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9세부터 49세까지 인생의 가장 관건이 되는 20년간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를 받는 행운을 가졌다. 파룬따파를 수련함으로써 도덕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현 사회에서 더는 물결치는 대로 표류하지 않고 오히려 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1. 나약하던 데서 굳세게
나는 어려서부터 통증에 매우 민감해 손에 가시가 하나 박혀도 울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번은 병원에 주사를 맞으러 갔다. 간호사가 주사를 찌르는 순간 도망가는 바람에 주사바늘이 뽑혔다. 그래서 또 맞아야 했다. 간호사는 주사 한 번에 바늘구멍이 두 개라고 날 놀렸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손을 베어도 눈물이 났다. 아들을 낳을 때 너무 울자 시어머니는 내가 나약하다고 나무라셨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고통이 두려웠고 끈기가 없었다.
1999년 나는 기쁘게도 대법을 얻었다. 당시는 좋은 사람이 된다는 정도로만 알고 쉬엄쉬엄하면서 정진하지 않았다.
2001년 현지 파출소 경찰이 갑자기 집을 압수하고 나와 남편을 납치했다. 무지막지한 경찰 앞에서 나는 엄청나게 울었다. 마음속에 이름 모를 억울함이 풀리지 않았다. 며칠 후 그들은 나를 구치소에 보냈는데 가는 도중 갑자기 이지적이고 굳세어졌고 두려움이 없어졌다. 나중에야 사부님의 가지(加持)임을 깨달았다. 나는 가슴을 펴고 나와 함께 납치된 수련생을 격려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어요. 머리를 들어요.”
그 후 나는 악인의 구타와 전기봉 충격,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밤새우기, 수갑에 채워 높은 곳에 매달기 등 시달림을 받았다. 과정에서 한 번 또 한 번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와 가지를 느낄 수 있었고 두려운 마음이 해체됐다. 나는 내 생명이 법을 얻기 위해 온 것임을 알게 됐고 좋은 사람으로부터 진정한 수련인이 됐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새 점점 굳세어졌음을 발견했다. 매 차례 난에도 나약했던 나는 기적처럼 지나갈 수 있었고 넘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악의 참모습을 더욱 똑똑히 보고 대법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나의 체험을 얘기하자 그들은 믿지 못했다. 질녀는 내 경험을 듣고 흐느껴 울었다. 그들은 사악한 당이 진짜로 어떤 나쁜 일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법은 나를 굳세고 이성적이고 성숙하게 했다. 돌이켜 보면 정말로 용광로에서 금강을 용련하고 한 생명이 정화 제고되는 과정에 불과했다. 사부님께서 나를 새로 만들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 대법이 나를 어질고 총명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다
법을 얻기 전에 남편은 중증 대퇴골 괴사에 걸렸다. 그때는 생활 등 여러 방면의 압력 때문에 매일 시댁 식구들과 갈등을 겪었다. 나중에는 서로 왕래하지 않는 지경이 됐다. 나는 인생에 실망하고 소극적이며 되는 대로 살았다. 여러 차례 이혼을 생각했지만, 마음속에 겨우 남은 일말의 양심이 남편과 아이를 버리지 못하게 했다. 그런 고통과 절망은 내 도덕성을 매우 위험한 경지까지 미끄러지게 했다. 이후에 심지어 마작까지 배웠고 마작으로 고민을 해소하려 했다. 시간만 나면 마작하러 갔고 누가 말해도 듣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모습을 보고 매우 마음 아프셨다. 내가 친정에 갔을 때 ‘전법륜’ 한 권을 가방에 넣으면서 당부하셨다. “시간 날 때 책을 보고 마작은 하지 말아, 그건 정도(正道)가 아니야.”
이리하여 나는 아주운 좋게 법을 얻었다. 나는 일체는 인연이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고 더는 모든 것을 원망하지 않았다. 남편도 법을 얻은 후 건강이 점점 좋아져 다리도 아프지 않고 일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대퇴골이 심각하게 변형되어 길을 걸을 때 여전히 절룩거렸다. 게다가 복용한 약 때문에 탈모가 와서 대머리가 됐다. 매번 남편이 직장에 와서 나를 찾으면 동료들은 별말을 다 했다. 남편이 나보다 늙어 보인다고 하면 나는 인품이 가장 중요하다고, 남편의 인품과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남편이 왜 다리를 저느냐고 물었다. 나는 남편이 중증 대퇴골 괴사로 만약 파룬따파를 배우지 않았다면 진작에 침대 생활을 했던가, 아니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610’ 인원이 나와 남편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핍박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대법이 없었다면 오늘의 남편은 있을 수 없고, 이 가정도 있을 수 없었어요.”
말은 이렇게 해도 어떤 때는 허영심이 농간을 부려 남편이 직장에 찾아오는 것이 싫을 때도 있었다. 친척 친구들에게 남편이 절룩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마음이 서글펐다. 다른 사람의 눈에 나는 모든 것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절름발이에 대머리인 남편을 얻었는가? 한번은 남편에게 화를 내다가 억울한 생각에 참지 못하고 말해 버렸다. “어느 생에 당신에게 빚을 져서 당신 따라 고생하는지 모르겠어요.” 남편이 말했다. “우리 둘은 성연(聖緣)이오. 동시에 법을 얻어 조사정법(助師正法)하러 왔소.” 그렇다.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 부축하고 헤어지지도 버리지도 않고 비학비수(比學比修)했다. 함께 협력해 자료를 만들고 배포하고 현수막을 걸고 협조했다. 진짜로 우리의 성연을 소중히 여겨야 했다.
꿈속에서도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깨우쳐 주셨다. 나와 남편은 줄곧 선연(善緣)이고 고난을 함께 한 부부였다. 우리는 갈수록 손발이 잘 맞았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말씀하셨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다른 사람의 눈에 우리는 사랑하는 부부이며 친척 친구의 존중과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한번은 남편과 함께한 수련생의 이사를 도와주었다. 그 집주인은 우리의 일부 경험을 듣고 두 엄지를 치켜세우며 나를 대단한 여성이라고 칭찬했다. 나는 그녀에게 대법을 수련했기에 오늘날의 내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도덕이 아래로 미끄러지는 사회에서 금전과 권력을 위해, 자신의 사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부부가 이혼하고 아이와 가정을 버렸는지는 놀랍지도 않다. 윤리 도덕이고 뭐고 얼마나 많은 여성이 가장 기본적인 도리를 상실했는가. 대법은 나에게 인연을 깨닫게 해주고 천명을 알게 해줬으며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순결을 지키게 해주었다. 이 십악독세(十惡毒世)의 각종 난잡한 상황을 보고 나는 자신이 법을 얻은 것이 다행이라고 수없이 생각했다.
3. 대법이 나의 지혜를 열어주다
대법의 기적은 시시각각 내 생활과 업무, 수련 중에 나타났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대법에 필요하고 수련생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내가 만나는 일은 모두 무조건 협력했다. 만나는 대로 협력했는데 매일 바쁘고도 충실했다. 어떤 때 친척이 나를 찾지 못하면 반은 농담조로 나를 매우 바쁜 사람이라고 한다. 나의 이런 무위(無爲)의 상태가 대법 법리에 부합됐는지 내 지혜도 끊임없이 열렸다.
작년부터 교류문장을 쓰고 싶은데 쓸 줄 모르는 수련생이 있으면 그녀들을 도와줬다. 그들의 수련 이야기와 깨달음을 들을 때 나는 여러 번 놀랐다. 그들이 당시의 미세한 심리를 말할 때 나는 대법제자가 거대한 압력에서 집착과 생사를 내려놓은 위대한 장거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사부님의 자비에 감동하고 수련생의 정념정행에 감동했다. 한 건 또 한 건의 신기하고 기적적인 사건은 마치 알알이 반짝이는 진주 같았다. 수련생이 쓸 줄 모른다는 이유로 매몰되게 할 수 없었다. 꺼내어 법을 실증해야 의미가 있다. 사람마다 모두 한 부의 역사이며 그들의 이야기는 세상을 놀라게 할 만했다.
나는 원래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다. 원고를 쓰는 과정에 자신도 모르게 수련생의 배역에 진입했고, 어떤 때는 심지어 상대의 고통과 이치를 깨달은 후의 정오(正悟)를 경험했다. 내가 쓰면 그녀들은 말한다. “맞아, 바로 이렇게 생각한 것인데 표현이 안 되네.”
어느 날 아침 금방 일어났는데 몇 글자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욕화중생(浴火重生: 불로 목욕해 다시 태어나다)’. 나는 이 몇 글자의 대략적인 뜻은 알지만 왜 갑자기 이 몇 글자가 생각났는지는 몰랐고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틀 후 한 수련생을 만났는데 원고 작성 얘기가 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수련 경험을 거침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듣고 듣다가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경험은 정말로 불 속에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 ‘욕화중생’은 정말로 그녀를 의미하는가? 무엇 때문에 그 몇 글자가 며칠간 내 머릿속에 들어왔고, 왜 최근 그녀를 만났을까? 나는 생명의 오묘함에 감탄했다. 원래 이 일체는 모두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교묘하고 질서 있는 배치셨다.
대법제자는 진실을 요구하기에 원고의 진실성을 위해 여러 차례 교정해야 했다. 집에 돌아온 후 끊임없이 개선해야 원고를 완성하고 분류해 정리할 수 있으며 순서를 합리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어떤 때는 자정을 훨씬 넘길 때도 있었다. 한동안은 너무 피곤해 쉬고 싶었다. 생각을 정리해 자신의 원고도 한 편 쓰고 싶었다.
하루는 수련생이 나에게 다른 한 수련생의 수련 이야기를 해줬는데 매우 감동적이었고 내가 써주기를 바랐다. 내가 거절하려 하자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너무 이기적이야. 당신 원고는 나중에 다시 써도 되고, 하물며 당신은 예전에 발표한 원고도 있잖아. 하지만 그 수련생은 아직 기회가 없었는데.” 남편의 말을 들으니 매우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수련생의 이야기가 더욱더 많은 사람에게 진상을 알고 선념을 깨우치게 할 수 있고, 난 속에 빠진 수련생에게 깨달음을 얻게 할 수 있다면 그녀의 것을 쓰든, 자신의 것을 쓰든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
나는 특별히 그 수련생에게 가서 바로 앞에서 그녀의 수련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보기에 연약하고 청초하고 우아했다. 하지만 그녀의 수련 이야기에 나는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마음속으로 쉼 없이 감탄했다. ‘현재 이런 사회에서 오직 대법제자만 해낼 수 있어.’
이후에 그녀의 원고를 완성해 남편에게 보여줬다. 남편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 수련생은 너무 대단해. 그녀처럼 해내기는 매우 어려워.”
나에게 대법제자들의 순수한 마음과 수련 중의 신기한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게 한 것은 사부님의 자비임을 갑자기 깨달았다. 대법이 내 지혜를 열어 주어 이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게 한 건 수련생을 도와주는 것인가? 자신을 도와주는 것이다. 나도 이 과정에서 무궁한 이익을 얻고 자신을 승화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바르지 않은 곳은 수련생들께서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7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10/3880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