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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수련해 심신 이득, 진상 알려 중생 이득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7년 여름, 나는 30여 세의 젊은이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의료용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걸었고 얼굴은 검푸른 색이었다.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치면서 신경 압박으로 감각을 잃어 걷기가 어렵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진상을 말해주자 그는 단, 대에서 탈퇴했다. 나는 또 그에게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 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정성껏 외우라고 말했다. 2018년 2월, 다시 만난 그가 친근하게 말했다. “누님, 저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누님인 줄 알았습니다. 목소리가 낭랑하고 우렁찹니다.” 그는 기뻐하며 말했다. “저는 지금 많이 좋아졌습니다. 지팡이를 버리고 어디든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내가 보니 그는 얼굴에 혈색이 돌고 피부가 고왔다.

수련 후 나의 심신 변화, 그리고 대법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해 복을 받게 한 부분을 써서 사부님의 위대함과 대법의 비범함을 증명하고자 한다.

1. 대법 수련으로 질병이 모두 사라지고 도덕이 승화하다

나는 올해 64세인 여자로, 중국공산당이 분류한 이른바 ‘지주’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또 국군의 영관급 장교로 해방군과 전쟁을 했기 때문에 나중에 공산당 감옥에서 돌아가셨다. 이런 우리 가정은 ‘검은 다섯 가지 부류’에 속한다. 우리 자매 세 명은 아버지와 생사를 같이하며 온갖 박해를 받았고 학교에 갈 기회가 없었다. 나중에 한 국영기업에 취직해 일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도가 공을 닦으신 분이셨고,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에게 아주 많은 예언을 해주었고, 선악에 응보가 있다는 이야기를 아주 많이 해주셨다. 외할아버지도 공산당 감옥에 들어가셨는데, 우리에게 공산당의 어떠한 조직에도 가입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당시 우리는 어려서 외할아버지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고, 대법을 수련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전에 나는 아주 많은 기공을 접촉했고, 아주 많은 다른 종교의 사람을 만났다. 그들도 나에게 그들의 종교에 가입하라고 했지만, 나의 뜻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6년, 나는 한 사람의 소개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전법륜(轉法輪)’을 얻은 그 순간부터 나는 대법의 법리에 설복되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며, 마침내 인생의 목표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나의 대법 수련은 병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진선인(眞善忍)’의 법리가 너무나 좋고, 좋은 사람이 되게 하니 나의 마음은 대법을 떠난 적이 없었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보도소 소장을 만나서 그에게 말했다. “만약 어느 날 누가 저한테 황금 한 차를 주면서 대법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저는 차라리 황금을 포기할지언정 대법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소장이 말했다. “법학습을 많이 하세요.”

대법 수련 전, 나는 편두통, 류머티즘성 관절염, 비염, 담석, 심장병, 좌골신경통 등의 질병을 앓았다. 편두통이 발작하면 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았고, 머리를 돌릴 수 없었는데, 목뼈에 철근을 박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고, 귀를 끈으로 감아 잡아당기는 것 같아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옷에 지닌 양약을 써야만 조금 완화되다가 얼마 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는데, 가끔은 아파서 호흡까지 곤란했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다리가 변형되어 무릎 관절이 부었는데, 특히 93, 94년에 다리가 많이 부었고, 손가락, 발가락도 골절로 부어올라 정상적으로 몸을 구부리거나 주먹을 쥐기가 어려웠고, 아파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1992년, 누에고치만 한 색소형 담석 세 개가 쓸개를 가득 채워 통증이 올 때는 끊임없이 구토하고 밥을 먹지 못했으며 등과 허리를 펴지 못하는 등 극도의 고통에 시달렸다. 또 심장병이 있었는데, 기분 나쁜 일을 만나면 곧바로 화를 냈으며 화만 나면 심장이 급하게 뛰어 온몸에 기력이 빠지고 녹초가 되었다. 또 좌골신경통으로 허리부터 엉덩이까지 아팠는데, 한번 시작하면 비타민 B1, B16 주사를 한 달 넘게 맞았다. 감기는 더욱 다반사였는데, 감기에 걸리면 반드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고, 집안에 각종 감기약이 준비되어 있었다. 원래 집안의 수입이 아주 적었지만, 수입의 상당 부분을 약값과 치료비로 썼다. 당시 월급이 겨우 100여 위안(한화 약 1만7천 원)이었는데, 가끔은 치료비가 없어 통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차례 법회에 참가했다가 수련생들로부터 법공부와 연공 후 심신의 변화를 들었는데, 대단히 생동감 있고 감동적이었다. 당시 법회에서 깨달음을 얻어 성실하게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스스로 진선인의 표준으로 엄격하게 요구하면서 자신의 표준을 끊임없이 제고하자 나의 질병들도 갈수록 가벼워졌다.

수련과정에서 좌골신경통으로 아플 때는 주사를 맞은 곳에서 끊임없이 끈적끈적한 노란 고름이 흘러내리고 아주 가려웠는데, 나도 모르게 후벼 파니 더러운 것이 아주 많이 흘러나왔고, 열흘 정도 지나자 나았다. 담석은 모르는 사이에 나았고, 편두통, 심장병, 좌골신경통, 비염이 모두 나도 모르게 나았다. 오직 무릎 관절만 완전히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안으로 찾으며 가부좌 연공을 견지하고 진상을 알리며 자료를 배포했고, 늘 100여 리를 걸어 다녔는데, 가부좌하거나 걸을 때 아프기 시작하면 극한의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1]라는 생각을 했다. 무릎 관절이 부어 변형된 상태는 조금씩 개선되었는데, 갈수록 조금씩 정상에 가까워졌다. 걸음이 갈수록 가벼워져 가끔은 아주 가볍게 느껴졌다.

대법 수련으로 들어오고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약을 한 알도 먹지 않고, 주사 한 번 안 맞고도 신체가 갈수록 건강해지고 피부가 고와지고 혈색이 돌았다. 내가 64세인데, 많은 사람은 50세 정도로 보인다고 말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공산당이 우리 집을 박해하고 불공정하게 대우하는 것을 겪은 데다 온갖 질병을 앓았고, 결혼 후에는 또 전남편과 그의 가족으로부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이기적이고 도량이 좁고 성격이 거친 사람이 되어 온종일 수심에 잠겨 하루를 일 년처럼 지냈다. 대법 수련을 하지 않았을 때, 나는 전남편과 그 집안사람들을 몹시 증오했고, 이혼 후에는 거의 왕래하지 않았다. 대법 수련 후, 내가 인생의 목표를 알게 되고 사람의 도리를 깨닫고, 일할 때 먼저 다른 사람을 고려하면서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사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전남편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다. 나는 선물을 들고 그의 집으로 찾아가 그들 가족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해 그들을 구도했다.

몇 년 전, 남편은 반신불수가 되어 침대에 누웠다. 나는 대법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고 여러 차례 불법 수감과 괴롭힘을 당하면서 생활이 한동안 아주 곤란했지만, 마음속은 늘 아주 즐거웠다. 나의 도량이 커지고 활달하고 너그러워지자 개인적인 일로 다른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거나 유쾌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2. 박해 속에 대법 수련을 견지하며 뜻을 굽히지 않다

1999년 7·20 후, 장쩌민과 중공이 서로를 이용하며 파룬궁을 미친 듯이 탄압하자 직장에서는 나에게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게 했고, 친척, 친구, 동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멀리했으며, 구(區) 국보 경찰은 나를 국보대대로 납치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2]라고 가르치셨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구 공안국에서 정문을 지키는 노인은 “당신 사부님이 구세주도 아니지 않으냐고”라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당신 말이 너무나 맞아요. 나의 구세주는 바로 사부님이세요.” 나는 옆에 있던 국안국 여경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두 시간을 넘게 말하자 그녀는 이해했고, 나중에 국보대대를 떠났다. 당시에 나는 15일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고, 그때부터 직장을 잃었다.

2000년 말에 나는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가서 법을 실증했다. 나는 다른 대법 제자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부님의 결백을 인정하라.” “대법을 공정하게 대하라.” “파룬따파는 좋다.” 등을 외치다가 사악한 경찰에게 고무 방망이 구타와 발길질을 당했고, 옌산(燕山) 구치소에 불법으로 감금됐다. 경찰 두 명이 나를 심문했는데, 나는 그들의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여러분은 대법을 모(某)교라고 쓰지 마세요. 우리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에요.” 그들이 말했다. “우리가 수만 명을 다루었지만, 그렇게 쓴 적이 없어요.” 내가 말했다. “그럼 여러분이 ‘전법륜’을 한 번 보세요.” 그들은 우리가 법을 바로잡으면 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면 늦다고 말했다. 며칠 후, 직장에서 두 사람이 나를 데리러 왔고, 나는 돌아가던 중 도망쳐 시 전체에 수배령이 내렸다. 7개월 후, 나는 집으로 가던 중에 국보에 의해 다시 한번 납치를 당했고, 구치소에 3개월 넘게 갇혀 있었다.

2014년 3월 3일, 이웃 현(縣)의 한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왔다가 국보 경찰의 미행으로 나와 함께 납치를 당했고, 이후 불법적으로 재산몰수를 당했는데, 그날 저녁 우리 두 사람은 또 구치소에 갇혔다. 연속 7일 동안 끊임없이 사람을 바꾸며 우리 두 사람을 심문했다. 나는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고 그들에게 진상만 알렸다. 그들은 유죄 판결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흔들림 없이 모든 것을 부정했고,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시를 반복해서 외웠다. “살아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허망한 생각 다 떨쳐버리면 부처 수련 어렵지 않도다.”[3] 나는 마음이 평온하지 않을 때마다 반복해서 외웠다. 심문하던 경찰은 화가 나서 소리를 치며 말했다. “유죄 판결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어. 모모 세 사람을 바로 내가 판결했어.” 내가 말했다. “당신은 진선인을 믿는 좋은 사람을 박해해 응보를 받을 거예요.” 그가 말했다. “누가 응보해?” 내가 말했다. “하늘이 응보 해요.” 그는 다시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다른 한 경찰은 쓰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나중에 그들은 나를 구 검찰에 기소했다. 검찰은 경찰 한 명을 보내 나를 심문했다.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말했다. “파룬궁 박해는 위법이고, 신앙은 헌법의 보호를 받고, 헌법에는 파룬궁이 모 교라는 말이 없어요. 장쩌민 개인이 말한 건데, 법률을 대표하지 않아요.” 나는 심문 기록에 서명하는 것을 거절하면서 그에게 선의를 가지고 말했다. “대법 사부님은 우리에게 일함에 다른 사람을 고려하라고 하셨어요. 제가 서명을 안 하면 당신 업무에 영향을 주나요?” 그가 말했다. “영향이 없어요. 국보대대에는 당신 서명이 전혀 없어요.” 내가 이어서 말했다. “당신은 당원인가요?” 그가 말했다. “맞아요.” 내가 말했다. “당에서 탈퇴하세요!” 그가 말했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내가 성을 묻자 그는 자신의 성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말했다. “만약 제가 나간다면 인터넷에 탈당 등록을 해 드릴게요. 만약 제가 못 나간다면 하늘이 당신 마음을 볼 테니까 재난이 왔을 때 평안할 수 있을 거예요.” 그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는 곧 떠나갔다.

구치소에서는 갇힌 사람에게 각자 소감문을 써내라고 했다. 나는 소감문에 이렇게 썼다. “제가 이곳에 20여 일은 있었는데, 감방의 자매와 경찰이 저를 위해 많은 것을 감당하셔서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할 것을 마땅히 잘하겠습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일하면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일을 만나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으라고 하셨고,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사심 없이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사부님의 요구에 따르자니 아직도 부족하지만,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해 주시길 바라고,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랍니다.” 한 여자 교도관이 큰 소리로 욕하며 말했다. “독방에 가둘 거야. 경찰이 사람을 때리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야.” 그녀는 이후에 나를 독방에 가두지 않았고 때리지도 않았다. 우리 감방에는 여자 수감자 18명이 있었는데, 내가 16명을 삼퇴 시켰고, 남은 두 사람에게는 진상을 알렸지만, 사당 조직에서 탈퇴하지 않았다. 내가 석방될 때 나는 나를 위협했던 교도관을 조용히 안으며 말했다. “이 법은 아주 커요. 제가 당신을 탈당시켜 드릴게요.” 그녀는 크게 웃으며 사당 탈퇴에 동의했다. 그때 남자 감방의 수감자 6명이 큰소리로 외쳤다. “파룬따파 하오” 나는 격동되어 눈물을 흘렸다.

3. 진상을 알려 중생 구도

2004년 11월 ‘9평 공산당’ 발표 이후, 나는 곧 ‘9평’을 전하고,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면서 삼퇴를 권했다. 친구를 시작으로 주변의 아는 사람에게 알렸고, 나중에는 전면적으로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기 시작했다. 길을 걷든, 차를 타든, 일하든지를 막론하고 어디에 가든 그곳에서 만난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다. 남녀노소, 노동자, 간부를 막론하고, 교양이 있든 없든, 농민에서부터 노동자, 간부, 교사, 의사, 학생, 공안, 검찰, 법원, 경찰, 610사람까지 만날 수만 있으면 기회를 봐서 말했는데, 대부분 받아들였으며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소수였다.

2013년, 나는 산시(陝西)의 아들에게 손주를 보여주러 갔는데, 날마다 시간을 내어 거리에서 삼퇴를 권했다. 가끔은 하루에 7, 8명을 탈퇴시켰고, 어떤 때는 십여 명, 어떤 때는 20여 명, 가장 많을 때는 40여 명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매일 나가서 진상을 알렸고, 날마다 삼퇴 명단을 얻었다. 정상적인 환경이든, 박해를 받든, 납치를 당하든, 구치소에 갇히든지를 막론하고 공안, 검찰, 사법, 610사람을 만나면 내가 먼저 하는 일은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일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소기업 주택단지로 회사 직원들의 거주지인데, 비교적 일찍 건설되어 아주 많은 가구가 이사를 나가고 세입자들이 많았다. 유동인구는 많은데, 복도와 마당을 청소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진상을 하느라 아주 바빴지만, 최대한 시간을 내 복도와 마당을 제법 말끔하게 청소했다. 사람들은 모두 내가 청소 봉사를 하는 것을 알았다.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에게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고, 내가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면 대부분 삼퇴를 했다. 내가 은행 일을 보러 갈 때는 은행원에게 진상을 알려 아주 많은 은행원을 삼퇴 시켰다. 가끔은 두세 마디 말로도 삼퇴 시킬 수 있었다. 한번은 내가 은행 지배인에게 진상을 알리고, 사부님의 ‘홍음3 – 연(緣)을 말하다’ 중의 한 시 구절을 말해주었다. “그대는 이 말을 들으려 천년을 기다렸네.” 그가 말했다. “사람에게 천 년은 없어요.” 내가 말했다. “사람이 백 년을 살기도 몹시 어렵지만, 사람에게는 윤회가 있지요.” 그는 즉시 탈퇴에 동의했다.

나는 버스를 탔는데 표를 살 잔돈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즉시 나에게 있다며 표를 끊어주었다. 내가 이런 소소한 행동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면 대다수 사람이 받아들였다. 가끔은 한두 사람에게만 이야기하지만, 큰 소리로 말하면 대부분 사람이 들을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수많은 사람이 나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들었고, 한 번에 여러 사람이 탈퇴를 했다. 외출해 택시나 노선버스를 탈 때마다 몇 사람을 탈퇴시킬 수 있었다.

공안, 검찰, 법원, 사법, 610, 지역사회의 사람을 만나도 이야기를 해서 적지 않은 사람을 탈퇴시켰다. 일부는 박해에 직접 가담한 사람이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주민위원회 주임에게 2시간을 말하자 그녀는 이해하고 사당을 탈퇴했을 뿐 아니라 남편과 아들까지 당, 단, 대를 탈퇴시켰다. 그리고는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제가 당신을 감시하는 사람이라 당신을 정말 잘 아는데, 당신은 여기에서 영향력도 좋고 신망도 높네요.” 나중에 나는 주민위원회의 다른 사람에게 진상을 알려 소선대를 탈퇴시켰는데, 그녀가 말했다. “저번 주임은 자리를 옮겨서 지금은 그 일을 안 해요.”

2008년, 남편이 입원한 병원에서 시 중급법원의 법원장을 만났다. 그는 당뇨병에 걸려 입원치료를 받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전화를 걸자 결국 그는 전화기를 끄고 유심히 귀를 기울여 나의 말을 들었고, 당, 대에서 탈퇴했다. 나는 그에게 진상 CD, ‘9평’, 션윈 CD 등 대법 자료를 주었다. 또 그에게 호신부를 주자 일곱 개를 요구하면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나중에 그가 승진했다는 말이 들렸다.

진상을 알고 삼퇴하고, “파룬따파 하오”를 묵념한 사람이 복을 받은 사례는 아주 많다. 아래에 몇 가지 예만 들겠다.

2008년 남편이 입원한 병원에 요독증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한 17세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는 서북 지방에서 아주 유명한 시징(西京)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는데, 입원을 계속할 돈이 없어 퇴원했다.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사실 방법이 없어요. 저는 아들을 치료하려고 일하고 있는 빌딩에서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어요. 보상비로 아이를 치료하려고요.” 나는 당신이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며, 당신이 가정의 대들보인데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족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아이는 전신이 부어 얼굴이 아주 크게 붓고, 손발이 아주 두껍게 부어 있었으며, 화를 낼 때면 입을 크게 벌렸다.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배뇨와 배수도 못 하니 입원 생활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고, 외부 기관에서 돈을 빌려야만 입원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려 소선대에서 탈퇴시키고 호신부를 주었다. 그러나 연공은 원치 않았다. 나중에 병실에는 또 뇌위축증에 걸린 젊은이가 들어왔다. 내가 그 젊은이에게 연공을 권하자 그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 저한테 파룬궁을 소개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가 물었다. “사람은 어디에서 왔어요?” 나는 신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병실의 환자와 가족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듯 둘러싸고 들었다. 그때 요독증에 걸린 아이가 말했다. “이모, 저한테 책 한 권을 주세요.” 다음 날, 나는 그에게 ‘전법륜’ 한 권과 MP3(사부님의 설법과 연공 음악 내장) 하나를 주었다. 일주일 후에 내가 병원에 가니 그는 이미 퇴원하고 없었다. 대략 두 달 후에 내가 그의 집으로 그를 만나러 가니 그의 요독증은 이미 나아 있었다. 사람이 아주 날씬해졌고 그의 부모는 모두 몰라보겠다며 말했다. “애가 어떻게 이렇게 날씬해졌을까요?” 그가 말했다. “제가 ‘전법륜’을 5강의 까지 봤을 때 소변이 나오기 시작해서 곧 퇴원했어요.” 내가 말했다. “너는 책을 잘 보면서 법을 배우고, 엄격하게 책에서 요구하는 대로 행동해야 해.” 그도 연공을 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심성을 지키고 덕을 쌓아야만 병이 낫고 공이 자란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그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스자좡(石家莊)시에 일하러 갔다.

2010년 겨울, 60세인 남자를 만났는데, 입이 아주 비뚤어져 침과 콧물이 끝없이 흘러내렸고, 옷이 젖어 아주 더러웠다. 어린 아이용 삼륜 자전거로 지팡이를 대신하고 있었는데, 아주 낡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수입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가 말했다. “없어요.” 나는 그가 불쌍해 10위안(약 1천7백 원)을 주면서 음식을 한 그릇 사 먹으라고 했다. 그는 사양하며 받지 않았고, 나는 억지로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내가 말했다. “당신은 삼퇴를 알아요?” 그가 말했다. “알아요. 아무도 저를 탈퇴시켜주지 않았어요.” 내가 진상을 알려주자 그는 당에서 탈퇴했다. 반년 후에 그를 만났는데, 그는 이제 침이나 콧물을 흘리지 않았고, 입이 어느 정도 바르게 돌아온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호신부 하나를 주면서 호신부에 있는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 아홉 글자를 정성껏 외우되, 정성을 쏟을수록 효과도 좋다고 말했다. 다시 반년이 지나 그를 만났는데, 그는 나를 보더니 활짝 웃음을 지었고, 활기가 넘쳤다. 원래 똑바로 펴지지 않고 들 수 없던 왼쪽 팔을 지금은 펴서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는 신이 자신을 구해주었다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파룬궁 사부님께서 당신을 구해주신 거예요. 마땅히 사부님께 감사를 드려야죠.” 그가 말했다. “그렇네요.” 그는 이번에야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는 한 석탄회사에 다니다 퇴직을 했고, 아내는 시골에 있는데, 그들 부부에게는 1남 1녀가 있고, 자신이 식구들에게 집을 한 채 지어주었다고 했다. 나는 또 한 번 진상을 알리다 그를 만났는데, 그는 길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자 그가 말했다. “저는 지금 달릴 수 있고, 지팡이로 대신하던 어린 아이용 삼륜 자전거도 버렸어요.” 그는 또 몇 걸음 달리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진상을 알릴 때 흔히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교육을 어느 정도 받았고, 나이는 어떻게 돼요?” 나는 내가 문맹이며, 공부한 적이 없는 가정주부로 60여 세라고 대답한다. 많은 사람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내가 간부, 의사, 또는 교사일 것이라며 공부를 안 했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 공부하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아느냐며 일반인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학교에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대법 책과 진상 자료에 있는 글자를 모두 알 수 있고, 일부 내용은 외울 수도 있다. 이것은 대법이 나의 지혜를 열어준 것이다.

어렸을 때 노인들이 말했다. “시간은 금과 같으나 금으로 시간을 사기는 어렵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지금 현재의 시간이 아주 촉박하므로 이 순간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많은 중생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세인들이 이 순간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진상을 듣고 깨달아 빨리 삼퇴하여 겁난을 평온하게 넘기기를 희망한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각 지역 설법 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시드니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무존’

 

원문발표: 2019년 6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9/6/26/3720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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