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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법회] 소중히 여기다

글/ 뉴욕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까지 저는 자신은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여겨왔습니다. 그러므로 ‘소중히 여기다(珍惜)’라는 두 글자를 들을 때마다 저는 이 말의 이치를 알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후 저는 무엇을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다’라고 하는지 비로소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제가 이해하고 있었던 ‘소중히 여기다’라고 하는 것은 사실 아주 낮은 인식이었습니다.

2017년 11월 19일 저는 텀블링(tumbling) 수업 때 공중제비를 하다 부주의로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는데 당시 뒤로 공중제비를 하는 중이었습니다(backflip). 돌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순간 더 힘을 주려고 생각했지만 내려오면서 내디딜 때 아킬레스건이 마치 칼로 찌르는 것처럼 몹시 아픈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엔 텀블링 선생님이 조심하지 않아 나를 한 번 찼거나 아니면 내가 무엇인가를 밟아 깨뜨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착지할 때 한 번 굴렀으며 맨 처음 본 것은 선생님의 놀란 표정이었고 이후 교실 안의 다른 사람들도 매우 놀란 표정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일어나서 걸으려고 했지만 발이 마치 무엇인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고 내 발이 아닌 것처럼 완전히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즉시 자신에게 “괜찮다. 아무 일도 없다.”라고 말했고 그런 다음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이런 일의 발생은 일종의 교란임을 깨달았습니다. 공연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려고 사무실에서는 저를 수술받도록 조치했습니다. 당시 (병원에 가려고) 짐을 정리하면서 마음속으로 저는 ‘구세력의 배치를 따르지 않는다. 사부님의 배치만을 따르겠다.’고 계속 말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회복할 수 있을까? 이후로도 춤을 출 수 있을까? 산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하는 등등의 다른 생각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션윈 사무실에서 전화로 저의 정황을 물었습니다. 제가 “저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지만, 산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라고 말하자 저쪽에서 “틀림없이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이 말은 저에게 큰 신심을 주었고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줬습니다.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는 저의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것이 보통의 경우와 다른데, 일반적으로는 아킬레스건이 중간에서 끊어지지만 저는 아킬레스건이 뼈에서 이탈됐기 때문에 아킬레스건을 잡아당겨 철심을 이용해 뼈에 박아야 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수술 이후에도 저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었고 두 개의 목발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 간단한 움직임마저도 저에게는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변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매일 거기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고 줄곧 사고하는 것만 할 수 있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하고 자신의 안을 향해 찾아보니 과시심, 질투심….. 등 많은 집착심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정에 대한 집착심이었습니다. 저는 곧 성년이 되기에 머릿속에는 결혼해 독립하는 것에 관한 생각이 자주 생겼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저는 자신에게 ‘나는 아직 성년이 아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저는 과거에 여학생을 만났을 때는 매우 조심하며 말을 걸지도 않았지만 나중에 촬영팀 일을 도울 때는 여학생과 항상 협력해야 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요구를 점점 느슨히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이 기간에 반드시 이런 집착심을 전부 다 내려놓고 수련에 더욱 정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요양 기간에는 속인 사회로 돌아가야 하며 집착심을 불러일으킬 많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자신을 느슨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두 차례 법을 학습했는데 한 차례는 아버지와 같이하고 한 차례는 혼자서 했으며 또 두 시간 연공을 했습니다. 당시 설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공법을 앉아서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천히 이전에 산에서 법 공부할 때 많은 경우 형식적으로 했으며 몰두하여 법을 배우지 않았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천천히 법을 읽는 방식을 채용해 매 글자가 머릿속으로 들어가게끔 읽었으며 어린 화상이 경을 읽는 것처럼 건성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자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법리를 점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저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었지만 내 인생은 매우 부정적으로 변했습니다. 이전에 저는 휴식 시간이 너무 적다고 항상 불평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매일 뜻대로 나의 시간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내는 게 조금도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모든 대법제자가 세인을 구도하고자 노력하는데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느껴졌습니다. 매우 부정적이던 이 시기에 세 명의 수련생이 인터넷을 통해 줄곧 저를 격려해주며 이 곤경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의 도움을 통해 저는 점점 낙관적으로 변했고 ‘이 시기를 낭비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잘 장악해야 한다.’라고 자신을 일깨웠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법 공부하고 연공하는 것 말고도 션윈 홍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션윈의 ‘무대 뒤’를 도왔고 중국어를 배우고 많은 무용 동영상을 봤으며 촬영을 배우고 연기 수업도 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션윈 무대 뒤에서 도왔던 기간에 저는 많은 계발을 받았습니다. 저는 14살에 션윈에 들어왔기 때문에 사부님의 신변에 있는 것이 일상이었고 당연한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역 수련생의 신분으로 무대 뒤에 왔을 때 모두가 사부님을 한 번 뵙고 얼마나 격동하는지를 보았습니다. 션윈은 사부님께서 직접 이끌며 하시기에 모두가 매 션윈 배우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고 친절하며 션윈 공연을 자신의 휴식이나 음식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대 뒤에서 본 많은 사례는 저를 그들에 대해 충심으로 탄복하게 했습니다. 이전을 회상해 보면 저는 항상 너무 힘들고 무료하다고 불평했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자신이 그다지 분발하지 않았고 ‘소중히 여기다’라고 하는 뜻을 결코 진정하게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속했던 예술단이 LA에 두 번 왔는데 그들을 봤을 때 저는 매우 감격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자신이 션윈의 수련 환경 속에 있을 때가 매우 소중했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왜냐하면 신변이 모두 대법제자이고 게다가 나와 같은 또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LA에서 요양할 때는 부모님을 제외하면 주변이 모두 속인이었습니다. 속인과도 교류할 수 있고 친구로 사귈 수 있지만, 그들과의 교제가 너무 수준이 낮다는 느낌이 항상 있었습니다. 션윈 동료와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공동의 이상과 목표가 있었는데 이런 환경과 이와 같은 감수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할 것입니다. 전에 동료와 다투고 모순이 생겼을 때를 회상해 보니 자신이 정말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이전의 환경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의식조차 하지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몇 달 후 저의 상태는 6~7할 정도로 회복돼 뛰고 뒤집기 하는 것을 제외하고 기본적인 무용 동작은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단장과 산에 연락을 취해 제가 돌아가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그다지 확정적으로 답을 주지 않았고 저를 한동안 더 기다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순회공연이 끝날 무렵이었고 다음 해 순회공연을 준비하는 일을 시작해야 할 때였습니다. (다쳤을) 당시 션윈 사무실에서는 저에게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었지만 제 마음은 ‘무슨 변화가 생겼을까?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만약 돌아가지 못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등등의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와 교류했는데 어머니는 내게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고 돌아가고 못 가고는 상관하지 말아야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견정하게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지 너는 대법제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제가 안을 향해 찾아보니 자신에게 많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많이 생각할 필요가 없고 어떠하든지 간에 사부님의 안배를 따르겠다고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마음이 평온해지자 교장 선생님이 제게 전화해서 산으로 돌아오도록 허락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격동됐으며 사부님의 저에 대한 자비를 느꼈습니다. 산으로 돌아온 후 모든 것이 다 꿈만 같았습니다. 사부님을 뵙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제가 곤란에 부딪히면, 다쳤을 때 겪었던 일들을 상기해봅니다. 춤추는 동력을 잃어버릴 때면 그 당시 길을 걷는 것도 혼자 할 수 없었던 것을 떠올려봅니다. 주변의 사람과 모순이 생겨 심성의 고비를 넘을 때는 저 혼자 집에서 쓸쓸했던 그 시기를 생각해보며, 수련이 해이해졌을 때는 사부님의 저에 대한 자비를 상기해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것은 무용수에게는 사실 너무나 비참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저에게는 결코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저는 진정한 자아를 똑똑히 볼 수 있었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인해 무엇을 ‘소중히 여기다’라고 하는 것인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힘든 날들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일부는 여러 선생님의 배려와 격려 덕분이고, 다른 일부는 동료와 가족들의 지지에 의한 것이며, 더욱 중요한 부분은 법에 대해 굳건함과 신념이었습니다. 저는 대법을 믿습니다. 대법은 일체를 원용할 수 있고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션윈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9년 뉴욕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19년 5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 원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23/3877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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