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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위함’과 ‘나를 위함’에 대한 한 차례 수련 시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남편이 수술해 병원에 16일간 입원했다. 이 기간 나는 병원에서 남편을 돌봤다.

남편이 입원한 병실은 3인실이다. 다른 두 환자 중 한 명은 48세(A로 약칭함), 다른 한 명은 85세(B로 약칭함)다.

A는 독신남으로 이튿날 수술해야 하는데 그를 돌볼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 생질녀가 다급하게 병원으로 와서 가족을 대표해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내가 간병인에게 연락했는데 그녀는 베이징에 여행을 가야 한다고 했다. A가 퇴원할 때까지 나는 그녀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A는 귀가 먹었지만 말하기를 좋아했다. 귀가 어두워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고 이것저것을 알아봤다. 그에게 뭘 알려줘도 잘 듣지 못해 정말이지 밉상이었다. 하지만 수련인의 내심은 선량하고 자비롭기에 나는 그의 상황을 동정했다.

B도 의지할 곳이 없는 독신 할아버지다. 수술도 하지 않았는데 몸에 도뇨관을 꽂았다. 그의 먼 친척 조카가 와서 매일 굳은 표정으로 그에게 밥을 사주고 물을 떠주기 때문에 그나마 A보다 상황이 나았다. B는 절름발이에 나이는 들었지만 똑똑한 사람이다. B가 한 손으로 오줌주머니를 들고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왜소한 몸을 끌고 허리를 거의 90도로 굽히고 걷는 모습을 보며 나는 동정이 갔고, 존경심마저 생겼다. 이분은 아주 의지가 강하다고 느꼈지만, 그가 길을 걷는 것을 보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가 바닥에 쓰러질까 봐 항상 걱정됐다.

남편이 수술한 그 날 저녁에 나는 한잠도 자지 못했다. 남편의 자질구레한 일을 돌봐준 후 쉬려 하는데 A가 요강에 오줌이 찼는데 버릴 사람이 없다고 구시렁거렸다. A에게 왜 간병인을 부르지 않느냐고 물으니 A는 오늘 낮에 간병인과 다툰 후 그녀를 해고했다고 했다. 그래서 당장 그의 오줌을 버려 줄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버려주지 않자니 요강이 넘칠 것 같고, 지금 병실에서 버릴 능력이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버리자니 피가 섞인 붉은 오줌이 정말 무서워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에 버려주면 다음에는 누가 버리지? 그는 병원에 결석을 깨러 왔기에 2.5ℓ 링거를 하루에 4팩이나 맞아야 하고 오줌이 매우 많아 오줌주머니를 쓰지 않고 직접 대야에 받아야 한다. 갑자기 A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간병인을 해고할 수 있지?!’

망설이고 있는데 본능적으로 내가 대법제자임을 알아차렸다. ‘일에 부딪히면 타인을 생각해야 한다.’ 마음을 굳게 먹고 버려주자고 결심했다! 내가 오줌을 버리러 가자 평소 말이 많던 A는 눈물을 머금었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는 하지 않았다. 그 오줌은 피도 있고 약물도 섞여 있어 비린내가 나고 역해서 버린 후 나는 송충이를 먹은 것 같아 토하려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이어서 잠결에 간호사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말하지 마세요. 더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의무가 없어요. 본인 스스로 해결하세요.” 이어서 B가 병실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가 언제 나갔는지 모르지만 그는 손에 든 오줌주머니를 내 침대와 몸 위로 끌고 지나갔다. 나는 너무 지쳐서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한참 후 그가 또 나가서 간호사를 찾는 것 같았는데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얼마 지났는지 모르지만 B가 처량한 목소리로 탄식하는 소리에 나는 놀라서 깨어났다. 나는 얼른 일어나 B에게 “할아버지 뭘 도와드려요?”라고 물었다. 그는 도뇨관이 터져 바지가 다 젖었다면서 마른 바지를 가져다 갈아입혀달라고 했다.

맙소사! 정말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1]였다. 나는 여자인데 어찌 남자에게 바지를 갈아입힐 수 있는가! 나는 존엄한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커서까지 엄격하고 아주 정통적으로 이런 일을 대했는데 나에게 그 일을 하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먼저 바지를 가져온 다음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다. 바지를 가지러 간 이 몇 분 사이에 나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이후에 당신들이 봉착하는 문제는 다 우연한 것이 아니므로, 당신들은 이런 사상적 준비가 있어야 한다. 당신에게 난을 겪게 할 것이며, 당신에게 속인들이 버릴 수 없는 것을 전부 버리게 할 것이다.”[2] 병실이 바로 내가 지금 수련하는 장소다. 눈앞의 일이 바로 내가 넘을 난관이다. 사존께서는 제자에게 가르치셨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3]

“선타후아!” 강대한 정념이 마음에서 저절로 생겨났다. ‘남을 위한다! 남을 위한다! 그래, 그는 환자이고 장애가 있는 환자며 노인이고 의지할 곳이 없는 노인이다. 그의 나이는 나보다 20살이나 많아 아버지와 비슷한데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내가 또 유일하게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다. 거절하면 나는 그 간호사와 다를 바가 있겠는가? 그를 도와주지 않으면 그의 조카가 내일 언제 올지 모른다.’

사람의 사상 경지가 사람의 심리 상태와 행위를 결정한다. 대법제자가 법으로 자기를 바로잡은 후의 사상 경지, 심리 상태는 평온하고 자비로운 것이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B에게 오줌주머니를 들고 있으라고 하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바지를 갈아입혔다.

‘이제 고비는 지나갔겠지’하고 생각했지만, 끝나지 않았다. B는 나에게 오줌에 젖은 옷을 화장실에 가져가 꼭 빨아서 널어달라고 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조카가 내일 오면 조카에게 부탁하라고 말했다. 그는 단호하게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제고된 심성 표준에 따라 당연히 나는 하라는 대로 했다. 그 오줌에 젖은 바지 냄새는 피오줌보다 더 구역질이 났고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그러나 이때 괴로운 느낌이 없이 마음이 아주 후련했다.

모든 것을 그의 요구에 따라 다 했지만 이 노인은 고맙다는 인사도 한마디 하지 않았으나 그도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두 사람이 본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눈물을 흘리는 건지, 아니면 내 행위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 관을 넘어 합격한 것 같다. 그때부터 남편이 퇴원하기까지 13일 동안 B는 다시는 바지가 오줌에 젖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A는 이튿날 아침 의사가 병실을 회진할 때 도뇨관을 뽑아 스스로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더러운 것을 두려워하는 집착을 버리도록 배치하신 것이라고 깨달았다.(이전에 나는 피오줌을 보기만 해도 토했기 때문임) 나에게 피오줌을 버리라고 해서 버렸지만 집착심을 버리지 않아 벌레를 먹은 것처럼 자꾸 토하고 싶었다. 아직 사람의 관념이 있었다. 60이 넘는 내가 40이 넘는 독신자 남성의 오줌을 버려주는 것이 비천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자, B에게 바지를 갈아입는 일로 나에게 보충 수업을 시킨 것이다. 수련은 얼마나 엄숙한가? 수련 중 매 한 층차에는 모두 표준이 있다.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인정할 수 없다. 물론 아울러 자아에 대한 집착, 분별심 등 사람 마음을 제거했다.

이 병실 이야기는 나에게 ‘타인을 위함’과 ‘나를 위함’에 대해 착실하게 수련하게 했다. 사람과 각자(覺者)를 구별하는 현실적인 체험이자, 사부님께서 나를 제고시키기 위해 안배하신 나에 대한 심사이자 시험이었다. 사실 이런 일을 하는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것은 문제를 보는 기점이다. 내가 사람의 관념으로 문제를 보면 머리에 담은 것은 온통 나 자신으로, 나는 여성이고 전통적인 사람이라는 등등이다. 사람의 관념으로 사람 마음을 제거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처럼 불가능하기에 보충 수업을 한 것이다. 내가 법에서 정념으로 문제를 봤을 때 마음에 자비와 선량함이 생겨 온 심신에 담은 것은 모두 중생이고 모두 타인이었다. 그는 장애인이고, 그는 의지할 사람이 없는 노인 등등이었다.

수련인이 난관을 넘을 때 심성이 표준에 도달하면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春: 또 다른 경지가 열린다는 뜻)’처럼 이후에 유사한 일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안으로 찾으면서 내가 평소 법공부를 확실하게 하지 못하고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처음부터 자기를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정각(正覺) 위치에 정했다면 그 난관을 단번에 넘을 수 있지 않았을까? 바로 법에서 수련하면 가장 간단한 것이다. 그날 저녁을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A와 B 두 사람은 나에게 자신을 끌어올릴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고심해서 저에게 이 얻기 어려운 수련 환경을 배치해주신 위대한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이 과정에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기쁘게 구원된 이야기도 있다. A는 처음 내가 파룬궁(法輪功)을 말하면 연신 머리를 흔들며 긴장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매우 두려워했다. 그 간병인은 나와 이야기하기 좋아했다. 내가 그녀에게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주자 처음에는 무서워 뒷걸음질을 쳐 벽에 닿았고,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면서 오랫동안 감히 한 마디도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교통사고가 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왼쪽 팔뚝이 위에서 손까지 부러져 흔들거렸고, 오른쪽 흉부 늑골이 7대나 부려져 의사는 백일 동안 누워서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37일 만에 완전히 스스로 활동할 수 있었고 3살 되는 외손자를 안고 잤다고 했다.

그녀는 듣고 아주 놀라워했다. 본인은 이렇게 오랫동안 간병인을 했지만, 여태껏 이렇게 신기한 일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마지막에 실명으로 소선대(소년선봉대)를 탈퇴했다.

B를 돌보던 조카는 성이 쉬(徐) 씨였다. 한 번은 내가 그에게 진상자료 한 권을 주었는데 그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경멸의 눈초리로 날 보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난 이런 것을 보지 않습니다.” 자신이 아주 고결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말한 진상을 듣고 내 언행을 본 후 날 존중했으며 실명으로 공청단, 소선대를 탈퇴했다. 헤어질 때 그는 내가 그에게 준 진상자료 3권과 호신부 하나를 보물이라도 얻은 듯이 잘 간직하고(물론 내용은 내가 사전에 다 선택한 것임) 갖고 가서 아내에게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유치원 교사였다.

A가 퇴원한 후 복도에서 병실로 옮겨 들어온 펑 아주머니는 더 인연 있는 사람이었다. 병실에 들어온 당일에 수술해야 했는데 그녀는 매우 두려워했다. 나는 그녀를 위로해주고 주머니에서 호신부를 꺼내 그녀에게 주면서 수술대에 오르기 전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다)’ 9글자를 외우라고 알려줬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을 제도하러 오셨기에 아주머니를 보호해주실 겁니다.” 나는 호신부 두 개를 꺼내 그녀에게 하나를 주고 하나는 예비용으로 두려고 했는데 그녀는 다 가지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 손을 잡고 수술하러 가는 엘리베이터까지 바래다주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말했다. “호신부를 받자마자 무섭지 않네요.”

2시간 후 수술을 끝내고 그녀가 병실에 실려 왔다. 나는 그녀에게 9글자를 외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줄곧 외웠습니다. 좋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돌아가서도 매일 외울 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사부님께서 중생에 대한 무량한 자비를 보여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 이런 특수한 환경을 안배하시지 않았다면 심하게 중독된 그들은 파룬궁을 듣기만 해도 안색이 변했기에 정말 구하기 아주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그들을 생각하면 처음 봤을 때의 가엾은 마음이 기쁨으로 대체됐다. 그들은 이 우주가 갱신하고 천체가 다시 구성되는 위대한 시기에 대법과 인연을 맺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기에 대재난이 올 때 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천만 년을 기다린 것이고 올 때의 진정한 소원이다! 그들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중생을 제도해주신 사부님의 크나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파룬궁-제3장 心性(씬씽)수련’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원문발표: 2019년 9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9/9/3924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