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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결속에 대한 집착의 배후

글/ 중국 청년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몇 달, 사상 속에 박해가 얼른 결속됐으면 하는 생각이 강렬히 반영되었다. 물론 이기적인 마음으로서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진정한 나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도 알면서도 이 집착심을 깊이 캐지 않아 이 마음이 나의 공간장에서 끊임없이 팽창됐다.

매일 언제 끝인가를 계산했다. 만약 5억 명이 탈퇴하고 결속된다면 적어도 10년은 더 걸려야지 않겠는가? 사부님의 말씀 “사부의 초기 배치는 바로 금년에 박해를 끝내는 것이었으며,”[1]를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금년에 결속하지 않는가? 얼른 결속해 버리지!’

한 수련생과의 교류에서 수련생이 말했다. “이는 ‘전법륜(轉法輪)’ 속에 부처를 원망하는 그 사람과 같은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다. 내가 어떻게 사부님을 원망한단 말인가? 속으로 한참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계속 스스로 물었다. ‘무엇 때문에 박해결속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사람 속에서 뜻대로 지내지 못했다는 것이 답이었다. 즉 얻고자 하는 명성을 얻지 못했고, 세 가지 일에서 고생하고 싶지 않고, 특히 진상을 알리는 데에서 매우 많은 것들을 돌파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최근 몇 달은 진상 알리는 것도 순조롭지 않고 힘이 빠지는 느낌이며 지금의 사람은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말해서 편해지고 싶고 고생을 하고 싶지 않으며 이 모든 것을 얼른 끝내고 싶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확고한 목소리가 나에게 알려 주었다. ‘나는 제고하고 싶고 돌파하고 싶다!’ 나는 사부님의 ‘2019년 뉴욕법회 설법’을 들고 계속 읽었다. 읽고 읽다가 마음속에 갑자기 확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이 경문을 4번째 배우는 중이다. 이전에 이 경문을 배울 때는 놓지 못한 집착을 안고 계속 경문 속에서 언제 결속한다는 신호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이번에 확고하게 제고하고 싶다는 일념이 생기자 사부님께서 나의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셨다. 갑자기 깨달았다. ‘수련은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다. 우리가 신사신법하고 정념을 확고히 할 수 있다면 한걸음에 그 층의 계단에 오를 수 있지만, 우리가 자신의 수련을 방임하고 사람 마음으로 대할 때 그 마난(魔難)은 산으로 변해 우리가 전진하는 길을 막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신심을 잃고 바른 궤도에서 이탈하게 된다. 그 마난은 우리 발밑에 있는 계단과 같다. 우리의 수련은 마치 마난의 계단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는 과정이다.’ 수련과 마난의 관계를 깨닫자 박해를 결속하는 이 일도 의문이 풀렸다. 다시 ‘전법륜’을 보니 사부님께서 마난의 수련에 대한 작용을 여러 차례 언급하신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2], “당신이 어떤 번거로움도 없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2], “그러나 그는 확실히 당신에게 心性(씬씽)을 제고할 한 차례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2] 원래 매 하나의 마난은 모두 심성을 제고하는 한 차례 기회이고 매 하나의 마난은 모두 우리가 위로 올라가는 디딤돌이었다.

매번 오후에 법 공부가 끝나면 나는 예전처럼 나가서 진상을 알린다. 연속 6명에게 알렸는데 6명 모두 기꺼이 진상을 받아들이고 감사를 표했다. 이는 금년에 진상을 알리는 중에는 매우 드문 현상이었다. 전에 진상을 알릴 때 순조롭지 못했던 것을 반성해보니 바로 자신이 박해결속에 대한 강렬한 집착심과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야 어떻게 남을 위하는 자비심이 나와서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그런 것은 다만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서일 뿐인데 어떻게 좋은 효과가 있겠는가? 진상을 알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속에 파도가 일었다. 나는 다만 제고하고 싶다는 일념이 나왔을 뿐인데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해주셨다. 마음속의 오래된 매듭을 풀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나의 용량도 확대해주시고 또 제자를 가지(加持)하여 순조롭게 사람을 구하게 해주셨다.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2019년 뉴욕법회 설법’ 중 수련생들의 질문 앞의 “제자” 두 글자가 “질문”으로 바뀌었음을 발견했다. 이로부터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자신에게 진정한 수련인이 맞는지 한번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여전히 예전의 위덕(威德) 속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수련에 태만해진 것은 아닌가?

이상은 개인이 현 단계에서의 깨달음으로 적절하지 못한 곳은 자비로 시정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6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8/3884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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