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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심근경색’ 병업관에 대한 인식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 전에 나는 심각한 심근경색을 앓고 있었다.

1998년 새해 전날, 나는 아침 연공을 하고 집에 돌아온 후 심장이 좀 불편했다. 이때 남편은 나에게 냉장고의 음료수를 가져와 마시라고 했다(듣는 말에 의하면 심장병은 찬물을 먹으면 완화작용이 있다고 한다) 그때 법리가 똑똑하지 않아 매번 심장이 불편하면 모두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 이번에도 몇 모금 먹었고 음료수 한 캔을 다 먹었지만 어떤 효과도 없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안색이 검푸르게 됐고(지난 후 남편이 나에게 알려줬음) 앞가슴, 등은 심하게 답답했으며 숨쉬기 어려웠고 통증이 심했다. 나는 심근경색이 또다시 내 몸에 침입했다는 것을 알았다.

1989년 ‘6.4’ 천안문사건 이후 어느 날, 나는 회사에서 심근경색으로 기절했다 깨어났다. 그 후부터 나는 1996년부터 대법을 수련하기 전까지 약을 달고 살았다.

수련인은 병이 없다. 그러면 왜 ‘심근경색’이 재발했을까?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온 가족은 당황하며 남편은 내가 수련하기 전에 있던 심근경색약을 가져와 내 입에 넣어주었다. 당시 나는 많은 문제를 생각했다. 수련 전 나는 여러 질병에 시달렸다.(심장병, 고혈압, 신경통, 감기도 끊이지 않았음) 정말로 편안한 날이 없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했다. 매일 한주먹씩 약을 먹었다.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어떤 약이 자주 먹는 약인지 잊었다. 만약 이번에 또 약을 먹으면 이전처럼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그런 생활을 하게 된다. 나는 96년부터 연공한 후 이미 2~3년 약 한 알 먹지 않았고 사는 것이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이때 심근경색 증상은 갈수록 심해졌고 신속히 퍼졌다. 앞가슴과 등이 답답했는데 더욱 심해졌다. 왼쪽 어깨와 왼쪽 뺨도 고통스러웠다. 그런 느낌은 사람의 말로 다 말할 수 없다. 1989년 당시에도 왼쪽 어깨가 고통스러울 때 나는 기절했다. 이번에는 왼쪽 뺨도 고통스럽고 계속 확산하고 있었다.

나는 수련 전처럼 돌아가는 것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먹고 ‘약을 먹지 않겠다. 죽으면 죽자. 어쨌든 법을 얻었다. 죽어도 지옥으로 가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자 고통스러운 물질이 몸에서 ‘쏴’ 단번에 떠났고 몸이 갑자기 편안해졌다. 심장에 손톱 크기의 통증이 남아있었지만, 전혀 장애가 되지 않다. 어떤 것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때 둘째 딸이 말했다. “나아졌어요. 입술도, 얼굴도 불그레해졌어요.”

2013년 10월 29일, 나는 아버지 집에 가서 아버지를 돌봐드릴 때(아버지는 2011년 뇌출혈로 마비돼 침대에 누워계셨음) 매일 집안일을 한 후 나는 아버지 집에 가서 아버지 몸을 닦아드리고 뒤집어 드리고 움직여 드리고 기저귀를 갈아드렸다. 그날 나는 순서대로 아버지의 몸을 씻고 닦아드렸다. 갑자기 ‘심근경색’ 증상이 내 몸에서 또 갑자기 나타났다. 당시 나의 일념은 앉아서 발정념을 하고 동시에 다른 방의 여동생(수련생)에게 병업관을 넘긴 수련생이 나를 도와 발정념을 해달라고 부탁해 달라고 말하려 했다. 아직 난방이 되지 않았다.(우리 지역은 10월 1일부터 난방이 됨) 나는 아버지를 두고 발정념을 하면 아버지가 추우면 번거롭게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연공인이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다. 심근경색은 연공인을 어떻게 할 수 없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이전처럼 아버지를 닦아드렸다. 심장병에 걸렸던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심장병이 재발하면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움직이면 생명이 위험하다. 하물며 심근경색 증상이랴? 그러나 나는 연공인이다. 속인의 이치에 구속받으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움직이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신체적인 고통을 더는 서술할 수 없다. 그 속에 있지 않은 사람은 전혀 이해하기 어렵다.

아버지를 닦아드릴 때 매번 물을 세 번 바꿔야 한다. 더러운 물을 화장실 변기에 버려야 하고 주방에 가서 따뜻한 물을 받고 물을 침실 침대 옆에 놔둬야 한다. 아버지는 마비돼 움직이지 못하신다. 위아래로 움직이고 뒤집어드려야 한다. 아버지의 체중은 60~70kg이기에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 평소에는 할 수 있지만, 심근경색 증상이 있는 사람으로서, 만약 수련인이 아니라면 전혀 해내지 못할 것이다. 당시 나는 심장 앞가슴, 등이 고통스러웠고 숨을 쉬기 어려웠으며 물을 들고 움직일 때 발을 내디디는데 바닥을 밟지 않은 느낌이었다. 평소 아버지의 몸을 움직이는데 한번이면 된다. 그러나 당시 온몸에 힘이 없어 아버지를 움직이지 못하고 손이 미끄러워 떨어졌다. 몇 번을 움직여야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 상황을 모르셔서 몇 번 움직인 후 아버지는 답답해 나에게 화를 내셨다. 움직일 때 평소보다 더 많은 힘을 써야 했다. 평소 15~16분이면 되는데 그날은 10여 분이 더 걸렸다. 두 번 물을 버리고 이미 깨끗이 닦아드렸다고 생각했다. 몸이 확실히 힘들어 오늘은 두 번 닦아드리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똑똑한 소리가 들렸다. ‘평소 너는 물을 3번 바꿨는데 오늘 왜 두 번 바꾸지? 심근경색을 상관하지 않는 게 맞아?’ 나는 당시 생각했다. ‘왜 한 번 적게 씻겨 드렸을까? 아직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도 그것을 심각하게 본 것이다!’ 수련인은 말하면 해내야 한다. 절대 개의치 말아야 한다. 정념으로 자신을 강화했고 이전처럼 한 번 더 닦아드렸다. 나는 침대 커버를 깔고 아버지 몸을 가장 좋은 위치에 돌리고 이불을 덮어드렸다. 그러자 심근경색 증상이 모두 사라졌다.

“수련은 자신에 달렸고 공은 사부에 달렸다.”[1] 피바람 속에 몇 년이 지났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으면 전혀 걸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진수(眞修) 제자는 모두 이런 많은 시험을 경험했다. 비틀거리며 오늘까지 걸어왔다. 난관에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으로 가늠하면 아마 큰 손실을 감소할 수 있고 구세력의 배치를 시험이라고 보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병업 중 생사의 관을 경험할 때, 우선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일찍 사망하게 하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해야 하고, 우리가 수련하면 사부님께서 새로 수련의 길을 배치해주신다고 생각해야 한다. 구세력과 어떤 관계도 없고 그것에 속하지 않는다. 정말로 해내면 난은 작아질 것이다.(개인 인식)

초기에 법을 얻은 노년 대법제자가 병업 중에서 고통스럽게 시달리고, 어떤 이는 병원에 가서 속인의 의료수단으로 고통을 덜고, 어떤 이는 심지어 사람 몸을 잃어버려 대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을 보며 나는 자신이 수련 중에 경험한 두 차례 ‘심근경색’ 표현을 글로 적어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점은 지적해주시기 바라고 여러분과 함께 정진하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9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9/29/3939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