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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의 박해를 부정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 수련생이 찾아와 자기가 최근 큰 고비를 넘겼다며 3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고 말했다. 고비를 넘기는 중에 그녀는 자신에게서 찾았는데 평소 자녀들이 자신을 탓할 때 속으로 불평하며 자녀를 질책했지만 나중에는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그 속에서 뛰쳐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때 다른 한 수련생이 말했다. “현재 사람들은 모두 변이(變異)됐으므로 그들에게 순응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질책한 일은 잘못이 없으며 일체 바르지 않은 것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이때 나는 즉시 자신과 일부 수련생에게 장기적으로 존재하는 매우 엄중한 한 가지 수련문제를 의식했다. 바로 부지불식간에 구세력이 대법제자의 수련을 통제, 교란,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한 수련생이 체면과 과시심으로 구세력에게 이용당해 자신이 박해 초기에 사부님과 대법을 배반한 일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고 또 ‘엄정성명’도발표하지 않았다. 내가 이 문제를 지적했을 때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사부님께 말씀드리면 됩니다.” 이로써 자신의 사람 마음을 덮어 감췄다. 개인적인 인식으로 ‘엄정성명’은 사부님께서 잘하지 못한 대법제자가 새롭게 수련에 걸어 들어오고 죄과(罪過)를 벌충할 수 있게 주신 하나의 기회로서, 잘하지 못한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자비이다. 만약 이러한 수련생이 단지 속으로 사부님께 잘못을 승인하고 공개적으로 ‘엄정성명’을 발표하지 않는다면 그건 법에 부합하지 않으며 전혀 인정이 안 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범한 죄과를 없앨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세력의 교란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바로 이런 원인으로 인해 이 수련생이 다른 수련생과 모순이 발생했을 때 나는 다른 수련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그를 속인으로 여기세요. 그처럼 되면 안 되죠.” 지금에서야 인식하는데 자신의 이런 언행은 법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수련생의 수련을 가로막고 있었으며 일으킨 작용은 사악과 별로 다르지 않다.

어째서일까? 첫째, 수련생 사이에 발생한 모순은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의 제고를 위해 사용하시는 것이며, 집착심을 폭로해 그 집착을 닦아버려 대법에 동화하고 대응되는 천체의 중생을 구하는 기회다. 나의 그런 언행은 표면에서 수련생을 매우 ‘동정’하고 있지만 실질은 수련생을 가로막는 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수련생이 안으로 찾고, 마땅히 닦아 버려야 할 집착심을 닦을 기회를 가로막음) 바꿔 말하면 무의식중에 사부님께서 수련생에게 배치한 제고의 기회를 파괴했다. 만약 수련생에게 착실히 수련하는 단단한 기초가 있었다면 아마 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또 만약 수련생이 그때 정념이 강하지 못해 내 말이 직접 수련생의 사람 마음에 부합한다면, 그래서 수련생이 사람 마음에 기만당해 내가 한 말이 법에 있다고 여기고 그 말을 인정한다면, 수련생은 이 수련의 고비에서 물러서고 넘지 못한 것과 같다.

둘째, 사부님의 설법을 통해 구세력의 교란이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든 모든 고비는 당시 대법제자의 심성표준에 따라 설치된 것이라고 인식했다. 만약 넘지 못하고 다음에 넘으려면 매우 어렵다. 만약 장기적으로 이렇게 내려간다면,수련생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내가 늘 이렇게 ‘동정’해수련생에게 고비가 많이 누적되면 나중에 하나의 큰 고비로 형성돼 아마 생사를 내려놓아도 넘지 못하거나,반면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는 내가 수련생이 훼멸되도록 ‘도운’ 것이다.

셋째, 이 일에서 일으킨 작용이 사악과 구별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수련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수련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발생한 모순을 보거나 들었을 때 제삼자의 입장이라도 마땅히 우선 자신에게서 찾아야 하며, 역시 자신을 제고하는 한 차례의 기회다. 내가 장기적으로 이렇게 수련생을 ‘동정’하고 자신을 닦지 않았다면 수련의 고비도 누적돼 내려온 것이 아니겠는가? 나중에 누적된 고비가 커지면 역시 전혀 넘지 못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정말로 타인을 해치고 자신을 해친 것으로, 다른 수련생을 망치고 또 자신을 망친 것이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인식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내가 장기적으로 깨닫지 못하자 수련생이 우리집에서 표현하도록 배치하시어 그중에서 자신의 문제를 보아내도록 하셨다. 이는 정말 큰 방망이로 얻어맞은 것으로, 만약 더는 깨닫지 못했다면 결과가 얼마나 두렵겠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1]

우리 지역의 수련생 중에도 이런 현상이 매우 많다. 수련생이 일단 난관에 봉착하면 일부 수련생은 곧 열정적으로 당사자 수련생을 ‘위로’하는데, 하는 말은 모두 사람의 동정이지 수련생이 안으로 찾도록 일깨워주는 것이 아니다. 이런 표현은 속인식의‘위안’으로, 일반적으로 수련과 법공부의 기초가 있는 수련생은 그래도 쉽게 분별하기에 그것에 이끌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경우 수련생이 난에 처한 수련생에 대해 속인식 ‘위로’를 하거나, 혹은 소위 ‘법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법’에서 교류하지만 어떻게 교류해도 일으키는 것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수련생이 안으로 찾아 자신을 닦는 것을 가로막는 부정적 작용이다. 모두 타인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수련 중에서 봉착한 일체 모순, 혹은 무슨 난관이든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의 집착심이 그 속에서 폭로돼 집착심을 닦아 제고해 올라갈 기회로 이용하신 것이다. 우리가 오직 안으로 찾아 마땅히 닦아 버려야 할 사람 마음을 닦아버려야 비로소 이런 난관에서 뛰쳐나갈 수 있고, 비로소 진정으로 대법 중에서 제고해 올라갈 수 있으며 대법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모두 고비를 넘지 못한 것이다. 수련은 바로 정면으로 사람 마음을 버리는 일이며, 안으로 찾지 않고 사람 마음을 닦지 않는다면 대법 수련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이렇게 내려간다면 비록 형식적으로 대법에서 이탈하지 않았어도 실질은 이미 대법에서 이탈한 것이다.

나는 왜이렇게 했을까? 나의 이런 언행은 어디에서 초래된 것일까? 이리저리 찾아보니 바로 전혀 착실히 수련하지 않아 조성된 것으로,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언제나 밖을 보고 타인을 ‘돕고’ 자신을 닦지 않게 된다. 이러면 곧 구세력이 틈을 타고 들어와 당신의 사람 마음을 이용해 당신을 훼멸하는 동시에 수련생마저 훼멸하게 되며 나아가 정체를 훼멸한다. 나는 지금 인식했는데 이 일체는 모두 구세력의 배치다. 일종 대법제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박해다. 이런 박해 형식은 매우 발견하기 쉽지 않은데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대법제자의 사람 마음에 몰래 숨어들어 대법제자 자체를 이용해 대법제자를 박해하기에 ‘납치’, ‘병업’, ‘세뇌반’의 박해형식처럼 쉽게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박해는 모든 박해 중에서 가장 사악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상이 연공(煉功)해도 공이 자라지 않는 두 가지 원인이다. ‘고층차 중의 법을 모르고서는 수련할 수 없으며, 안으로 수련하지 않아 心性(씬씽)이 수련되지 않으면 공이 자라지 않는다.’ 바로 이 두 가지 원인이다.”[2]

대법제자로서 자신을 잘 수련해 사명을 완성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려면 오직 한 갈래 길이 있다. 바로 수련 중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하든지 언제나 자신을 착실히 수련해 사람 마음을 버리는 것으로, 그렇게 해야 비로소 대법 속에서 자신의 경지를 제고할 수 있고, 고층차의 법리가 비로소 당신에게 펼쳐지며, 당신은 그 층의 법리 지도하에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일을 잘할 수 있다. 안으로 찾아 자신을 잘 닦는 것은 대법제자의 근본이다. 구세력의 이런 무형의 박해는 바로 정면으로 대법제자의 근본을 겨냥한 박해이며 악독한 정도는 ‘납치’, ‘병업’, ‘세뇌반’의 박해형식을 훨씬 초과했다. 일부 수련생은 이런 무형의 박해로 장기적으로 박해당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날마다 매우 바쁘게 보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대법 속에 있지 않다.

이런 것을 써냄은 자신과 유사한 문제를 가진 수련생이 각성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며, 정법 수련의 최후, 제한된 시간 내에 엄숙히 자신의 수련을 대해 천만년 기다린 기연(機緣)을 놓치지 말며 대법제자 속에서 헛되게 지내지 말기를 바라서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또 타인을 소중히 여겨서이다.

현 단계에서 개인적인 작은 인식이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 2-슬퍼하지 말라’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8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 교류>이성적 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16/3915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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