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수련생
[밍후이왕] 수련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어떤 수련생은 친척, 특히 직계 가족에게 대법진상과 삼퇴를 말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결함이다. 어떤 객관적 원인인지 혹은 인식하지 못했든지 막론하고 이 일은 마땅히 중시하고 돌파해야 한다.
한번, 나는 한 친척 수련생에게 말했다. “아이들이 대법진상을 아나요?” (그의 자식은 외지에 있다) 그는 “말해도 믿지 않아요.”라고 했다. 나는 “믿지 않아도 구해야 해요.”라고 했다. 수련생은 “됐어요. 순리대로 합시다.”라고 했다. 어느 날 수련생은 나에게 딸과 사위, 손자가 왔으니 함께 식사하러 가자고 했다. 그는 또 슬그머니 나에게 “딸이 집에 보살과 큰 신을 모시고 있어 믿지 않으니 만나면 대법 일을 말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나는 사람을 구할 기회가 있으면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딸과 사위는 장사하는 사람이고 돈이 있으며 입담이 좋다. 외손자는 대학생이다. 만난 후 나는 묵묵히 발정념을 했다. 또 그들과 겸손하게 한담을 하고 식사자리에서 나는 차를 술로 대신해 여러 번 마셨다. 그들 일가 세 식구는 나의 선량함과 겸손함을 느꼈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나는 온화한 어조와 심태로 그들에게 대법진상을 말했다. 나는 나지막하고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대법을 배우기 전의 신체 변화를 말하고 사전문화를 말하고 망당석(亡党石)에 대해 말하고 ‘천안문분신’은 기만책이라고 말했다. 나는 “보세요. 사람 얼굴이 검게 탔는데 눈썹이 온전하고 머리도 온전합니다. 어디에 이런 분신이 있나요? 거짓이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그의 딸이 놀라며 “그렇네요. 내가 왜 주의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그들은 이것, 저것을 물었고 분위기는 활기를 띠었다. 이어 말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헤어질 때 손자가 “대법 책이 있나요?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만약 그때 내가 말하지 않았다면 수련생 가족은 아마 구원받을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가족이 대법에 대한 태도가 어떻든지 우리는 포기하려고 생각지 말고 자신을 돌파하고 구도할 확신이 있어야 한다.
현지의 일부분 수련생(범위가 크다)이 진상을 알리는 것은 다른 수련생과 같지 않으며 면전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말하는가? 예를 들면 어느 수련생 집이나 친척 집에 애경사가 있으면 모두 가서 일한다. 사람이 많고 또 표현이 선하다. 가족이 보니 많은 사람이 오고 또 친척이 아니며 모두 파룬궁 수련생인 것을 보고 기뻐하며 좋다고 말한다. (속인은 칭찬할 때 당연히 좋다고 말한다) 오직 대법제자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면 이 사람은 구원받았다고 친다. 나는 처음에 의문스러웠다가 후에 어찌된 일인지 알았다. 수련생은 이렇게 하는 것은 법에서 깨달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부님은 “중생이 역사상 얼마나 큰 죄를 지었고 얼마나 큰 잘못이 있든 오로지 정법기간의 중생의 대법에 대한 태도와 대법제자에 대한 태도만 볼 뿐이다. 바로 이런 한 갈래 선(線)이다.”[1]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수련생은 또 말했다. “사람들이 대법제자에 대한 태도가 좋으면 이 사람은 구원받은 것이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얼마나 간단한 것인가? 또 그렇게 힘들게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이것은 자신을 기만하고 남도 속이는 거로 생각한다. 두려운 마음을 덮어 감추는 것이고 건성건성 하는 것이다. 만약 애경사가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진상을 알리지 않고 사람을 구하지 않겠는가? 대법진상은 우리가 말해야 사람들이 명백히 알고 구원받는다. 대법제자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진상을 명백히 아는 것이 아니며 이런 방식으로 진상 알리는 것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인식으로 적지 않은 수련생이 가족과 친척에게 진상을 알리지 않고 삼퇴를 권하지 않는다.
장사를 하는 한 수련생도 이러한 인식이었다. 한번은 소통할 때 그에게 물었다. “가족에게 대법진상과 삼퇴를 말했나요?” 그는 말했다. “무엇을 말해요? 나의 표현이 좋은 이 본신이 진상 아닌가요? 말할 필요 있나요?” 그는 일찍 납치당한 적이 있다. 두려운 마음에 아마 이렇게 하는 것이 평온하고 모험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제자가 가족에게 진상을 알리지 않는 이것은 실로 말이 안 된다. 후에 이 수련생은 사업을 말아먹었고 신체에 병업상태가 나타났으며 빌린 돈을 갚지 못했다. 아내는 대법을 수련했지만 병업상태가 나타났고 마지막에 이 부부는 선후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은 대법에 대해 매우 불만이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날 공동묘지를 갈 때 적지 않은 수련생이 갔지만, 그의 가족들은 매우 반감을 품고 인상을 썼다. 어떤 이는 일부 듣기 거북한 말을 했다. 만약 수련생이 평소 가족에게 진상을 똑똑히 말했으면 이런 결과가 없었을 것이다. 수련생이 남긴 이 유감은 우리가 깊이 생각할 가치가 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여러 해 동안 똑같은 꿈을 꿨어요. 나에게 땅이 있는데 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삽질을 하지 않았거나 혹은 수확을 하지 않았어요. 마치 어떤 유감이 있는 것 같아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생각하다가 그에게 물었다. “가족에게 대법진상을 말한 적이 있나요?” 그는 “오빠와 형수에게만 했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자주 밖에서 자료를 배포하고 대법 일을 적지 않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가족을 먼저 구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나의 부모는 지식인이고 나의 말을 듣지 않아요. 삼촌은 정법위원회 사람이고 이모부는 정부 사람이에요…… 내가 진상을 말하려고 생각하면 마음이…… 차라리 말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가족과 친척보다 인연이 큰 사람은 없어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사람이에요. 큰 재난이 올 때 이것을 보지 않아요. 당신은 그들을 구해야 해요.”라고 했다. 대법제자는 사람은 구하는 중에 만약 가족과 친척, 친구를 홀시했다면 그것은 정말 매우 큰 유감과 누락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진상을 알리는 것은 마땅히 가족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우리와 인연이 크기에 진상을 알리기 좋다. 비록 사악한 당이 요언을 날조하고 선전해도 오직 진심으로 하면 그들은 모두 구도될 수 있다.
나의 신변의 한 노 수련생은 고향인 시골을 떠난 지 거의 20년이 되었고 가족이 모두 없다. 그녀는 온 마을의 수십 가구가 대법 복음을 듣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느 날 그녀는 거의 온 하루 차를 타고 고향인 그 마을에 도착해 적지 않은 선물을 사 집마다 선물했다. 그녀는 어머니, 아주머니라고 부르며 적절하게 진상을 알려 60여 명을 탈퇴시켰다. 적지 않은 연장자가 그녀를 칭찬하며 말했다. “너는 도시에 가 부자가 돼도 우리를 잊지 않았구나. 전도가 유망하다.” 사실 노 수련생은 생활이 부유하지 않지만, 사람을 구하기 위해 돈을 쓴 것이다. 그녀는 말했다. “돈을 얼마 쓰든지 가치가 있어요.”
수련생과 약간의 현상을 교류하려고 썼다. 자비롭게 시정하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8-2007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6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3/3881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