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1997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한 노제자(老弟子)입니다. 퇴직 초등학교 교사로 현재 65세입니다.
저는 가정에서 마난(魔難)이 매우 컸습니다. 아내가 구세력의 박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의 사망을 계기로 저는 진심으로 법공부하고 법에 대조해 안으로 자신을 찾았습니다. 예전에는 구세력의 배치대로 개인 원만의 기점에서 수련했는데 정법(正法)의 기점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수련해야 바른 법리에 따라 수련하는 것일까요? 어느 날 저는 2007년 있었던 한 가지 반(反)박해 사례가 생각났습니다.
10년 전 어느 날 저는 한밤중에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어느 마을에 진상 자료를 갖다 주러 가다가 한 마을주민에 의해 610대대로 납치되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수련생을 보호하기 위해 저는 시 정치법률위원회 관계자가 불법적으로 증거를 수집하려 할 때 진상자료를 길에서 주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미친듯 화를 내며 수련하는지 하지 않는지만 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엄숙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신앙자유’는 국가 헌법 규정입니다.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잠잠해졌습니다. 그들이 기록한 내용을 보니 사실과 달랐습니다.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하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 제가 답변을 거부했다고 적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저는 답변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국가 헌법 ‘신앙자유’ 규정에 따라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는데요.”라고 말하고 다른 내역도 모두 고치고 나서 서명해 박해를 반대한 증거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풀이 죽은 채 가버렸습니다. 10여 일 후, 그들은 제게 진상자료가 있고 베이징에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간 적이 있다는 것을 박해 근거로 삼아, 1년 반을 노동교양 시키겠다며 준비 절차를 다 끝냈습니다.
저는 어느 날 심성이 아주 좋았고 감방 천장을 보며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대법에 동화하러 온 것이지 구세력의 박해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제자의 경지가 표준에 도달하지 못해, 바르게 깨달아야 하는 법리를 깨닫지 못하고 이곳에 있습니다. 노동교양이든 어디로 가든 제자가 깨달아서 법의 표준에 도달할 때 사부님께서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실 수 있겠지요.’ 이 바른 믿음의 일념이 나온 후, 며칠 후 무조건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이 일을 회상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저의 생각은 타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박해 속에서 박해를 승인하지 않았고 정법의 각도에서 박해자를 대하며, 박해를 사부님께서 장계취계(將計就計)하시어 저를 제고하게 하시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무사무아 바른 법리의 기점에 서서 수련해야만,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고, 어떠한 번거로움이 있어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깨달으니 마음이 탁 트였습니다.
1년 후 어느 가을, 80리 밖에 있는 다른 마을에 진상지폐를 가져다주고 돌아와 오토바이를 세워 놓으니, 처조카가 알려주기를 남촌 교장이 제게 학교에 와서 ‘3서’를 쓰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상해서 이튿날 남촌 교장을 찾아가니 그는 중심교장 전화를 연결해주었습니다. 중심교장은 “과학을 믿고 사교(邪教)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한마디만 쓰면 됩니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정법의 각도에 서서 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사교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쓰지 않겠습니다.” “그게 될 말입니까? 610에서 쓰지 않으면 세뇌반으로 보내겠다고 합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저를 박해하는데 참여한 사람을 저의 아들·친척·친구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줄 것이니, 장래에 그중 누군가가 그들을 혼내줄 것입니다.” 교장은 듣더니 즉시 누그러들었습니다. “제 맘대로 할 수 없으니 3일 후에 교육국 모 주임과 이야기하세요.”
3일 후 교장과 주임은 회유와 협박을 다 동원했으나 저는 정념으로 거절했습니다. 마지막에 저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파룬궁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어 동료, 상사, 마을주민, 이웃, 아내, 아들 및 기타 사람에게 다 잘해줍니다. 저는 촌, 향은 물론 어떠한 당원 간부와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이렇게 좋은 사람이 몇 번이나 공산당에 의해 무고하게 구류되어 박해당하고, 아들이 대학에 붙었어도 제가 박해당해서 학교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누가 사교입니까? 저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은 공산당이 사교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들은 말없이 있다가 잠시 후에 갔습니다.
아내가 사망한 후 1년이 지난 겨울, 저는 현(縣)으로 이사했습니다. 수련생들과 현 내의 향촌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집마다 찾아가 진상을 알렸습니다. 현 내에서 직접 만나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며 지금까지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몇 년간, 위험한 상황에도 몇 번 부딪혔지만, 사부님의 보호아래 모두 무사히 벗어났습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과 진(鎮) 파출소에서 50~60m 떨어진 한 집에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같이 간 수련생이 파룬궁을 말하자마자 안주인이 폭발하며 우리에게 가라고 소리질렀습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사부님께 보호해달라고 요청하고 한편으로는 안으로 찾았습니다. ‘제자들은 비록 사람을 구하지만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고 갈 수는 없습니다.’ 저는 방에 들어가 집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좋은 일을 하려고 왔어도 화나게 한 것은 잘못입니다. ‘삼퇴’를 하든 안 하든 상관없는데 제가 말을 다 하고 당신들의 화가 가라앉으면 가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쩌민이 어떻게 파룬궁을 박해했는지와 ‘톈안먼 분신’이 조작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집주인은 알아듣고 바로 ‘삼퇴’ 했습니다. 이렇게 사악이 중생구도를 교란한 풍파는 선량한 에너지장 중에서 해체되었습니다.
하루는 우리 4명이 큰 마을에서 ‘삼퇴’를 권하며 다 끝나갈 무렵 다른 집으로 옮겨가는데, 경찰차 한 대가 어느새 뒤까지 쫓아왔습니다. 경찰이 창을 내리며 우리를 보고 소리 질렀습니다. “뭐 하는 사람이에요.” 다른 수련생이 계속 그 집 문을 두드리며 그들을 무시했습니다. 저는 발정념을 해 사악을 청리하며 속으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구하는 대법제자다. 아무도 박해할 자격이 없다. 동시에 사부님께 정념으로 가지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때 문이 활짝 열렸는데 마당에서 몇 사람이 차를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안주인 앞으로 가서 ‘복(福)’자 대련을 가지겠냐고 물었습니다. 받지 않겠다고 말해 저와 수련생은 눈빛을 교환하고 대범하게 대문으로 나가, 경찰차를 둘러 지나서 서쪽으로 갔습니다. 경찰들도 우리를 계속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면서 발정념 해서 그들 배후의 사악을 청리했습니다. 잠시 후 경찰차는 방향을 바꿔 우리 두 사람 뒤에서 천천히 따라왔습니다. 이어서 또 천천히 우리 앞에서 30~40m를 더 간 후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빠른 속도로 달려갔습니다. 정말 위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우리가 사람을 구하면 사부님이 보호해주시고, 무슨 일이 나타나든 사부님께서 우리의 경지를 제고시키기 위해 장계취계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실, 다른 팀 수련생들이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촌장 집에 갔었는데, 촌장은 계속하면 신고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끌리지 않고 3시간에 걸쳐 전체 마을을 한번 다 훑었고 한 팀에서 수십 명씩 탈퇴시켰습니다. 게다가 구세력이 배치한 경찰 체포도, 우리의 정념정행하에 해체되어 사라졌습니다.
저는 수련하면서 억지로 무슨 마음을 제거한 적은 없고, 법리를 인식한 후 바르게 깨달은 법리로 자연스럽게 했습니다. 어느 날, 사부님께서 우주와 저를 만드셨고 일체를 모두 사부님이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니, 아들이 제 돈을 쓰는 것에 대해 그것은 제가 준 것이 아니고 사부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고, 아들이 제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저를 성취시키기 위해 그는 많은 것을 했습니다. 이 점만 보더라도 그가 서약을 체결할 때 얼마나 사심없고 위대한 것이겠습니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아들에 대한 은혜와 원한을 없앨 수 있도록 배치하신 사부님의 자비가 느껴졌습니다.
심성이 위치에 도달하니, 관념을 개변하게 돕는 문장 수 편을 보며 계발을 받아서 저는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구세력에게 10여 년 박해당했고, 이로써 저와 아들 사이에 간격이 생겼다는 것은 모두 핑계입니다. 저는 아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해도 되지 않으면서, 일이 생기면 나를 찾는구나.”라고 한 부정적인 관념하의 말을 해체했습니다. 저는 수련의 엄숙성에 탄복했습니다. 당시 저는 공중에 대고 말했습니다. “내 아들은 사부님의 말씀만 듣는다!” 그 후부터 아들은 잘못을 고쳤을 뿐만 아니라, 다시 대법 수련으로 돌아왔습니다.
원문발표: 2019년 6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13/38864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