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수구는 모든 수련생에게 해당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우리 지역에 대대적인 박해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 표면 원인은 다양했다. 일부 수련생은 강한 정념이 있다는 구실을 대며 장기간 전화, 위챗으로 연계를 취했고 심지어 핸드폰을 지니고 중요 수련생 집 혹은 자료점에 드나들었다. 자료점을 도처에 꽃 피우지 못해 장기적으로 큰 자료점 형식으로 집중적으로 여러 가지 유형의 자료를 대량으로 제공했다. 그리하여 한 면으로는 자료점의 수련생이 장기간 피동적으로 일 자체에 편중했고, 다른 한 면으로는 기타 수련생에게 의지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이 여전히 보편적으로 존재했다. 단선 연락을 취하는 양호한 방식을 형성하지 않아 수련생들이 중요 자료점과 중요 협조인 수련생 집에 비교적 빈번하게 드나들었다.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존재해 자료점과 법 공부 장소를 분리하지 않는 등등이다.

박해가 나타난 건 어느 개별적인 수련생의 문제뿐만이 아니며 수련생마다 마땅히 안으로 자신에게서 이번 박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찾아봐야 한다. 적어도 자신에게 이런 정도로 자문해봐야 한다. 상술한 문제가 존재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어찌하여 우리가 이런 상태가 침묵 속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하게 했을까? 어떤 마음이 친밀하여 간격이 없어야 할 수련생들이 소통마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도록 가로막고 있었을까? 이번의 교훈은 정말로 침통했다.

박해가 발생한 후 다른 하나의 오랫동안 감춰진 문제가 다시 매우 두드러지게 폭로됐다. 그건 바로 수련생 사이에 수구(修口)하지 않는 현상이었다.

최근 비교적 두드러진 표현은 이러하다. 수련생 A는 ○○수련생이 박해당한 정황을 얻어들은 후 수련생 B에게 전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수련생 B는 다시 수련생 C에게 전하며 수련생 A가 말하길 ○○수련생이 어떠어떠한 정황이라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말라’는 수련생의 말에 대답한 수련생이 이 일을 일대일 방식으로 전해나갔다.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말라’에 대해 한 대답을 완전히 잊었고, 자신이 신용을 지키지 않은 것이 타인에게 신용을 잃는 것임을 의식하지 못했다.

동시에 많은 일은 늘 전해지면서 나중에는 원래와는 크게 달라졌다. 최근 수련생 사이에서 전해지는 일을 들은 후 놀람을 금치 못했고 괴로움에 자책했다. 왜냐하면 자신도 그 속에 있었다! 나는 자신의 그 당시 심태를 회상했다. 보기에는 수련생이 잘되기를 위한 것이나 매번 참지 못하고 혹은 무심하게 두어 마디 내뱉었는데 배후에는 ‘내가 안다!’라는 과시하는 마음이 숨어있었다. 나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정말로 알고 있는가?” 무엇을 일컬어 ‘알다(知道)’라고 하는가?

‘알다’라는 단어를 검색했더니 그중에 하나의 해석은 이러했다. 천지의 도(道)에 통달하고 사람과 일에 대한 이치를 깊이 깨닫다. 보다시피 ‘알다’는 일종 세상 모든 것을 통찰하여 자아 각성과 깨달음을 얻은 마음속으로부터의 투철함과 명백함이다. 그렇다면 내가 수련생 사이에서 주워들은 그런 말은, 진실의 여부를 아직 모르는 그런 말은 자아 각성에서 내원한 ‘알다’일까? 그렇지 않은 게 분명하다. 나는 깨달았다. 이후에 수련생이 다시 나에게 무엇을 알아보려 할 때 다른 수련생에게서 이미 들은 말일지라도 나는 명확하게 말할 것이다. “저는 모릅니다. 주워들은 말은 진실이 아닐 수 있으므로 전할 수 없으며 우리는 수구해야 합니다.”

우리 지역에서 ‘수구하지 않는’ 현상은 늘 수련생 사이에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에서 주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련생은 ○○항목을 한다, ○○수련생은 어떤 자원이 있다, ○○수련생 가족은 누구누구이다, 이 자료는 ○○이 가져온 것이다, ○○수련생이 말한 일이다. 함부로 중요 수련생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기타 수련생에게 알려주거나 혹은 수련생 집에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는 등등이다.

우리는 사악의 감시도청 수단이 도처에 설치된 것을 알고 있으며 보기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말을 대수롭지 않게 말했는데 객관적으로 볼 때 아마 안전에 관련된 요소가 포함됐을 수 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밍후이(明慧)를 하는 그 수련생들, 그들은 다른 사람과 같이 행사에 참여할 수 없고, 대법제자의 기타 행사에도 참여할 수 없다. 설사 참여한다 해도 자신이 무얼 하는지 말할 수 없는데, 필경은 비상시기이기 때문이다.”[1] 때문에 수련생이여, 우리가 능히 이런 화제에서 입이 무거울 수 있다면 하나는 정체에 대한 원용이고, 둘째는 수련생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며, 셋째는 타인에 대한 배려로써 우리 진수 대법제자마다 수련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어느 입장에서 보든지,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에서 우리는 사람마다 확실하게 말과 행동에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다지 수구하지 않는 수련생은 동시에 일에 대해 알아보기 좋아한다. 아울러 자신의 질문이 묻지 말아야 하며 하는 말이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의식하지 못하면서, “수련생의 일인데 묻지도 말고 관심 두지도 말아야 하나요?”하면서 오히려 처음 생각이 좋은 것이라고 여긴다. 어떤 일에 대해 알아봐야 하는지? 어떤 일은 말해야 하는지?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에게 다음의 것을 질문해야 할 것이다. 1. 출발점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2. 어떤 목적에 도달하려는 것인지, 어떤 객관적인 실제 효과를 이루려고 하는 것인지? 3. 도달해야 하는 목적과 이루게 될 객관적인 실제 효과가 현재 대법실증에 필요한 것인가? 매번 입을 열기 전에 만약 대법에 대해 수련생에 대해 책임지는 진수자(眞修者)의 입장에서 말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가늠하고, 장기적으로 닦아버리지 못한 개인적으로 후천적으로 형성된 습관과 취향으로 알아보고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히 질문하고 말해야 하는 것이 불필요하며 심지어는 아예 그런 생각마저 없어야 하는 것을 분명하게 가려낼 수 있다. 해야 하는 말에서도 좋기는 방법과 방식을 강구할 것을 건의한다. 사전에 자신이 하는 말의 효과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

수련생들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일은 ‘나’ 이곳에서 전해져나갔으나 수련생들의 심성이 같지 않아 어떤 것으로 전해질지 예상할 수 없으며 통제할 수도 없다. 나중에는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전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부동한 사람에게 전해지면서 그곳에서 서로 다른 효과에 도달할 것이다. 특히 박해당한 이런 유형의 일에 있어서 만약 수련생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사람을 구하는 항목의 진행을 심하게 가로막을 수 있다.

이번의 박해가 나타난 후 많은 수련생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인해 이 일이 전해지면서 해야 하는 항목을 잠시 손에서 놓았고 오히려 편벽한 지역에서 이 일을 전해 듣지 못한 수련생은 예전과 다름없이 해나갔다. 이는 우리가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문제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법 공부를 통해 수련인은 에너지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한 가지 일이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이 입에 담고 생각할 때 정말로 매우 큰 문제로 되며 일이 그에 따라 나쁘게 변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일을 전하기 시작해서부터 참여한 모든 수련생은 자각적으로, 비자각적으로 조장하는 나쁜 작용을 하게 된다. 중하게 말하면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이 일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을 무너뜨리는’ 작용을 한 것이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어떤 마음이었든지 대법제자의 항목이고 혹은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당신이 일을 무너뜨리는 작용을 일으켰다면 당신은 곧 마의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당신이‘나도 대법제자이다, 나 역시 아주 많은 일을 하였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구세력은 당신이 한 일을 하나하나 기록해 두고 있다.”[2]

‘말’은 보기에 입이 말하고 있으나 실질은 마음이 입을 지휘하여 표현한 것이다. ‘수구’는 보기에 입을 닦는 것이나 실질은 마음을 닦는 일이다. 말을 전하기 좋아하고 알아보기를 좋아하는 배후에는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 마음이 존재한다. 두려워하는 마음? 참견하기 좋아하는 마음? 과시하는 마음?……, 이러한 마음을 찾아내 그것을 닦아버리면 사람 마음이 시키는 일이 없어져 ‘입’은 자연히 묻지도 전하지도 않아 수구할 수 있다.

속인에게 이런 한마디 말이 있다. ‘유언비어는 지혜로운 자에 의해 멈춰진다.’ 하물며 우리는 수련의 길을 걷고 있는 수련자가 아닌가. 수련생이여, ‘수구’문제는 보기에 크지 않으나 실제로 영향이 심원하다. 수구는 그와 관련이 있고 나와 관련이 있으며 누구에게나 해당한다. 지금부터 수구하지 않는 문제를 ‘나’부터 멈추자.

개인적인 수련 과정에서 작고 얕은 인식으로 문제를 찾아내 함께 제고하려는데 취지가 있으며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주:
[1]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2]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원문발표: 2019년 8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24/391836.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