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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일가족 수련생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아버지는 비록 박해가 시작되기 전부터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배우셨지만 나와 어머니는 2008년에 함께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2011년에야 진정으로 수련을 시작했다. 우리 일가족 세 명은 10년 가까이 수련의 길에서 서로 돕고 격려하면서 사부님의 자비와 보호 아래 무수한 기적을 경험했는데 이 기회에 그중 몇 가지 일을 적어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사부님께 보고하려 한다.

1. 사부님께서 난제를 해결해주시다

어머니는 높은 학력이 없고 법을 얻기 전에 가정 문제로 일찍부터 힘든 사회생활을 하시다가 온몸에 병을 얻으셨고 성격이 강하고 급해지셨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법을 얻은 후에 전부 개변됐고 몸이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특히 이익을 담담하게 보고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데 몸과 마음을 전념하셨다. 사실 내가 가장 탄복하는 것은 어머니의 정념과 신사신법하는 진실한 마음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현지의 기술 수련생이다. 사실 어머니는 영어를 하나도 모르신다. 이전에도 한 번도 컴퓨터와 프린터를 접해보지 못하셨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프린터가 고장 나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모든 일을 접고 사부님 법상 앞에 꿇어앉아 사부님께 도움을 빌었다. 다시 돌아오자 어느새 프린터는 수리되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리됐는지는 어머니도 몰랐다. 그러나 의심할 바 없는 것은 사부님께서 도와주셨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아무도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일체는 오직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당시 어머니와 다른 수련생들은 함께 우리 여기에 쌓아두었던 폐기된 20여 대의 프린터를 전부 수리해 사용했고 사부님의 도움으로 손실을 대대적으로 감소시켰다.

초창기에는 오직 소수의 수련생만 밍후이왕에 접속해 진상 자료를 받아 USB에 옮겨 서로 전했다. 그러나 한번은 모두가 전해오고 전해가면서 USB를 찾지 못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도 몰랐다. 사람을 구하는 것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다시 새것을 사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진심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해 USB를 찾아왔다. 어머니는 그 당시 잃어버렸다 해도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찾아주실 거라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것은 거기에 대법 진상 자료가 있어 속인들 손에 들어가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다시 한번 우리를 도와주셨다. 우리는 놀랍게도 사부님에게 올리는 과일 그릇 안에서 찾았다. 우리는 아무도 사부님께 올리는 그릇에 USB를 놓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우리는 확실하게 그 그릇에 USB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시각 우리는 또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우리 곁에 계신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2.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시니 무사하다

우리 일가족 세 명은 매주 함께 진상 자료를 배포했는데 그 당시 나는 10살쯤 됐다.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작은 골목이나 주변 마을에 가셨는데 어머니는 뒷좌석에 앉아서 자료를 배포하고 나는 아버지 앞에 앉아서 발정념 했다. 우리는 분업이 명확했고 협조가 치밀했다. 일 년 사계절 모두 그러했다.

북방의 겨울밤은 매우 춥다. 나는 아버지의 패딩점퍼로 몸을 감쌌고, 길에서 비록 손발이 얼어 감각을 잃었지만, 집에 돌아오면 바로 회복됐으며 동상을 입지 않았다. 내가 같이 다니면 길에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아도 일가족 세 명이 친척 집에 가는 것으로 아는 장점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여러 차례 고비를 넘겼다.

한번은 겨울밤 11시쯤이었는데, 우리는 자료를 다 배포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가로등도 없어 덮개가 없는 맨홀을 보지 못했다. 뒤늦게 맨홀이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우리가 탄 오토바이는 맨홀에 빠져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버지는 한 발을 맨홀가에 대고 버텼고, 나는 오토바이 손잡이를 필사적으로 잡아 맨홀로 떨어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당시 맨홀 덮개를 보지 못했다고 하셨고, 나는 오토바이가 맨홀에 빠지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오토바이 앞바퀴가 맨홀 덮개 사이에 걸려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한 번 잡아당겨 주셨기에 맨홀로 추락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우리는 또 세 차례나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모두 무사했다. 한번은 길에서 사람들이 목격하는 가운데 오토바이 한 대가 어머니를 향해 달려왔고, 어머니와 10m도 안 되는 거리에서 급정거해 어머니와 2~3m 떨어진 곳으로 넘어졌다. 만약 멈추지 못했다면 어머니는 전혀 피할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자가용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는데 중도에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누르듯이 우리 어깨를 스치면서 지나갔는데 하마터면 골짜기에 떨어질 뻔했다. 세 번째는 어머니가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가다가 넘어진 후 대형차량 한 대가 어머니 옆을 지나갔는데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그 차가 어머니 몸 위로 지나갔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우리가 이 일을 함에 빗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데, 진정하게 정도(正道)에서 수련하면 누구도 감히 경솔하게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신은 나의 법신이 보호하고 있어 어떠한 위험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일들은 그 당시에는 무섭지 않았지만 지난 후에 모두 살아남아 다행스러워했고 사부님께 한없이 감사드렸다.

3. 가장 바른 일을 하니 중간고사가 순조롭다

2015년 장쩌민 고소 열풍 속에서 우리는 교류를 통해 장쩌민 고소에 참여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밍후이왕에서 관련 법률 문건을 찾아보셨기에 우리 가족의 고소장을 먼저 발송했고, 이후 다른 수련생들을 도와 원고를 정리하고 발송해주셨다. 그 당시 때마침 중간고사 전이었고 아버지는 매일 수련생들의 장쩌민 고소 편지 원고를 수정하고 정리하셨는데 나는 컴퓨터로 타자해서 문서를 만들었다. 나는 1분 1초를 다투며 늘 밤까지 바삐 보냈다. 그러나 다음날 수업을 하면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고 중간고사 때까지 줄곧 그랬다.

때마침 사부님의 새로운 ‘논어’가 금방 발표됐고 나는 즉시 외웠다. 그리하여 어머니와 함께 등교할 때 길에서 ‘논어’와 ‘홍음’을 외웠고 심지어 시험장에서 시험지를 나누어 줄 때도 외우고 있었다. 결과 시험은 아주 순조로웠다. 내가 선호하지 않는 문제는 출제되지 않았고 내가 가장 못하는 수학은 우리 반에서 1등이었다. 내 최종 성적은 중3, 1년 중 가장 좋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때 비록 늦게 자고 하교해서 복습할 시간도 없었지만 매일 모두 가장 바른 일을 하고, 매일 정념 중에 있었으며 마음에 잡념이 없었기 때문에 활력이 있고 성적도 좋았다.

비바람 속에서 우리는 10년 가까이 수련의 길을 걸었고 온 가족이 모두 대법 사부님께서 개창해주신 소중한 수련환경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우리도 서로의 연분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

 

원문발표: 2019년 8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의 신기함을 전하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10/3911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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