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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 염두를 내려놓고 생사관을 넘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9년 2월에 법을 얻은 제자이고 그 당시 25살이었다. 부모님께서 모두 수련하시기에 나는 호기심을 갖고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다. 사부님께서 “직장이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당신을 나쁘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신이 꼭 정말로 나쁜 것은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해서 당신이 꼭 정말로 좋은 것도 아니다.”[1] “真(쩐)ㆍ善(싼)ㆍ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1]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다. 그 당시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법은 마치 내 사상의 가장 깊은 곳을 때리는 것 같았고, 나는 눈물이 단번에 샘물처럼 흘러나왔다. 사실 이전에 나는 더 큰 고난이나 시련을 만나도 운 적이 없었고 눈물을 흘린 적이 아주 적었다. 그러나 사부님의 설법을 듣자 오히려 나는 흐느꼈고 사부님의 말씀이 너무나 맞다고 느껴졌다. 마디마디 내 마음 깊은 곳을 말씀해주셨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진리였다.

9강의 설법을 단번에 들었고 3일간 세 번 들었으며 세 번째 날에 내 천목이 열려 무척 아름다운 정경들을 보았다. 저녁에 연공할 때 가끔 육안을 뜨고서도 선풍기 날개같이 작은 파룬들이 내 신체를 조정해주는 것을 보았고, 매일 내가 연공하기만 하면 몸에서 무척 강력한 공과 에너지가 일으키는 천만 가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진짜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함이고 내심에서는 진정으로 사부님께 무한한 감격을 느꼈다.

이전에 나는 성격이 거칠고 쟁투심이 아주 강했으며 돈을 벌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법공부를 통해 자신의 좋지 못한 많은 마음과 행위를 내려놓았고 사부님의 설법에서 요구하신 것에 따라 엄격히 행했으며 진정한 좋은 사람으로 되려 했다.

법을 얻은 지 몇 달 안 되어 사악한 공산당과 장쩌민은 대법과 대법제자를 잔혹하게 박해했고 TV와 신문, 방송 등등 곳곳에서 대법을 모함했으며, 사부님을 날조하고 전국을 속이고 전 세계 시민들을 속였다. 그 당시 나와 주변 수련생들은 같이 깨달았다. 우리는 대법 속의 일원으로서 공산당이 사부님과 대법을 모함할 때 마땅히 정정당당하게 일어나서 대법을 수호하고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9년 7월 20일부터 이후 몇 년간 나는 두 번이나 베이징에 가서 청원했고 대법 전단을 배포했다. 이렇게 진상을 알리다 네 차례 불법 수감돼 박해를 당했다. 하지만 모두 사부님의 자비와 보호, 점오에 의지해 차례차례 정념으로 난관을 넘었고 생사의 시험 앞에서 대법에 대한 단호한 정념과 사부님의 가지(加持)에 의지해 육체에 대한 집착, 생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 사악이 미친 듯이 박해하고 특히 육체에 대해 박해할 때 진정으로 생사를 내려놨다.

한번은 노동교양소에 있던 기간에 감옥 경찰은 여러 방법을 써도 나를 ‘전향’시킬 수 없자 나중에는 살해 명령을 내렸다. 노동교양소 재소자를 시켜 그들에게 술을 먹인 후 나를 작은 방에 데리고 갔고 네댓 명이 나를 에워쌌다. 그들 몸에는 모두 문신이 있었고 우두머리는 손에 쇠의자를 들었고 문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꿇어 앉히려 했지만 나는 앉지 않았다. 옆에 있던 한 사람이 내 배를 발로 한번 걷어차 나는 숨이 멎는 것을 느꼈고 무척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한참 지나서 겨우 숨을 몰아쉴 수 있었고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 우두머리는 이렇게 말했다. “느낌이 어때? 내 손의 의자를 봤어? 뒤에 또 아주 많은 프로가 있지. 위에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으니 오늘 네가 반드시 ‘전향’해야 해. 혹은 ‘잘못했어요. 연마하지 않겠어요’란 보증서를 써야 오늘 너를 풀어줄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오늘이 너의 길일이다.” 그 당시 내 마음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이었는데, 사부님과 대법을 배신하지 않고 대법이 바로 내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절대로 ‘전향’하지 않는다.” 그때 그는 의자를 들어 내 머리를 한번 때렸고 입으로 또 물었다. “전향할 거야, 안 할 거야?” 나는 또 전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내 머리를 향해 또 내리쳤고 얼마나 내리쳤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내 머리는 정말로 깨지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내가 타협하지 않는 것을 보더니, 주먹질과 발길질을 더 미친 듯이 해댔다.

박해과정 중에 한 수련생이 이 상황을 당직 대장에게 알렸고 이 대장은 인명사고가 나서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지금 깨달았는데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날 구해주시려고 배치한 것임) 달려와서 제지했다. 그날 밤 나는 비몽사몽간에 자신의 몸에서 큰 썩은 고깃덩어리 같은 것이 나가는 것을 보았다. 마음속으로 아주 더러운 것이 신체를 떠난 것임을 알았고 이는 사부님께서 나를 점오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아울러 내 머리는 상처가 하나도 없었고 또 아프지도 않았는데 이는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를 대신해 감당하신 것이다. 나는 더 잘해서 대법제자의 칭호에 자격이 있어야 하고 사부님의 감당을 져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누락이 있어 사악에 잡혀서 박해를 당하지만 나는 반드시 정정당당하게 이 검은 소굴을 벗어나리라 생각했다.

이번 박해로 나는 더 이렇게 피동적으로 박해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다. 그 당시 발정념에 관한 경문이 외부 수련생에 의해 전해져 들어왔는데 나는 법리에서 더욱 명석해졌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다. 언제 기상하고 점호하고 줄 서고 노동하고 학습하는 중에 나는 모두 참가하지 않았다. 매일 발정념하고 법을 외웠다. 그 당시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는데, 감옥 경찰은 나를 박해하고 싶었지만 매번 물러갔다. 주변에 20여 명의 수련생이 박해당했지만, 나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이후에 노동교양소에서는 더욱더 사악한 수단으로 대법제자를 ‘전향’ 박해한다는 소문이 들렸고 백 퍼센트 ‘전향’한다고 했다. 이는 비록 내가 사전에 들었지만 역시 사부님의 점화였다. 나는 당시 사악이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승인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며 여기에 갇혀서 끊임없는 박해를 당할 수 없다고 깨달았다. 마땅히 밖에 나가야 하고 조사정법(助師正法)의 홍류 속에 투입되어야 하며 여기는 내가 머물 곳이 아니다. 말만 해서는 안 되고 바로 실행했다. 사악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고 일체 집착을 내려놓고 발정념으로 시시각각 다른 공간의 사악을 청리했다.

내 정념이 아주 충족해 감옥 경찰은 다른 사람을 시켜 나에게 말을 전해주었다. 그들에게 번거로움을 주지만 않으면 모두 괜찮다고 했다. 나는 이 또한 그것들이 사람을 속이는 계략임을 알고 나는 반대로 해야 비로소 그들의 계략을 철저히 부정할 수 있었다. 그 시각부터 나는 노동교양소의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내 단식은 바로 대장에게 보고됐고 감옥 경찰은 위선적으로 나를 설득하려 했다. “당신이 보시오, 우리는 지금 당신을 전향하지도 않고 심지어 당신이 연공해도 상관하지 않는데 단식해서 뭘 합니까?” 나는 날 풀어주면 단식하지 않겠다고 했다. 감옥 경찰은 듣고서 모두 웃었다. “당신은 무슨 농담을 하고 있나요? 아직 1년 더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여기는 노동교양소이고 풀어주고 싶다고 풀어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당신 상황은 성(省)에서도 모두 알고 있어서 당신을 풀어주려면 성에 가서 비준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말했다. “그럼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끝까지 할 겁니다.”

나중에 나는 단식을 통해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말라서 뼈만 남았지만, 집에 돌아와서 3일 만에 전부 회복했고, 그때가 2002년이었다.

2004년 현지 대법제자들이 TV 삽입방송을 했다. 경찰은 미친 듯이 대법제자들을 체포했고 나도 중점 리스트에 올랐다. 나를 납치하던 날, 사복경찰은 내가 택시를 운전하기에 환자가 급히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며 내 택시를 탔다. 나는 당시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는데 단번에 경찰 10여 명이 뛰어 들어와 날 납치했다. 집안의 돈도 모두 빼앗아갔다. 밖에는 수십 명 경찰이 있었고 또 군견까지 있었다. 형경대에 도착하자 바로 나에게 고문을 시작했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계속 발정념으로 다른 공간에서 경찰을 조종하는 사악한 요소와 흑수(黑手)를 제거했고, 사부님께서도 계속 나를 가지(加持)해 주셨다. 나는 육안으로 계속 집으로 가는 큰길을 볼 수 있었고 나는 길에서 아주 빨리 전진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의 격려임을 알았다. 형경대 몇몇 경찰은 내 등 뒤로 수갑을 채웠고 중간에 또 벽돌 몇 개를 끼워서 손에 감각이 없었다. 한 경찰이 내 배를 몽둥이로 때리며 이렇게 말했다. “너를 잡다니. 우리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데, 네가 우리 눈 밑에 있는지 몰랐다.” 내가 머문 곳은 공안국 검은 소굴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경찰 대장이 말했다. “빨리 말해. 누가 TV 방송을 했지? 빨리 말해, 말하지 않으면 오늘 널 폐인으로 만들겠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너희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 길은 사부님께서 정해주신다.’ 나는 계속 발정념해 사악을 제거했다. 경찰들은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끊임없이 혹독한 매질을 하면서 괴롭혔다.

얼마나 오랫동안 때렸는지 모르겠는데 경찰은 내가 계속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상부에 보고했고 전화를 건 후 경찰은 마치 생각이 있는 듯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방법이 없지만 현 공안국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이 당신을 해결하러 올 것이다. 당신이 계속 말하지 않는지 두고 볼 것이니 기다려라.” 얼마 안 되어 양 씨 성의 경찰 한 명이 왔다. 이 사람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없었고, 그의 아버지도 체포한 적이 있는데 박해수단이 극히 잔인하다고 했다. 현 공안국에서 공인하는 가장 악독하고 인성이 없는 경찰이라고 했다. 그는 내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날 아느냐?” 나는 말하지 않았고 그는 세 번 연속 물었고 나는 한마디만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묻지 말라.” 그가 말했다. “좋다. 오마분시(五馬分屍)가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검은 천으로 내 눈을 가리게 했고 아주 단단하게 가려서 바로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생사의 생각을 내려놓고 사부님의 가지를 빕니다. 사악의 박해를 제거하겠습니다.’ 마음속으로 진짜로 두렵지 않았다. 몇몇 경찰이 나를 끌고 갔고 나는 검은 방에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안에는 전문적으로 사람을 박해하는 형구가 있었다. 경찰이 시작하라는 말이 들렸고 바로 고문이 시작됐다. 그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형구 앞에서 모두 자백했는지 모른다. 무엇을 말하라고 하면 바로 말하지. 오늘 네가 어떤지 보겠다. 자백하지 않으면 너는 폐인이 될 것이다.”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계속 발정념만 했다. 몇몇 경찰은 내 두 손을 철제 수갑으로 채우고 두 발도 족쇄를 채웠다. 눈은 가려서 어떤 구체적인 형구인지 볼 수 없었고 경찰의 시작하라는 말만 들렸다. 그 양 씨 경찰이 말했다. “얼마 안 가서 네 손발은 다른 방향으로 분리될 것이다.” 힘이 아주 셌지만 내가 아주 아프다고 생각할 때 수갑이 단번에 끊어졌다. 경찰들은 한바탕 난리였고 그들은 “불가능해. 이렇게 두꺼운 수갑이 어찌 끊어질 수 있지?”라고 말했다. 경찰들은 아주 놀랐고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또 한 번 나를 대신해 감당해주신 것을 알았다. 그 양 씨 경찰도 아주 놀랐지만 포기하려 하지 않았고 또 몇몇 경찰에게 지시하여 날 바닥에 넘어뜨리고 신발을 벗긴 후 여러 명이 고강도 전기봉으로나에게 충격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사부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외쳤다. “너희들이 나에게 전기충격을 주면 되돌아갈 것이다.” 경찰의 전기충격기는 끊임없었고 나는 계속 외쳤다. 한참 지나서 갑자기 그들은 날 심문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고 다른 일이 생겼다고 했다. 바로 이렇게 그들은 악행을 멈췄다.

몇몇 경찰이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최소 10년 이상 징역을 받게 된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당신들이 정하는 것이 아니고 날 판결한다고 말하지도 말라. 때가 되면 당신들은 내가 나가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일념을 내보내 생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고 구세력의 박해를 철저히 부정했다. 일사일념에서 모두 사악에 협조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에게 밥을 먹으라고 하면 나는 먹지 않았고 물도 마시지 않았는데, 나는 철저히 박해를 부정하겠다고 이미 생각했기에 밥 한술, 물 한 모금, 말 한마디, 일사일념 모두 사악에 틈을 주지 않았다. 그날 경찰들은 나를 구치소에 수감했다.

구치소에 들어가 나는 계속 음식을 먹지 않고 물을 마시지 않았으며 재소자에게 진상을 알렸다. 아주 빨리 구치소장이 이를 알게 됐고 이 소장은 전에 진상을 들은 적이 있어 대법에 대해 일정한 이해가 있었다. 그는 단독으로 나를 찾아서 면담했는데, 뜻은 나에게 단식하지 말고 이렇게 하는 것이 신체에 좋지 않다고 했다. “구치소에서 당신을 감히 괴롭힐 사람이 없으니 여기에 잘 있고 무엇이 먹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으면 모두 들어줄 거예요. 그러나 단식은 소용이 없어요. 우리 여기는 전문적으로 음식물 주입 방법이 있습니다. 당신들 이번 일이 너무 컸고 이번 사건을 중앙에서도 압니다. 나가고 싶어도 불가능해요. 당신이 죽지 않는 한.” 그 당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수련했어요. 진정한 우주대법을 얻었고 사람이 왜 사는지 알았는데 또 죽는 것이 두렵겠어요?” 그는 더 할 말이 없자 3일 후 음식물을 주입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치소에는 10여 명 대법제자들이 불법 수감됐고 나를 제외하고 다른 수련생들도 단식하고 있었다. 내가 4일째 단식하던 날 구치소장은 10여 명 사람을 데려와 날 바닥에 누르고 철제 호스를 코로 넣어서 위장까지 들어가게 한 후 주입하기 시작했다. 호흡이 특별히 어려웠고 숨을 쉴 수 없었으며 숨이 막혀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나는 계속 발정념했다. 이는 처음으로 강제 주입을 당한 것이었고 몇 분 후 호스를 빼내니 숨이 나왔다. 질식할 것 같았다. 소장은 매일 한 번씩 주입할 것이라고 했고, 다음 날 또 10여 명이 왔는데 호스를 넣던 사람이 바뀌었다. 이후에 알게 됐는데 위생학교 실습생들이었다. 나는 말했다. “당신들은 진짜로 사악하다. 우리 대법제자들을 실험용 물건으로 여기다니.” 바로 하마터면 나는 주입 당하다가 기절할 뻔했다. 주입당할 때 호스가 어디까지 들어갔는지 몰랐고 단번에 숨을 쉴 수 없었는데 숨이 올라오지 않아 아주 괴로웠다. 또 안에다 음식물을 주입하니 소리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는데 사상과 육체가 이탈하는 것이 느껴졌다. 모호한 의식 속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빼요. 사고 나요.” 호스가 갑자기 빠져나왔고 나는 이렇게 고통 속에서 다시 정신이 들었다. 바로 이날부터 구치소는 더는 나에게 주입하지 않았다.

이후에 비로소 알게 됐는데 노년 대법제자가 음식물을 주입당하다가 사망했고 사악은 원래 대법제자에게 중형 판결을 하려 했는데 수련생들이 정념이 아주 강하고 단체로 단식하는 등, 대법제자들의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념 속에서 사악의 계획은 철저히 해체됐다. 나도 단식 7일째 조건 없이 석방됐고 사부님의 가지로 2~3일 내에 신체가 회복됐다.

이상은 자신의 수련 중의 일부 경험이다. 처음 투고하느라 일부 일들은 분명히 생각나고 깨달았지만 써낼 수 없었다. 주요 원인은 아마도 내가 수련에서 느슨해져 수련을 처음처럼 하던 것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이번 원고를 썼다. 이후에 반드시 정진해 세 가지 일을 잘해서 인연 있는 사람을 더 많이 구하고 원만해 사부님 따라 돌아갈 것이다.

층차의 제한으로 부족한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8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19/3716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