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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도로를 보수했던 고생과 즐거움

글/ 중국 대륙대법제자 칭류

[밍후이왕] 저는 농촌에 사는 교사이며, 제가 길을 닦고 보수하며 지나온 20여 년을, 꾸밈없는 신앙인의 그런 고상한 거동을 촌민들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전체 마을 백여 가구 사람과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더해 저를 한번 언급하기만 하면 평판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했으며, 연이어 공산당은 돼먹지 못했다고 욕을 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길을 보수하는 것이 어떻게 쉽지 않았다고 자랑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이 저를 칭찬할 때면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이후 저는 일 처리에서도 진선인(眞善忍) 대법으로 자신을 요구했고, 말하고 일을 하면서 타인을 생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예전처럼 이기적이지 않고, 너그러워졌으며, 성격도 고치고 병도 없어졌습니다.

저에게 수련 이야기는 참 많으나 여기서 한 가지 사건만을 말하려고 합니다. 바로 20여 년 동안 마을의 길을 보수한 이 일은 비록 별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대법이 저를 달라지게 한 것이고, 마음을 닦아 선을 행하게 하여 고상하게 변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도로에서 우리 집 앞까지는 1리(약 400m) 남짓 떨어져 있으며, 이것은 흙길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길로 다닙니다. 여러 해 동안 보수하는 사람이 없어 울퉁불퉁해졌고,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매우 질퍽거려서 자전거를 타고 조심하지 않으면 길가 도랑으로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이 길은 많은 원성과 욕설이 남겨졌습니다. 그러나 원성은 원성일 뿐이고, 욕설은 욕설일 뿐, 욕하고 난 이후에도 이 길은 옛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웅덩이와 진창이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한 이후 저는 생각했습니다. ‘대법은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수련과정 중에서 자신을 갈수록 선(善)하게 수련하여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모두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는 정도로 선해진다면 무사(無私)한 생명으로 수련 성취된다.”[1]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할 것인가? 작은 것에서 실천하자. 이 도로는 나도 출퇴근하며 매일 다니는데 원망하고 욕을 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내가 자발적으로 보수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저는 아침과 저녁 또는 주말 시간을 이용해 손수레로 흙을 날라다 도로의 웅덩이를 평평하게 했고, 또 삽으로 길 양쪽의 풀을 쳐내어 길이 좀 넓어지게 했습니다.

이 일은 비록 단순하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많은 뜬소문을 겪었으며 좋은 일은 하기도 쉽지 않았으며, 낯가죽이 얇아 더욱더 부끄러웠습니다. 어떤 사람은 “촌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거 아니야? 촌장 경선은 돈을 뿌려야 할 텐데!” 또 어떤 사람은 저에게 “이렇게 전력으로 하는데 정부에서 한 달에 얼마 줍니까?”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이처럼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으며, 마치 제가 이 일을 하는 것이 몹시 이상한 듯했습니다.

몇 차례 저를 보았던 한 젊은이가 말했습니다. “당신 신문에 나서 유명해지고 싶어 이렇게 합니까?” 저는 그저 웃었습니다. 그는 제가 한 삽 한 삽 흙을 가져다 길에 깔며 온 얼굴이 땀투성이로 힘든 것을 보고는 무슨 의도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웃의 한 형님은 “내가 보니 너는 참 한가한 것 같구나! 뭣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냐? 촌 간부도 모두 상관하지 않는데 그것을 관리하다니!”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도 제게 여러 번 말했습니다. “아무도 메우지 않는데, 당신도 다니기만 해요.” 저는 말했습니다. “도로가 좋으면 모두에게 편리하지 않겠어?”

시간이 오래되자 사람들도 험담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 모두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마치 답안을 찾은 듯했습니다. 제가 길을 보수할 때 어른이든 어린이든 지나갈 때면 몇 번이고 감탄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홀가분하여 일할 때 힘이 났습니다.

1리 남짓의 길이 얼마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날마다 사람과 차량의 왕래가 빈번하여 웅덩이가 많아 자주 메워줘야 합니다. 특히 여름에는 한바탕 많은 비가 내리고 나면 길은 울퉁불퉁하여 물이 고이므로, 웅덩이를 메워 평평하게 하지 않으면 어른도 아이도 길을 다니기가 불편합니다. 이때 저는 손수레를 밀며, 때로는 이슬비를 맞으며 멀리서 흙을 한 수레 한 수레 날라다 길에다 깔았습니다.

우리 집은 산간 지역이라 돌이 많고 흙이 적기 때문에 먼 곳에서 흙 한 수레를 가져오려면 반 시간 남짓 걸립니다. 한 수레 싣고 끌고 가서는 필요한 곳에 잘 깔아 평평하게 하려면 한나절 해도 몇 수레 나르지 못합니다. 나중에는 가까운 마른 하천에서 흙을 파서 돌과 흙을 분리하고 한 삽 한 삽씩 둑 아래에 쌓아놓은 다음 둑 위로 던져 올려서 다시 수레에 싣고 깔아야 할 곳으로 밀고 가는데, 매우 힘이 들며 수레 한 차에 흙을 가득 채우려면 시간이 꽤 걸립니다. 가끔 주말과 맞아떨어지면 저는 집안일을 마치고 나서 하루 혹은 한나절 동안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어떤 때는 손바닥 피부가 벗겨져 몹시 따갑고 아픕니다.

여름철에는 길을 보수하려면 가장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데, 불볕더위로 날이 뜨거워 조금만 일해도 온몸이 땀에 젖어 힘써서 일하기 어렵습니다. 때론 힘들여 웅덩이를 평평하게 메워도 한바탕 큰비가 내리면 와르르 쓸려가 버리고, 오가는 차량이 한번 지나가기만 해도 흙이 없어져 버려 도로는 여전히 울퉁불퉁한 상태가 됩니다.

장마철 며칠 연속 날이 개지 않으면, 저는 비옷을 입고 삽을 들고 모래를 퍼다깔았으며, 이렇게 계속해서 메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제가 말수가 적고, 말하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며, 제가 대법을 배운다는 것도 알게 되어 그들은 점점 대법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엄지를 세워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자와 비료를 파는 사람이 “나중에 내가 사람을 찾아 ‘살아있는 뇌봉’이라고 신문에 홍보해야겠어요!”라고 말했으며, 어떤 사람은 운전하고 가다 내가 길가에 삽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운전석에 앉아 “제자리에 서!”라고 농담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입니다. 대법제자는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하며, 할 때는 진실하게 거짓 없이 해야 합니다. 만약 제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위해 도로를 보수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일이 오래되자 가끔 원망이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길에 웅덩이가 너무 많아 나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여름이면 불볕이라 잠시만 일하면 짜증이 올라왔습니다. ‘마을에는 수십 가구가 있고 많은 사람이 있어 삼륜차, 사륜차를 가진 집도 많은데 누가 차를 갖고 나와서 흙을 한 차 가져오면 얼마나 일이 쉽겠는가? 내가 며칠을 해야 할 수 있는데 왜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까? 모두에게 스타일이 좀 있듯이 이 길도 이렇게 망가지면 안 되지 않겠는가? 촌 간부는 온종일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또 생각했습니다. ‘내가 누구를 원망하는 것이지? 누가 나를 강제로 하게 했는가?’ 사부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2] 그렇습니다. 저는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음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제가 사람과 비교한다면 어떻게 대법제자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후에 이 흙길은 상부의 도로 정책에 따라 포장도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품질이 매우 좋지 않아 2년도 되지 않아 6~7곳이 심하게 손상되어 많은 곳이 울퉁불퉁해졌습니다. 도로가 워낙 좁아서 운전할 때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져 길은 다시 원성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변함없이 예전처럼 다시 도로를 보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20년 동안 길을 보수한 행동을 마을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칭찬합니다. 한 공장의 주인은 평소 화물을 싣고 이 길을 가는데 저에 대한 호감을 느껴 때로는 지나가며 차를 세우고 나와서 저와 한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지게차로 흙을 한 차 싣고 와서 깔았는데 제가 며칠 한 것보다 효과가 있었습니다.

마을 반장은 제 인품이 훌륭하다고 칭찬했으며, 어떤 때는 제가 고생하며 일하는 것을 보고 삽을 들고 와서 한동안 저를 돕기도 했습니다. 2015년 저는 실명으로 박해 원흉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했고, 나중에 사람들이 나와 저를 조사하자 촌 간부가 이를 저지했습니다. 일이 있고 난 이후에 이 일을 말하자 어떤 마을 사람은 “당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 세상 어디에 좋은 사람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남에게 장미를 주면 손에 향기가 남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대가를 치르면 스스로도 고상함을 느끼며, 복보(福報)의 일도 당신에게 떨어질 것입니다.

본래 저는 말주변이 없고 고지식한 사람이며,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능력 없는 사람이지만, 사실 능력이 있다는 것은 세상의 좋은 것을 좀 많이 얻으려는 것일 뿐입니다. 제가 능력이 없어도 대법이 제게 준 복보는 마찬가지로 적지 않았고, 심지어 속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으며, 좋은 일이 언제나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 직무 평가를 할 때는 많은 사람이 죽기 살기로 다투지만 결국 상사는 저에게 빗방울을 뿌려주었습니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이 평범해서 아내는 걱정했으나 어찌어찌 하여 큰 회사의 초빙으로 채용되어 사무실에 근무하며 봉급도 많이 받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연줄이 든든한가 봐요?” 저는 웃고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무슨 연줄이 있겠는가? 내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나의 사부님은 위대하시며, 위대한 사부님과 대법이 나를 이처럼 고상한 제자로 만들어 주셨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아내는 대법을 배우지 않았고,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거짓 선전의 영향으로 제가 연공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이 일로 적지 않은 싸움을 했습니다. 점차 그녀는 제 성격이 좋아진 것을 보았고, 20년 넘도록 약 한 알 먹지 않아도 신체가 건강한 것을 보고는 믿게 됐으며, 때때로 몰래 제 대법 서적을 가져다 보기도 했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났을 때 그녀는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 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더니 정말 효과가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대법은 위력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선량한 사람들이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확실히 기억하여, 모두 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미국서부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정진요지-경지’

 

원문발표: 2019년 7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득>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 실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18/3895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