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위안팡(遠方)
[밍후이왕] 최근 밍후이왕에 ‘심상(心想), 심동(心動), 행동(行動)’이란 문장이 발표되었습니다. 문장 마지막에 “사부님의 법리 표면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실제 수련에서는 차이가 크다. 안일심과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색욕심이 내가 정진하는 발길을 교란하고 있다. 시간이 긴박해 확실히 결심을 내려야겠다. 강대한 정념으로 의지를 강화하고 이런 나쁜 물질을 제거해 ‘세 가지’ 일을 더 잘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많은 희망을 줘야겠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문장을 보고 법공부하는 인식에서 더 완벽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장을 쓰려고 저는 몇 번이나 시도했습니다. 확실히 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법공부할 때 도리를 알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못하면 자신에게 ‘잠재적’으로 묻게 되고, 자신을 ‘중도에서 그만두게’ 할 것입니다.
저는 윈꾸이(雲貴) 고원에 가보았고 베이징과 광시(廣西)에도 가보았으며, 화동(華東)의 장쑤(江蘇)와 동북의 랴오닝(遼寧) 등 지역에 가보았습니다. 또 현지 일부 대법제자도 만나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수련에서 저는 그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천목으로 본 것이 아니라 법이 알게 한 것입니다. 바로 많은 사람이 법공부를 하지만 이해한 것은 너무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이 ‘미혹’을 풀기 위해 저는 자신이 있는 층차에서 법공부에 대한 약간의 인식을 말해보겠습니다. 층차의 제한으로 법에 부합하지 않는 곳은 바로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중국인은 무슨 일을 해도 빨리, 서둘러 완성하려고 합니다. 이런 마음 상태는 대법 수련생의 법공부 중에서도 나타납니다.
저는 1949년 이후에 중국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당 문화 속에서 자란 중국인입니다.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은 ‘크면 좋은 일자리를 찾고, 좋은 아내를 찾아 좋은 생활을 해라’였습니다. 전통문화에서 말한 도덕 수양과 문화이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법공부를 하려면 어려웠고 곤혹스러웠습니다. 오늘까지 저는 법공부할 때 머리에 한층의 흐리멍덩한 물질(관념과 사상 업력)에 싸여있는 것 같습니다.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다 잠이 들곤 하는데, 길 때 한번 잠들면 반 시간을 잘 수 있으니, 법공부할 때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비록 가방끈은 길지 않지만 저는 하나의 이치를 알았습니다. 공부하려면 연구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저는 늘 궁리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법을 배울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법을 잘 배울 수 있을까?’
저는 거의 매일 밍후이 교류문장을 봅니다. 대법제자 세 명의 경험이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한 명은 법 암송으로 그에 대한 감옥 사악의 생사 박해를 넘어왔습니다. 한 명은 사부님의 법상을 상상해 감옥 사악의 박해를 없앴습니다. 또 한 명은 업무시간이 길어 법공부할 시간이 없어, 출근할 때 이어폰으로 법을 듣고 수확을 얻었습니다.
저는 이 세 분의 체험을 믿습니다.
이렇게 저는 새로운 법공부 실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빨리빨리’를 추구해 들었든 듣지 못했든 보았든 보지 못했든 계속 앞으로 하기만 했는데 효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빠름을 추구하지 말고 천천히 하자. 속히 이루려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저는 매일 한 강의만 듣는 것으로 조정했습니다. 같은 한 강의를 저는 매일 외우고 듣고 보았습니다. 점차 사부님의 법에 이끌리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제가 동영상을 보다가 잠이 들면 깨어난 후 듣지 못한 부분으로 돌아가서 다시 들었습니다. 전체 이 한 강의를 완전하게 보고, 듣고, 외워야 속이 편했습니다. 게다가 온종일 외워도 저는 한 강의밖에 외우지 못했고, 듣는 것은 약 두 강의를 들을 수 있고, 보는 것도 약 두 강의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매일 반복했습니다.
정말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약 한 달 후,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법은 제게 많은 것을 알게 했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은 법을 얻었을 때의 마음과 같지 않았는데 비교적 ‘침착’해졌습니다.
우리 50세가 넘은 사람들은 거의 다 인도 영화 ‘캐러밴(Caravan)’을 보았을 것입니다. 영화 중의 인도 아가씨가 복부를 드러내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중국인은 보고 난 후 모두 인도인이 어떠어떠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은 중국인이 당 문화의 독해를 너무 깊이 받아서, 신앙이 없어서 허튼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인도 아가씨의 옷차림새는 천상 신의 옷차림의 일종입니다. 이것을 저는 사부님 ‘홍음’ 중의 삽화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당 문화가 우리 민족을 독해시켰고, 우리 중국인의 마음을 비뚤어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인도인은 침착한 국민 마음 상태가 있으며, 인도인의 오성은 매우 높습니다. 한 인도학교의 교장이 꿈을 하나 꾸었는데 깨어난 후 파룬궁을 찾아갔으며, 그 후 전체 학교 선생님과 학생을 이끌어 함께 파룬궁을 배웠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평소 당 문화를 제거하는데 주의하는 편입니다. 게다가 법공부하면서 하나의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중국인이 가야 할 길은 사부님이 벌써 우리에게 다 배치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법공부하는 동시에 매일 ‘9평’ 시리즈 평론도 함께 공부합니다.
더 명확하게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들어, 제가 어떻게 법을 배웠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우리 대법 수련생은 일반적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 공부해야 한다.’, ‘법의 표면적인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압니다. 나는 법을 배우는 실천 중에서 이 양자는 상보상성하는 것이고, 게다가 법의 표면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보다 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왜냐하면, 당신이 법공부하면서 법을 이해할 때, 이때 당신의 주의력이 집중되는데, 이미 법에 동화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사례. 밍후이왕은 7월 11일 ‘밍후이 20주년 보고(1)’을 발표했습니다. 밍후이왕 인권 보고> ‘제1장 파룬궁은 사회에 복을 주고 중공 박해는 위법이다’ 그 중 ‘5. 중공의 파룬궁 박해 현주소’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실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정책을 중지하지 않는다면, 박해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1999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의 박해에서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변화가 있다고 말한다면 수단에서 새로운 특징이 생겼을 뿐이다. 이 특징은 간단하게 ‘직업화’와 ‘디지털화’로 총결할 수 있다. 십수 년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의 610은 이미 수십만의 전업 단체를 키워냈다. 겸직과 주변 인원까지 더하면 수백만 대군이 모두 신앙을 박해하고, 파룬궁을 타격하기 위해 돌아가고 있다. 610은 아직 단지 하나의 각 부문을 조정해 박해에 가담하는 기구일 뿐이다. 구체적인 집행 부문, 문자 선전(이른바 ‘반 사교협회’를 포함), 안보 경찰, 사법계통, 세뇌반(이른바 ‘법제 교육센터’를 포함) 등 기능 단위들은 모두 상응하는 일부 사람이 장기간 파룬궁을 박해하는 관련 임무에 종사하고 있으며, 파룬궁 박해를 직업 혹은 반 직업으로 하는 단체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학교 문을 나서자마자 610으로 모집되어 들어가 한번 하면 20년이다. 한 차례 박해 지속시간이 이 지경으로 길어져 굳어진 것으로 변했다. 일부 사람은 당연하게 파룬궁을 수련하면 죄를 범했다고 생각하고, 파룬궁을 박해하고 신앙 자유의 기본 인권을 짓밟는 악행을 하나의 정상적인 직업으로 대하고 있다. 이런 ‘직업화’의 나쁜 결과는 바로 더는 장렬한 운동 형식이 필요 없고, 이번 박해를 더욱 은밀하게 변화시킨 것이다. 동시에 또 더욱 사악해졌다. 왜냐하면, 박해 행위는 일상생활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민에 대한 범죄를 정상화, 전업화, 직업화, 장기화했다. 이것이야말로 인성과 양지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짓밟음이다.”
법 공부하면서 이 단락 말에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중공 사회의 ‘실과 득(失與得)’은 이미 완전히 기본적인 도덕과 법률 의미를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공산당의 전체 사회를 모두 도와서 죄를 범하고 살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파룬궁 수련생들은 또 이런 사악한 사회 중에서 수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법공부할 때 중국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또 일반 국민이 정상 생활 중에서의 ‘실과 득’을 깊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체 인식에서는 속인 사회의 일체 이론과 관념을 배척하고 제거합니다.
또 예를 들면 저는 사부님의 ‘광저우 설법’을 들을 때 깨달았습니다. ‘그 수련인은 자신을 느슨히 해서 떨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을 느슨히 해서는 안 되고 계속 다그쳐야 한다.’
원문발표: 2019년 7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15/3900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