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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법회] 대법의 홍대한 은혜, 수련인을 만들다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 법을 얻다

저는 2013년 홍콩에 이민 왔습니다. 1999년 3월 30일 중국에서 법을 얻었고 수련생의 소개로 사부님의 광저우 설법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당시 수련생이 제게 가부좌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다리를 트니 두 다리가 다 올라갔습니다. 수련생이 가부좌를 견지할 수 있으면 소업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당시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면서 한편으로 결가부좌를 견지했습니다. 처음으로 결가부좌를 할 때 45분 앉았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저리고 마음이 소란스럽고 온몸에 땀이 났습니다.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나를 관여해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밤새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인상이 가장 깊은 것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진선인(眞善忍)’입니다. 마음속으로 진선인은 참 좋다고 생각하고 배우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련생에게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빌렸고 일주일 동안에 책을 다 보았습니다.

법에서 저는 “真(쩐)ㆍ善(싼)ㆍ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1]를 배웠습니다.

처음으로 사부님의 법상(法像)을 보았는데 마치 육친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마치 어디에서 만나 뵌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법륜’을 보고 저는 사람이 되는 목적은 수련해 반본귀진하는 것이고 파룬궁은 성명쌍수의 공법이고 사람 도덕을 회복시킬 수 있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아주 좋은 공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저는 한 달 동안 설사했는데, 소업하고 신체 청리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2. 대법을 실증하고 박해를 부정

1999년 7월 20일 전, 저는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 공원에 가서 단체 연공에 참가했습니다. 저녁에 단체 연공에 참가하고 단체 법공부와 홍법에도 참여했습니다. 아침에 다섯 가지 공법을 하고 출근하면 매일 마음이 편안했는데, 성격이 좋아지고 몸의 병도 완쾌됐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안으로 찾아 자신이 어디서 잘하지 못했는지 찾았습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7.20 하늘을 뒤엎는 듯한 탄압이 왔습니다. 모든 TV, 라디오, 신문에서 거짓말을 보도했습니다. 수련생이 저를 격려해 주었고 저에게 신사신법하게 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파룬궁을 배운 것이 잘못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법을 얻어 혜택을 받았기에 가족도 법을 얻게 했습니다. 저는 언니에게 말했습니다. “‘전법륜’ 이 책은 보물 같은 책(寶書)인데, 아주 소중해요. 어떤 가치로도 가늠할 수 없어요.” 언니는 호기심에 ‘전법륜’을 보고 법을 얻었습니다. 대법 책은 아주 값진 보물이고 속인 중에서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습니다.

2000년 7월 19일, ‘610’이 찾아와 저와 언니에게 허산(鶴山)파출소에 가서 몇 마디 하자고 속였습니다. 파출소에 가자마자 우리에게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수련하고 있으면 감금시키고 수련하지 않으면 즉시 풀어줘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와 언니는 말했습니다. “견정하게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파룬궁은 사람에게 선을 향하게 하고 마음을 닦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연공하면 몸이 건강해지기에 우리는 반드시 할 겁니다.” 그날 밤 우리를 각기 다른 유치장에 감금했습니다. 이유는 ‘파룬궁을 수련’해서입니다. 우리는 15일간 불법 구류를 당했습니다.

2000년 10월, 저와 수련생 몇 명은 차를 여러 번 바꿔 타며 사복 경찰의 미행을 피하고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다 베이징 톈안먼에 호법하러 갔습니다. 저는 텐안먼 광장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현수막을 펼치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주세요!” 당시 톈안먼 광장에 전국 각지에서 온 많은 수련생이 있었습니다. 연공을 하는 사람, 현수막을 든 사람, ‘파룬따파하오’의 소리는 톈안먼 광장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경찰은 쉬지 않고 우리를 붙잡았습니다. 제가 경험이 없기에 현수막을 펴고 경찰이 나를 붙잡으러 오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런 후 저는 베이징 핑구(平穀)현 핑구파출소에 10일간 갇혔습니다. 제가 이름을 대지 않고 어디에서 왔는지 말하지 않았기에 저는 몇 번이나 혹독하게 맞았습니다. 강제로 사진을 찍히고 손도장을 찍었습니다. 저는 9일간 단식했는데, 코로 쌀 물을 주입 당해 피를 좀 흘렸습니다. 10일 후 저는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저에게 일련번호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제가 파룬궁 수련을 견지했기 때문에 직장에서 나를 해고했습니다.

2000년 12월 30일 저는 다시 베이징에 호법하러 갔는데, 광저우 기차역에서 경찰이 가로막았습니다. 저는 현지 파출소로 호송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박해 구실은 ‘사회 관리 질서를 방해한다.’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치안관리 처벌조례’ 집행 구실을 찾아 나를 불법적으로 15일 구류했습니다.

2001년 2월 14일 ‘610’은 우리를 찾아와 저와 언니를 납치했습니다. 우리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었고 그들은 강제로 5층에서 우리를 1층까지 끌고 갔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경찰이 좋은 사람을 잡아요.”라고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610’은 멈칫하다가 즉시 우리를 차에 태우고 신청(新城)파출소로 갔습니다. 그날 밤에 허산(鶴山)구치소로 이송했습니다. 박해 구실은 ‘불법 단체 연공’한 것입니다. 15일간 구류 당했습니다. 제가 연공을 포기하지 않자 30일 후에 저는 집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불법적으로 1년간 산수이(三水) 여자노동교화소에 감금됐습니다. 언니는 구치소에서 단식으로 항의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시달려 뼈만 남았고 목숨이 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두 발을 80cm 벌리고 몇 십 근 되는 족쇄를 찼습니다.

2002년 3월 16일 저는 구치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비로소 현지 몇십 명 수련생이 2월 14일 전부 납치됐고 모두 노동교화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그사이에 저는 줄곧 진상 편지를 써서 현지 사람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게끔 했습니다. 현지 ‘610’은 사람들이 진상을 알까 봐 온갖 방법으로 진상 편지를 가로챘습니다.

진상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또 파룬궁 수련을 견지했기에 저는 장먼(江門) 마약 중독자 재활원 세뇌반에 수감됐습니다. ‘610’은 저를 핍박해 전향서를 쓰게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쓰려면 잘 써야 한다.’ 저는 “파룬궁은 가장 바른 것이고 가장 좋은 것이고 가장 위대한 것이고 가장 우수한 것이고 백 가지 이로움은 있어도 한 가지 해로움도 없습니다. 제가 생명으로 대법을 지키는 것은 저의 가장 큰 영광입니다. 저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할 것입니다.”라고 썼습니다. 저는 당시 두려운 마음이 없고 불법 수감이 얼마나 긴 시간일지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신앙은 자유이고 연공하는 것은 죄가 없으며, 일체가 사부님의 배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뇌반은 한 달 동안 저를 가뒀다가 석방했습니다. 그 후 저는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2002년 8월 13일, 제가 막 집에 갔을 때 ‘610’이 찾아와 나를 납치했습니다. 그날 밤에 불법으로 허산 구치소에 갇혔고, 그 후 산수이(三水) 여자노동교화소에서 불법으로 1년 6개월 노동교화를 선고받았습니다. 2003년 12월 29일 석방됐습니다.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고 진선인을 신앙해 현지 ‘610’에 ‘감시 대상 명단에서 적극 분자’로 낙인찍혔고 출국이 금지됐습니다.

허산시 구치소에서 한 달 있고 난 뒤 저는 산수이구(三水區)성 여자노동교화소 1구간 2대대로 이감됐습니다. 노동교화 기간 핍박해 세뇌반에 참가하게 하고 생산 노동에 참여하게 했으며, 여러 차례 신체검사를 강요당했고, 두 번이나 피를 뽑았습니다. 대대장은 전향하지 않으면 서북부 지역으로 보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전향기지’에서 강제로 이송됐고 여기는 ‘물 감옥’이라고 부르고 또 ‘공격대’라고도 부릅니다. 19일간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두 손을 뒤로 쇠고랑을 채우고 단지 쭈그리고 앉는 한 자세를 취해야 하고 움직이면 전기봉으로 때렸습니다. 때로 하루에 한 번 화장실을 가게하고, 세뇌 비디오, 세뇌 통계자료를 보게 하고, 고음 헤드폰을 듣게 강요했고, 파룬궁 모욕하는 내용 녹음을 듣게 했습니다. 벽에 파룬궁을 모욕하는 내용의 큰 글씨로 쓴 표어가 있고 4명의 경찰과 2명의 죄수가 24시간 바꿔가며 박해, 세뇌, 전기봉을 가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벽에 부딪히며 항의했습니다. 그들의 저에 대한 정신과 육체에 대한 박해는 저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허산 구치소는 매번 감금하면 강제로 120위안 식비를 내게 했습니다. 저는 허산 구치소, 유치장에서 연공을 견지했고 감옥 규칙 구호에 협조하지 않고 수공업에 참가하는 것을 협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제게 연공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강제로 족쇄를 채웠는데, 몇 십 근이 되는 일자형 족쇄 수갑과 십몇 근의 목 수갑을 이용해, 발을 80cm 갈라지게 해서 목, 손, 발은 함께 채워 사람을 괴롭혔습니다. 7~8일에 한 번 풀어주고 20분 샤워 시간을 준 후 샤워 후 즉시 채웠습니다. 화장실 가기도 극히 어렵습니다. 잠을 자도 눕지 못했고, 단지 앉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는 자세로 화장실 옆의 시멘트 바닥에 비스듬히 있어야 했습니다. 선한 마음이 있는 죄수는 나를 도와 얼굴을 씻겨주고 화장실 가는 것을 도와줬습니다. 저는 구치소, 유치장에서 파룬궁 진상을 알려 대다수 죄수는 진상을 알았습니다.

저의 남편 왕빈(王斌)은 중국에서 1996년 파룬궁을 수련했고 수련을 견지하고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됐기에, 그는 여러 번 중공 사당에 의해 불법 미행당했습니다.

2000년 12월 20일, 왕빈은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불법 체포됐고 산수이 노동교화소에 3년을 불법으로 갇혔었으며, 여러 차례 비인간적인 모진 고문의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2006년 11월 1일 밤 10시, 왕빈은 수련을 견지하고 진상을 알리다가 사람에게 신고당해 장먼(江門) ‘610’ 및 화원(花園)파출소는 사람을 파견해 가산을 몰수하고 구타하고 납치했습니다. 불법으로 산수이 세뇌반에서 박해를 했습니다. 당시 저의 딸은 막 5개월이었는데, 딸을 업고 가족 및 왕빈의 누나와 함께 공안국에 사람을 풀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딸을 업고 왕빈의 누나와 함께 산수이 세뇌반에 사람을 풀어달라고 했는데, 세뇌반에서는 만나지 못하게 하고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해외 각계 정의로운 인사와 대법제자가 구출해 6개월 만에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017년 5월 22일, 왕빈은 ‘610’ 및 경찰에 납치됐고 가산을 몰수당했으며 불법으로 장먼구치소에 갇혔습니다. 1년 7개월 동안 박해 당했습니다. 변호사는 장먼시 펑장(蓬江)구 법원에서 ‘형사판결서’를 보냈습니다. 법원은 왕빈이 사용하는 핸드폰의 위챗에서 그룹 채팅으로 파룬궁 진상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8년 중형을 선고했고, 게다가 3만 위안(약 514만 원) 벌금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전해 들어 알게 됐는데 왕빈은 사오관(韶關)감옥에 갇혔다고 합니다.

저의 딸은 12살이고 중국에서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잠시 친척 집에 살고 있는데, 부모와 함께 모이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일 아빠 엄마를 생각하고 있어서 제가 가장 근심하는 것은 딸의 안전입니다.

왕빈이 불법으로 갇힌 후 ‘610’은 우리 집주인을 협박했습니다. 집주인은 우리에게 2개월 안에 이사하라고 핍박했습니다. 저는 당시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2]라고 느꼈고, 하나하나의 관과 난 앞에서 마치 3일이라도 잘 지내본 적이 없는 느낌입니다. 홀로 생활에서 각 방면의 압력 문제를 감당해야 하고 마치 무형의 압력이 마치 큰 돌처럼 내 가슴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홍음’의 ‘마음고생’, ‘위덕’을 외우며 이렇게 걸어왔습니다.

3. 대법에서 큰 복을 얻다

저의 딸은 대법에서 큰 복을 얻었습니다. 딸은 줄곧 대법의 보호 아래 건강하고 편안하게 자랐습니다. 딸이 막, 말을 배울 때 제가 딸에게 가르친 첫마디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입니다. 딸은 출생 후 병원에서 강제로 딸에게 예방접종 두 대를 맞혔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여태 딸을 병원에 데려가 신체를 검사한 적이 없고, 주사 한 대 맞은 적이 없고, 약 한 알 먹은 적이 없습니다. 매번 열이 오르고 몸이 불편하면 저는 딸에게 ‘전법륜(轉法輪)’을 읽어주고 사부님의 설법을 들려주면 하루 이틀이면 나았습니다.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가정에 통보도 없이 학생을 강제로 소선대에 가입시켰습니다. 그날 딸은 붉은 스카프를 가져왔습니다. 딸은 그것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 탈퇴하고 싶었습니다. 이튿날 저는 반 주임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가장은 아이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런 정치조직을 싫어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탈퇴를 요구합니다.”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만약 탈퇴하면 많은 소선대 단체활동 여행 가는데 참가하지 못합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만약 탈퇴하면 붉은 스카프를 저에게 주세요,” 매주 사당 당기를 올리는데 모든 학교에서 우리 딸만 붉은 스카프를 착용하지 않았고 경례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선대원인 친구가 우리 딸에게 경례하라고 하자 딸은 말했습니다. “저는 소선대를 탈퇴했습니다. 경례하지 않아도 됩니다.” 선생님도 말합니다. “그녀는 소선대를 탈퇴했다.” 학생들이 사당 국가를 부르면 딸은 ‘파룬따파하오’ 노래를 불렀습니다. 속으로 사당 국기가 올라가지 못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딸은 8살 때 속인이 말하는 홍역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온몸에 빨간 물집이 났고 아프고 가려웠습니다. 저는 홍콩에서 일하다가 휴가를 내고 중국에 들어가 딸과 함께 있었습니다. 장기간 딸을 위해 발정념을 했고 딸에게 사부님의 설법을 듣게 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대법제자이며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다, 괜찮다.” 딸은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습니다. 2~3일이 지난 후 완쾌됐습니다. 수많은 말로도 사부님의 은혜를 다 말하지 못합니다.

저는 홍콩에서 2013년부터 2018년 4월까지 밀폐된 공간에서 지반공(地盤工)으로 일했습니다. 발을 잘못 디뎌 몇 번이나 떨어져 발에 상처를 입어 흑갈색이 됐습니다. 저의 첫 일념은 ‘파룬따파 제자는 괜찮다’였는데, 즉시 일어났습니다. 사부님께서 줄곧 곁에서 보호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2015년 6월 15일, 수련생의 도움으로 저는 중국의 한 도시에 가서 성공적으로 장쩌민 고소 편지를 발송했습니다. 하나는 베이징 최고검찰원에 보냈고 다른 하나는 베이징 최고법원에 보냈습니다. 당시 우체국에서 주소를 쓸 때 마음이 두근거리고 손도 떨렸습니다. 이것은 두려운 마음이 저를 강화하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가지를 청해 내 손이 떨리지 않게 했습니다. 속으로 ‘홍음2-두려울 것 뭐냐’를 외우고 잘 처리한 후 우체국을 떠났습니다. 손도 떨지 않고 두려움 마음도 제거됐습니다.

2017년 5월 30일, 저와 수련생은 함께 행진하며 중련반(중공 사당의 홍콩 사무처)에 항의하러 갔고 각계에서 구출 협조를 부탁했습니다. 중국공산당 당국에 즉시 남편 왕빈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되도록 그와 딸이 홍콩에서 함께 만나게 배치해 달라고 했습니다. 여행 며칠 전 저는 두려움이 마음이 나왔습니다. 만약 현수막을 걸었을 때 현지 ‘610’이 알면 나를 납치하지 않을까? 딸 혼자 집에 있는데 어떻게?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사람 생각이 반영돼 나왔습니다. 저는 발정념을 해 자신의 공간장에 존재하는 두려움의 요소를 청리했고 우리 정법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 변이된 생명, 변이된 물질을 전부 청리했습니다. 사부님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배치해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련생이 박해당하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실을 폭로한 후 세계 각지 수련생이 진상 전화를 걸어주었고 진상 편지 방식으로 남편을 적극적으로 구출했습니다. 저도 중국에 돌아가 정의적인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사부님의 시사가 생각났습니다.

정법은 시공을 초월한 급박한 것인지라거대한 난에도 뜻 굽히지 않고사악이 날뛰어도 길 잃지 않으며먼지 쓸어내듯 악을 제거하네제자들 대법의 길을 바르게 걸으니천지에 빛 비춰 악을 모조리 제거하네정진하는 법도(法徒)들 추위 속 매화이거니만고의 간난신고 오직 이 한차례 위해서라.[3]

이것은 우리 대법제자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홍콩에서 저는 유동 신문 배포에 참여했습니다. 한편으로 나눠주고 한편으로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아가씨 ‘밍후이주보’를 한번 보세요. 이것은 파룬궁의 진상 신문입니다. 파룬궁은 사람에게 선을 가르치고 진선인의 따라 좋은 사람이 되게 하고 연마하면 몸이 건강해집니다. 온 가족이 보면 복을 받습니다. 진상을 알게 되면 희망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진상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많은 속인은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고 모두 신문을 받고 기뻐하며 떠납니다. 어떤 사람은 다가설 때는 받지 않지만 좀 있다가 신문을 받습니다. 어떤 이는 일부러 맞은편 길에서 걸어와 진상 신문을 가져갑니다.

한번은 시내의 한 거리(선수 이부 거리) 근처에서 한 여자가 신문을 받고 말했습니다. “당신들 파룬궁 신문은 잘 썼습니다. 저는 당신들을 지지합니다. 파이팅!” 나는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진상을 알고 있는 것이 기뻤고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우리를 격려해 주신 것에 감사하고 우리에게 걸어 나와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점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번은 시내에서 멀리 있는 철도역(상수이역)에서 두 사악한 단체인원이 교란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욕을 하고 확성기로 거짓을 방송했습니다. 저는 거기에 서고 그녀는 내 곁에 섰습니다. 목적은 사람들이 신문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줄곧 발정념을 해서 사악이 세인이 진상을 듣지 못하게 하고 구도 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사악 요소의 교란을 제거하고 속으로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녀가 거짓말에 속아 대법에 죄를 범한다고 생각하니 그녀가 가련했습니다.

한번은 쇼핑가(취안완 쇼핑가)에서 신문을 배포했습니다. 한 여자가 일부러 다가와 크게 욕하고 15분 동안 계속 욕했습니다. 가다가 다시 돌아와 또 15분 욕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발정념을 했는데, 제가 진상 신문을 배포해 중생 구도를 가로막는 사악한 요소의 교란을 제거했습니다. 그녀가 크게 욕해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저에게 욕하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욕하는 소리를 듣고 일부러 상점에서 나와 신문을 가져갔고 많은 속인은 일부러 신문을 받아 갔습니다. 그녀가 아무리 욕을 어떻게 하든 두렵지 않고 저는 걸어 나와 진상 신문을 배포하려 합니다. 법 공부 중에 저는 깨달았는데, 진상을 알리는 것은 우리의 중대한 사명입니다.

저는 시시각각 사존께서 당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지(理智)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을 똑바로 알리며, 자비로 홍법(洪法)하고 세상 사람을 구도하는 위대한 장거(壯擧) 중에서, 매 한 사람의 대법제자가 원만의 길을 완벽히 걷고 있다.”[4]

수련생 여러분, 우리 함께 정진하여 정법 노정에 따라가고 우리의 사전 서약을 실행합시다.

심득 교류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수련생이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마음고생’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오직 이 한차례를 위해’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제자의 위대함’

(2019년 홍콩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19년 5월 29일
문장분류: 해외법회
문장분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29/3880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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