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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는 중에서 나타난 사람 마음

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청년대법제자이고 부모님은 모두 수련하십니다. 최근 아버지와 협력하는 가운데서 일부 상황이 나타났습니다.

1. 우리 지역에 한 수련생이 납치되어 아버지는 수련생을 구출하는 데 참여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이 일을 추적 보도하고 있는데 저에게 갑자기 밍후이왕 사이트 메일함에 로그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비밀번호를 고쳤다고 했습니다. 듣고 아버지는 “이런. 사건의 추적 보도 상황을 오랫동안 밍후이왕에 보내지 못했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중요한 일을 그르친 것 같아 저는 한동안 자책했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저에게 USB 세 개를 주셨는데 뜻인즉 고소 편지를 복사하여 안에 붙여넣으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속으로 여전히 아버지가 밍후이왕에 발송하려 했던 일의 진행 상황을 생각하고 있어 아버지가 저에게 USB에 붙여넣으라고 하는 얘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밍후이왕에 발송하라는 줄로 알고 고소 편지를 밍후이왕에 발송했습니다. 결과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시면서 제가 머리를 쓰지 않고 대체 귀로 뭘 듣는지 모른다고 나무랐습니다. 그 후 다시 되새겨보니 확실히 고소 편지를 USB에 넣으라는 아버지의 말을 못 들었습니다.

2. 아버지는 현지의 3000여 개 전화번호를 얻게 되어 저에게 컴퓨터로 입력한 후 해외 수련생들이 진상 전화를 할 수 있도록 밍후이왕에 발송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아주 중요시했고 속으로 ‘이건 쉰들러 리스트’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화번호를 1000여 개 입력했을 때 아무리 해도 컴퓨터가 켜지지 않았습니다. 알게 된 후 아버지는 또 몹시 화를 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보고 빨리 입력하라고 하지 않았어? 왜 말을 듣지 않는 거야? 얼른 밍후이왕에 발송하라고 하지 않았어? 얼마만큼 입력했으면 먼저 발송해!” 저도 속으로 조금 화가 났습니다. 그건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얼른 발송하라”는 말을 하지 않으시고 오직 “얼른 입력하라”는 말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이 생기니 모두 제 탓으로 돌리고 화까지 내셨습니다.

냉정해진 후 저는 안으로 찾아보았고 제가 참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심지어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말을 잘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박해받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기에 그들을 걱정시키지 않으려면 철이 들고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기간 주견을 포기한 상태에 처해 있었고 거의 그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 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어릴 때부터 아주 엄격하게 요구하셨습니다. 제 눈에 부모님은 기가 아주 세, 부모님과 충돌하기 싫어 자신을 보호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늘 ‘말을 잘 들어’ 인정을 받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성장할수록 차츰 이런 ‘순종’이 전혀 그들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수련 후에는 더욱더 다른 사람이 저에게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길 바랐고 전혀 주견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늘 사부님께 제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달라고 빌었습니다. 사부님께서 현현(顯現)하여 수련생들을 점화해주시는 것을 보고 몹시 질투하면서 저에게도 점화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과시하려 했고 여기에는 신사신법하지 못한 마음과 의심도 들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쓰니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 안으로 찾아보았고 이렇게 순종하는 마음 뒤에는 회피하는 마음,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 게으른 마음, 원망하는 마음, 질투심, 의지하는 마음, 구하는 마음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머리를 쓰기 귀찮았고 그들이 제 의견을 듣지 않아 원망했으며 게다가 그들의 결점을 잘 알고 있어 잘난 척하는 질투심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기간 머리를 쓰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은 저와 부모님이 함께 지낼 때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어울려 지낼 때도 드러났습니다. 늘 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처음 알게 됐을 때 자신을 과시하면서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늘 자기 생각을 감추고 진실한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알려주셨습니다. “나는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당신은 이미 자신의 主意識(주이스)를 놓아버리는 습관을 양성했는데, 당신이 눈만 감으면 자신의 主意識(주이스)를 느슨하게 하고 없게 하는, 이런 습관을 당신은 이미 양성했다.”[1] 주견이 없는 것은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을 원용한 것이 아니라 낡은 우주의 자신을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이었고 자아를 집착하는 표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늘 그들이 저에 대한 표현, 평가, 선호도를 살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한 갈래 큰길에서 위로 수련하고 있지만, 그는 모두 갈림길이라 그가 이것을 수련하면 저것이 교란하고, 저것을 수련하면 이것이 교란하는데, 모두 그를 교란하고 있어 그는 이미 수련할 수 없게 되었다.”[1] 찾아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고 저에게 이토록 큰 문제가 존재한다는 걸 종래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평소에 늘 자신이 괜찮다고 흐뭇하게 생각했지만 사실 수련을 엄숙하게 대하지 못하고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했기에 깨달음을 제고하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줄곧 대법제자에게는 표준에 있다고 강조하셨지만 저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이기심, 질투심, 비교하는 사람 마음속에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늘 수련에 대한 사람 마음의 교란을 인식했고 늘 이것과 ‘싸우려 했지만’ 힘에 부쳤고 아주 고생스럽게 수련했습니다. 사실 그것과 싸움에 빠졌고 사람 마음을 이기는 것이 수련의 성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 마음을 높은 위치에 놓을수록 그것들의 ‘이미지’는 더 커졌습니다. 한편으로 제거하고 부정하면서 한편으로 그들에게 생명을 부여해주었고,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우려하는 순환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시간을 낭비하고 의지가 소모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을 잊어버렸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심성과 법에 대한 이해가 극히 중요한바 진정으로 법에 동화하여 더는 사람 마음과 싸움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 마음을 작게 담담히 여기면서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대도(大道) 수련의 길을 걷는 것이 바로 수련할 줄 아는 것이고 착실하게 수련하는 것입니다.

다시 아버지가 두 번 ‘화를 낸 것을’ 얘기해보겠습니다. 최근 사부님의 설법을 볼 때 이런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런 과시심리는 곳곳마다 모두 체현될 수 있으며, 좋은 일을 하면서도 과시심리가 체현될 수 있다.”[1] 개인적으로 과시심 뿐만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할 때 흔히 각종 사람 마음들이 폭로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수련생을 구출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크게 좋은 일이지만 화를 내는 방식을 잘못 사용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가끔 ‘남이 조급해하는 것을 따라 조급해’ 하는데 겉으로는 그를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 사람 마음이 폭로되었고 그것에 이끌려 이성적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선하지 않은 것으로 수련자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땅히 ‘진선인(眞善忍)’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일언일행이 마땅히 수련자의 표준에 부합되어야만 비로소 ‘누락이 없는’ 것입니다.

개인 깨달음으로 층차 제한이 있기에 합당하지 않은 부분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7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7/3896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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