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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음의 또 다른 함의를 깨닫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갑자기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1]에 다른 한 가지 깨달음이 생겼다.

수련자로서 치욕, 모욕을 당했을 때 참을 수 있어야 한다. 당시 완전히 해낼 수 없어도 수련생들은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정황에서 참음은 쉽게 깨닫지 못하는데 바로 유혹을 받았을 때 참기 어렵다.

우리는 속인의 큰 염색 항아리 속에서 생활하기에 명리정의 유혹을 자주 받는다. 이런 정황에서 참고 그것에게 이끌리지 않는 것은 그 어려움이 치욕이나 모욕을 당할 때 참는 만큼 어렵다. 후자가 법이 우리에 대한 요구는 표면적으로 화내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내려놓아야 한다. 각종 유혹을 대할 때 요구는 사실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색에 대한 유혹을 표면적으로 움직이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내려놓아야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참음은 그렇게 뚜렷하지 않고 발견하거나 분별하기 어렵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은 ‘편안함’, ‘즐거움’이고 ‘인(忍)’과 멀어 보이는 것 같다.

당나라의 적인걸(狄仁傑)은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도중에 아름다운 젊은 부인의 유혹을 받았다. 그는 당시 마음을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최종적으로 참아 큰 덕을 쌓아 후에 재상이 되었다. 적인걸은 속인일 뿐이다. 우리는 그보다 더 잘해야 하지 않는가? 마음을 다잡고 유혹을 저지해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법의 표준으로 가늠해야 할 것을 요구한다. 여전히 색에 관한 사례를 들겠다. 그것이 나타날 때 그것이 무슨 ‘좋은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참고 그것에게 미혹되지 않고 아울러 정념으로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

광의적으로 말하면 우리를 교란하는 모든 것은 다 마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것 자체가 좋든 나쁘든, 나는 고대 시를 외우길 좋아했었는데 최근 내가 법 공부를 하거나 발정념할 때 그것이 나의 머릿속에서 뒤집혀 나왔고 늘 나의 마음을 울리고 자극했다. 그것 자체가 무슨 고층차의 것은 아니지만 나의 사상은 늘 참지 못하고 그것을 따라갔기에 참지 못한 것이다.

수련은 확실히 어렵다. 마의 교란이 정말 천변만화(千变万化)하다. 유일한 방법은 법을 많이 배우고 법을 외우는 것이 가장 좋다. 윗글은 느끼는 바가 있어 썼다. 참기 어려울수록 참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제고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9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9/28/3938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