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법회를 통해 정말 제고가 있기를 희망한다. 부족함을 찾아내어 더욱 잘하라. 당신들은 인류의 희망이다. 북미 대법제자처럼 분발하여 곤란 앞에서 움츠러들지 말라. 사람의 틀에 가로막히지 말라. 사악에게 놀라지 말라. 역사는 당신들을 위해 남겨진 것이기 때문이다.”[1] 나는 1994년부터 대법을 수련했다. 20여 년간 곤두박질치는 것을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셔서 지금까지 걸어왔다. 99년 이전 대형 혹은 소형 법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수련생들이 대법에서 닦아낸 무사(無私)와 순수함은 정말 감동적이다. 99년 이후 그런 법회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밍후이왕 교류 문장, 해외 수련생의 법회 문장을 늘 본다. 그런데 다 본 후 흔히 수련생에 대한 감탄에 불과할 뿐 내 부족함을 깊이 반성하지 않았다. 환경이 다르고 경지가 다르다는 등등 사람의 틀에 가로막혔다. 사부님의 가르침을 받고 나는 내 격차를 보았다. 사실 나에게도 체험이 있다. 흔히 넘기 어려운 고비에 부딪혔을 때 수련생의 수련 체험에서 크게 깨닫게 되고 자신이 넘지 못한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정말 보게 된다.
사람의 틀은 내 수련의 길에서 큰 장애이다
진상을 알릴 때 나는 기득권자를 경계하는 마음이 있어 일반 서민에게 말하기를 좋아한다. 한 번은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은 가난해 보이는 할머니를 만났다. 나는 자신감이 가득하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주제를 말하려 할 때 그녀는 욕을 퍼부으며 큰소리를 질렀다. 이 사건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사람의 등급을 나누는 내 마음에 큰 충격을 줬다. 이 사람의 틀 때문에 나는 모든 생명을 자비롭게 대할 수 없었다.
내 생활은 아주 규칙적이다. 좋은 습관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람의 틀이 형성되기 쉽다.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에 저녁에 일찍 자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 늦게 자면 수면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낮에 한잠 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법공부와 발정념할 때 피곤했고, 잠이 모자라 정말 너무 피곤하게 느꼈다. 나는 속인의 이런 틀에 가로막혀 장기간 돌파하지 못했다.
또 더워도 안 되고 추워도 안 되며 목말라도 안 되고 배고파도 안 되며 힘들어도 안 됐다. 모두 사람의 틀에서 돌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하는 사람은 추운 것도 두렵지 않고 더운 것도 두렵지 않으며 바람이 불어도 당신을 아프게 하지 못한다.”[2] 수련인은 원래 초자연적이다. 관념을 바꾸기만 하면 반드시 달라진다. 나는 사람 속에서 초탈하지 못하고 늘 사람의 각종 느낌에 집착해 정말 제고할 수 없었다.
교사가 된 후 사람의 틀이 형성됐다. 학생에 대한 존중, 학부모의 호평, 학교 상사의 긍정, 내가 다른 사람을 비평하고 부족한 점을 지적해서는 되지만 타인의 질책과 원망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고 듣기 싫은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수년간 수련하면서 이러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표면적인 평화로 내심의 불만을 은폐했다. 이 역시 내가 20년 수련했지만 얼마 제고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다.
현실 생활 속의 옳고 그름도 나를 제고하지 못하게 한 틀이다. 타인이 나를 좋지 않다고 하면 그 억울함과 불평을 떨쳐버리지 못했고, 상대방에게 내가 옳고 그렇게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변명하고 자기를 실증하며 심지어 상대방에게도 옳지 않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줄곧 자신이 옳다고 강조하는데, 당신이 옳았고 당신이 잘못이 없다 한들, 또 어떻단 말인가? 법에서 제고했는가? 사람의 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강조하는, 이 자체가 바로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속인의 이치로 당신 자신을 가늠하고 있고, 다른 사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볼 때 세간에서 한 수련인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며, 수련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가가 비로소 중요한 것이다.”[3] 사부님의 법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늘 내려놓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떠한 교란 하에서도 모두 구체적인 사건 속에 파고들어 자신을 교란하지 말아야만, 비로소 걸어 나올 수 있고, 게다가 위덕도 더욱 크다.”[4] 반성하면 나는 늘 “구체적인 사건 속에 파고들어 자신을 교란”[4]해 스스로 고통에 빠져 몸부림치고 있었다.
약간의 체험을 수련생 여러분과 나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프랑스 법회에 보냄’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싱가포르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맨해튼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
원문발표: 2019년 8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14/3914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