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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 문장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잘못 인용한 것을 발견한 후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 주간’ 제905기에서 수련생의 문장을 보았을 때 나는 수련생이 사부님의 설법을 인용한 내용이 많은 곳이 착오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단락은 분명히 ‘전법륜(轉法輪)’ 중의 내용인데 어찌 틀린 곳이 이렇게 많이 있는가? 설마 ‘전법륜(轉法輪)’ 중의 내용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또 특별히 수련생이 뒤에 사부님의 어느 설법에서 발췌한 것이라고 주석을 단 것을 보았지만 ‘전법륜(轉法輪)’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수없이 외웠다. 수련생의 문장에 어찌 사부님의 원 말씀에 부합되지 않은 것이 이렇게 많은가? 왜 이렇게 세심하지 못한가? 밍후이 수련생 역시 왜 진지하게 대조하지 않았는가? 만약 나라면 사부님의 설법과 진지하게 대조했을 것이다. 사부님의 설법은 고칠 수 없다. 나는 밍후이 수련생에게 편지로 그들에게 교정하라고 알려주어야겠다.

그 순간 나는 내 마음에 약간 은근히 기쁨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나는 수련생의 착오를 발견하고 또 밍후이 수련생에게 편지를 써 지적하려고 한 자신이 조금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곧 자신의 이런 심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 사부님의 설법을 잘못 인용한 것에 대해 기뻐할 가치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엄숙한 일에 기뻐하다니? 이건 도대체 무슨 마음인가? 과시심인가? 명을 구하는 마음인가? 자신이 대단하고 다른 사람보다 강하다는 마음인가?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과시심, 게다가 환희심은 마(魔)에게 이용당하기가 가장 쉽다.”[1]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이 사람마음을 억제하고 깨끗이 제거했다.

그러나 나는 밍후이 수련생에게 편지를 쓸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필경 ‘밍후이 주간’은 밍후이왕의 문장이고 사부님의 설법을 인용하는 것은 마땅히 정확하고 착오가 없어야 한다. 또 원고를 쓰고 투고하는 수련생과 밍후이 수련생은 이후 진지하게 대조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밍후이 수련생이 내가 조금 사소한 일을 떠들썩하게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밍후이 수련생의 체면을 깎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편지를 쓸 때 나는 문장 작가가 인용한 것이 틀렸다고 말했고 밍후이 수련생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나는 밍후이 수련생에게 감사하며 고생하고 지불했다는 유의 말을 했다. 나는 밍후이 수련생은 내가 그들의 실수를 질책하는 어떤 뜻도 없다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메일을 보낸 후 나는 나에게 약간의 위선과 교활함이 있는 것을 느꼈다. 밍후이 수련생이 세심하지 못하다고 좀 원망했지만, 편지에는 비위를 맞추는 말을 썼을 뿐만 아니라 돌려서 말하는 방식으로 수련생이 금후 세심하고 진지하게 발표된 문장을 대하라고 일깨워주었다. 이것은 당문화가 만든 변이된 사유, 관념이 아닌가? 사부님은 여러 번 대륙에서 해외에 온 대법제자는 되도록 빨리 자신을 고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줄곧 자신이 사악한 당의 사회에서 생활하기에 온몸에 당문화가 있으며 마땅히 되도록 빨리 고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늘 자신을 대법 수련인으로 간주하지 않아 항상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고 자신을 바로잡는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때문에 자신에게 존재하는 당문화, 변이된 관념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편지를 쓸 때 나쁜 쪽으로 생각하고 돌려서 말하고 밉보이기 싫어하는 것은 사실 자신을 보호하려는 교활한 심리며 처지를 바꿔 수련생을 배려하는 관용의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사악한 당문화다!

며칠 지난 후 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사서함을 열었다. 도대체 무엇을 기대했는가? 나는 또 자신의 더러운 마음을 발견했다. 나는 또 밍후이 수련생이 나를 인정하고 나에게 약간의 일을 하게 분배하기를 바랐다. 예를 들면 수련생의 문장 등을 교정하게 하면 나는 반드시 잘할 것이다! 아, 나는 원래 이런 기상천외한 망상이 있구나! 이것은 과시심,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 독선적인 마음이다! 이것은 당문화 중의 허풍이며 잘난체하는 것이다! 그 한순간 나는 또 자신의 부족을 보았다.

내가 사서함을 열었을 때 밍후이 수련생이 보낸 답장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어 열어보았다. 나는 돌연 눈이 둥그레졌다! 밍후이 수련생은 한 마디만 썼다. “이것은 ‘전법륜법해(轉法輪法解)’를 인용한 것입니다.” 아, 내가 실수한 것이구나. 내가 잘못 보았구나. 내가 부주의했구나!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밍후이 수련생은 내가 누군지 모르고 나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무슨 창피한 짓을 한 것처럼 체면이 서지 않는 것을 느꼈다. 나는 또 자신의 체면을 차리는 강한 사람마음, 집착을 보았다! 이런 강렬한 자아를 수호하는 사람마음이 깊이 찔렸다! 동시에 밍후이 수련생의 편지를 보면 간단하고 직설적인 것을 보았다. 나처럼 이렇게 복잡하고 교활하며 속셈이 없었다. 나는 또 나와 해외 수련생의 격차를 보았다.

사실 나는 당시 원고를 쓴 수련생 뒤의 ‘주:’를 확실히 보았다. 아마 나의 과시심, 환희심 등 마심(魔心)의 통치하에 똑똑히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부주의가 감춰진 나의 많은 사람마음을 폭로했다! 그러면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그것을 제거하겠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체면을 차리는 마음이 좋은 것인가? 아니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가지고 뭘 하겠는가? 나는 이 체면을 차리는 마음을 극력 제거했다. 동시에 나는 내가 부주의해서 실수한 것이며 앞으로 좀 더 세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출발점 역시 좋은 것이다. 대법의 불변을 수호하려는 생각이다! 체면을 잃은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의 부주의로 밍후이 수련생에게 번거로움을 더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나의 마음은 천천히 평온해졌다.

일주일 후 목요일 저녁, 나는 ‘밍후이 주간’의 경축 세계 파룬따파 날 특간(2)를 볼 때, 또 수련생이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중의 설법을 인용할 때, 또 사부님의 원 말씀과 부합하지 않는 곳이 2곳이 있는 것을 보았다. 기타 공법의 연공(练功)을 ‘연공(炼功)’이라고 쓴 것을 보았다. 내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혹시 또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이었다. 보아하니 나는 자신이 잘못 할까 봐 여전히 걱정하였다. 이런 잘못 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사실 자신의 체면을 수호하는 것이다. 보아하니 이 체면을 차리는 마음이 아직도 있다. 나는 이 사람마음을 극구 배척했다. 나는 이런 마음이 싫다! 나는 문장과 사부님의 설법을 여러 번 검사했고 문장을 인용한 것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 자신에게 물었다. 밍후이 수련생에게 편지 한 통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해야 대법의 요구에 부합하는가? 나는 대법은 엄숙하며 조금이라도 고치면 안 되며 한 글자도 고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비록 대륙 수련생이 이미 이번 주간을 다운로드해도 밍후이왕은 문장을 남기기에 마땅히 교정해야 한다! 나는 대법제자며 기왕 내가 발견하였으니 밍후이 수련생에게 알려줄 책임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집이 정전되어 밍후이왕에 접속하지 못했고 이튿날(금요일) 일찍 출근하느라 퇴근 후에야 비로소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있었다.

나는 먼저 이번 주 주간 온라인 열람을 열어 고쳤는가 보았다. 당시 나는 정정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나 정정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밍후이 수련생에게 편지를 보내 이 일을 알려주었다. 이번에 나는 자신이 자아를 내려놓은 것을 발견했다. 밍후이 수련생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나는 대법의 한 입자로서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두 번 연속으로 수련생 문장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인용한 것이 잘못된 것을 발견한 그 과정에서 나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게 되었고 자신에게 존재하는 당문화가 만든 변이된 관념과 사유를 알게 되었다. 또 대법제자는 어떠한 환경에서 대법의 요구에 따라 안으로 찾아서 자신의 사상 중에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관념, 집착을 발견하고 이 관념, 집착을 제거하면 반드시 승화한다는 것을 느꼈다. 대법은 못할 것이 없다! 우리는 반드시 대법에서 환골탈태할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정론(定論)’

 

원문발표: 2019년 6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9/3884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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