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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전에 걸었던 길을 소중히 여기자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몇 달 전 우연한 기회에 영화 ‘당신을 위해 왔어요’를 몇 번 시청했고 매 한편은 모두 나의 심금을 울렸다. 우리 현지에서 가장 최근에 한 번 방영할 때 비록 맨 마지막 줄에 앉았지만 이번에 관람할 때 감회가 더 깊었다. 나는 사존의 무량한 자비를 더욱 느꼈고 또한 99년 이전의 노제자로서 반드시 대법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가 전에 걸었던 길을 소중히 여겨야 함을 깨달았다.

영화의 한 장면은 세상에 내려오기 전의 장면이 있었는데 한 존자께서 기연이 닿은 것을 감지했고 이 만 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기연이 끝내 왔음을 감지했다. 이 장면은 마치 나의 생명 깊은 곳의 명백한 그 일면을 깨웠고 나는 대법제자가 그 당시 신의 광환을 버리고 사존과 함께 하세하여 정법하겠다고 맹세한 위대한 장거를 느꼈고 내심에서 삽시에 신성함과 장엄함이 비할 바가 없음을 느꼈다.

또 다른 한 장면이 있는데 주인공이 톈안먼에 가는 전날 밤 전국 각지 대법제자들은 한데 모여서 베이징의 한 주민 층집에서 모두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노래했다. 여기를 보니 과거의 일체가 다시 새롭게 나의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7살에 법을 얻었고 10살에 톈안먼에 가서 대법을 실증했으며 후에 가정은 장기간 박해를 받았고 대학 때 속인 속에 미혹되었다가 출국한 후 다시 대법 속에 들어왔다. 각종 고험을 겪었고 점차 성숙으로 나아갔고 모든 일체 고달픔과 행복은 눈앞에 선했다.

생명 깊은 곳의 깨달음: 대법제자의 매 한걸음은 모두 사존의 세심한 보호를 벗어날 수 없고 이 한 길에서 보기엔 제자들이 마난을 당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사존의 무량한 자비가 가득 담겨 있다.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감격과 눈물이 이미 일찍이 옷깃을 적셨다. 바로 “사제는 정을 따지지 않나니 부처의 은혜 천지를 녹이네”[1] 였다.

1.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다

1999년 연말 나는 부모님을 따라 밤에 당직 경찰이 없는 틈을 타서 고향의 몇몇 수련생들과 함께 기차역에 모였다. 밤에 베이징에 가는 열차를 탔고 톈안먼에 가서 대법을 실증했다.

며칠간 밤낮을 달리는 장거리 열차를 타고 우리는 끝내 베이징에 도착했다.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탔는데 베이징의 버스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오르내리기가 아주 힘들었다. 여러 번 모두 하마터면 서로 잃어버릴 뻔했고 그곳은 사람도 지리도 생소한 곳이었다. 거의 깊은 밤이 되어 나는 그 당시 배고프고 또 지쳤는데 고독감이 한바탕 급습했고 우리 일행은 길가에 멈춰 서서 우리를 잠시 하룻밤 재워줄 수 있는 베이징 수련생들을 기다렸다. 모두 한 무리 한 무리씩 데려갔고 나와 아버지는 맨 마지막 사람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간 뒤에 우리는 작은 층집에 배정되었다. 방안에 들어서니 안에는 이미 여러 곳에서 올라온 수련생들이 많이 있었고 모두 비록 첫 대면이지만 모두 아주 친절했다. 식사시간에 일부 수련생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가져온 찐빵, 장아찌를 책상 위에 놓아서 여러 사람을 불러 같이 식사했다. 비록 그 당시 허기를 달래려고 입으로 딱딱하고 차가운 찐빵을 씹었지만, 마음속은 전에 느껴본 적 없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모두 당신 한마디 나 한마디 교류하는 것을 들으면서 내심은 매우 차분해졌다.

이때 한 수련생이 나에게 물었다. “어린 친구, 너는 이렇게 어린데 어떻게 왔니?” 그 당시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 “저는 법을 실증하러 왔어요!”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듣고서 하하 크게 웃었다. 저녁에 잠잘 때 모두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다음날 우리는 톈안먼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 연세 많은 아주머니와 발을 맞대고 누웠고 우리는 서로 마음을 열고 교류했다. 연령이 없었고 지역 구별이 없었으며 서로가 내일 텐안먼에 가는 것을 위해 응원했다.

다음날 이른 새벽 나와 아버지는 함께 택시를 타고 갔고 아버지는 우리 고향에서 가져온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란 현수막을 나의 윗옷에 숨겼고 아버지는 손으로 베껴 쓴 경문도 나의 몸에 감추었다. 길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말을 하지 말라고 했고 사전에 신분이 폭로되는 것을 면하려 했다. 톈안먼광장 4곳은 모두 긴장한 분위기로 충만되었고 특히 금수교에 도착하니 많은 사복경찰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가려면 반드시 대법을 욕하는 말을 해야 했다. 얼마 안 가서 어머니와 고향의 다른 수련생들도 도착했고 우리 일행은 서로 헤어졌는데 먼저 일부 빵과 물을 사서 허기를 달래고 어디에서 현수막을 펼칠 것인지를 상의했다.

우리는 톈안먼 앞의 한 백옥 기둥(화표) 아래서 현수막을 펼치기로 했다. 마침 그곳은 사복경찰들이 보지 않아서 주변에 사람들이 아주 적었다. 아버지는 손에 현수막의 한쪽을 들고 한 백옥 기둥 아래의 보호난간을 건너서 기둥 아래에 섰다. 어머니는 이 기세를 몰아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현수막 전체를 펼쳤고 다른 한편에 서 있었다. 다른 수련생들은 모두 현수막 아래에 서서 포륜의 첫 번째 동작 “터우첸빠오룬”을 했다.

나는 그 한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고 역사는 그 한순간에 정지된 것 같았고 시간도 정지되었다. 하늘은 그렇게 파랗고 우리는 모두 조용히 그곳에 서 있었고 세인들을 향해 평화롭게 우리의 마음의 소리를 표현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우리의 사부님은 억울합니다!”

1분도 안 되어 경찰차가 먼 곳에서 경적을 울리는 것이 들렸고 경찰 몇몇이 즉시 달려왔다. 그중 한 경찰이 주먹으로 아버지를 바닥에 때려눕혔고 다른 경찰들은 사람들을 붙잡았다. 우리는 먼저 함께 한 차량에 끌려갔고 아버지는 얼굴에서 계속 피가 흘렀으며 바닥에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졌다. 나는 그 속에서 창문에 앉은 한 아주머니 수련생이 우리를 관심 있게 보는 것을 보았는데 그녀는 우리가 차에 오른 후 두 손으로 허스하면서 우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우리는 서로 간에 어떤 말도 없었지만, 그 한순간 나는 더는 두렵지 않았다.

후에 나는 다른 한 경찰차에 강제로 끌려갔고 철사 그물이 있는 트렁크에 쭈그려 앉게 되었는데 마치 무장경찰 개를 싣는 칸 같았다. 차가 멈추고 나는 파출소 한 복도에 던져졌고 나중에 고향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방안에 갇혔다. 아버지와 다른 한 대학생은 다른 방에 단독으로 갇혔다. 얼마 안 가서 나는 다른 방안에서 채찍질 소리를 들었고 소리가 귀를 찢었는데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도 같이 울렸다.

우리가 머문 이 방안에는 처음에 사람이 없었다. 먼저 우리에게 주변 방안에서 울리는 채찍소리를 듣고서 공포심이 나오게 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한참 지나서 몇몇 경찰이 왔고 먼저 우리에게 모두 어디에서 왔는가를 물었는데 우리는 모두 말하지 않았다. 다시 한 무리가 바뀌고 또 다른 한 무리가 들어와서 공갈과 협박을 같이 했다. 그중 한 경찰은 주먹을 빠르게 들더니 한 10여 세 되는 여자애를 마주하고 위협하기 시작했는데 그 여자애가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더니 또 주먹을 내려놓았다. 다른 한 경찰은 나의 어머니에게 ‘홍음’을 외우도록 했고 그다음 콧물을 닦은 종이를 어머니의 얼굴에 던졌다. 어머니는 화를 내지 않고 또 마구 던진 종이들을 주웠다. 한참 지나서 또 한 여 경찰이 한 아주머니 수련생에게 회개서를 쓰라고 했다. 그 아주머니가 쓴 글을 보고 여경찰은 매우 화를 냈는데 왜냐하면 모두 파룬따파를 수련하면 좋다는 글들이었고 서명은 무명씨였다. 나는 그 당시 이런 장면을 보면서 곁에 있는 수련생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탄복했다.

저녁에 경찰은 형벌을 가하기 시작했다. 노인과 아이는 화장실에 못 가게 했고 어머니와 고향의 한 아주머니에게 ‘수갑을 채웠다(한 사람의 두 손 중 한 손은 어깨 위로 올리고 다른 한 손을 등 뒤로 하여 채우는 것)’. 이런 수갑 채우는 방식은 시간이 길어지면 불구가 될 수 있다. 고향의 그 아주머니는 본래 아주 허약하고 장기간 이렇게 수갑을 채웠는데 나는 그녀의 정신상태가 갈수록 나빠지고 얼굴이 창백한 것을 보았다. 어머니도 매우 괴로워했고 땀방울이 얼굴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졌다. 비록 이렇다고 해도 그녀들은 여전히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하지 않았다. 나는 철난간이 있는 방으로 보내졌고 안에는 수련생들이 모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야밤에 나는 경찰에 의해 철난간 방 안에서 나오게 되었고 나와 어머니는 모두 파출소 문 앞에 보내졌다.(우리 현지 경찰들은 우리가 집에 없는 것을 보고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 와서 우리를 붙잡아 데려갔다) 나는 아직도 기억나는데 경찰 5명이 어머니를 차에 들어 올렸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이 경찰들은 어머니를 들어 올리지 못했고 나중에 또 몇몇 남성이 와서 오랜 시간을 들여서 어머니를 차에 던져 넣을 수 있었다.

우리는 잠시 베이징의 한 사합원 안에 갇혔고 어머니는 수갑을 찬 채로 나와 함께 차가운 시멘트바닥에 앉았으며 식사를 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한 경찰에 의해 화장실에 들어가 몸수색을 당했는데 양말까지 벗으라고 했다.

사흘째 되는 날 저녁은 마침 섣달그믐날 밤이었고 경찰은 나에게 죽 반 그릇을 먹게 했다. 경찰이 없을 때를 기다려 나는 그들의 의자에 앉아서 한참 휴식했다. 새벽에 우리는 정식으로 베이징에서 고향으로 보내졌고 길에서 나는 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는지를 생각했는데 마음속으로 끝없이 처량했고 또 다음 일보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2. 박해 속에서 진상을 알리다

고향에 돌아온 후 부모님들은 모두 불법으로 판결받고 수감되었으며 나의 집도 수색당했는데 경찰은 도적떼처럼 집안의 물건을 전부 가져갔으며 금고 안의 돈도 모두 가져갔다. 다음날 나는 학교에 가면서 생각했다. 나는 더는 옛날처럼 될 수 없고 이후에 이 집은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수업시간에 나는 경찰에 불려가서 교도처(教導處)에서 훈계를 들어야 했고 한번은 선생님이 호기심에 자습할 때 나를 불러서 파룬궁이 좋은가를 물었다. 나는 좋다고 말했고 나는 나의 부모님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알겠다고 말하면서 나보고 가보라고 했다.

비록 부모님들이 곁에 계시지 않았지만, 대법제자로서 나는 많은 고험을 겪었다. 한번은 명절에 작은 삼촌댁에 인사드리러 갔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갔고 또 삼촌에게 선물을 준비했다. 집에 들어서자 작은 삼촌이 말했다. “오늘 삼촌이 너에게 한마디 물어보겠다. 파룬궁이 좋으니 나쁘니?” 나는 좋다고 말했다. 삼촌은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좋은데 너의 엄마 아빠가 모두 잡혀 들어갔어?” 나는 그것은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라 그것은 경찰이 좋은 사람을 붙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나의 부모님이 수련한 후 모두 건강해진 것을 삼촌께서는 알고 있지 않은가 라고 했다. 작은 삼촌이 말했다. “나는 다른 것을 상관하지 않아. 아무튼, 오늘 네가 좋다고 말하면 너는 집에 돌아가고 그 후로 더는 너를 보지 않겠다. 네가 만약 나쁘다고 말하면 삼촌은 너에게 맛있는 것을 만들어서 너를 접대해 줄 것이다.” 나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파룬궁은 좋아요.” 그다음 삼촌은 더는 말하지 않고 나와 나의 자전거 그리고 선물까지 모두 집 밖으로 던져버렸다. 비록 쫓겨났지만, 나의 마음은 여전히 아주 기뻤다. 왜냐하면 나는 이것이 대법을 단호히 믿는지를 고험하고 나는 순조롭게 통과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후에 사부님의 배치 하에 나는 매주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현지에서 아주 정진하는 A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 했고 ‘밍후이주간’을 보았다. 정법노정에 따라갔고 수련생들은 나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한번은 노교소에 가서 어머니를 면담했는데 경찰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호주머니에 미리 준비해놓은 ‘밍후이주간’을 어머니에게 주었고 어머니가 견지해 나가기를 바랐다. 어머니는 불법으로 몇 년 수감되었고 전향을 거부한 이유로 독침을 맞았다. 경찰은 나를 찾아서 어머니가 단식한다고 말했는데 그녀들은 내가 어머니를 설득하기를 바랐다. 어머니는 나의 옆에 앉아 있었고 나는 어머니의 바짓가랑이를 만졌는데 넓은 바지 속에 뼈만 남아있었다. 나의 마음은 무척 괴로웠고 어머니가 고통을 당하는 것이 마음이 아팠지만 나는 또 내가 육친정으로 어머니더러 대법을 포기하라고 핍박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나는 대법이 어머니에게는 자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어머니는 경찰에게 말했다. “나는 변하지 않아요. 당신들의 호의에 감사드려요.” 그리고 나의 옆에 와서 나의 근황을 물었고 내가 아주 좋은 것을 보더니 어머니도 마음을 놓으셨다.

아버지는 장기간 수감되어 고문의 시달림을 당했고 나는 계속 아버지를 면담할 방법이 없었다. 후에 형기가 만기 되었지만, 현지 상사가 시찰할 때 파룬따파 진상을 말했다는 이유로 또 연장하여 노동개조당했다. 그는 매우 어렵게 나온 후 몇 달 뒤에 또 한 번 사복경찰에 의해 집에서 납치되어 판결받았다. 그 당시 집 주변에는 구경하는 군중들이 가득했고 한 정의로운 인사는 경찰의 야만적인 작법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함께 잡혀갔다.

이어서 나는 석방된 지 얼마 안 되는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고 비록 집은 이렇게 많은 마난을 당했지만, 어머니는 계속 사람을 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주말만 되면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갔고 우리는 각자가 일부 자료를 등에 메고 출발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버스를 아주 적게 탔고 모두 걸어 다녔으며 배가 고프면 오이와 토마토를 먹으면서 허기를 달랬다. 항상 자료를 배포하다 보면 온종일 걸어야 했고 아주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밤을 우리는 거리와 골목을 다녔고 여러 번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서 갑자기 늑대 같은 개가 달려 나오기도 했었다. 내가 너무 두려워하면 어머니는 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읽어주면서 개에게 짖지 말라고 했다. 과연 개는 어머니의 말을 알아듣고 순순히 고개를 돌려 조용히 도망갔다.

섣달 그믐날 나는 전처럼 어머니와 함께 나가서 자료를 배포했고 우리는 아주 멀리멀리 걸었다. 다음날 바로 신정이라 어머니는 자료를 좀 더 많이 배포하려고 하여 많이 늦었다. 우리는 여전히 자료를 배포했고 빨리 마감하고 집에 돌아가려고 생각했다. 나는 몇 번 조금 대충했고 자료를 놓기 힘든 곳에 이르면 나는 배포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나에게 진지하게 배포하라고 말씀하셨고 한 집도 놓치지 말라고 했다. 가끔 길을 너무 많이 걸으면 어머니는 나의 발을 주물러주었고 내가 진짜로 매우 지친 것을 보고 나를 격려하기 위해 또 다 큰 나를 한참 업어주었다. 어머니의 등에 엎드려 나는 진짜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어머니가 계시고 비록 아버지는 아직도 박해를 당하지만, 우리 세 명은 모두 대법 속에서 수련하고 있으니 바로 가장 행복한 것이다!

2년이 안 되어 어머니는 자료를 배포하다 신고당했는데 그 당시 경찰은 악인이 어머니의 얼굴을 때리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또 한 번 불법으로 노동개조당했다. 이어진 나날은 나 혼자였고 나는 늘 내가 어머니와 같이 있을 때 어머니가 나를 업어주고 함께 밤길을 걸으면서 자료를 배포하던 정경을 떠올렸다. 주말에 또 현지 A 수련생의 집에 갔고 A는 나에게 진상편지를 쓸 것을 건의했다. 나는 일부 진상편지를 써보았고 처음으로 진상편지를 쓰려고 했을 때 나는 아침에 밥을 먹지 않은 것이 생각났지만 돈을 절약하면 진상편지 한 통을 부칠 수 있다. 결과 그날 나는 아침을 먹지 않았지만 배는 조금도 고프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모두 사존께서 나를 가지해 주시는 것으로 생각했고 나에게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아셨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에서 A는 나에게 도움이 아주 컸다. 어느 해에 나는 고향집에 가서 문안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A는 나를 도와 많은 자료를 준비했고 나는 A가 가르쳐준 진상을 알리는 말을 기억했고 마음속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을 생각했다.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촌오빠는 나와 함께 차에 앉았고 나는 옆에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사촌오빠에게 진상자료 하나를 주었고 그는 처음에는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아서 나에게 물었다. “너의 엄마 아빠는 모두 잡혀갔는데 너는 이렇게 어린데 아직도 이런 일을 하고 있니?” 나는 말했다. “파룬궁은 본래 억울함을 당한 겁니다. 저의 엄마 아빠는 파룬궁을 연마한 후 더 좋게 변했어요. 이는 모두 파룬궁의 진상이에요. 시간이 나면 한번 보세요. 오빠에게 좋을 겁니다.” 생각 밖에 그는 좋다고 말했고 나는 그에게 하나를 더 주면서 그의 아버지에게도 갖다 드리라고 했는데 그는 흔쾌히 받았다. 길에서 나는 덜컹거리는 차에 앉았지만, 마음은 아주 기뻤고 나는 내가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고 진상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나는 점점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저녁에 사촌언니와 함께 광장의 헬스기구를 하러 갔고 나는 고의로 목소리를 아주 높게 해서 사촌언니에게 파룬궁은 사실 좋은 것이고 뉴스에서 말한 것은 모두 거짓말이며 내가 알고 있는 모모도 파룬궁을 연마하고 신체가 아주 좋게 변했다고 말했다. 가끔 옆에 있는 아주머니들도 흥미를 느끼고 달려와서 나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가끔 나는 주동적으로 옆 사람에게 말을 걸고 천천히 진상을 알렸다. 매번 진상을 알린 후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데 별은 너무나 밝았다!

한번은 내가 집 문 앞에서 머리를 자르려고 기다리면서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미용실 안에 사람이 아주 많은 것을 보았다. 나는 급히 그녀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싶었다. 먼저 미용사가 할머니에게 머리가 진짜로 예쁘게 파마되었다고 칭찬하자 그 할머니는 아주 기뻐했고 나는 화제를 돌려서 진상을 알렸다. 처음에 할머니는 조금 의심했는데 어린애가 어찌 이렇게 많이 아는가라고 생각했는데 후에 진상을 많이 말하자 할머니는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고 가끔 나에게 또 일부 질문을 했다. 나는 모두 해답해주었고 할머니가 의심하는 눈빛에서 믿어주는 눈빛으로 변화하는 것을 나는 모두 보았다. 미용실 안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조용히 듣고 있었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미용실에서 나온 후 나는 전에 느껴본 적 없을 정도로 온몸이 홀가분한 것을 느꼈고 마음이 편안했다.

또 몇 년이 지나서 아버지는 노교소에서 나왔다. 아버지는 현지에서 기술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주말에 학교 가지 않을 때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아주 먼 곳에 가서 수련생들에게 자재를 사주었다. 전자상가에서 아버지는 정념이 아주 충족했고 매번 가게 주인에게 진상을 한참 이야기한 후 그들에게 진상 영상자료를 주었는데 어디로 가면 어디에서 진상을 알렸고 나는 아버지를 따라 아주 많은 진상 알리는 기술을 배웠다. 아버지도 늘 나를 데리고 주민지역에 가서 자료를 배포했고 눈이 내리는 겨울밤 날씨가 얼마나 추워도 우리는 모두 작은 지역구를 돌아다니며 나눠서 자료를 배포했고 매번 자료를 배포할 때 층집 위아래로 다니면서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가 층집에서 나오면 비로소 한시름을 놓았고 온몸은 긴장으로 인해 땀에 흠뻑 젖었다. 다음 지역에 도착하여 아버지는 나와 교류했고 자료를 배포하기 전에 정념이 있어야 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나는 점차적으로 주민지역에서 자료를 배포하면서 두렵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상 나와 심성과 법리상에서 교류해주었고 나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타일렀다.

‘9평’이 갓 나오고서 나도 어른들을 따라서 자신의 가방에 ‘9평’을 넣고 호숫가에 갔다. 여름에 바람을 쐬는 사람들에게 ‘9평’을 배포했고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오로지 염두가 바르기만 하고 사람을 구하려고 생각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나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중국에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할 때 한 번도 붙잡힌 적이 없었다.

3. 수련의 길로 되돌아가다

중국에서 나의 수련은 항상 모두 부모님과 수련생들을 따라서 행했고 나 자신은 사실 법에 대한 인식과 이해 모두 그다지 깊지 않아 나이가 들면서 대학에 간 후 부모님과 멀리 떨어지다 보니 좋은 수련 환경을 잃었다. 천천히 나는 속인사회에 이끌리게 되었고 취직한 후 또 타지역에 머물게 되었다. 매번 집에 돌아갈 때 부모님들은 나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타일렀지만 나는 모두 듣지 않았고 한 수련인이 장기간 법공부하지 않으면 천천히 구세력에 의해 이끌려 가게 된다. 어느 날 나는 속인 친구들과 집에서 영상을 보면서 수다를 떨 때 나는 영상에서 나의 정수리에 불 한 덩이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 화염은 나의 정수리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고 나는 아주 신기하게 느껴져 또 달려가서 아버지에게 보여 주었다. 아버지는 보고서 한동안 침묵했다. 그는 묵묵히 방안으로 돌아가더니 어머니와 무엇을 상의했다. 어머니는 후에 또 꿈을 꾸었는데 꿈에 어머니는 산 몇 개를 넘었고 작은 산 중앙에 또 큰 산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아이가 큰 산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아이를 보더니 마음속으로 아주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공중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 아이를 당신에게 맡긴다. 당신은 반드시 아이를 잘 보살펴야 한다.”

후에 부모님은 나를 출국시키려고 준비했다. 그러나 나의 비자는 계속 나오지 않았고 심지어 신체에서는 또 병업 가상이 나타났다. 나는 수련의 엄숙성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나는 이미 그 당시의 어린 제자가 아니었다. 이후 수련의 길은 반드시 혼자서 걸어가야 하고 나는 자신의 사명을 완성해야 한다. 나는 매일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았고 보는 과정에서 나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고, 나는 내가 너무나 많고 많은 것을 잘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심에서 사부님께 빌었다. “사부님 제자를 도와주세요. 저는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되겠습니다! 저는 서약을 이행하고 사람을 구하겠습니다!” 다음날 나의 비자가 나왔다.

중국을 떠나서 나는 혼자서 해외에 왔다. 처음에는 너무나 고생스러웠는데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오후 3시까지 일하여 돈을 벌고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학교 다니고 월세방에 돌아온 후 새벽 한두 시까지 전화 진상을 했다. 일 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3, 4시간도 자지 않았다. 비록 아주 고생스러웠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주 기뻤고 나는 또 수련을 처음처럼 하는 상태로 돌아왔다.

지금 나는 해외에 온 지 이미 5년이 되었고 이 5년 동안 나는 너무나 많고 많은 고험을 겪었다. 진짜로 “고비마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데 곳곳마다 마(魔)로다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겠노라”[2] 나는 끝내 자신의 수련의 길 하나를 걸어 나왔고 끊임없이 성숙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당신을 위해 왔어요’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전에 나와 함께 톈안먼광장에 가서 대법을 실증했던 수련생들이 생각났는데 지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아직도 대법 속에 있는지 모른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99년 ‘7.20’에서부터 걸어 지나온 대법제자, 당신들은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당신들은 정말로 대단하다. 신마저도 당신들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당신들이 이후의 길을 잘 걷기를 희망한다. 특히 그런 잘하지 못한 사람은 각별히 조심해야 하며, 아직 남아있는 시간을 소중히 해야 한다.”[3]

시간은 진짜로 많지 않다! 수련생들이여, 시초에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신체(神體)를 포기하고 대법에 동화한 것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인간세상에서 우리는 잇달아 법을 얻었고 대법이 박해당할 때 우리는 갖은 난관을 배척하고 함께 톈안먼 광장에 가서 대법을 실증했다. 아울러 이 우주 만상이 갱신되는 최후의 시기에 우리도 반드시 정진하여 수련하고 정념정행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의 노래 ‘찾다’와 함께 우리가 전에 걸었던 길을 소중히 여기기 바란다!

나는 높은 산을 넘어먼 바다를 넘어서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찾았어요
나는 그것이 하나의 진실임을 알아요
비록 가끔은 여전히 미혹되었지만
끝내 나는 그곳을 찾았어요
그것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천당이에요
쩐싼런(眞善忍)
그는 다시 나의 마음속에 나타났고
그 후로 나는 더는 방향을 잃지 않았어요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 2-사도은’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마음고생’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7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3/3893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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