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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깨어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올해 어느 날 새벽 아버지(수련생)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머니(수련생)가 구치소로 송치되어 박해당한다고 알려주셨고, 구체적인 정황은 말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아버지와 함께 구치소로 옷가지와 일용품을 가져가기로 약속했을 때, 저는 비로소 어머니가 불법적으로 형사 구속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밤에 누웠을 때 마음속 그 괴로움의 정도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지만, 끊임없이 어떻게 해야 어머니를 좀 빨리 집으로 데려올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정에 이끌리는 것이 매우 심했고, 정(正)과 사(邪)가 머릿속에서 계속 겨루고 있었습니다! 최후에 ‘이번에는 정말로 신사신법(信師信法) 하여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겠다!’하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이때야 비로소 원래 자신의 수련이 줄곧 ‘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예전에 수련생의 근본 집착을 언급한 교류 문장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자신이 수련을 시작했을 때 나이가 아직 어리고, 병을 치료하려는 마음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느꼈고, 현재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지만, 명(各), 리(利)를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기에 자신의 수련하는 마음이 비교적 순정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고난이 왔을 때 사람의 방법으로 피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하게 신사신법 하며 법의 요구에 따라 하는 것인지? 이것은 일목요연한 것이 아닙니까? 본래 저는 각종 구하는 마음을 줄곧 감추고 있었으며, 생활의 각 방면에서 순조롭게 되기를 구했습니다. 비록 큰 재산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돈이 많으면 기뻐하며, 남편에게 말하기를 “생활이 뜻대로 되는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니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해요.”라고 했습니다. 지금에야 비로소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러 해 동안 가짜로 수련한 것이 사람 속의 좋은 것을 구한 것임을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지나온 요 몇 년을 조용히 생각해 보니 가족에 대한 정이 갈수록 깊어졌습니다. 먹고 입고 쓰는 것 무엇이든 자신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했기에 부모님이 우리에 대한 정이 깊어졌고, 많은 일이 구세력에 의해 교란당한 것이었지만 똑똑히 인식하지 못하고 도리어 사람의 정으로 대응하여 이번에 사악이 빈틈을 파고들어 어머니가 이런 박해를 당하는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정신이 없는 가운데 꿈을 꾸었고, 자신의 입에서 더러운 것을 토해내고 손으로 끌어내며 토했으며, 토해낸 더러운 것 속에는 백색의 살아있는 벌레도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마음이 그다지 괴롭지 않았고, 어머니가 박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생이 박해당하고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생각을 바르게 하자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 더러운 것을 청리해 주셨다는 것을 알았고, 정에 이끌리는 괴로운 감각도 없어졌습니다.

어머니가 불법적으로 수감된 그 며칠 동안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여러 차례 파출소에 갔지만,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통지를 기다리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파출소에 가는 과정 역시 매번 수련이었습니다. ‘파출소에 들어갈 때 두렵거나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은지? 어떤 때 정념이 강해 사악의 표현이 약해지면 환희심이 있지는 않은지? 사악의 표현이 드세면 그것의 말에 이끌려 소극적으로 되지는 않은지?’등등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저는 “우리는 어떠한 것에도 교란받거나 이끌려서는 안 되며,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것은 모두 가상으로 수련인은 시시각각 정념을 지키고 법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한다! 시시각각 자신의 일사일념에 주의해야 한다!”라고 교류했습니다. 예전에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보면 저는 수련생들은 어떻게 시시각각 법에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제가 법 공부를 하지 않을 때는 항상 법에서 벗어나지 않았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저는 진지하게 발정념하고, 진지하게 법을 배워, 시시각각 일사일념에 주의해야만 진정하게 수련하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저는 너무 멋대로였고, 심지어 자신이 정법 노정을 따라가고 있다고 여겼는데 정말로 부끄러웠습니다.

우리가 다시 파출소에 가서 석방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했을 때 다음 날 그들이 전화하여 사람을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전체 과정에서 처음에는 정념이 족했으나 이틀쯤 되자 갑자기 매우 고통스럽게 느껴졌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느껴졌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사부님, 이 박해를 빨리 멈추게 해주십시오. 제자는 정말 무기력합니다!’하고 요청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간이 긴박하며 자신이 이렇게 소극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법 공부를 하자.’ 단번에 “당신이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장 고생스러운 것도 가장 진귀한데, 미혹 중에서 깨달음에 의거해 되돌아 수련하는 데는 고생이 매우 많아 되돌아감도 빠르다.”[1] “속인은 이 점을 깨닫지 못한다. 속인은, 속인사회 중에서 그는 바로 속인인지라,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어떻게 잘살 것인가를 생각한다.”[1]라고 하신 부분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부님께서 미혹 중에서 깨달음에 의거해하고 고생을 많이 겪으면 되돌아감도 빠르다고 하신 말씀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고생이라고 느낄 때 사람의 좋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고생스럽다는 느낌이 사라졌습니다.

하루는 문득 ‘어머니가 일단 집에 돌아오시면 이는 미혹을 타파한 것이기에 더 무엇을 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수련 과정과도 같은 것으로, 어느 날 정법이 결속될지 모르는 것이 진정한 시험입니다. 자신이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봐야 하며, 일단 결속되면 더는 할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 연극을 본 사람은 알 것인데 당승(唐僧) 사제(師徒)는 구구팔십일의 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당승 사제는 오히려 알지 못했고, 그들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고, 얼마나 많은 해가 지나야 진경(眞經)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공간이 우리를 보는 것과 우리가 서유기를 보는 것과 같은 것으로, 모두 연극을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불법적으로 수감되어 박해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제자를 보살피며 보호해주시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사부님을 향한 감사의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무릎 꿇고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발정념의 위력과 법을 배워 법을 얻는 중요성도 매우 깊게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구세력의 박해를 우리는 결코 승인해서는 안 됩니다. 사부님께서는 장계취계(將計就計: 상대방의 계략을 역이용하여 상대방을 공격함)로 제자들이 진정하게 깨어 나와 최후의 길을 잘 걷게 하여 대법제자가 성취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수련생에게 참고 역할이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흐리멍덩하게 수련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청년 수련생, 우린 모두 어린이 제자에서 청년 제자가 됐습니다. 현재는 사회, 가정, 혈육 간의 정이 많이 있으며, 아이에 대한 자식 정이 있습니다…… 각 방면의 유혹을 어떻게 정념으로 대할 것인지 정말로 자신이 한 사람의 진수제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수련생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저팔계는 비록 어떤 관, 어떤 어려움에서도 떨어져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최후에는 정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상 개인적인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수련생들이 자비로 시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6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득>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6/3880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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