말고,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 여러 방면에서 찾기 어려운 집착심을 찾아야 한다. 마음에 대법이 있으면 사부님께서 신변에 계시고 아무리 큰 난도 넘을 수 있다.
신체의 고통이 절정에 달했을 때나 수련하지 않는 가족의 큰 압력이 있다면 수련을 포기하기가 가장 쉽고 병원에 가서 속인의 길을 걷게 된다. 사실 이것이 가장 힘들다. 가장 힘들 때가 바로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시점이다. 가족의 압력은 자신에 대한 시험과 같다. 만약 당신이 속으로 ‘우리 남편, 아들딸이 비록 수련하지 않지만, 그들은 모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의 안배에 따라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구세력이 안배한 길을 걷게 되고, 난은 더욱 커진다. 당신이 만약 ‘나는 수련인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신다.’라고 생각하고 “당신이 괴로울 때일수록 물극필반(物極必反)임을 설명하는데, 당신의 온몸을 정화(淨化)해야 하며, 반드시 전부 정화해야 한다.”[1] “진정하게 정도(正道)에서 수련하면 누구도 감히 경솔하게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신은 나의 법신이 보호하고 있어 어떠한 위험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1] 이렇게 가장 명확한 집착심을 찾으면 거대한 관과 난을 넘는다. 이 한 점을 나는 몸소 경험했고 이렇게 지나왔다.
쉽게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집착심은 아주 많고 매 수련인의 길이 다르고 부딪히는 문제도 다르다. 연세가 많은 한 수련생은 미리 묘지를 사두고 수의를 준비하고, 자식들에게 장례를 준비하게 했다. 나도 부지불식간에 속인의 상태로 빠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4살의 어린 손자가 잔디밭에서 놀다가 갑자기 물었다. “할머니, 우리 아빠, 엄마는 나중에 죽어요?” 나는 조심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지.” 아이가 또 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죽어요?” 내 입에서 나왔다. “그럼.” 나는 나중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련인에게 어떻게 이런 마음이 있는가? 구세력의 안배에 부합한 것이 아닌가? 일단 구세력에게 이 누락을 잡히면 난을 조성한다. 이런 집착심을 어디 가서 찾겠는가? 다행히 즉시 이 나쁜 일념을 잡아 해체하고 그것을 갖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고 가짜 자아가 말한 것이다.
우리 모든 수련생은 집착을 찾기 어려울 수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사부님의 보호가 있고, 수련을 지도하는 우주 대법이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법공부를 더 많이 하고, 안으로 더 많이 찾고, 진상을 더 알리고, 최후의 짧은 정법시기 순간에 매 개인의 수련의 길을 후회 없이 걷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10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0/13/3945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