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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나의 아버지

글/ 옌쯔(燕子)

[밍후이왕] 나는 80년대에 출생했고 1996년에 아버지를 따라 함께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다. 대법은 나의 불행한 가정을 온화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어 사부님에 대한 감사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의 가정

아버지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30대에 결혼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2살 어리고, 또한 지능에 문제가 있어 사람들은 바보라고 불렀다. 나는 철이 들기 시작해서부터 지저분한 아이라고 늘 놀림을 당해 같은 또래 아이들은 나와 놀기를 꺼렸다. 그리하여 나는 두 눈이 실명한 할머니와 놀았다. 나는 또 지능이 좀 모자라는 남동생이 있었다.

아버지는 성미가 급하고 화를 잘 내시지만 일은 아주 잘하셨다. 또 술을 너무 좋아해 하루 세끼 매일 술을 마시고 담배도 아주 자주 피우셨다. 현지에서 술을 잘 마시는 사람으로 유명해 결혼식이나 다른 일이 있으면 모두 아버지를 청해 술을 대접하곤 했다.

불쌍한 어머니와 격노한 아버지

그때 어머니와 남동생은 지능 문제로 아버지를 자주 화나게 했다. 결국 아버지가 심하게 때리는 바람에 남동생은 하교하면 감히 집에 올 엄두를 못 내고 숲속에 숨어 있어서 내가 사방으로 다니면서 찾아야 했다. 아버지도 사흘이 멀다고 어머니를 때렸는데 어머니는 목소리가 커서 얻어맞고는 울부짖으셨고 나는 이웃이 들을까 봐 늘 어머니를 타일렀다. 그 후 어머니는 얻어맞고 집을 나가셨다. 어느 날 저녁,어머니가 또 한 번 얻어맞고 집에서 나가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어머니가 나가려 할 때 내가 문 앞에서 힘껏 어머니를 끌면서 가지 못하게 했지만 나보다 힘이 센 어머니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나를 밀치고 끝내 가버리셨다.

그때 나는 특별히 무서웠다. 어두우면 집 밖으로 감히 나가지 못하던 나는 쫓아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서둘러 방으로 뛰어가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찾아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뭘 찾아,가고 싶은 데로 가라지.”라고 분통을 터뜨리면서 또 술을 드셨다. 내가 다시 울며 어머니를 찾아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으셨다. 나는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하룻밤을 보냈고 다음 날 다시 울면서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찾아달라고 애원했다. 그런데 한 마음씨 좋은 사람이 어머니를 데려왔다. 외할머니 집에서 알고서 아버지와 말다툼했지만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으셨다. 다음에도 여전히 어머니를 심하게 때려 어머니는 또다시 집을 나가셨다. 나중에 부모님이 다시 말다툼하면 나는 살그머니 대문을 잠가 어머니가 나가시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를 덜 화나게 하기 위해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밥을 하고 동생을 돌보았다. 그때 내 어린 마음에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 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서 마음속에 절망과 두려움이 가득하고 또 열등감이 생기는지, 그것은 내가 또래 친구들처럼 행복한 가정의 정상적인 보살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대법을 배우신 후 크게 변하다

내가 열두 살 때, 고모의 소개로 아버지와 나는 함께 파룬따파를 수련했다. 이때부터 아버지의 변화는 아주 컸는데 우선 담배와 술을 끊으셨다. 외삼촌은 믿지 않으면서 “매형이 술을 끊었다면 내가 밥을 끊지”라고 말했다. 몇 달 후 외삼촌은 아버지가 정말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보고는 “매형과 이 대법을 매우 탄복해요”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성격도 많이 좋아져서 어머니를 때리지 않았고, 다만 어머니의 비이성적인 모습에 화를 내실 뿐이었다. 예를 들면 어머니는 늘 큰 바가지로 물을 마시며 흘리시는데, 거의 반은 마시고 반은 흘려서 옷이 전부 젖고 남은 물이 방바닥에 다 흘렀다. 그때 농촌 바닥은 매우 불결해 물이 바닥에 흐르면 진흙이 되고 다시 밟으면 집안에 진흙 발자국이 남는다. 아버지는 이 때문에 매우 화가 나셨는데 어머니는 아무리 말해도 고치지 않으셨고 게다가 거의 매일 그러셨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아버지의 심성을 시험하시는 거라고 아버지에게 일깨워드렸다. 이렇게 아버지의 심성은 매우 빠르게 제고되어 욕하는 소리도 갈수록 적어졌고, 어머니도 다시는 집에서 나가지 않으셨다. 나는 정상적인 가정을 주신 대법에 감사를 드린다.

1999년 중국공산당이 대법을 박해한 후 아버지는 간수소에 불법적으로 갇히셨다. 외할머니 식구들은 인맥을 통해 보름 후에야 아버지를 구출해내셨다. 파출소 사람들은 늘 우리 집에 와서 교란하고 불법 가택수색을 하는 바람에 어머니는 두려워 늘 아버지에게 연마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아버지는 당연히 듣지 않으셨다. 어느 날 나와 아버지는 대법을 위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려고 하자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언제 돌아오느냐고 아버지에게 물어보셨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열이 나고 있는 어머니와 남동생을 어루만지며 나보고 집에 남아서 어머니와 동생을 돌봐달라고 했다. 나도 베이징에 가야 하기에 안 된다고 하자, 아버지는 자신이 돌보겠으니 나보고 혼자 가라고 하셨다.어머니를 위해 가시지 않은 것은 아마도 아버지 일생의 유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후회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어디서나 모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는데, 내가 두 환자를 상관하지 않고 내버려 둘 수는 없다”라고 하셨다.

그것은 한 생명에 대한 자비

나중에 어머니가 뇌졸중에 걸리게 되자 아버지는 어머니가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큰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했는데 조금도 돈을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퇴원 후 아버지는 병원의 재활 기계를 모방하고 또 자신의 창의성까지 더해 사지 단련에 도움이 되는 5가지 도구를 만드셨는데 앉아서 하고, 누워서 하며, 서서 하는 것도 있었다.

어머니는 걸을 수도 없고,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 앉을 수도 없었으며,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싫증 내지 않고 매일 자신이 발명한 도구로 어머니를 도와 신체단련을 하도록 했다. 또 어머니를 업고 집안에서 몇 바퀴씩 걸어 다니셨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바퀴 걸으면 쉬어야 하고,그다음에 이어서 가야 하기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감싸고, 발을 땅에 대고 서서 아버지의 걸음을 따라 움직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돌보실 때 항상 즐거워하셨다. 아버지는 무엇을 하든지 모두 당연하다고 하셨다. 특히 어머니 대변이 바지에 묻었을 때도 아버지는 수돗물로 헹군 후 세탁기에 넣어 세탁하셨다. 명절에 친척들이 보내온 건강식품도 정성껏 어머니에게 먹이셨다.

날씨가 따뜻하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광장에서 산책하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아버지를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뒤에서 모두 아버지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어서 그렇지 보통 사람이라면 1년도 안 돼서 돌보기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머니가 병이 없을 때도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병에 걸리자 또 이렇게 치료해주면서 정성껏 돌봐준다는 것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께 크나큰 선행을 베푸신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그것은 한 생명에 대한 자비라고 말씀하셨다.

6년 뒤 어머니는 다시 뇌경색이 나타나 중환자실에 이틀이나 입원하셨다.이미 호흡이 없고 심장만 뛰고 있어서 의사들은 귀가하라고 했다.

남동생의 불행한 결혼

남동생에 대해 좀 얘기하겠다. 남동생 처가는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이치를 따지지 않는 집안이다. 동생의 장모는 소문난 ‘구두쇠’다. 장인과 장모의 친아버지도 서로 소송을 해서 친형제들과 모두 원수가 되어 친척들은 장인과 말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가정에 좀 모자라는 내 동생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했다. (당시 아버지는 이런 상황을 몰랐음) 동생의 장모는 아버지가 돈이 있다는 말을 듣고 중매인을 보냈는데 아버지는 장가를 가기 힘든 자기 집 아들에게 먼저 중매를 서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동의했다. 좀 같이 지내다가 결혼도 주선했다. 당시 결혼 예물은 1만여 위안이면 되는데 기어코 3만 위안에 또 가전제품도 좋은 것으로 요구해 아버지는 마지못해 승낙하셨다.

결혼 후 이들 가족은 동생을 무시했고 아버지도 굴욕을 당했지만 아버지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참았다. 또 될수록 그들을 위해 생각하고 그들을 도와주었다. 예를 들면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이끌고 그들의 밭에 가서 풀 같은 것을 뽑아줬다.

1년 후 올케가 아들을 낳자 동생의 장인 장모는 더욱 거리낌 없이 우리 아버지보고 그들에게 아파트를 사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동의하지 않자 그들은 아예 동생을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동생은 번 돈을 매달 그들에게 보내주었지만 그들은 동생이 돌아와서 밥도 먹지 못하게 했다. 장인은 또 동생을 때려 동생의 처남이 차마 볼 수 없어 자신의 아버지에게, 사위는 아들이 아니기에 이렇게 때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동생이 화가 나서 그들 집에 가지 않자 그들은 동생과 이혼하자고 했다. 동생이 아이를 갖겠다고 하자 그들은 주지 않았고, 아이의 호적도 장모 호적에 올렸다. 그들이 아이를 주지 않는 것은 양육비를 갖기 위해서이기에 동생은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동생에게 소송을 제기해 이혼을 요구했는데, 아버지는 이혼해도 되는데 대신 아이를 우리에게 주면 양육비를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도 그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법원 판결문에서는 아이를 그들에게 주라고 했고, 이혼한 후 15일 이내에 항소할 수 있다고 선고했다.

동생은 너무 견디기 힘들어 죽으려고 술을 마셨다. 동생은 병원에 입원했는데 하루는 동생이 밥을 먹으러 오지 않자 가보니 동생은 화장실에서 이미 죽어있었다.

덕으로 원한을 갚다

아버지가 동생에게 보험을 들어 보험회사에 신청했다. 동생의 장인장모도 동생이 보험에 들었다는 것을 알고 와서 아버지와 보험비를 다투었는데 보상금 절반을 나누자고 했다. 보험금을 받는 사람을 지정하지 않으면 상속인은 보험금을 균등하게 나누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혼 판결문이 아직 15일이 지나지 않았기에 이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같으므로 법률에 따라 그들에게 절반을 주어야 했다. 그러나 몇만 위안은 농민이 몇 년간 고생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돈을 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이혼을 강요하고, 또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도 그들인데 무슨 면목으로 아들의 보험금을 달라고 하는가. 보험금도 그들이 낸 것이 아니다. 속인은 돈이 없으면 분명히 목숨이라도 걸고 싸울 텐데 그러면 그들도 방법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됐다. 좋은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어디든지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자신의 재물을 담담히 보고 명리정(名·利·情)을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줄 돈을 주머니에 넣고 방안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그들이 정말로 돈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60세가 넘었고 또 한 농민이 농사를 지어 돈도 몇 푼 벌지 못하고, 퇴직금도 없으며 또 당시에 어머니의 병도 치료해야 했다. 그러나 대법을 생각하면 진선인의 법리에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30분 동안 서성거리다가 나중에 나에게 전화로 내 견해를 물었다. 나는 “큰일이니 아버지가 알아서 처리하세요. 저는 아버지의 모든 선택을 존중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에 아버지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기로 하고 돈을 그들에게 보냈다. 그들 가족은 정말 뜻밖의 수확에 기뻐했다. 왜냐하면 남동생의 장인이 계속 반복해서 아버지가 찾아올 것이라고 했기에 그들도 아버지가 돈을 주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진선인(眞善忍)’이 세 글자 때문에 왔다고 말해주자 그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남동생의 아이는 줄곧 그들이 부양했다. 보름 전 아이는 학교 앞에서 길을 건너다가 차에 치여 종아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그들은 아버지와 나에게 알려줬고 나와 아버지는 바로 병원으로 가서 그들을 도와 더 좋은 병원으로 옮겨주었다. 아이의 의붓아버지가 외지에서 일하고 아이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모두 자신만의 일이 있어 그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아버지의 이전 며느리)만이 혼자 병원에서 그를 돌봐야 하고 또 세 살배기 남동생도 있었다. 아버지는 불쌍하다고 느껴 반나절을 대신 돌봐주겠다고 했다. 매일 오전에는 아이어머니가 돌보고, 오후에는 우리 아버지가 지켜보면서 매일 아버지는 맛있는 음식을 챙겨갔는데 동생 몫까지 사 가셨다. 아이의 어머니와 외할머니 가족들은 너무나 감동했다!

어느 날, 아이 엄마는 핸드폰 일기예보에 내일 비가 온다는 것을 보고 내일 오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이 엄마가 감기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다음 날 가셨다.아이 엄마는 너무 뜻밖이어서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또 오셨어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니? 병원에서 잘 쉬지 못할까 봐 왔어. 아이가 움직이지 못하고 대소변도 봐줘야 하는데 집에 가서 한나절 푹 쉬게”라고 말하자 아이 엄마는 매우 감동했다.

예전에 그녀가 우리 아버지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모른다. 헛소문을 내고,아버지와 크게 떠들어 아버지가 억울함을 당하게 했는데, 정말 지난 일을 차마 돌이켜 볼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것을 하나도 따지지 않고 속인들이 생각하는 원수를 가족처럼 대했다. 이것은 최고의 관용이며 대법에서 수련해낸 자비다! 오직 파룬따파만이 이렇게 큰 위력이 있고 이렇게 위대한 대법제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파룬따파가 아버지를 개변시켰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증오하던 데로부터 사랑으로 또 자비까지 베푸셨다! 아버지는 이렇게 많은 시련을 겪고 두 가족과의 사별을 경험한 후에도 여전히 건강하고 낙천적인 마음을 유지하고 또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되셨다. 아버지는 여전히 대법 중에서 자신을 착실하게 수련하도록 노력하시고, 또 자신을 사심 없는 사람으로 개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진심으로 대법과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대법 중에서 용맹정진하겠습니다!
사부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원문발표: 2019년 5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을 실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17/3860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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