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최후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자

글/ 중국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9년 사부님의 설법을 저는 모두 4번 읽었습니다. 사실 5번 읽으려 했지만, 시간 관계로 이 목표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 “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일들은 예전에 내가 말하고 싶지 않았으며, 말할 수도 없었다. 말하면 그 난이 바로 더 크게 변하고, 더 번거롭게 변한다. 왜냐하면 구 요소 그것들은 내가 이 일을 명백히 알려줌으로써 그런 사람 마음을 제거할 수 없게 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심지어 이런 사람들에게 이로 인해 반면으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더 큰 번거로움이 나타나게 할 수 있다.”[1]

올해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직접 뚜껑을 열어 답을 주시듯 병업과 구세력의 내력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시간이 정말 많지 않고 더는 ‘수수께끼’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생각해보면 정말 표준에 도달했을까? 아니다. 아직도 그렇게 많은 집착이 있고 또 자신이 아직 의식하지 못한 집착심이 있으며 또 그렇게 많은 사람이 구원받지 못했다.’ 사실 마음속으로 매우 조급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제자로서 조급한 것은 사람의 심리상태이며, 여전히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명시하셨습니다.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2] 생각해보면 수련은 이미 단순히 개인의 원만이 아니며 일찍 사부님에게, 중생에게 한 약속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최근 많은 수련생이 당 문화에 관해 쓴 문장을 보고 저도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오래전에 하는 말마다 ‘나’자를 붙이는 것을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가 어떻고, 내가 어떻게 어떻게 하며, 내가 이렇게 그렇게 한다.’ 듣기에 무슨 결함이 없지만, 자신이 말이 많아지면 불편하고 마음이 편치 않아 마치 천하에 ‘나’만 있을 뿐 그가 없는 매우 자기중심적인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것을 일종 언어습관으로 여기고 고치려고 생각했고, 현재도 얼마나 고쳐졌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완전히 고쳐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며칠 전 저녁 교류문장 몇 편을 본 후 씻으러 갔고, 당시 머릿속에 온통 ‘나’로 폭격당하는 느낌이었으며, 마치 온 하늘에 모두 강한 ‘나’, ‘나’, ‘나’가 우박처럼 제 머리를 내리치는 것 같아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많은 분석을 거쳐 안으로 찾으면서 저는 그 당 문화에서 자신 중심적인 것이 폭로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한 가지 일을 했는데 수련생께서는 많이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저는 고의로 두 편의 교류문장을 대조했습니다. 한 편은 중국대륙 수련생이 쓴 것이고 한 편은 미국 수련생이 쓴 것입니다. 대륙 수련생 문장의 서두는 대부분 ‘나’부터 시작했고, 미국 수련생의 문장은 거의 ‘나’를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당 문화의 환경에 끊임없이 물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나’를 전제로 하는 사고패턴으로 변했습니다. 정말 너무 두렵습니다.

시시각각으로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을 법에 대조하고 바르지 못한 것은 즉시 부정하고 수시로 자신을 수련할 때가 되었습니다. 수련인은 사람 마음이 없을 수는 없지만 매 일념이 나올 때 옳지 않은 것을 발견하면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간혹 우리는 그 일념이 옳지 않고 그것이 집착이라는 것을 알지만 배후에 하나의 그것을 포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 집착심이 있습니다. 자신의 취향에 대해 ‘원치 않아’ 할 때 버려야 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의념(意念) 중에서 자신의 사상 중의 좋지 못한 사상염두(思想念頭)와 업력, 좋지 못한 관념 혹은 외래(外來)의 교란을 깨끗이 제거한다, 이렇게 그것들이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것들은 바로 깨끗이 제거될 것이며 5분이면 효력이 있다.”[3]

최근 자신의 집착, 관념, 사람 마음을 발정념하기 5분 전에 제거했고, 효과는 역시 매우 뚜렷했습니다. 당 문화에 대해 저는 반드시 이 방법을 채택해서 되도록 빨리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법공부를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에, 내가 공을 전하고 설법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장래에 당신은 알게 될 텐데, 당신은 이 시간이 매우 보람찼다고 여길 것이다.”[4]

이전에는 줄곧 사부님 설법반에 수련생이 직접 참가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늘 문득 사실은 사부님을 만나지 못한 대법제자도 포함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직접 구도하시는데 이것은 우리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니겠습니까? 이보다 더 행운인 기회가 있겠습니까?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에 우리는 형용할 언어가 없고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우리의 일념이 표준에 도달하면 그 난은 자연스레 해결되었습니다. 이 배후에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업을 소멸하셨겠습니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만고의 기연은 한 번 놓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개인의 얕은 깨달음이며 부당한 곳은 수련생분들이 자비로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9-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착실한 수련’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도항-2001년 캐나다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6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27/3892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