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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私)를 닦아 없애다

‘전법륜’을 공부한 약간의 체득과 깨달음

글/ 후난(湖南)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늘 ‘전법륜-제8강-누가 연공(煉功)하면 누가 공(功)을 얻는다’에서 마지막 한 단락의 말씀 “이는 가장 편리한 법문일 뿐만 아니라, 우주 특성에 따라 직접 연마(煉)하므로, 수련함이 가장 빠르고, 가장 가까운 길로서, 직지인심(直指人心)이다.”를 공부하다가 문득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표가 정확하고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기만 하면 수련은 마치 간단하게 변한 듯했습니다.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 광명이 나타나네”[1] 바로 이 마음을 잡고 닦아 없애야 하며 포기하고 담담하게 보며 내려놓고 낮게 내려놓으며 자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약간의 체득과 깨달음을 써내고자 합니다. 적절하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1. 대법 수련은 바로 사(私)를 닦아 없애는 것이다

수련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없애야 합니다. 질투심, 쟁투심, 환희심, 과시심, 이익심, 색욕심, 두려운 마음, 요행을 바라는 심리, 의존심, 의심하는 마음,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는 마음, 수련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마음, 자아를 실증하고자 하는 마음,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 등등 이런 마음은 모두 ‘나’를 떠나지 못하고, ‘사(私)’를 떠나지 못합니다. 대법에서 우리는 사심이 생명을 아래로 가라앉게 하고, 결국 속인 사회로 떨어져 내려오게 했으며, 삼계에서 윤회하여 전생하고 영원히 벗어날 길이 없게 되었다가 오늘날 운 좋게도 대법을 얻어 생명이 다시 새롭게 되돌아가게 하는 이것은 천지개벽 이래 처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이 얼마 남지 않은 정법 수련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이 나(我)와 사(私)를 닦아 없애야 합니다. “사람 마음과 악한 생각을 내려놓으라, 천국은 선량(善良)함만 받아들이나니”[2]는 사심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떨어져 내려오게 되었으므로 되돌아가려면 반드시 이 ‘사’를 닦아 없애야 합니다. 대법은 직지인심으로 바로 이 ‘사’를 가리키며 사의 표현은 곧 자아입니다. 구우주의 생명은 자신을 중심으로 하므로 성주괴멸의 숙명을 벗어날 수 없으며 결국 구우주는 최후까지 걸어와 훼멸됩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처음으로 우주 대법을 천지 창생(蒼生)에게 이야기해주어 그들의 심령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저는 사의 주요 표현은 문제를 생각할 때 늘 위타(爲他)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사고하며 자신의 이익이 침해받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를 위하는 이런 속성도 생명이 자신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오직 타인을 변화시키려고 하며 매사에서 ‘나’를 제일로 삼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심(私心) 문제에 관하여 내가 조금 전에 당신에게 이 이치를 말했을 때 당신들은 모두 손뼉을 치면서 마음속으로 아주 기뻐했다. 미래의 우주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내가 말했을 때 당신들은 모두 기뻐했다. 왜 이럴 수 있는지 여러분은 아는가? 어떤 사람은,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좌우명으로 삼는다. 사실 당신들은 아직 모르는데, 이 사(私)는 아주 높은 층차에까지 관통되어 있다. 과거, 수련하는 사람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하겠다.’, ‘나는 무엇을 얻겠다.’, ‘나는 수련하고 있다.’, ‘나는 성불하겠다.’, ‘나는 무엇에 도달해야 하겠다.’고 말하는데 사실 모두 그 사(私)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들이 진정으로 순정(純正)하고, 무사(無私)하여, 진정한 정법정각(正法正覺)으로 원만(圓滿)을 이루는 것인데, 그래야만 비로소 영원한 불멸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 준다.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당신들은 우선 다른 사람들을 고려해야 한다.”[3] “사(私)를 위하는 것은 과거 우주의 근본 속성이었는바, 성주괴멸(成住壞滅)과 생로병사(生老病死)도 이 속성이 가져온 필연성이었다. 장래의 법은 원용(圓容)한 것이고 공(公)을 위하는 것으로, 우주의 근본속성이 개변됨으로써, 우주의 과정과 생명의 특징(特點)으로 하여금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했다.”[4]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 사라는 글자를 떠나지 못합니다. 옛사람이 말했습니다. “마음속에 사심이 없으면 천지가 넓다(心底無私天地寬).” 즉, 고대의 사람들은 사람에게 사가 없어야만 흉금이 넓어지고 식견이 고상해지며 선하게 타인을 위하고 원망도 후회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대법 수련자는 사가 없으면 수련자인 자신이 비로소 우주 대법 속에 용입될 수 있으며 대법 속의 무궁한 지혜와 연결되며 비로소 대법의 힘을 구비하게 된다는 것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사심이 표현되어 나오면 쟁투심, 질투심, 환희심, 과시심, 이익심 등 기타 마음이 동반된다고 생각하며 사를 제거하여 없애면 자신이 수련을 잘했을 뿐만 아니라 정체 속에서의 협력도 좋아지리라 생각합니다.

2. 사의 표현은 바로 자아이다

사심은 각 방면에서 표현됩니다. 사심은 다른 집착심을 위해 생존할 수 있는 공간과 생존의 토양을 제공해줍니다. 조사정법, 중생구도에서 바로 이 ‘사’는 어떤 수련생이 걸어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바로 이 사, 자아가 걸어 나오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으며 대법 속에서 얻기만을 원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구하고 장쩌민(江澤民) 고소 등에 있어서 많은 수련생이 해야 하는 것을 알고 천상변화는 사람이 가서 움직여야 하는 것을 알지만 자아를 돌파하지 못하여 이것을 두려워하고 저것을 두려워하며 걸어 나오지 못하며 속인 중의 자아(거짓 자아)를 진정한 자아로 여깁니다. 속인 중의 나는 단지 속인 중에만 존재하며 장구하지 못한 것으로 백 년 후에 전생할 때 가져갈 수 없지만 진정한 나(主元神, 주왠선)는 불멸하는 것으로 윤회하는 것이고 자신을 주재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최후시기 모두 창세주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나니 / 괴멸(壞滅) 전에 이미 사람을 구하는 법리를 전했도다 / 하지만 사람들이 쫓는 것은 명리(名利)일진대 / 일생을 분투하여 추구해도 가져갈 수 없으리니 / 오고가는 건 오직 그대뿐이라오”[5] 수련 중에서 우리가 이번 생에 세상에 오게 된 목적에 명백하기만 하면, 정념으로 수련에서 부딪히는 일체를 대하기만 하면, 사람들 가운데 거짓 자아는 부지불식간에 철저히 해체됩니다.

이것은 저의 체득과 깨달음입니다. 수련에서 법 공부를 잘하고 법리를 깨닫는 것이 관건입니다. 저의 남편은 저와 같은 해에 법을 얻었습니다. 처음 결가부좌를 30분 할 때 힘이 들지 않았지만, 몸을 수련하는 것만 중하게 여겼습니다. 몸이 조금만 불편하면 바로 참지 못하고 몇 첩의 한약을 지어 몸을 조리하면서 사람의 층차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현지의 몇몇 노년 수련생은 병업관을 넘지 못하고 모두 자아의 느낌 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사람이 자아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자신의 득실에 관계되기만 하면 이익을 모두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사를 위하는 우주의 근본적인 속성이 조성한 것이며 대법이 만든 새로운 우주에 진입하려면 반드시 이 사를 닦아 없애야 합니다. 진정하게 대법을 수련해야만 비로소 사를 없앨 수 있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법대각(正法大覺)을 수련 성취할 수 있습니다.

3. 사심을 내려놓고 법을 크게 여기다

사는 매우 큰 정도에서 자아와 함께 연결된 것이며 사를 닦아 없애는 과정은 사실 자아를 내려놓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한번은 저와 한 수련생이 일용 화학제품을 사러 갔습니다. 그 수련생은 먼저 점원과 인사를 건넸지만, 저는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손님이 주인보다 떠들썩하게 삼퇴를 이야기했습니다. 막 가게 문을 나선 수련생은 조급해하며, 이 사람은 본인이 알리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야 저는 “당신이 알린 거예요. 당신이 저에게 가게로 들어오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진상) 알리는 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구우주의 일체는 모두 사의 기점에 세워진 것이며 속인도 모두 자아를 중심으로 하며 일체는 모두 사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법이 만든 생명이며 속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하면 안 됩니다. 저는 지금 비교적 이 방면의 수련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건을 사거나 평소의 생활에서 시시각각 모두 사상 속에 스쳐 지나가는 일사일념에 주의를 기울이며 약간의 사심의 염두가 떠올라도 즉시 그것을 포착하여 놔주지 않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갖지 않겠습니다. 그것을 제거하여 없애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닙니다. 노력하여 내려놓는 것을 해내겠습니다.” 그것을 방임하지 않고 그것을 따라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거나 그것이 자생하고 자멸하도록 방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멸하는 동시에 덩굴을 더듬어 참외를 따듯이 그것이 생겨난 근원과 무슨 집착심이 이 염두를 내보냈고 무슨 변이된 사상 또는 욕망이 이런 사념(邪念)을 자양시켰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근원을 찾은 후, 직접 근본적인 것을 겨냥하여 멸하여 없앴습니다. 비록 일시적으로 깨끗하게 멸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것의 진면목을 똑똑히 알 수 있었고 그것이 자아가 아닌지 여부를 똑똑히 가려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련해 나가는 것을 견지하여 저는 저의 사상이 갈수록 순결하고 깨끗해지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이전에 일하는 것을 정진하고 수련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지금은 마음을 닦아야만 비로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心性(씬씽)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얼마만큼 높다.”[6] 저는 마음을 닦는 것은 확실히 하나의 관념과 기점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관념을 바꾸고 기점을 바로 세우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구우주의 일체는 모두 사의 기점에 세워진 것이며 속인도 모두 자아를 중심으로 하고 일생은 모두 사를 위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법이 만든 생명이고 위타의 생명이며 반드시 이 사심을 닦아 제거하고 자아를 내려놓으며 법을 크게 여기고 중생구도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홍음-新生(신생)’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5-甚麼是信仰(무엇이 신앙인가)’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스위스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5-為何來這裏(왜 여기에 왔는가)’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7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27/3906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