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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버려야 할 집착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과 만났을 때 많은 수련생이 빨리 끝나길(정법이 끝나고 박해가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박해가 하루빨리 끝나고 수련원만하길 바라는데 어떤 수련생은 비교적 직설적으로, 또 어떤 수련생은 완곡한 표현으로 드러낸다. 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박해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어 많은 수련생이 큰 압력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법수련생도 사람이기 때문에 수련 중에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런 마음이 나오기 마련이다. 오래전에 한 수련생이 한 말이 생각난다. “왜 아직도 끝나지 않아요? 박해가 언제 끝날까요? 한 해 또 한 해 기다리고 해마다 끝나길 기다려 지금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네요.” 현재 많은 수련생에게서 이런 집착심이 아주 강렬하게 표현되고 있다. 자기도 모르게 그런 집착심이 너무 강해서 스스로 자신의 그런 집착심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강렬한 마음이 결국 우리의 억울한 누명을 속인이 벗겨줄 것을 갈망하는 것이 되는데 사람마음으로 실망하고 낙담하게 되는 것이다. 끝나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우리가 속인 형세와 외부 변화에 이끌려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년간 무슨 형세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대법수련생 중에 사람마음이 파동을 쳤으므로 잇따라 큰 손실을 초래해 비통한 교훈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완전히 끝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얼마 후 또 새로운 형세 변화가 오게 되면 다시 마음에 이끌려 지난번의 잘못으로 인한 교훈을 잊어버리고 다시 잘못을 답습하게 되어 사악에게 틈을 타게 해서 파괴하게 만든다.

왜 많은 대법수련생이 이 문제에서 반복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며 교훈을 얻을 수 없는 것일까요?

한 방면은 수련이 잘된 부분은 격리되는 요소가 있고, 또 다른 한 방면은 끝나길 바라는 강한 집착심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잘 넘기는 다른 사람처럼 하루빨리 집착심을 제거해야 한다.

나도 한때 ‘이제는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아주 강해서 몇 년간 시달림을 받은 적이 있다. 심한 실망과 낙담으로 마음이 소침해져 수련이 해이해져서 심할 때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도 동요되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그런 마음을 발견하고 담담히 내려놓았다. 당시 2개월 전 지역에 엄중한 박해가 발생해 손실이 매우 컸는데 표면적으로 느슨하던 환경이 단번에 험악해졌다. 우리는 박해의 압력이 가해지고 나서야 안으로 찾았다. 박해가 발생한 것은 우리가 느슨하고 해이해져 각 방면에서 무감각해져, 다른 공간의 많은 악이 집결해 박해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세인을 조종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 가담하게 한 것이다. 박해는 사람이 사람을 박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의 악이 한 짓이다.

이 점을 인식한 후 많은 수련생이 발정념의 중요성을 알았다. 광범위하게 진상을 알리며 동시에 발정념을 강화했다. 대법제자가 진념(真念)을 움직일 때 그 정념은 위력이 비할 바 없이 강력하다. 많은 사악을 제거한 후 수련생들은 다른 공간의 사악의 압력이 많이 줄어든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수련의 엄숙성을 깨달았고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되며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나는 그 상황을 겪으면서 속히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 그런 것은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가 아니다. 대법수련생이 장기간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해 다른 공간의 사악이 틈을 탄 것임을 절실하게 체험한 것이다. 박해의 종결은 구해서 오는 것이 아니고 기다려서 오는 것도 아니다. 우리 대법수련생은 진정으로 심성을 제고해 정진하는 속에서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해야 한다. 우리가 발정념을 중시해 다른 공간의 사악이 철저히 제거되고 소멸되면 배후의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보충해주지 못하게 함으로 박해는 자연스럽게 끝날 것이다.

나는 그 과정에서 어떤 속인도 박해를 끝낼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속인은 다른 공간의 사악 앞에서 연약하고 무기력하여 수시로 각종 외래 생명과 요소에 통제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세상에서 아무리 큰 권력과 세력이 있고 능력이 있든지, 아무리 좋거나 나쁘든지를 막론하고 속인은 자기 운명을 주재할 수 없다.

사실 인간 세상의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아무 능력이 없는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선과 악 앞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선을 선택하면 그는 신불(神佛)의 보호와 도움을 받을 것이다. 좋은 일과 착한 일을 하면 본인에게 신우주의 같지 않은 대법제자 세계에 자기 위치를 놓을 수 있지만, 악을 선택하면 그는 악의 통제를 받게 된다. 나쁜 짓과 악한 짓을 하면 그는 정법에서 도태되어 무생지문(無生之門)의 가장 두렵고 비참한 말로를 보게 될 것이다.

정법시기에 우리와 중생의 관계는 ㅡ 가련한 중생은 우리 대법수련생이 잘 수련하며 사악을 전부 제거하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악의 교란과 통제가 없을 때 스스로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명석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거꾸로 박해가 끝나는 희망을 그런 가엾은 중생에게 걸게 되는 것이다. 사람마음으로 끝나길 바라고, 끝나길 기다리고, 끝나길 기대한다. 누가 사람의 표현이 좀 좋으면 그 사람을 숭배하고 의지하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사람의 표현이 나쁘고 반면으로 나아가면 실망과 원망을 하며 일일이 비난한다. 우리의 이런 이지적이지 못한 언행은 중생의 슬픔이고 우리의 치욕이다. 그것은 정말 우리 정법시기 대법수련생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나는 인식했다. 정법에서 사부님께서 손을 흔들기만 하면 악은 순식간에 전부 제거되고 정법 형세가 오기만 하면 모든 악의 표현은 즉시 정지된다. 박해를 오늘 끝나게 하려면 절대 내일까지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지금 그렇게 하실 수 없다. 구원받을 중생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고, 많은 대법수련생이 정법노정 위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장 끝난다면 무수한 중생이 영원히 생명과 미래를 잃게 될 것이고,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대법수련생은 가야할 제 위치로 갈 수 없는 것이다.

정법이 끝나기를 강하게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제 위치로 갈 수 없다는 문제뿐만이 아니다.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빨리 원만하려는 것이 바로 강한 집착심인 것이다. 이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사악이 틈을 타 수련에 고난과 방해를 주게 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당신의 매 한 가지 집착은 모두 당신을 수련 성취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매 한 가지 집착은 모두 당신의 신체에 상황이 나타나게 할 수도 있으며, 대법에 대한 견정한 신념에 동요를 조성할 수도 있다.”[1]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 수련자가 원만하려고 하는 소원이 있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사상을 법에다 놓고 끊임없이 수련하는 중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원만의 표준에 도달할 것이다. 특히 고통 속에서 견뎌내지 못하는 일부 수련생들이 가장 쉽게 인간 세상을 떠나 빨리 원만하려는 마음이 일어 이로 인해 사악이 틈을 타게 된다.”[2]

나는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 때 각종 심리 상태를 자세히 회고하며 안으로 찾아보았다. 끝나기를 바라고 원만을 바라는 것은 한 가지 표현만이 아니다. 그 배후에 많은 다른 마음이 숨어 있었다. 가장 뚜렷한 큰 집착은 바로 ‘사((私)’이다. 중생의 안위와 존망을 고려하지 않고 사부님의 정법 안배를 고려하지 않고 안일함을 구하는 작용 하에서 인간 세상 속에서 자신의 일시적인 고통과 압력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심지어 ‘사부님께서 왜 아직 끝내지 않는가?’하는 원망하는 마음과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질투심…… 생각해보면 그런 마음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이런 마음을 버리지 않고 원만할 수 있겠는가? 이 ‘사’는 하나의 굴레처럼 우리 본성의 진아(真我)를 단단히 묶어 무사의 신우주로 가지 못하게 하고, 우리가 본질상에서 변화하고 승화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아는가? 마음속으로 원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원만에 이르지 못한다. 더군다나 원만에 이르고 싶어 하면서 아직도 정(情), 재물(財) 등에 집착하는 사람은 더욱 원만에 이를 수 없다. 구하고자 함이 없어야만 자연히 얻는다! 대법제자들이 오늘날 한 일체는 바로 역사가 당신들에게 부여한 책임으로서 당신은 당당하게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잘하도록 하라. 무엇이든 모두 그 속에 있다.(박수) 당신이 늘 원만에 이르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원만에 이를 수 없다.”[3]

지금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언제 끝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정념으로 그런 사람마음을 닦아버릴 것인가이다. 우리는 매일 법 공부를 마음에 와 닿게 했는가?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대법을 우리는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외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할 것인가? 우리가 어떻게 정념을 잘 내보내 그런 박해하고 있는 악을 제거할 것인가?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요행이 없다. 법에서 정진하지 않고 평소에 각종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고 착실하게 일사일념을 중시하여 닦지 않고 그럭저럭한다면 마지막까지 갈 수 없다. 정법이 막바지에 이르렀으므로 사악도 다그치고 있다. 대법수련생이 수련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수련의 개념도 없고, 명리정과 각종 욕망의 교란을 받아 흐리멍덩하고, 강렬한 자아를 내려놓지 못한다면, 사악은 그런 수련생을 끌어내리려 할 것이다. 그것들은 자신의 눈에 차지 않는 수련생을 도태시키려고 한다. 그런 수련생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반드시 깨어나 분발해서 수련생의 고언을 듣기 바란다. “사부님께서 거대한 대가를 치르시며 우리를 위해 바꿔 오신 것이니, 수련의 기연이 어긋나지 않고, 당신 세계의 중생이 당신에게 건 간절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인간 세상에서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는 것은 수련 과정에서 일부 고난과 압력을 겪는 것인데 미래에서 보면 정말 한순간이다. 그러나 얻는 것은 영원한 행복과 아름다움이다. 우리의 아주 적은 노력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감당하시고 하사하신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오늘 인간 세상에서 수련하고 사부님의 정법을 위해 일부 고난과 고생을 겪는 것을 전 우주의 신들은 다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 나아가 영원히 다른 생명에게는 이런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자기 책임을 인식하고 우리가 해야 할 모든 것을 잘 해야 한다. 우리가 시간이 부족함을 느끼면 하루가 1년 같지 않을 것이고,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 없을 것이며 끝나지 않은 하루가 모두 소중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현재 아직 결속되지 않았으니, 그럼 당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하라!”[4]

모든 집착심이 폭로되어 나오면(자기가 의식한 것이나 다른 사람이 지적한 것) 바로 그것을 제거하는 전제로 좋은 기회다. 사실 끝나길 바라는 마음과 그 뒤에 숨어 있는 모든 마음은 모두 우리의 진정한 자신이 아니다. 그것을 분별하고 정념으로 대하기만 하면 그것은 아주 빨리 제거된다. 그것을 진정으로 제거하면 당신은 속인사회 형세 변화에 쉽게 이끌리지 않고 자기 수련 상태에 아주 큰 비약과 승화가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개인 인식을 수련생에게 참고로 제공한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유럽법회에 참가한 대법제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원문발표: 2019년 9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9/18/3934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