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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실증하는 것을 일과 생활 속에 녹아들게 했다

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올해 51세로 본래 중형 국영기업에 근무하며 화학실험에 종사했으며, 일이 수월하여 대부분 시간은 동료들과 차를 마시고 한담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동료들에게 여러 번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생명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웃었습니다. 그때 은연중에 저는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더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1999년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했고, ‘전법륜(轉法輪)’을 다 읽고 나서 생명의 진정한 의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1. 대법을 얻어 새 생명을 얻다

1995년 아이를 출산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감기 감염으로 인해 만성 비염, 축농증, 비용종이 생겼습니다. 코로 숨을 쉬지 못하여 입으로 숨을 쉴 수밖에 없어 아침에 일어나면 입이 말라 일어나자마자 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비록 큰 병은 아니었지만, 몹시 애를 먹여 고달팠고, 오히려 매우 고질적이어서 중의와 양의도 치료하지 못했고, 장기간 약을 먹어서 위가 상하여 몸이 점점 야위어 갔습니다.

저를 아껴주셨던 시어머니는(그때 고향에 있어 시어머니와 가까이에 있었음.) 여러모로 민간요법을 알아보고 신에게 빌고 부처님께 빌었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습니다. 1999년 정월 15일 시어머니는 흥분하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웃집에 매일 연공하러 오는 사람이 있는데 파룬궁(法輪功)이라고 한단다. 너의 왕 할머니는 20여 년 반신불수였는데 연마한 지 며칠 안 되어 좋아져서는 지팡이도 버리고 혼자 장에도 가신다! 내가 애를 봐줄 테니 너도 가서 배우거라.”

이렇게 시어머니의 재촉에 그날 밤 저녁에 저는 연공장에 갔습니다. 막 연마를 하자마자 매우 편안했습니다. 일주일 연마한 후 저는 저에게 두려움을 주었던 비용종이 차츰 줄어든 것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입술이 마르지 않은 것 같았고, 목이 마르지도 않았으며 두 콧구멍이 통했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시어머니에게 알렸고, 시어머니는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하셨습니다. 남편은 알고 나서 마음속으로 기뻐했으며, 적극적으로 저의 연공을 지지해 주었고, 뒤따라 저에게 ‘전법륜’을 청하여 진정으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5월1일’ 그날 저는 점심에 전기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도로를 횡단할 때 앞에서 노란색 승용차 한 대가 달려오고 있어서 저는 그 차가 먼저 지나가게 하려고 멈춰 섰습니다. 그런데 그 차가 속도를 줄였고, 저는 기사가 저를 먼저 지나가게 하려는 것 같아 속도를 내어 단번에 달렸고, 뜻밖에 그 차도 매우 빠르게 달려왔습니다. 당시 머릿속은 하얘졌고 제가 깨어났을 때 저는 도로변에 가로누워 있었으며, 머리는 도로에 있었습니다. 주위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누군가 외쳤습니다. “깨어났어요. 빨리 병원으로 보내요.” 어떤 사람이 저를 부축하여 일으켜주어 저는 도로가에 앉았는데, 머리가 심하게 어지러웠고 들어 올릴 수가 없었지만 저는 주위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들 일 보러 가세요.” 제가 깨어난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점차 흩어졌습니다. 약 5, 6분 지났을 때 저는 한 낮은 목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병원에 가서 검사해봅시다.” 그제야 저는 젊은 기사가 아직 가지 않은 것을 발견했고, 그가 불안해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사부님께서 저에 관여하고 계시니 아무 일 없을 것입니다. 가보세요.” 기사는 제 말을 듣고 차를 몰고 떠났습니다. 잠시 후 저는 부딪혀서 형편없는 전기자전거를 타고 머리가 멍해져 마치 구름과 안개를 타고 나는 듯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야 정수리에 주먹만 한 큰 혹이 난 것을 발견했지만 저는 상관하지 않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한잠 잤습니다. 한잠 자고 깨어난 후 누런 물을, 가래 통에 반쯤 토하니 머리가 어지럽지 않았고, 그 혹도 기적처럼 사라졌습니다. 이튿날 남편이 전기자전거를 고쳐주었고, 사흘째 되는 날 출근했습니다. 가족은 대법의 신기함을 보았습니다.

일이 있고 난 뒤 저도 불가사의하다고 여겼고, 처음부터 끝까지 저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으며, 사부님께서 바로 제 곁에서 저를 보호해 주시는 것 같아 마음이 유달리 든든했으며, 다시 살아난 기쁨을 느꼈습니다.

2.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아 난관을 넘다

그해 7월, 제가 불법(佛法) 수련의 초범성과 행복을 처음 느꼈을 때 장쩌민을 우두머리로 하여 중국공산당 악당은 억에 달하는 파룬궁의 수련생을 겨냥하여 하늘과 땅을 뒤덮을 듯이 잔혹하게 박해했습니다. 신문, 텔레비전에서 끊임없이 파룬궁을 공격했고 직장, 정부 지도자는 번갈아 가며 저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핍박하여 그 상황은 정말 저를 어리벙벙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정말 모두 연마할 수 없다고 여겨 얼떨떨하게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에 사인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병을 제거하는 데 특효가 있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 공법을 어째서 연마하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은 답답해져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했습니다. 후에 우리 집은 읍내로 이사와 예전의 수련생을 만나지 못했고, 대법의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매일 무감각하게 출근하고, 집안일을 돌봤고, 때로는 함께 모여 떠들썩하게 포커를 하며 먹고 마시고 즐기며 놀았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마음이 허전했고, 혼이 나간 듯했으며, 밤에 꿈을 꾸면 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깨어난 후 천장을 바라보면 마음에 알 수 없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생명에 희망이 없는 그런 느낌은 지금 생각해도 섬뜩합니다.

이렇게 희망 없이 무지몽매하게 4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사부님께서는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2003년 겨울의 어느 날, 저는 거리에서 옛 수련생을 만났고, 그녀는 저를 만나자마자 물었습니다. “사부님의 신경문을 받으셨습니까?” 저는 멍해졌습니다. “사부님의 신경문이 있다고요? 당신들은 아직 수련하나요?” 수련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비로소 사부님께서 줄곧 억만 제자를 거느리고 거대한 난을 무릅쓰고 대법으로 반(反)박해 하며, 중생을 구하여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고, 수련생과 연락하지 않고 몇 년을 헛되이 보낸 것을 후회했습니다. 사부님의 서명이 있는 경문을 받았을 때 저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고,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도록 울었습니다……

이때부터 정상적인 업무나 집을 돌보는 것 외에 저는 몸과 마음을 다해 대법 수련, 진상 알리기, 중생을 구하는 급류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2004년 제가 사람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릴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이 모함하여 시 610, 현지 파출소 경찰은 저를 ‘세뇌반’에 보냈습니다. 매일 저에게 대법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말로 40여 일 동안 무차별 폭격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직장에서는 저의 공직을 해고했습니다. 40일 동안 보지 못한 남편은 이전의 나에 관한 관심이 사라지고 침울한 얼굴로 독한 말을 한마디씩 던졌습니다. “당신 계속 연마하면 난 당신 다리를 부러뜨려 놓을 거야.”

공직에서 해고된 것은 저에게는 뜻밖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직장은 국영기업이기에 반드시 공산 악당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소와 태도가 달라진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세뇌반에 갇혔을 때 남편이 저를 보러 여러 번 왔지만, 저를 만나보기 전에 ‘교육지도’식의 세뇌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거짓말은 나의 신념을 움직이지 못했지만, 남편을 철저하게 세뇌했습니다. 남편은 말했습니다. “매번 그곳에 당신을 보러 갈 때마다 자신의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고 당신을 때릴까 봐 무서워 감히 당신을 보러 가지 못했어.” 알고 보니 그랬습니다. 세뇌반이 저를 사랑하는 사람을 저를 미워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남편의 철저한 감시 때문에 집에서는 대법책을 찾을 수 없었고, 제가 법공부하고 연공 할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고향의 산에 땅을 임대하고 양계장을 지어 시부모님에게 돌보게 했습니다. 남편은 저를 24시간 감시하기 위해 매일 저를 데리고 고향의 양계장에 가서 일했습니다. 한번은 시어머니가 울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아무리 좋아도 우리 연마하지 말자. 네가 나가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나와 네 아버지 두 늙은이 목숨이 모두 다할 것 같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네가 갇힌 그 40일 동안 너의 아버지는 나에게 40일 동안 내내 욕을 하셨다. 당시 마을에는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왔는데, 너의 아버지는 화를 못 내고 집에 와서 나한테 화풀이했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욕을 했다. 이유는 내가 너에게 연공을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저는 시부모님이 저로 인해 이렇게 큰 압력을 감당하셨기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시댁에 가기만 하면 닭에게 사료를 주고, 닭장을 청소하고, 사료를 만들고, 농사를 짓고, 가을걷이하고, 밥을 짓는 등 무슨 일이든 다 했습니다. 아무리 고되고 힘들더라도 시아버지가 어떻게 불쾌한 표정을 짓든 남편이 어떻게 화를 내도 저는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닭장을 확장하여 산 아래에서 산 위로 벽돌을 날라야 했고, 멜대로 어깨에 메고 날라야 했습니다. 첫날은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이튿날 이미 벌겋게 부은 어깨에 멜대를 메기만 하면 참을 수 없이 아팠고, 어깨에서 흐른 피가 옷에 붙어 옷을 벗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저의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1] 갑자기 몸의 피로와 마음의 원망이 연기나 구름처럼 흩어지듯 사라졌습니다.

그때 저는 법공부를 가장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남편 눈 밑에 대법책은 커녕 종이 한 장도 둘 수 없었습니다. 저는 기회를 찾아 수련생 집에 가서 사부님의 단편 경문을 베끼어 주머니에 넣고 시간만 나면 꺼내서 몇 마디 외웠습니다. 후에 수련생이 저에게 ‘전법륜’ 한 권을 주었습니다. 저는 보물을 얻은 듯했고, 정말 내려놓기 아쉬워 집으로 가지고 와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집을 나서 일을 하러 갔고, 모처럼 얻기 어려운 여가에 저는 ‘전법륜’을 꺼내 정신을 집중하고 보았습니다. 제가 넋을 놓고 볼 때 남편이 갑자기 돌아왔고, 그는 제 손에 책이 있는 것을 보고 미친 듯이 달려들어 제 손에 있는 책을 빼앗으려 했고, 저는 본능적으로 대법책을 품에 꼭 안았습니다. 남편은 꼬집고 때렸지만 저는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저를 잡아서 바닥에 팽개치고 허리에서 벨트를 빼내어 저의 몸, 얼굴, 머리를 내리치며 때려 당시 머릿속이 ‘윙윙’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제가 바닥에 엎드린 순간 뜨거운 것이 얼굴에서 흘러내렸고, 잠깐 사이에 바닥에는 엄청난 피가 흘렀으며, 남편이 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인명 사고가 났어요, 인명 사고가 났어요.” 이때 저는 정신이 들었고, 기어서 일어나 평온하게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 일 없어요. 당신이 휴지를 가져다주세요.” 남편이 휴지를 가져다주어 저는 휴지 한 무더기 뜯어 머리에 난 상처에 눌렀더니 잠시 후 피가 멎었습니다. 남편은 멍하니 저를 보더니 갑자기 제정신이 든 듯 연신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책을 가져다줄게. 내가 당신에게 책을 가져다줄게.” 잠시 후 그는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모르는 전혀 손상이 없는 대법책 한 더미를 안고 와서 후회하는 어조로 말했습니다. “이 책은 당신이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숨겨둔 거야. 당신 봐! 난 당신을 상관하지 않을 거야!”

3. 시아버님 얼굴의 얼음과 서리가 녹다

저는 일자리를 찾은 후에도 시댁에 자주 들렀고, 두 분에게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을 사다 드렸습니다. 설이나 명절이면 아이를 데리고 큰 보따리 작은 보따리를 가지고 시부모님이 좋아하는 물품을 사서 방문하여 함께 보냈습니다. 서서히 시아버지 얼굴에 얼음과 서리가 녹고,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남편은 형제 셋으로 맏이입니다. 둘째 시동생의 아들이 진에서 중학교에 다녀 우리 집에 살면서 딸과 함께 학교에 다녔습니다. 이 기간에 저는 조카와 딸을 똑같이 대했고, 생활에서 보살폈을 뿐만 아니라 공부에서도 저의 능력을 다하여 조카를 데리고 공부를 하고 영어 등을 배우게 했습니다. 더 많게는 아이에게 어떻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처세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지금 조카와 저의 관계는 친밀하고 조화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2014년 말,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시어머니는 너무 상심한 나머지 위 혈관이 파열되어 출혈이 심했습니다. 지방 병원은 받지 않아서, 성 소재지 큰 병원으로 갔고, 정황이 위급하여 의사는 즉시 수술할 것을 권하면서, 가족에게 수술비를 준비하라고 하였는데 금액이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의 아픔을 참으며 빚진 돈을 갚으려던 만여 위안(한화 약 168만 원)을 병원에 보냈습니다. 이틀 후 의사는 순조롭게 시어머니를 수술했습니다.

제가 가족에게 들인 노력을 시부모님은 마음속에 기억하고 계십니다. 사람 앞에서든 뒤에서든 손녀, 손자에 대하여 희색이 만면하여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셨으며, 곁들여 저를 이야기하시며, 항상 손자(나의 조카)의 말을 빌려 하셨습니다. “이 집에서는 그의 큰엄마가 제일 좋다.” 한번은 올케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삼촌(시어머니 남동생은 본 촌 서기임)이 누나의 이 며느리는 정말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다고 말했답니다.”

시어머니에게는 딸이 없어 저를 딸로 생각하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집에 돌아가 시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 시어머니는 두 동서를 나무랐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의 말을 저지하고 말했습니다. “어머님, 그들을 나무라지 마세요. 동서는 잘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런 거예요!” 시어머니는 말했습니다. “너는 어찌 잘할 수 있냐?” 저는 웃었습니다. “저는 동서들과 다릅니다. 저에게는 위대한 사부님이 계시잖아요! 제가 잘 하지 못하면 사부님께 큰 망신을 드리잖아요!” 시어머니는 듣고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그래, 맞다.”

예전에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며느리가 있어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웃, 친척 친구들이 시부모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효도하는 며느리가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4. 어머니, 여동생이 법을 얻어 수련하다

저는 남매가 다섯이며 제가 맏이로 제가 20살 때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동생들 모두 학교에 다녀 저는 집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자리를 잃고 양계장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육체노동을 했습니다. 동생들은 제가 박해받는 것이 마음 아프고 걱정되어 갖은 방법을 다 하여 저의 수련을 저지했습니다. 특히 고등교육을 받은 작은 남동생과 여동생은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그런 이론으로 저를 바꾸게 하려고 거듭 시도했습니다.

어느 음력 정월 초이틀에 저와 남편과 아이는 친정에 갔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어린 여동생은 저를 상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누구 집에서 대법 자료를 받았는데 감히 보지 못하고 다 태웠다는 등의 말을 하면서 저에게 했습니다. “언니는 이런 일을 하지 마. 지금 사람들은 모두 돈 벌기 바쁜데 누가 본다고!” 뒤이어 가족 열 몇 명이 한마디씩 하며 단번에 저를 겨냥해 말하여 저는 논쟁하지 않고 마지막에 말했습니다. “내가 이 2년 동안의 고생과 받은 고통은 내 평생 한 고생보다 많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없어도 되지만 대법은 없어서는 안 돼!” 그들은 저의 태도가 단호한 것을 보고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법을 얻기 전에 어머니는 저의 완고한 비염이 비암으로 악화할까 두려워 잠을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연공한 후 몸의 큰 변화를 보고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2004년 남동생과 여동생이 저를 한 번씩 ‘비판’ 할 때 어머니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후에 저에게 “누가 반대해도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05년 겨울 20여 년의 류머티즘 심장병이 있던 어머니는 조용히 저를 따라 연공을 하셨습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어머니를 20여 년 괴롭혔던 심장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검보라색의 얼굴이 점차 밝아졌고, 5층을 올라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으며, 헐떡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약을 다 버리고 격동되어 삼촌에게 말했습니다. “내 이 평생에 이렇게 통쾌하게 숨을 쉬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지금까지 어머니는 약 한 알 먹지 않았으며, 지금은 70이 넘으셨는데 몸이 건강하고 얼굴색이 불그레합니다. 가족과 친척, 친구 수십 명이 대법이 어머니 몸에 나타난 기적을 보고 모두 삼퇴를 했고, 네 명이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2010년 4차례 수술을 하고 교통사고를 한 번 당한 셋째 여동생은 시댁 식구들의 강렬한 반대에도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온 얼굴의 기미가 모두 없어지고 허약하여 아이도 돌보지 못하던 몸이 예전의 활기를 회복했습니다. 지금은 스스로 작은 회사를 경영하고 있으며, 월수입이 1만 위안(약 170만 원)입니다. 동생의 시어머니가 돈 낭비만 한다고 말하던 며느리가 집안의 주된 일꾼이 됐습니다. 여동생 가족은 여동생의 변화를 보고 강렬하게 반대하던 데에서 묵묵히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다년간의 무신론 주입 세뇌를 받은 작은 남동생, 작은 여동생과 올케는 자신의 육친 몸에 발생한 기적을 직접 보고, 진실 앞에서 그들의 인생관, 세계관이 다 변했습니다.

작년 여름방학 동안, 어머니와 올케는 조카를 데리고 외지에서 우리 집에 왔습니다. 어느 날 두 여동생 두 가족이 함께 모여 어른, 아이는 십여 명으로 떠들썩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저는 어머니와 셋째 여동생과 침실에서 눈을 감고 가부좌하고 연공을 했습니다. 잠시 후 침실의 문이 열리더니 재잘거리며 적지 않은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제가 눈을 떴을 때 신기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침대에 사람이 가득 앉아 있었는데 어른과 아이 모두 9명이었습니다. 제일 어린 외조카가 침대 옆에 서서 웃으며 보고 있었습니다. 침대 위에 있는 사람은 모두 결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고 우리의 모습을 흉내 내어 가부좌했습니다. 어린 조카딸의 입이 중얼거리고 있어 저는 물었습니다. “너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니?” 조카딸은 또랑또랑하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5. 나는 작은 술 공장에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제가 지금 일하는 직장은 자영업을 하는 작은 술 공장입니다. 저의 일은 화학실험입니다. 2007년 제가 처음 왔을 때 사장은 공장의 정황을 설명했습니다. 기업이 창설된 지 10년 되었지만, 이윤이 난 적이 없고, 해마다 손해를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집안 재산을 모두 손해 보았을 뿐만 아니라 백만 위안(약 1억 7천만 원)의 빚을 졌다고 말했습니다. 창고에는 과거 쌓아두었던 상품이 가득 쌓여있었습니다. 두 아들은 공장에 희망이 없는 것을 보고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가 사장이 혼자서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사장은 기업의 불경기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의 품질로 공장에서 두 사람을 시 기술감독국에 보내 교육을 받게 했지만, 돈을 적지 않게 들이고도 교육을 받고 돌아온 후 아무 결과가 없었어요. 화학실험실 설비는 다 갖추었지만, 장식품에 불과해요.” 그는 제가 그를 도와주길 바랐습니다. 저는 사장의 태도가 성실하게 보여 승낙했습니다.

저는 출근하자마자 화학실험실을 정리하며 설비를 테스트하고, 시약을 조제하고, 화학실험 기록 등을 만들었습니다. 일주일 후에 정결하고 깨끗하게 실용적인 화학실험실로 정리했고, 사장은 기뻐하며 줄곧 웃었습니다.

화학실험실은 정상이었고, 이것은 곧 상품의 품질 보장을 의미합니다. 점차 기업에 이익이 났고, 고정적인 고객이 생겼으며, 단골손님도 많아져 5, 6년 후에 사장은 모든 빚을 갚았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기업에 희망이 있는 것을 보고 모두 공장에 돌아와 관리에 참여했습니다.

처음에 사장의 가족(사장을 포함)은 텔레비전의 거짓말에 속아 대법에 대한 오해가 깊었습니다. 특히 사모님이 저를 보는 눈빛이 이상했고, 마치 괴물을 보기라도 한 듯했습니다. 한번은 직접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파룬궁을 선전하지 마세요!”

사부님께서는 이런 예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직원들이 당신들의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면서 상사가 무슨 일을 맡기든지 가린 적이 없고, 이익 앞에서도 다투지 않습니다.”[2] 저는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부지런하게 일했습니다. 사장이 무슨 일을 시키든 열심히 완성했습니다. 저는 혼자서 상품 검사를 책임졌을 뿐만 아니라 전체 기업의 품질도 담당했으며 때로는 아이를 돌보고 밥 짓는 임무도 겸직했습니다.

2014년 집에 일이 있어 저는 사장님에게 사람을 찾으라고 하고 사직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장님은 말했습니다. “집에서 얼마든지 일을 보세요. 나는 사람을 구하지 않을 겁니다. 이 자리는 당신에게 남겨둘 것입니다. 당신이 출근하지 않아도 나는 예전처럼 월급을 주겠어요!” 제가 집에 있는 반년 동안 사장님은 그의 며느리를 보내어 한 번도 빠짐 없이 저에게 봉급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사양했지만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사장님과 그의 가족들은 모두 진상을 알고 삼퇴를 했습니다.

수련을 포기하지 않아 무슨 ‘민감한 날’이 되면 저는 현지 경찰의 교란을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출근하지 않았는데 경찰 세 명이 공장에 가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한 젊은 경찰이 사장에게 질문했습니다. “사장님은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아십니까?” 사장님은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파룬궁을 연마하든 하지 않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기술이 좋고 인품이 좋기에 나는 그녀를 고용할 것입니다!” 경찰은 할 말이 없었고 잠시 후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제가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경찰차 한 대가 직접 화학실험실 문 앞까지 온 후 세 명의 경찰이 내려서 한 명은 비디오카메라를 메고 지역 경찰은 종이 한 장을 들고 화학실험실에 뛰어 들어와 지역 경찰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업무에 협조하여 등록하기 바랍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뭘 등록하라는 겁니까? 왜 나를 촬영합니까?” 다른 한 사람이 저에게 외쳤습니다. “아주머니에게 협조하라고 하면 아주머니는 협조하시오!” 이때 사장님의 두 아들이 작업장에서 달려와 저에게 외친 경찰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녀를 겁주지 마십시오!” 지역 경찰은 급히 와서 말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위에서 압력을 가해서 협조하여 표를 작성해야 합니다.” 사장님의 큰아들이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내가 작성하겠습니다.” 그는 지역 경찰의 손에서 종이를 받아 아무렇게나 주소, 전화번호 하나를 적어 지역 경찰에게 주고 그들을 보냈습니다. 경찰이 간 후 사장의 큰아들은 제가 두려워하는 줄 알고 저를 위로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나와 동생이 그들이 온 것을 보자마자 바로 왔어요. 우리가 여기에 있으면 그들은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사장님과 그의 아들의 대법제자에 대한 정의로운 행동은 그들에게 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최근 들어 불경기여서 사장님의 현지 일부 동종 업계 자영업 기업들은 잇달아 부도나고 문을 닫았지만, 우리 이 작은 공장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고, 고객을 안정시켜 수익이 안정적으로 상승했습니다.

20년의 비바람을 지나오면서 대법이 저의 생명을 육성했고, 저의 생명은 대법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저는 변함없이 마지막 길을 잘 걸으며 진상을 널리 알려 더 많은 미혹(迷) 중의 사람을 일깨워 하루빨리 악에서 벗어나 불광(佛光)의 혜택을 입게 할 것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경지’[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8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26/3919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