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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와 질투심에 대한 조그만 인식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한동안 안으로 찾아보니 많은 마음이 어떤 것에 의해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기둥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 신체를 관통하는 느낌이었다.(그다지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이렇게 형용할 수밖에 없음) 그것은 좋지 않았고, 커다란 장애라는 것을 알았지만 도대체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았다. 교만? 오만? 어떤 말로도 다 정확한 것 같지 않았고, 이 말들은 단지 일부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며칠 전 수련생 사이에 심성 마찰이 생겼는데 계속 안으로 찾아보고 법을 외우는 중에 그것은 점점 뚜렷해졌다. 바로 ‘자아’였다.

몇 년간 줄곧 ‘자아’를 닦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인식에만 머물러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1] 지금 나의 층차에서 자아와 질투심의 상호 의존에 대한 인식을 정리해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만약 바르지 않은 곳이나 법에서 벗어난 곳이 있다면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신변의 노년 남자수련생 A는 신변의 여자수련생 B에게 마음을 빼앗겨 항상 핑계를 대고 그녀의 직장을 찾아갔는데 B는 아주 싫어했다.

어느 날 또 B를 보러 갔는데 B는 교대하느라 바빠서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B의 반대편에 있었는데 A가 돌아서서 내게 “그녀가 내게 쌀쌀하네요”라고 말했다. 마침 나도 퇴근 시간이라 돌아오는 길에 그와 교류하는 중에 나의 의견을 말했다. 교류 중에 그는 정이라고만 말하고 색이라는 글자는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색의 문제를 제기하면 A는 얼버무리며 대충 넘어갔는데 나는 A에게 쟁투심이 올라와 “당신은 덮어 감추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또 말했다. “왜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을 쓰지 않고 그녀에게만 관심을 쓰며, 그녀가 당신에게 조금만 태도 변화를 보이면 당신은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무슨 일이 있든 없든 여기로 달려오나요? 교류할 수 있는 남자 수련생이 그렇게 많은데 당신은 왜 그들을 만나지 않나요? 수련이 최후에 이르렀는데 이렇게 엄숙한 문제를 아직도 진지하게 찾지 않고 핑계를 찾으며 단속하지 않다니……”

그 말을 할 당시에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출근해서 B를 만났는데 갑자기 상가에서 나이 때문에 그녀를 재고용하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잠시 교류했다. 나는 그녀에게 “아마 당신에게 바로 잡아야 할 곳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제고해 올라오면 지금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휴대폰 안전 문제를 제기하며 수련생과 접촉할 때는 반드시 안전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B는 A가 늘 그녀를 찾아오는 것은 자신에게 색욕심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바로 한마디 했다. “파리도 아무 데나 내려앉는 것이 아니며 그것도 환경이 적합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또 그녀의 색심과 관련된 어떤 면을 말했다. 내 말이 그녀에게 충격을 주었는지 그녀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래서 나는 또 마음이 올라왔다.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군요.” 비록 더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녀는 나에게 “당신의 말은 당(黨)문화 요소가 너무 많아요. 모두 사람이 수련하고 있으며 사람 마음입니다. 당신은 너무 강압적이네요. 이렇게 말하면 남에게 상처 주기 쉬워요”라고 말했다.

사실 수련생의 문제를 보면 선의로 제기하는 동시에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지 찾아봐야 한다. 하지만 내 상태는 항상 어떠한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늘 말했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2] 그러나 내가 말하자 상대는 도리어 견딜 수 없어 했다. 10분도 못 돼 나는 이가 아팠고 피도 좀 났는데, 나는 최근 이틀간 말이 너무 많았음을 의식했다.

나는 내가 이런 것들을 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며 자신도 색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깨끗하게 닦아버리지는 못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먼저 이런 것들을 내려놓고 왜 자신이 다른 사람을 언급하고 싶어 하는지 찾아봐야 했다. 왜 그처럼 자신의 인식에 집착하는가? 다른 사람을 강압하며 그렇게 말하고 싶은 대로 말했는데 참지 못한 것이다. 말할 때 시작은 평온하게 교류하지만 남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언짢아한다. 항상 남을 바꾸려 하고 남을 강압적으로 대했다.(이전에 어떤 수련생이 내가 아이를 교육할 때 좀 강압적이라고 일깨워줬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은 남보다 나으며 다른 사람보다 인식이 더 낫고 위에 있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인식이 좋고 높으며, 누구도 자신 같지 않다고 여기며 거만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것들은 아주 깊이 숨어 있고 은폐돼 있었다.

셋째 날, 한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와서 나에게 어떤 일을 틀리게 했으며 법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사실 그 수련생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심으로 해명하고 싶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속으로 ‘당신은 내가 잘못했다고만 생각하고 내가 잘한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몇 번이나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계속 말했기 때문에 끼어들 수 없었다. 그녀가 돌아간 후 나는 생각했다. 왜 듣기 거북한 말은 듣기 싫어하는가? 왜 해명하려고 하는가? 왜 말하고 싶어 하는가? 역시 참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참지 못하는 배후에는 자신은 잘하고 괜찮다는 생각이 있었다.

잘 닦은 수련생은 자신을 낮은 곳에 두지만 나는 항상 자신을 높은 곳에 두며 겸손하지 못했다. 맞든 틀리든 자신의 수련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어찌 제고할 수 있겠는가? 지나치게 오만했다. 이럴 때마다 문장의 첫머리에서 말한 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한 수련생에게 물었다. “왜 남이 말을 하거나 남이 나를 들먹이면 항상 자신이 그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게 될까요? 그것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요? 그 마음은 나를 선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게 하며 나에게 하는 말을 듣기 싫어하기 때문에 강압적인 사람으로 됩니다. 또 안하무인이며(심지어 어떤 때는 이런 교만을 정념으로 여겼음), 오만하고, 다투고 싸우며, 편협하고 포용하지 못하고, 자신만을 드러내 잘난 체하게 하며, 안으로 찾지 못하게 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을 주시하게 합니다. 제 생각에 생명이 나쁘게 변하는 것은 그것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당연히 질투심일 겁니다.”, “모두 법에 따라 수련하는데 당신이 항상 자신의 인식을 강조하여 수련생에게 당신을 따라 수련하라고 한다면 당신이 법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험하지 않습니까?” 나는 그녀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질투심에 대한 인식은 분명하지 않았다.

그녀가 간 후 법을 외우면서 마침 질투심을 외웠는데 “이 사람, 그는 직장에서 다른 사람이 모두 자신보다 못하다고 느끼는데, 자신은 무엇을 하든 다 잘하며 확실히 대단하다고 느낀다.”[1]라고 하신 부분을 외우다 갑자기 크게 깨달았다. 그러한 표현은 모두 질투이며 자신이 행한 그런 것이 곧 질투심을 생기게 하는 근본 원인임을 알게 됐다. 신공표도 자신이 강자아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강자아가 봉신하는 것을 질투했다. 기공사가 거기에 앉아 강의를 들을 때 듣기 싫어하며 다른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 법 중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신 내용들이 떠올랐다. “내가 리(李) 선생님의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울 수 있고, 나는 이처럼 잘 배울 수 있어 누구보다도 나은데, 나는 일반인이 아닐 수도 있다.”[1] “이 학습반에서도 현재 자신이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으며 그 말하는 태도마저 다르다.”[1] “우리 이렇게 많은 수련생이 모두 그보다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은 그보다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듯한데”[1] 등등이 생각났다. 질투심, 과시심, 쟁투심은 모두 여기서 나온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질투심을 말씀하실 때 이런 표현이 가장 많았다. 자아가 강할수록 질투심 역시 필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때 사부님께서 “질투심 이 문제는 아주 엄중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우리가 수련하여 원만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에 연관되기 때문이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1]라고 하신 말씀을 더욱 심각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질투심은 내게 달라붙어 있으며 어찌 보면 자아와 질투는 등호를 그은 것처럼 같은 것이다. 자아가 바로 질투심이고, 질투심이 곧 자아다.(개인 인식)

이 관계를 파악한 후 최근 며칠 간 많은 생각이 튀어나올 때 더는 과시심, 또는 교만 등등으로 분류하지 않고 바로 ‘자아’라고 깨닫고 재빨리 제거해버렸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청성’

 

원문발표: 2019년 8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득>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13/3905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