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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수련에서 좋지 않은 마음을 없애다

글/ 후난 파룬궁 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먹기를 즐기는 여자이다. 먹을 때는 부지런하고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만든다. 다른 여자는 쇼핑하고 옷 구경하는 것을 즐기는데 나는 시장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편리를 위해 나는 손에 작은 스프링 저울을 가지고 다닌다. 노점상은 나를 속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개구리, 연어, 바닷가재, 닭과 오리 등을 판매하는 매장에 가면 발을 디디지 못한다. 어느 것이 토종 맛이고 어느 것이 야생 맛인가를 고려한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살생을 많이 했고 업도 많이 지었다.

1. 먹기 좋아하는 마음을 없애다

2004년 대법을 수련 후 나는 비로소 “살생은 아주 큰 업력을 조성하게 된다.”[1]를 알게 됐다. 나는 그 후부터 시장에 가서 산 것을 사지 않았고 손에 가지고 다니던 저울도 버렸다. 속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먹기 좋아하는 마음은 10년을 지나 비로소 없앴다.

산 것을 사지 않았지만, 시장에 가면 싱싱한 개구리, 연어, 바닷가재를 보면 마음이 설레어 사 먹고 싶었다. 이때 나는 강제로 자신을 빨리 떠나게 한다.

한번은 나는 오리고기가 먹고 싶었다. 아무리 억제해도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지 못해 전화를 걸어 남편에게 사 오라고 했다. 남편이 사 온 후 나는 싱글벙글하며 주방에 가서 손질하며 생각했다. ‘오랫동안 오리고기를 먹지 않았다. 배불리 먹을 수 있겠다.’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내가 칼로 오리 머리를 분명히 찍었는데 칼은 내 둘째손가락을 찍었다. 놀라 나는 칼을 던지고 구원을 요청했다. 남편은 뛰어와 손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나를 도와 감싸줬다.

그 시각 내 손은 가슴을 쥐어짜듯 아파 머리가 명백해졌다. 나는 울며 사부님께 외쳤다. 사부님께 말했다.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다음에 저는 더는 살생을 하지 않겠습니다.’ 손을 찍어 아픈 것을 알지만 동물의 몸을 찍으면 동물이 아프지 않은가? 그들도 아프다. 하물며 나는 먹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죽인 것이다. 수련인의 선한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그 후부터 나는 남편에게 산 것을 사 오게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먹기 좋아하는 마음은 반복됐고 나를 괴롭혀 먹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갈수록 약해졌다.

2014년 이후 나는 맛있는 음식에 더는 흥미를 느끼지 않고 국수, 죽, 찐빵, 수완 차이(酸菜) 등을 먹어도 상관없다. 무엇이 있으면 무엇을 먹고 배만 부르면 상관없다. 수련하기 전과 딴 사람으로 변했다. 이전에 고기가 없으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과 아이가 집에서 밥을 먹을 때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든다. 그들의 음식을 대충 만들지 않고 맛있게 만들어 그들이 맛있게 먹게 한다.

2. 색욕심을 제거

나와 남편은 사이가 좋다(2000년부터 2004년까지 친정 친구가 이간질해서 우리 둘은 몇 번 다투었고 하마터면 이혼할 뻔한 것을 제외하고). 남편은 재능이 있고 교양이 있으며 성격이 부드럽고 나에게 자상하다. 우리 둘의 관계는 좋다. 나는 남편에 대한 정이 깊고 그를 사랑한다. 부부생활에서 나는 그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여겼다.

수련 후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색욕 방면의 법리를 배우고도 중시하지 않고 금욕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의사를 표현하면 나는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나 지난 후 후회하고 자신이 바로 잡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욕(慾)과 색(色),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의 집착심에 속하기에 이런 것들을 마땅히 모두 제거해야 한다.” “당신이 그것을 담담하게 보고 심리적 평형을 이루면 된다.”[1] 나는 잘 파악하지 못했고 수련이 부족하여 질질 끌었다.

내가 대법 수련 5년째 되는 해 한번은 나와 몇몇 수련생이 나가 진상을 알릴 때 신고를 당했다. 우리 셋은 구치소에 납치당했다. 나는 불법으로 15일 감금됐다. 돌아온 후 두려운 마음에 몇 개월간 외출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이 미행할까 봐, 또 박해당할까 봐 두려웠다. 집에 있어도 모순이다. 대법이 좋은 것을 알고 있고 자신을 잘 수련하여 반본귀진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당의 박해는 사람을 공포에 떨게 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어떻게? 몇 개월 후 나는 사부님을 따라가기로 결정했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하고 정진하여 착실하게 수련하려 했다.

반복해서 자신이 어디에 누락이 있는지 찾았고 사악이 어떤 틈을 탔는지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다. 찾을 줄을 모른 것이다. 한번은 ‘밍후이 주간’의 한 교류문장을 볼 때 수련생이 납치 등 박해를 말할 때 일반적으로 세 가지 상황이 있다고 했다. 첫째, 대법의 돈을 사용한 것이다. 대법의 돈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기에 다른데 쓰면 안 된다. 둘째, 질투심이다. 셋째, 색욕심을 없애지 못한 것이다. 나는 단번에 깨어났다. 색심, 색욕심 바로 이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역사상에서나 고층 공간 중에서 사람이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볼 때 사람의 욕망, 색 이런 것을 아주 주요하게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로 이런 것을 담담하게 보아야 한다.”[1] 나는 여태 그것을 제거하려는 마음이 없었고 그것을 자아라고 여기고 즐겼다. 한 손으로 신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사람의 물건을 잡고 놓지 않았다. 이것은 큰 누락이다. 이것이 박해를 불러온 것이다! 깨달은 후 나는 발정념을 할 때 첫째로 색욕심을 제거했다. 비록 무슨 느낌도 없지만 1년, 1년 나는 끊임없이 그것을 제거하는데 견지했고 그것을 가지지 않았다. 점차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한 것처럼 “지난번에 나는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다(佛光普照, 禮義圓明)고 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신체가 발산하는 에너지는 일체 바르지 않은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면 이 장의 작용 하에서 당신이 이런 일을 생각하지 않을 때, 모르는 가운데 당신의 배우자도 제약하게 된다.”[1] 남편은 정말로 제약됐다. 오랫동안 이 일을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는 나눠 잠을 자게 됐다. 부부관계는 이전처럼 같고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남편이 간혹 한두 번 있지만 나는 이미 그것을 담담하게 보았고 부부 사이는 조화로웠다.

3. 이익지심

1) 비자금을 모으지 않는다

남편은 1999년 집을 임차해 공장을 꾸렸는데 장사가 잘 되었다. 우리 친정 식구 세 명도 남편 회사에서 일했다. 이익의 이유로 그들은 남편에게 불만을 품어 남편의 도면을 훔쳐가 다른 공장을 세웠다. 그들은 나와 남편 사이를 이간질했다. 남편이 나와 조만간 이혼할 수 있으니 나에게 비자금을 많이 저축하라고 했다. 나는 정말로 믿고 남편의 사업이 어떤지 고려하지 않고 남편에게 돈만 달라고 하고 돈을 주지 않으면 옷을 뒤져 가져왔다. 당시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남편이 못됐다고 생각했다. 나쁜 남자를 만나 자신이 고생스럽다고 생각했다. 내가 닭을 죽이고 달걀을 가져오는 방법이 남편 공장의 정상적인 운영에 영향을 주었다. 이 일로 우리는 자주 다투어 남편이 화가 나 둘은 마음이 몹시 상했다.

2004년 봄, 남편은 이혼서류를 작성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쉬웠지만 만회할 수 없었다. 이혼할 처지가 됐는데도 나는 무슨 원인으로 이렇게 됐는지 모르고 모두 친정 식구의 말만 듣고 자신의 가정을 흩어지게 했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정말 어리석었다.

이 결정적인 순간에 어머니가 2004년 7월에 돌아가셨는데 그해 69세다. 어머니는 1995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했다. 어머니는 수련 전 온몸에 질병이 많고 검고 말랐는데 수련 후 어머니의 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비료를 뿌리고 채소를 심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고 건강하게 변했고 매일 싱글벙글했다. 대법 수련을 한 9년은 어머니는 충실하고 행복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경고했다. “나중에 나라에서 탄압하지 않으면 너희 두 자매는 대법을 꼭 배워야 한다. 대법을 수련해야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고 아름다운 무한한 천국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방할을 받아 깨어났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죽기 살기로 미친 듯이 남편에게 돈을 뜯어내 비상금을 만들고 이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가치가 있는가? 사람이 죽을 때 돈을 관속으로 가져갈 수 있는가? 돈은 그때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이다. 스스로 자신을 망치지 말자. 그 후부터 파룬궁을 잘 수련하고 공성원만 할 때까지 잘 하자. 하늘의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고 반본귀진하자! 얼마나 좋은가? 생생세세 전생하고 육도윤회하면 얼마나 고생스러운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주일 후 나는 파룬따파 수련으로 걸어 들어왔다.

대법을 배운 몇 개월 후 나는 스스로 자신이 몇 년간 저축한 비상금 10여만 위안(한화 약 1,725만 원)을 모두 남편에게 주었다. 남편은 아주 감동했다. 리 선생님께서 완고한 나를 교화시켜줬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내가 대법을 배우는 것을 아주 지지했다.

나는 자신을 ‘진선인’의 준칙에 따라 시시각각 타인을 위해 생각하게 하고 이런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동시에 자식들도 누구도 비상금을 모으지 말라고 교육하고 이런 행위는 남을 해치고 자신을 해친다고 가르쳤다.

2. 언니와 과거 원한을 따지지 않았다

형부는 남편 공장에서 2년간 판매를 담당했다. 나중에 관리에 복종하지 않아 남편은 그를 제명했다. 형부는 불만을 품고 남편을 찾아 보상해달라고 했고 그렇지 않으면 여기를 떠나지 않는다고 시끄럽게 굴었다. 남편은 분쟁을 없애기 위해 형부 말대로 계산을 해주고 비로소 마무리됐다. 이 일로 우리 집과 언니 집은 4, 5년 왕래를 하지 않았고 서로 외면했다. 나중에 언니 집 자녀가 대학에 갈 때 음식을 대접하면서 냉랭한 관계는 비로소 화해됐다.

언니와 관계가 회복된 후 한 번은 언니가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남편이 우리에게 2만 위안(한화 약 343만 원)을 빚진 것을 주지 않았다. 나는 돌아가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화가 나서 욕을 했다. 그는 말했다. “그들에게 한 푼도 빚진 것이 없어요. 반대로 그들이 판매한 물품 40여만 위안(한화 약 6,862만 원)을 회수하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회수하지 못했고 죽은 장부가 됐고 손실은 우리가 감당한 것이요.”

나는 2만 위안을 가져가 언니에게 주기로 했다. 언니에게 빚이 있든 없든 언니에게 주기로 했다. 이 세에 빚진 것이 아니면 전생에 언니에게 빚진 것으로 생각하고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2만 위안을 언니에게 가져다주자 언니는 간곡히 말했다. “2만 위안을 주지 않아도 돼. 장래 딸이 결혼할 때 남편 쪽이 조건이 좋지 않으면 딸에게 주고 만약 조건이 좋으면 그만이다. 2만 위안을 어디에 놓아도 괜찮다. 마음속으로 내려놓으면 된다.”

3. 노인을 부양하고 부모와 계모를 선하게 대하다

어릴 때 나와 언니, 어머니는 고생스럽게 살았고 산나물을 캐서 먹었다. 밥을 지을 때 반찬과 기름, 쌀, 장작이 없는 일이 자주 있었다. 1년 내내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있는 일이다. 원인은 아버지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오랫동안 밖에서 살았다. 돈이 있으면 여자를 찾거나 도박을 하고 돈이 없으면 다른 사람 집에서 살면서 우리 가족 세 명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십몇 살부터 나는 시집가고 싶었다. 이 집은 너무 고생스러웠다. 너무 고생스러워 생활하기 어려웠다. 15살 그해 나는 자립해서 구멍가게를 차렸고 담배, 술, 부식을 팔아 돈을 벌어 언니가 공부하는데 보탰다. 언니가 몇 년간 공부할 때 아버지는 종적을 감췄고 언니가 일을 다니면서 그는 또 돌아왔다. 아버지는 이렇게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언니는 아버지와 관계가 좋고 아버지를 잘 대해주고 아버지의 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그들은 전생에 어떤 인연인지 모른다.

나는 어려서 줄곧 아버지를 미워했다. 아버지가 딸들을 책임지지 않고 우리에게 세간의 모든 고생을 하게 해서 원망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충실하지 않고 포악한 것을 미워하고 그를 보면 불편하고 싫어 심지어 악몽까지 꾸었다. 꿈에서 아버지 얼굴을 한 악마가 나를 쫓아다녔다. 나는 끊임없이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었다. 그 악마는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놀라 혼이 나가는 듯했다. 내가 출가하기 전에 아버지는 작은 일로 나와 심하게 다투었다. 심지어 술을 마시고 식칼을 들고 나를 쫓아 나를 죽이겠다고 했다. 나는 단지 그를 멀리 떠나고 싶었다.

2004년 나는 대법을 수련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되고 싶었다. 나는 이전처럼 아버지를 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2005년 나는 돈을 들여 자신의 집 앞에 주방과 화장실이 있는 작은 집을 지어 차를 임대해 아버지와 계모를 작은 집으로 모셔왔다. 그들의 전기세 생활비는 모두 나와 언니가 책임졌다. 그들이 잘 드시고 잘 마시고 몸만 좋으시면 된다.

2006년 나는 새집으로 들어갔다. 방 2개와 거실이 있는 집을 그들에게 남겨주었다. 계모는 대법을 믿고 대법이 나를 바꾸게 했다고 했다. 대법 수련 전 나는 그들 둘의 관계는 물과 불의 관계이며 만나지 않으면 괜찮은데 만나면 서로 양보하지 않았다.

2017년 봄, 계모는 심근경색이 발병해 급히 응급실로 이송됐다. 수술해야 하는데 수술비가 3만 위안(한화 약 514만 원)이다. 전화를 걸어 그녀 두 아들을 찾았는데 사람을 찾지 못했다. 계모와 두 아들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고 왕래도 없었다. 이런 생사가 걸린 순간 남편과 형부는 함께 3만 위안을 모아 수술을 시켜드렸다. 퇴원 후 계모는 감동했다. 계모의 형제자매는 와서 보고 우리가 모두 좋다고 말했고 아버지의 두 딸과 사위가 그녀 생명을 구했다고 했다. 사실 계모는 두 딸에게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시비선악에서 그들은 편견을 내려놓았다. 돈을 모아 그녀 생명을 구했다. 지금 사회에서 이런 일은 많지 않다. 친자식도 부모의 생사에 관여하지 않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지금 두 노인은 조용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의식주, 병이 생겨도 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자식이 모두 책임진다. 아버지는 우리가 어릴 때 책임지지 않고 우리가 고생을 많이 해서 나는 아버지를 30년간 원망했다. 파룬따파의 박대 정심한 법리가 나와 아버지 간의 원한을 화해하게 했고 비로소 아버지를 선하게 대하고 계모도 선하게 대했다. 두 노인은 신체를 보양하고 장수하게 됐다. 그들은 행운이다. 그들은 대법의 덕을 얻은 것이고 대법의 복을 누린 것이다.

4. 대법 법리로 가족에게 질투심을 제거하게 일깨워주고 바른길을 걷게 하다

1) 남편을 설득하다

남편의 남동생은 남편 공장에서 판매를 10여 년 담당해 몇백만 위안을 벌었다. 2016년 겨울 남편의 남동생은 다른 성에서 술집을 열었다. 직원들은 모두 가서 축하했는데 유독 남편에게만 알리지 않았다. 남편은 알고 남동생이 한 일에 너무 화가 났다. 평소 성과보수, 결산에 늘 그를 돌봐줬는데 이런 대접을 받고 친형인데 남보다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처음에 듣고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질투심이라는 것을 의식했다. ‘그것을 나는 가지지 않고 그것을 멸하겠다.’ 그런 후 마음가짐이 평온했다. 나는 낮은 소리로 남편을 설득했다. “동생이 잘 되는 것을 질투하지 말아요. 동생이 더 잘 됐으면 좋아해야죠. 당신 가족 중에 사장이 몇 명 나오면 좋잖아요. 당신 한 명이 나오는 것은 적어요. 집안에 사장이 몇 명 되면 고향에서 체면도 서요. 당신 아버지가 낳은 아들이 모두 출세했어요.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예요. 동생이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말고 질투하지 말아요. 질투심은 남을 해치고 자신을 해쳐요. 그것을 없애야 해요.” 마지막에 남편은 인정했다. “나는 그를 질투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더 잘 되기를 바라요.” 나는 사부님의 법리로 남편을 일깨워주었고 형제간의 모순을 화해했다.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잘 된다! 나중에 동생은 잇따라 두 개 술집을 열었고 장사도 잘 됐다. 남편 장사도 날로 번성했다. 년 판매량이 천만 위안이다.

2) 자녀교육

딸과 옆집 딸 샤오위(小玉)는 같은 반 친구다. 샤오위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여자애이고 성적이 좋다. 딸은 밥을 먹고 공부할 때 오후반에 있고 성적은 그녀와 별 차이가 없다. 시험 성적이 나온 후 딸은 샤오위 점수를 보고 자기보다 그녀의 점수가 낮으면 기뻐했다. 돌아온 후 샤오위 성적이 자신보다 얼마 적다고 말했다. 나는 당시 개의치 않았는데 몇 번 듣고 아이의 질투심이 자라고 있는 것을 인식했다. 나는 딸에게 알려줬다. “친구와 점수를 비기지 말아라. 친구의 점수가 잘 나와도 너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지 않고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도 너에게 영향이 없다. 엄마 아빠는 네가 점수가 낮다고 너를 비평한 적이 없고 늘 너를 칭찬했다. 네가 하는 작은 일이라도 잘하면 칭찬해 주었고 격려해 주었다. 나중에 친구가 시험을 잘 보면 그에게 축하해 주고 너보다 잘 보지 못하면 그에게 힘내라고 격려해 주어라. 질투심을 없애고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을 보면 너는 기뻐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슬픈 일을 보면 너는 동정해야 한다. 그러면 너의 선한 마음은 나오고 질투심이 사라진다.” 그 후부터 아이는 더는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시험을 잘 보지 못해도 기뻐하지 않았다.

3) 아들을 지도하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성신고시(誠信考試)에 매번 참여했다. 시험 볼 때 많은 학생은 부정행위를 하고 베낀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성신고시의 항목을 진행했다. 선생님 감시 없이 시험 보고 학생이 자원하여 신청한다. 시험 점수는 진실하고 효과적이다. 기타 학생은 모두 부정행위를 해서 높은 점수를 따내려 하기에 한 반에 몇 명이 자원으로 참가한다. 아들은 매번 참가했다. 그의 점수는 진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그를 많이 칭찬했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 시험을 봤는데 반 전체에서 1등을 했다. 단번에 반의 모든 학생이 모두 인정한 것이다. 나는 그를 교육했다. “친구와 잘 지내고 선하게 주변의 매 사람을 대해야 한다. 함께 나가 물건을 살 때 대범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점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너의 이익을 차지하면 되지만 인색하지 말고 시시콜콜 따지지 말아야 큰일을 치를 수 있고 장래성이 있다. 친구가 모르는 것이 있어 너에게 물으면 모두 알면 알려주라. 다른 사람이 너보다 시험을 잘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남자 마음은 하늘처럼 넓어야 나중에 큰 사업을 성취할 수 있다.” 아들은 나의 말을 듣고 따랐다. 그러므로 그는 반에서 인기남이 됐고 남학생과 여학생, 선생님은 모두 그를 좋아한다. 학생들은 모두 그와 놀기 좋아하고 생활, 학습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그를 찾는다. 그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좋아했고 여기에서 행복과 우정을 얻었다.

한번은 반을 나누는 시험이 있었는데 성적에 따라 좋은 반과 나쁜 반에 간다. 이번 시험에서 아들은 잘 보지 못해 성적이 몇십 등이었다. 평소 성적이 좋지 않던 학생들도 그 앞에 있었다. 그는 돌아와 크게 울며 억울하다고 말했다. 시험 볼 때 많은 학생이 핸드폰으로 부정행위를 했지만, 그는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보다 시험을 잘 보지 못해 좋은 반에 배정되지 못했다. 나는 우선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인정하고 어려서 신용을 양성해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칭찬했다. 아들에게 알렸다. “사람의 일생은 정해진 것이고 신이 배치한 것이다. 사람이 출생하면 이미 배치해 놓았고 언제 공부를 하고 언제 직장을 다니고 언제 결혼을 하는 것까지 모두 배치해 놓았다. 너는 자연스럽게 가면 된다. 강제로 구해도 구할 수 없다. 성적이 높은 학생이 부정행위를 하든지 너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질투심이 있으면 안 되고 불평이 있으면 안 된다. 질투심은 가장 나쁜 마음이다. 장쩌민은 질투심으로 이지를 잃어 제멋대로 파룬궁을 20년 동안 박해해도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너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질투심을 제거해야 한다.” 아이를 일깨워줬더니 알아듣고 기분 좋게 학교에 갔다.

1998년 28살 때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공원 화단에 큰 나무가 자랐다. 나무에 황금색 꽃이 빼곡히 피었고 반짝반짝 빛났다. 한 뭉치 한 뭉치 아주 아름다웠다. 나뭇잎이 보이지 않고 나뭇가지가 황금색이었다. 나는 꿈에서 참을 수 없어 감탄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은 하늘의 꽃이고 인간의 것이 아니다. 신선이 되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신선이 될까? 깨어난 후 오랫동안 돌이켜 음미했다. 그리고 일기를 썼다. 꿈을 꾼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일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을 했다. 나는 딸을 임신한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한 명 출산하고 싶었는데 남자아이를 낳고 싶었다. 사당의 무신론의 독해 아래 나는 주저하지 않고 유산을 했다. 당시 전혀 미안한 마음이 없었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그해 그 애를 출산했으면 그 아이는 아마 선녀처럼 아름다운 딸이었을 것이다. 나를 찾아 법을 얻으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 후회는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자주 이 꿈을 아들, 딸에게 말한다. “본래 너희들은 예쁜 언니가 있을 것인데 내가 사당의 무신론 독해를 받아 직접 아이를 죽인 것이다. 나는 한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다행히 내가 대법을 수련했기에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은 무소불능하기에 나와 너희 언니들과의 원한을 선하게 해결해 주셨고 그녀가 좋은 곳으로 가게 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어린 나이에 연애하고 임신을 하고 낙태하는데 사회 기풍이 나빠졌다. 그러나 우리 대법제자 가정의 자녀는 같지 않다. 나는 사부님의 가르침으로 자녀들을 바른길로 이끌고 인생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잘 걷게 하겠다. 인생의 길에서 무지하고 후회하는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7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3/3828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