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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법회] 수련의 길

글/ 일본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존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운 좋게도 이 기회에 자신의 23년 동안의 수련 노정과 그 속에서 깨우친 소감을 기록하여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수련생 여러분들과 함께 교류하고자 합니다.

1. 어린 시절 법을 얻다

1996년, 어머니의 동료가 파룬궁을 어머니에게 소개해주며 이 공법을 연마하면 병을 제거하여 몸을 건강하게 하며, 많은 난치병이 치료하지 않고도 완치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공을 접해보지 않았던 어머니는 반신반의하면서 시작했고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9살이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집에서 제1장 공법을 연마하는 모습을 보면서 늘이면서 펴는 모습이 흥미롭게 느껴져 따라서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배우려고 하자 어머니도 저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이렇게 저도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2. 수련 초기에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하다

수련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는 여러 해 전에 다쳤던 발이 치료를 받지 않고 저절로 완치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어머니를 괴롭혔던 병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대법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으므로 정신적인 면에서도 제고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일리가 있다고 지나치게 사람을 몰아붙였지만, 수련 이후에는 더는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했으며 거의 해마다 선진일꾼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병이 많았고 큰 병은 없었지만 작은 병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평균적으로 매월 병원에 두세 번 가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설날 무렵이면 더 발병하여 부모님을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생스럽게 했습니다. 수련 이후 모든 것에 변화가 일어났고 저는 법리를 깨달았으며 이것은 소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0살 되던 해에 어느 날 저는 갑자기 신장염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주변 반 친구가 마침 신장염으로 입원하면서 1년 휴학했고 그녀가 저에게 신장염의 증상을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은 소업이라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조금의 동요가 없었고 저는 대법과 사부님을 확고하게 믿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신체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 기간에 저는 학교 다니는 것을 지체한 적이 없었고 하루도 결석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 세 명은 친척까지 더 하여 열 명의 가족은 모두 대법 속에 잠겨 있었으며 아침이면 연공장에 나가서 연공하고 밤이면 법공부팀에 가서 법공부를 하면서 한동안 매우 행복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3. 박해가 시작되고, 정법의 길을 걷다

사실 줄곧 이렇게 평온하게 수련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1999년 7월 20일 이후, 연공장에 갈 수 없게 되었고, 법공부팀도 해체되었으며 연공장의 책임자는 붙잡혀갔습니다. 이렇게 많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시에 아직 아이였던 저는 왜 텔레비전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지 도대체 어떤 일이 발생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많은 마음을 안고 저와 어머니는 연공장의 수련생들과 함께 베이징으로 한 마디 공정한 말을 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1999년 12월 우리는 베이징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톈안먼으로 가는 길에 올랐습니다.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새벽이었고 찬바람이 살을 에듯 불어왔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톈안먼광장으로 가서 사방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수련생들은 현수막을 펼쳤고, 우리 몇몇 사람은 포륜(抱輪)동작을 시작했습니다. 손을 들고 1분이 채 안 되어 한 무리의 사복 경찰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발길질에 구타까지 하면서 우리를 경찰차에 태워, 이름 모를 구치소에 가뒀습니다. 그곳에 오래 머물렀고 수련생들은 끊임없이 보내져 들어왔으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리를 웅크리고 바닥에 앉아야 했던 것만 기억이 납니다.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우리 매 사람을 등록했고, 강제로 돌아가는 기차에 태웠습니다. 당시에 발정념을 몰랐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것도 몰랐습니다. 비록 얼떨떨하게 경찰관에게 협조했지만, 결코 순조롭게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교도소에 갇혔고 저는 가둘 나이가 되지 않아 주민위원회로 보내졌고, 저에게 보증서(保證書)를 써야만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했지만 저는 울기만 할 뿐 쓰지 않아 아버지가 저를 데리러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저에게는 오직 한 가지 신념이 있었으며 확고하게 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도저히 방법이 없어 아버지에게 저를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이후 저는 마음속으로 비통했습니다. 어머니가 그리웠고 학교에 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비록 어머니가 그곳에 갇힌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찾아가 보지 못하게 했으며, 약간의 옷가지만 보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옷 속에 한 통의 편지를 넣어 어머니에게 잘 견지하면서 타협하지 말라고 격려했습니다. 한 달 후 어머니가 나왔습니다. 안에서 수련생들과 함께 단식항의를 했으며 비록 많은 고생을 했지만 타협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어머니의 확고함에 기뻤습니다. 이로부터, 경찰관은 자주 우리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고 어머니를 파출소에 데려갔습니다. 잠시 후면 나올 수 있다고 말했지만 한 번 가니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회사 지도자들이 다방면으로 알아보아서 어머니의 행방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사 지도자들은 직접 나서서 전력을 다해 보증하고 나서야 어머니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곧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경찰관이 찾아와 교란하는 것을 피하고, 저의 학업을 지체하지 않도록 어머니는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비록 교란으로부터 멀어졌지만, 수련생들과 연락이 끊겼고 또 인터넷을 할 줄 몰라, 문을 닫고 혼자 수련하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비록 마음은 법에 있었지만, 오히려 진정하게 걸어나가지 못하여 많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대학을 간 후 점차 예전의 수련생들과의 연락을 주고받게 되면서 수련인은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그늘은 좀처럼 지우지 못했고, 낯선 사람에게 진상을 감히 알리지 못했으며 주변에 친한 학우와 이야기 할 때도 감히 자신이 수련자라는 것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늘 제삼자로 가서 이야기했고 근본적으로 아직 두려운 마음이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4. 해외로 걸어 나와 사전 서약을 실천하다

일하게 된 후, 저는 일본으로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국내에서 자신이 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출국하면 반드시 배로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으로 온 후 첫 번째 일은 바로 밍후이왕에서 현지 수련생들과 연락을 취하여, 곧 현지 공원에서 거행하는 홍법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온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쾌청했으며 벚꽃이 만발했습니다. 벚나무 아래에서 저는 한 수련생이 가부좌하는 모습을 보았고, 저는 알아보려고 다가가 그 수련생에게 “저도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해보았습니다. 수련생은 미소 지으며 “그러면 오셔서 함께 연공해요.”라고 말했습니다. 1999년 이후, 햇빛 아래에서 당당하게 연공을 하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어, 저의 마음은 비할 바 없이 감격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오랫동안 먼지로 뒤덮여 있던 자신이 마침내 어두운 세상에서 벗어나 다시 햇빛을 보게 된 것 같았고, 그 순간부터 저는 자신이 해외에서의 정법의 길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학교 관악부에서 플루트와 피콜로를 불었고, 일정한 기초가 있었기 때문에 매우 순조롭게 천국악단에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수련생들이 여러 해 동안 불면서도 여전히 이상적으로 불지 못하고 대열 속에서 걸을 때 충분히 정연하지 못한 모습을 보고 수많은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이보다 훨씬 어려운 곡도 모두 불었으며 시급의 군악대 대회에 참가한 적도 있었고 무늬패턴 대열도 모두 걸어본 적이 있었으니, 천국악단의 이 정도는 전혀 저를 곤란하게 할 수 없으며, 또 수많은 과시심, 환희심이 파생되어 나왔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그것을 매우 깊은 곳에 숨겨두었습니다. 그리하여 악단의 출단 활동을 제외하고 거의 악기 연습을 하지 않았고 자신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연습하는 것은 곧 시간 낭비이고 자신의 기존 수준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5년 타이완의 전문 지휘자가 일본에 와서 지휘하면서 대중 앞에서 저의 연주가 모두와 융합할 수 없다고 지적했고 저는 혼자만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마음속으로 불복했으며 안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퍼레이드를 할 때도 늘 고의로 큰 소리로 불었고 다른 수련생들이 잘 불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조금 큰 소리로 불어야 플루트부로 하여금 존재감이 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과시심을 위해 핑계까지 찾았습니다. 한번은 타이완 악단 수련생과 함께 공연할 때, 옆에 있던 타이완 수련생이 선의로, 제가 잘 불지만 소리가 너무 돌출되어 충분히 융합할 수 없다고 지적해주었습니다. 저는 입으로는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했지만, 마음속으로 여전히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비할 바 없이 부끄럽습니다.

어느 날, 악단 연습을 마치고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5시간 가까이 운전하면서, 저는 줄곧 션윈 오케스트라 CD를 들었습니다. 비록 매일 운전할 때 모두 반복적으로 듣곤 했지만, 그날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음악이 융합되는 힘과 감동과 악기와 악기가 서로 어우러져 빛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으며 합주 중에 돌출되는 소리의 표현이 없었고 고요함과 평온함, 리드미컬함, 웅장함, 어떤 표현을 막론하고 ‘자아 강조’를 표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마침내 무엇이 융합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악단은 마찬가지로 수련의 일부분이며, 악기 연습 역시 마찬가지로 법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하며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사부님께서 일찍이 제자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의 문제를 주의해야 한다. 당신들은 법을 실증하는 것이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의 책임은 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법을 실증하는 것 역시 수련이다. 수련 중에서 곧바로 자아에 대한 집착을 스스로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반대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실증하는 이런 문제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 법을 실증하고 수련을 하는 것은 역시 자아를 제거하는 과정이므로 그렇게 하였다면 당신은 비로소 진정하게 당신 자신을 실증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최후 속인의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속인의 일체를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속인으로부터 걸어 나올 수 있다.”[1]

그렇습니다. 자아를 실증하는 저의 이 마음은 저의 과시심, 환희심, 원망하는 마음,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 심지어 진심으로 수련생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악단의 전체 융합을 파괴하는 하나의 소리가 되도록 초래하였으며 저는 이 일체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의 아름다움은 각종 소리의 상호 배합에서 비롯되며, 자아를 강조하지 않고 자아를 내려놓는 것에 있습니다.

타이완 전문 지휘자는 일본도 타이완을 본받아 일반인 전문가가 가르치는 성부(聲部) 수업 또는 개인 수업을 전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여 저는 처음에 위화감 있었습니다. 몇 번 수업을 듣다 보니 일본의 속인 선생님은 성인음악 애호가에 대한 교육 방식이 엄격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고 실질적인 것을 배울 수 없어 돈과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하여 계속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수련생)은 제가 견지할 수 있기를 바랐고 또 저를 도와 새로운 선생님을 찾아주었습니다. 저는 매우 내키지 않았지만, 시험 삼아 한 번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수업에서 뜻밖에도 선생님이 저에게 존재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해주었고 저에게 일부 올바른 연습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때 저는 수업에 저촉되는 정서가 있었고 선생님이 저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것 역시 ‘자아 강조’라고 인식했습니다. 사실 자아를 내려놓고 선생님을 믿으면 자연스럽게 소득이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2010년 뉴욕 법회에서 이런 한 단락의 설법을 하셨습니다.

“제자: 뉴욕 천국악단은 현재 아주 많은 음악이론(樂理)을 배우고 있으며, 또 시험을 봐야 하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많은 음악이론을 배우려 한다고? 이런 것이 아닐 텐데? 현재 전문화하기는 불가능하며 법을 실증하는 데에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알기만 하면 되는데 또 당신이 하나의 전문적인 천국악단의 구성원으로 될 필요가 없다. 대법제자는 여러 직을 겸하고 있다. 매 하나의 일을 할 때 여러분은 모두 그것을 좀 잘하려고 하는데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경중을 숙고해야 하고 경중을 숙고해야 한다.”[2]

사부님께서 “현재 전문화하기는 불가능하며”, “알기만 하면 되는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천국악단이 연주하는 곡 안에는 가장 기본적인 음악이론은 매 사람이 장악할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깨달은 후 저는 자아를 강조하는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했고 정확하게 연주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조금씩 음악이론 지식을 축적하였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음색이 좋아졌고 호흡을 통제하는 것 역시 갈수록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악곡의 연주에서도 음악의 느낌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이 길을 제가 바르게 걸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개인의 연주가 향상된 것과 동시에 악단 수련생들의 상태도 볼 수 있게 되어, 저는 사부님의 설법이 떠올랐습니다.

“제자: 우리들은 어떻게 정체적인 제고, 정체적인 승화를 더욱 잘할 수 있습니까?”

“사부: 여러분이 서로 협력을 잘하면 된다. 매 사람의 경지가 같지 않으므로 내가 지금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사부는 일부 수련생과 수련생 사이의 차이가 이미 벌어진 것을 보았다. 이전에는 뚜렷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미 차이가 벌어졌다. 막바지로 갈수록 차이가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인식 상에서 틀림없이 차이가 있을 것이다. 관건은 당신들이 어떻게 잘 협력하는가 하는 것이며 어떻게 조화를 잘 이루는가에 있다.”[3]

비록 악단을 겨냥하여 설법하신 것은 아니지만, 악단 수련생의 연주하는 수준에 있어서 떨어지는 수련생이 일부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한 몸의 선(善)만을 꾀할 수 없었고 기회가 있으면 수련생을 도와 제고하게 하며 수련생과 잘 협력하여 정체적인 제고를 이루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쿄와는 먼 곳에 살고 있었으므로 늘 마음은 있었지만, 여력이 안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진실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1년 후 저는 순조롭게 도쿄의 한 회사에 들어가 근무하게 되었으며 악단과 한 걸음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도쿄로 이사한 후 악단은 제가 플루트와 클라리넷 파트를 연습하기를 희망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열정이 있었지만, 경험이 없어 일부 기본적인 음악이론 지식을 찾아서 수련생에게 설명해주었고 자신의 플루트 선생님의 가르치는 방식을 참고하여 모두를 데리고 기본기를 연습했습니다. 수련생의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상황에 근거하여 서서히 조정하면서 점차 경험을 쌓게 되었습니다.

몇 달 뒤 뜻밖에도 악단 협조인은 저에게 기술협조 업무를 맡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단순하게 기술협조란 바로 타이완 및 아태지역 각 국가의 협조인과 기술상에서 서로 교류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한 마디로 승낙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것은 악단 기술방면의 연결 창구였을 뿐만 아니라 악단 전체적인 기술을 책임져야 했으며 연습계획을 만들어야 했고 악단을 데리고 연습해야 했습니다. 이번에 큰일 났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남편과 함께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공동으로 연습 방법과 내용을 연구했습니다. 타이완 전문 지휘자 수련생의 사심 없는 도움과 지도까지 더해져 저는 점차 일본 악단에 적합한 연습 방법과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오직 신사신법하고 법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제고하기만 하면 마땅히 있어야 할 능력을 사부님께서 자연히 제자에게 주시리라는 것을 깊이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매번 악단 연습에서 난제에 부딪혔을 때 저는 모두 법으로 자신의 그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습니다.

구체적인 과정에서 정말 순풍에 돛을 올리듯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의 기본기를 가능한 한 빨리 향상하기 위하여 악단은 대법 곡의 목록 시험에서 합격하면 퍼레이드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수련생에게는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시험에 불합격하면 퍼레이드 연주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매번 홍콩, 일본을 포함한 국내 퍼레이드는 모두 더 많은 악단 수련생을 필요로 하며 그래야만 장관을 이루게 되는 바 이 양자를 어떻게 잘 균형을 이루게 할 수 있을까요? 시험을 시행한 초기에 일부 수련생은 매번 모두 적극적으로 신청하여 참가했지만 거의 매 시험에서 실수가 모두 같았습니다. 자신이 최근에 어떻게 연습했는지 등을 말했으며 저는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은 오히려 뒤집혔습니다. 큰 운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와서 시험에 참여하는 것은 모두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수련생에 대한 불평이 가득했고 부정적인 사유가 모두 몰려왔으며 또 안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수련생의 표현은 자신에게 있어서 제고할 수 있는 기회이며 악단의 일은 역시 심성을 제고할 수 있는 환경이므로 절대 악단과 수련을 분리할 수 없고 악단의 일을 단지 일로써 하면 안 되며 법 공부와 연공 할 때만 수련인이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 관련될 때에는 속인으로 변하면 안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았습니다. 수련생이 연습을 잘하지 못한 것은 제가 방법을 찾아 그들을 도와 연습하게 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저는 시험을 보는 방안을 생각해냈습니다. 수련생에게 문제점을 알게만 하면 바로 수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후 시험 효율은 다소 개선되었고 합격률 역시 높아졌습니다.

일부 수련생은 자주 저에게 녹음을 보내옵니다. 비록 확실히 명확하게 수련생의 녹음 속에 이전에 이야기했던 문제점이 고쳐진 것을 느꼈지만 저에게는 또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마땅히 제거하여 없애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방법은 일본에서 서서히 진행 중이며 이미 조금 효과가 있었습니다. 비록 일부 아마 좀 미흡한 점이 있지만, 저와 수련생도 서서히 협력 과정에서 자신을 제고하고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대법(大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作風)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불복하고 겉으로만 복종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보지 않을 때는 여전히 자기 뜻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다.”[4]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늘 이런 말을 하는데, 한 사람이 자신의 어떠한 관념도 가지지 않고 남과 말하면서 남에게 그의 결점을 지적하거나 그에게 무엇을 알려준다면, 그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것이다. 당신 자신의 어떠한 요소가 없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심지어 당신 자신을 위해서 아무런 보호도 하려 하지 않으며 당신이 정말로 선의로 남을 좋게 하려 한다면 어떤 사람이든 그는 정말로 당신의 이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5]

저는 악단에서 수련생을 도와 연주상에 존재하는 문제점을 확실하게 해결해야만 악단이 비로소 정체적으로 제고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심이 없는 마음, 선의 힘으로 악단의 일을 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고 자아를 내려놓으며 악단의 수련생들과 서로 협력하여 정체적으로 제고되어 올라와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의 체득에서 부족한 점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청성(淸醒)’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싱가포르 법회 설법’

(2019년 홍콩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19년 6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3/3881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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