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 법을 얻은 행운, 사부님의 은혜를 잊지 않다
1994년 12월 중순, 광저우(廣州) 날씨는 매우 쾌적하고 좋았다. 나는 언니로부터 파룬궁 사부님께서 광저우에 와서 공을 전하시는데 티켓 10장을 대신 구매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나를 오토바이에 태워 광저우 기공협회로 찾아갔다. 당시 입구에 진열대 2개가 설치돼 있었는데, 한쪽은 파룬궁이고 다른 한쪽은 다른 기공이었다. 나는 두 곳을 모두 보고 나서 어느 공이 더 좋은지 물었고 누군가가 둘 다 비슷하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언니의 부탁대로 표를 사고 내 표도 한 장 샀다. 그 당시 정신이 상쾌하고 기분이 매우 좋았다.
12월 21일은 평생 잊을 수 없다. 사부님께서 광저우 체육관에서 대법을 전수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날은 개교기념일 행사라 누구라도 결석하면 8천 위안(약 130만 원)의 상여금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직접 수령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언니와 이 일을 말했다. 언니는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라며, 이 돈에 미련을 갖는지 여부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가지 않는다면 티켓을 넘기라고 했는데, 많은 사람이 티켓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어머니도 나와 교대로 가서 듣겠다고 하셔서 조금 난감했다.
개강하기 전에 체육관에 한번 가 봤는데 육교에서 내려다보니 짙은 색상의 소박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빼곡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먼 곳에서 왔는데 묵을 곳이 없어서 체육관 내부 바닥에 자리를 만들어 묵고 있다고 했다. 나는매우 감동했다! ‘이 법이 이렇게 좋다니! 이 기연을 놓칠 수 없어.’
결론은 그날 개교기념일 노천 공연은 갑자기 내린 큰비로 진행할 수 없었다. 다시 교감 선생님께 말미를 얻으러 갔지만 절대 허락해주지 않으셨다. 나는 매우 조급했다. 이때 누군가가 한마디 했다. “하고 싶은 일은 가서 하면 돼.” 나는 단번에 정신이 든 것 같았다. ‘이 돈은 포기할래.’ 나는 의연히 교문을 나섰다. 이튿날 동료가 알려주기를 오후에도 행사를 진행할 수 없어서 모두 흩어졌고 돈만 받아 갔다는 것이다. 이는 사부님께서 나를 시험하신 것이고 또 도와주신 것이다.
그 시기 광저우 거리 곳곳에 기타 기공 학습반이 매우 많았다. 사부님께서 학습반을 여신 동시에 톈허(天河)체육관에도 기공 학습반이 하나 열렸고 사람이 매우 많았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당신이 어느 문에 들어가는가를 본다.”[1]
나는 줄곧 위장이 좋지 않았고1년에 몇 번씩 위장병이 도졌다. 강의 첫날에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청리해 주셨다. 끊임없이 가스를 배출했는데 속이 매우 편했다. 강의가 끝난 후 얼굴이 불그스레해졌고 정신이 상쾌했다. 같이 간 사람은 내가 그녀들을 도와 티켓을 구매해 줬다며 좋은 일을 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홀가분했고 저녁에 잘 때 더워서 견딜 수 없었다. 12월 한겨울에 옷도 이불도 필요 없었다. 남편은 평소에 가래를 잘 뱉었는데 그 며칠은 뱉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가래를 한 무더기씩 뱉었다. 위장병이 나았고 아침에 일어나 뭘 만지면 감전된 느낌이었다. 앞이마에 무언가가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전법륜(轉法輪)’을 읽으면서 두 번이나 책 속의 글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고 오색찬란한 것이 마치 무지개 같은 빛이 뿜어 나왔다. 너무 기뻤다. 나는 이 보서(寶書)를 베껴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법을 수련한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말로 크나큰 행운이었다.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2. 반본귀진(返本歸眞), 조사정법(助師正法)
내 기억에 처음 공원의 파룬궁 연공장에 갔을 때 앞에 한 할머니가 휴대용 녹음기를 들고 계셨다. 다가가서 물어보니 파룬궁 연공장에 가는데 보도원이기도 하다고 하셨다. 나는 얼른 녹음기를 들어 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연공장에 오지 않으셨고 이후에 내가 보도원 일을 대신했다.
보도원이 되니 매일 좀 더 일찍 연공장에 가야 했다. ‘파룬궁 소개’ 현수막을 걸고 녹음을 틀고 공법을 가르치고 법 공부 팀을 조직했으며, 가정 법 공부 팀과 연공장을 만들었다. 어떤 때는 저녁에도 여러 팀의 법 공부에 참가하고 출근도 해야 했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았고 충실히 해냈다. 그때 아이가 아직 어렸는데 미처 돌보지 못해 저녁에 혼자 집에 두고 매우 늦게 들어갈 때도 많았다. 어떤 때는 데리고 가서 거기에서 숙제를 시키기도 했다. 남편은 늘 나를 원망했다. “당신은 남에게 베풀기만 하고 보상은 없어.” 그러나 남편은 노력한 만큼 보상을 얻었다. 남편이 우리 수련인의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으랴. 나는 대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인연 있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베풀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진선인(眞·善·忍) 우주 최고 특성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심성을 수련해 좋은 사람, 더욱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다. 연공장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돈을 주었지만 받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학생들로부터 한결같은 호평을 받았고 모범 교사로 선정됐다. 그때는 사회 풍조가 매우 좋지 않아 학생 모집할 때 뇌물 받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수련 전에는 나도 받았지만 파룬궁을 배운 후에는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이전에 받은 것도 방법을 찾아 돌려줬다. 돌려주지 못한 것은 기부했다. 어떤 때는 서기(공산당 조직의 직급), 당원, 간부 앞에서는 받았다가 나중에 다시 돌려주기도 했다. 한 학부모는 감사 편지를 보내오고 또 직접 딸아이를 데리고 와서 감사를 표하면서 현재 이런 교사가 너무 적다고 했다. 한번은 시에서 조직한 대형 교류 회의에서 내 수련 심득을 말한 적이 있다. 이후에 한 동료가 알려 줬는데, 그녀가 잘 아는 한 사람이 그때 내 발언을 듣고 ‘이 학교에 이렇게 좋은 교사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우리 학교에 보냈다고 했다.
20여 년간 수련하면서 나는 학교의 의료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그때 해마다 교사들의 의료비를 공개했는데 나는 늘 맨 마지막이었고 기록은 0원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도 파룬궁을 배우는 아이들이 생겼다.
나는 대법을 얻은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만약 법을 얻지 않았다면 아래로 미끄러져서 어떤 사람이 됐을지 모른다. 대법이 나를 개변시켰고 반본귀진의 길을 걷게 했다.
3. 반(反)박해하고 중생을 구하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나는 베이징에 두 번 갔고, 두 번째 청원 때 붙잡혔다. 학교에서는 면직에 뉘우치는 빛이 있는지 1년간 관찰한다는 처분을 내렸다. 장쩌민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차단하고 육체상에서 소멸하는’ 말살 정책하에 학교에서는 내 수업을 중단시키고 매일 출근해 잡일을 하게 했으며 월급은 매달 5백 위안밖에 주지 않았다. 광저우는 생활비가 많이 든다.그 시기 남편은 직장을 잃고 기타 경제적 타격도 좀 받았다. 이후에 아들이 영국으로 유학 갔기에 매달 2천여 위안(약 40만 원)의 생활비를 보내야 했다. 압력이 매우 높았고, 탄압이 무서워 개인 학생은 나에게 거의 배우러 오지 않았다.
세인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리기 위해 나는 플랫폼을 하나 개설하기로 했다. 휴일에 악기점에서 수업을 하기로 했다.그때 연세가 좀 많고 경력 있는 교사들은 모두 악기점에 수업하러 가지 않았다. 수입이 적은 데다가 성과급인지라 체면이 깎였던 것이다. 나는 명리(名·利)를 내려놓았다. 세인과 접촉해 진상을 알리고 인연을 맺을 수만 있다면, 학생 한 명을 받아도 진상을 알렸고 진상을 안 일부 사람들은 삼퇴(三退: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했다. 내가 또 청원하러 갈까 봐 두려워 주민센터에서는 매일 ‘택시’를 불러 나를 출근시키고 교장이 서명했으며 퇴근하면 또 학교의 전용차로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12명이 교대로 나를 감시했다.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나는 세뇌반, 유치장, 구치소, 감옥 등에 9번 불법적으로 감금당했다. 보석, 거주 감시, 실형 선고를 받았었다. 세뇌반에서 전향하라고 쇠몽둥이와 쇠의자로 구타했지만 수련하려는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와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프린터, CD제작, 자료 만들기,그리고 대량으로 자료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이고 휴대폰으로 진상을 알리고 MMS를 보냈다. 진상 편지를 발송하고 호신부를 만들고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진상 알리기용 지폐를 사용했다. 사람을 구할 수만 있다면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환경과 조건에 따라 했다. 가족은 매우 걱정하면서 나가서 뭘 하지만 않으면 붙잡힐 일이 없다고 했다. 아들은 자살로 날 위협했고 남편은 이혼으로 날 저지했다. 나에게 심각한 병업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모두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좋은 대법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셨고 우리를 구하기 위해 무수한 고생을 하셨다. 우리를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하셨다. 나는 반드시 사부님 말씀을 명심하고 진상을 널리 알려 중생을 구하고 서약을 실천해 우리의 신성한 사명을 완성하겠다.
최근 몇 년간 나는 대면해 진상 알리는 것을 위주로 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은 바로 심성을 제고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매우 많은 집착심이 폭로됐다. 두려움, 질투심 등이 있었는데 발견하기만 하면 그것을 제거했다. 진상을 알리는 중에 형형색색의 사람을 만났다. 스파이, 보안, 인민대표, 공자의 후예 등등, 미추와 장애를 가리지 않았고 남녀노소를 불문했다. 사부님 말씀을 명심했다. “전 세계, 모든 세상 사람은 다 나의 친인(親人)이었다.”[2]
한번은 공원 벤치에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진상을 알리려 했다. 그런데 다가가 보니 얼굴이 매우 무서웠다. 버짐이 가득 폈고 농포도 있었다. 잠깐 주저했지만, 바로 차별하는 마음이 있으면 안 된다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진상을 알렸다. 그는 매우 잘 받아들였고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책도 받고 삼퇴도 했다. 만약 차별심이 있고 꺼렸다면 그는 구원될 기회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4시가 넘어 앞 4장 공법을 1시간 반(포륜 1시간)을 하고 법을 한 강의 배우고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한다.오후에 법을 외우고 시간이 되면 또한 강의 혹은 각 지역 설법을 배운다. 저녁에 정공(靜功) 2시간을 하는데 어떤 때는 법 공부 시간이 부족하면 좀 줄인다.그리고 인터넷에 접속해 밍후이왕을 본다. 지금은 이미 ‘전법륜’, ‘홍음’, ‘홍음2’, ‘홍음3’ 등을 7번 외웠다.
나는 법 공부를 잘해야만 진상을 잘 알릴 수 있고 탈퇴하는 사람도 더 많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어떤 때는 몇 마디에 탈퇴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매우 강해야 하고 강한 소망이 있어야 했다. 작심삼일 하지 말고 습관이 형성되면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사람을 배치하셔서 진상을 듣고 구원받게 하신다. 어떤 때는 3명밖에 탈퇴시키지 못해 ‘안돼, 너무 적어, 몇 명 더 탈퇴시키자.’라고 생각하면 몇 명을 더 탈퇴시킬 수 있다. 한번은 갑자기 비가 내렸다. 한 명도 탈퇴시키지 못했는데 수련생은 일이 있어 돌아가려 했다. ‘나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라고 생각하고 계속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 결과 7명이나 탈퇴시켰다. 정말로“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3]
지금 나는 매일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데 날씨가 어떻든지 상관없다. 세인은 모두 구원되기를 기다리고 있다.자신의 능력을 다해 사람을 많이 구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요구를 느슨히 하면 안 된다. 지금은 일주일에 수십 명을 탈퇴시킬 수 있는데 어떤 때는 70여 명을 탈퇴시킬 수 있었다. 올해 설날 전후에는 1백여 명을 탈퇴시켰다.
나는 선(善)의 힘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꼈다. 선한 마음이 나오면 누굴 봐도 친근하고 기꺼이 진상을 알린다. 그리고 친화력도 좋고 자연스럽고 대범하다. 상대방은 당신을 친근하고 존경스럽게 생각하며 쉽게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오늘 귀인을 만났네요.”, “당신은 매우 선량하고 신체도 좋고 마음도 좋네요.”, “감사합니다.” 등등, 또 절까지 하려고 한 사람도 만났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사람과 신고하려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나는 그들을 멸시하지 않았고 어떤 이에게는 한마디 해주기도 했다. “당신은 아마 연분이 아직 다가오지 않았을 겁니다. 다음에 누군가 당신에게 진상을 알리면 반드시 스쳐 지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는 자신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의 요구와 거리가 멀고 구해야 할 중생도 아직 매우 많다. 다른 수련생들과 비교하면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관념과 박해의 그림자도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나는 자신에게 훈계했다. 반드시 사부님을 굳게 믿고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며 느슨히 하지 말고 꾸준히 해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잘하자. 정념 정행해 사부님이 인도하신, 원만을 향한 최후의 길에서 용맹정진하자.
주:
[1]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2]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3]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8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제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7/3908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