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 대법제자(본인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저는 시골 대법제자이고 올해 67세입니다. 1998년에 대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시절에 몇 글자 배웠지만 ‘전법륜’ 책 속의 글자는 절반 이상 몰랐습니다. 당시 우리 마을에 법공부 팀이 있어 밤이면 저는 법공부 팀에 가서 법을 배웠으며 다른 사람이 읽으면 저는 들었습니다.
1999년 ‘7.20’이후, 단체 법공부 환경이 사라지게 되어 어떻게 법공부를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당신 스스로 집에서 배워. 모르는 글자를 써놓으면 내가 퇴근해서 가르쳐줄게.” 남편의 조카는 인쇄소를 운영 중이라 저는 조카며느리로부터 일부 인쇄 폐지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틈만 나면 법공부를 했고 모르는 글자는 펜으로 따라 그렸습니다. 한 번 보고 한 번 따라 그리면서, 어떤 때에는 반나절 동안 한 글자를 따라 그리면서 남편이 퇴근해 돌아와 저를 가르쳐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한편으로 배우고, 한편으로 쓰면서 배우는 것이 매우 느렸습니다. 비록 때때로 몹시 조급했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저는 견지했습니다. 1년여 동안 저는 ‘전법륜’을 전부 읽을 수 있게 됐고, 사부님의 기타 설법을 점차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1999년 ‘4.25’ 대청원과 ‘7.20’ 베이징 청원 등 대법 수호 활동에 저는 모두 참가했습니다. 나중에, 대형 진상 표어를 쓰고, 진상 스티커를 붙이며, 현수막을 걸고, 진상 자료와 소책자를 배포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새해 벽걸이용 및 탁상용 달력을 나누어주었고, ‘9평 공산당’을 전해주고, 대면해 삼퇴를 권하고 탈퇴시켜 세상 사람을 구도했으며, 장쩌민을 고소하는 것을 저는 모두 자발적으로 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 하에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했습니다.
1. 표어를 써 대법의 복음을 전하다
2004년에서 2005년 사이에 우리 몇몇 수련생들은 표어를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대법의 복음을 전할 것을 논의했습니다. 한 수련생은 엑스레이 필름으로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삼퇴해 평안을 보장받자’ 등 형판을 제작했습니다. 글자를 새기는 수련생은 매우 심혈을 기울여 글자를 반듯하고 균형감 있고 아름답고 보기 좋게 새겼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한 팀으로 형판을 길가 전봇대에 묶고 페인트로 쓰다가 나중에는 스프레이 페인트로 뿌렸습니다. 당시 우리 마을 곳곳에서 모두 대법 표어를 볼 수 있었습니다.
2004년 섣달 스무아흐렛날, 내일이면 곧 섣달 그믐날이므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목욕탕에 가서 목욕하려 했습니다. 목욕탕에 가보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잠시 씻을 수 없어 마음속으로 가서 진상 표어를 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수련생 집으로 갔고 우리 두 사람은 단번에 의견이 일치해 형판, 페인트 통, 솔을 들고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가면서 쓰다 보니 연이어 대여섯 마을이나 다 썼습니다.
다 쓰고 난 후 다시 목욕탕에 가서 목욕했습니다. 목욕탕 주인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얼른 집으로 가보세요. 당신 남편이 두세 번이나 당신을 찾으러 다녀갔어요.” 저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문을 밀어보니 안으로 걸어 잠겨 있었습니다. 아마 남편이 저를 찾지 못해 화가 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조급해하지 않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니 이웃집 전기계량기 상자 아래에 작은 사다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사다리를 옮겨와 담을 올라가려 했으나 우리 집은 크고 마당이 넓어 사다리 높이가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두 손으로 담장 꼭대기를 잡고 기둥을 밟으며 두세 번에 걸쳐 담장을 탔습니다. 마당 안쪽 벽에도 마침 사다리가 놓여 있어 저는 사다리를 따라 마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으로 들어가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었습니다. 섣달 그믐날 온 식구의 점심을 챙겨주기 위해서 저는 주방으로 가서 고기를 가마솥에 넣고 작은 불로 끓인 다음,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습니다. 침대 위에 누워 설 명절 동안 세상 사람들이 곳곳에서 대법 진상 표어를 볼 수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해졌습니다.
아마 환희심이 사악에 의해 틈을 탔는지, 그 무렵 사악한 요소가 좀 많았습니다. 나중에 우리의 표어는 여러 차례 나쁜 사람들에 의해 지워졌고 경찰관이 늘 순찰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제자에게는 중생을 구해야 하는 사명이 있으므로 반드시 중생에게 대법의 복음을 볼 수 있게 해야 했습니다. 표어가 칠해져 지워지면 우리는 다시 썼고, 다시 지워지면 우리는 또다시 썼습니다. 어떤 때는 경찰차가 우리 뒤에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조용히 가면서 등도 켜지 않았습니다. 경찰관은 전봇대로 다가가 휴대전화 또는 손전등으로 “글씨가 젖어 있는지 봐, 글씨가 쓰인 지 얼마나 됐지? 사람이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니야?”하면서 살펴보곤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므로 두렵지 않았습니다. 희미한 불빛이 그곳에서 번쩍이는 것을 보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바로 밀밭에 숨거나 밭고랑에 엎드려 경찰차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이어서 쓰곤 했습니다.
또한, 대법은 지혜를 열어줍니다.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칠한 색깔을 바탕색으로 삼아 더 아름답고 선명한 글씨를 다시 씁니다. 나중에 우리는 점차 경찰관이 순찰하는 규칙을 파악하게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저녁 9시에서 11시까지이고, 새벽은 3시 이후였습니다. 우리는 12시에서 3시 사이에 글을 썼습니다. 2005년 1년 동안, 줄곧 그들이 칠해서 지우지 않을 때까지 이렇게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속인들이 대법 표어를 보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참 능력이 좋네. 어떻게 이렇게 잘 쓰지!”
2005년 겨울, 내 조카의 사촌 남동생이 토끼를 잡다가 잡히지 않자 농민이 기르던 고양이와 개를 잡다가 경찰관에게 붙잡혔습니다. 조카가 경찰서에 가서 사촌 남동생의 사정을 이야기해주고 집으로 돌아와 말했습니다. “경찰관이 ‘우리는 당신 친척을 붙잡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글을 쓰는 파룬궁(제자)을 잡기 위해 잠복해서 지키고 있었던 겁니다.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왜 아직 잡을 수 없는 걸까요. 누가 이 글을 쓴 걸까요?’라고 말했어요.”
조카는 또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제가 글을 쓸 줄 모른다는 것을 알기에 제가 썼을지는 생각지도 못했으며 저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경찰관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사부님의 보호가 있고, 행한 것은 우주에서 가장 바른 일입니다. 그들이 중생에게 해악을 끼치려 하고 나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2. 표어를 수정해 사악을 두려워 떨게 하다
2006년, 우리 현지에는 매우 많은 대법 수련생이 납치를 당했고 우리 마을에도 여러 대법 수련생이 납치를 당해 불법 징역형이나 노동교화를 받았습니다. 일순간에 먹구름에 뒤덮였으며 사악한 기세가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2007년 섣달, 저는 친정집으로 가다가 한 마을 길가에 집 열 채 정도 되는 길 담벼락에 대법을 모함하는 표어가 쓰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현 소재지로 가는 길에서도 같은 표어를 보았습니다.
이 표어는 얼마나 많은 중생에게 해악을 끼칠까요? 저는 수련생을 찾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했습니다. 제가 표어 내용을 수련생에게 알려주자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하기 쉬워요. 단지 ‘파룬궁’ 세 글자를 ‘공산당’으로 바꾸면 돼요.”
한 여성 수련생이 고치러 갔다가 돌아와 말했습니다. “길이 너무 밝고 사람이 많아서 고치기가 쉽지 않네요.”
저는 마음이 조급했으나 글을 쓸 줄 몰랐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므로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가운데 기다리지 말고 의지하지 말며 외재적 요소의 변화를 바라지 말라.”[1] 이 일은 기왕 제가 부딪히게 됐으니 제가 해야 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솔에 물을 묻혀 바닥에서 ‘공산당’ 세 글자를 쓰는 것을 연습했습니다. 이틀 밤 동안 연습하고 나서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달이 너무 밝은 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달이 흐릿하게 밝으면 나도 글을 쓸 수 있고, 행인들도 나를 보지 못해서 좋을 텐데.’ 사부님께서는 저의 대법을 수호하려는 마음을 보시고 기회를 배치해주셨습니다.
이튿날 밤, 바로 이런 날이었습니다. 밤 12시 발정념을 마치고 저는 따뜻한 물이 담긴 보온병과 물감 한 봉지, 물감을 씻을 작은 통과, 페인트 통, 솔을 담은 바구니를 자전거에 싣고 나갔습니다.
먼저, 우리 집에서 멀리 떨어진 그 표어 앞으로 가서 뜨거운 물로 반 봉지 페인트를 풀었고, 솔로 페인트를 묻혀 ‘파룬궁’ 세 글자를 덮었습니다.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솔에 페인트를 묻혀 ‘공산당’ 세 글자를 썼습니다. 글의 크기와 위치는 기존 것과 같았습니다. 다 쓴 후, 제가 보니 수정한 것 같지 않았으며, 다른 글자와 완전한 일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한 줄의 글을 잘 고친 후, 자전거를 타고 2.5km 밖으로 가서 다른 한 줄의 글을 고쳤습니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잘 수정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시계를 보니 단지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공산당은 과학을 파괴하고, 전통문화를 파괴하며, 가정을 파괴하는 사교다’라고 쓴 표어가 완벽하게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이로부터 우리 마을 범위 내에서는 더는 대법을 모함하는 표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3. 집집마다 마을 사람을 구하다
‘9평 공산당’ 발표 이후인 2005년, 우리 마을 수련생은 단체 법공부와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을 통해, 삼퇴를 권해 중생을 구하는 일이 몹시 긴박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수련생마다 자신의 마을에서 집집마다 진상을 알렸고 삼퇴를 권해 자신의 중생을 구했습니다. 2006년 초에 이르러, 저는 마을에서 3분의 1에 달하는 농가에 진상을 알렸습니다.
2006년, 대대적인 납치 사건 이후, 집마다 진상을 알리는 것이 한동안 침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늘 남은 그 마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염려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을 보시고 다시 저에게 기회를 배치해주셨습니다.
2007년 초봄 어느 날, 저의 같은 마을 같은 소대의 한 젊은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둘째 숙모, 우리 소대의 모터 펌프 우물이 고장 났어요. 대대 간부도 신경 쓰지 않아요. 초봄이면 밀에 물을 줘야 하는데, 우리 같이 마을로 가서 고소해요.” 저는 말했습니다. “먼저 가서 고소하지 말아요. 내가 가서 대대 간부에게 물어볼게요.” 저는 대대 간부를 찾아가 수리해줄 것인지 아닌지를 물어보았습니다. 마을 주임이 말했습니다. “수리해드릴게요. 다만 돈이 없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당신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보세요. 사람마다 45위안(한화 약 7천7백 원)씩 내고, 대대에서는 인력과 전력을 내겠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럴게요. 제가 가서 모두에게 이야기해볼게요.”
저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 모두에게 돈을 걷는 이 일을 핑계로 진상을 알려 삼퇴시켰고, 남아 있던 그 부분 마을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10여 일 후, 돈을 걷어왔고 저는 사람을 구하는 일도 완성했습니다. 저는 돈을 마을 주임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당신 몫은 주지 마세요.” 저는 말했습니다. “안 돼요.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이익을 남기지 않습니다.” 저는 한 푼도 부족하지 않게 그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좋아요. 이후에 상부에서 파룬궁을 번거롭게 하면 제가 당신을 막아드릴게요.” 나중에 그는 정말 언약한 대로 실행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그 후에 부임한 간부도 모두 삼퇴했습니다. 작년 ‘노크 행동’ 과정에서 우리 마을에는 경찰관에게 길을 알려줘 파룬궁 수련생을 찾게 해준 간부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4. 마을을 벗어나서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하다
2013년, 우리 세 명의 수련생은 함께 마을로 나가서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해 사람을 구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진상을 알지 못하는 악인에게 고발을 당해 우리는 납치됐고 현 구치소에 갇혀 박해를 당했습니다. 우리는 악인의 어떤 요구와 명령, 그리고 지시에도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죄수복을 입지 않고 오로지 법을 외우며 발정념을 하고 경찰관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10일 후, 저는 수련생과 함께 집으로 되돌아왔고 다른 한 수련생도 15일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악한 요소가 우리를 박해하는 것은 우리가 큰 범위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놀라지 않았고,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마을을 벗어나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고, 더욱 큰 범위에서 구도 중생을 했으며, 갈수록 순조로웠고, 숙련됐으며, 지혜로워졌습니다.
2017년 상반기 전, 우리는 세 사람이 함께 나갔습니다. 그 후, 우리는 두 사람씩 나갔고, 저는 전기 오토바이에 수련생을 태우고 나갔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3일 반을 나갔고, 여름에는 오후 2시(봄, 가을, 겨울에는 오후 1시)에 나갔다가 저녁 식사 시간 전이면 돌아왔습니다. 대여섯 권의 진상 소책자와 CD, 호신부를 갖고 다녔습니다. 겨울에는 탁상용 달력과 벽걸이용 달력이 있어 우리도 대량으로 탁상 달력과 벽걸이용 달력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진상 알리기는 마을 입구에서부터 마을 끝까지, 육교 아래, 작은 숲, 작은 냇가, 마을 장터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알렸습니다. 이 몇 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했는지 통계를 내보지도 않았습니다.
2017년, 우리는 기록해보았는데 1천여 명의 사람들을 권유해 탈퇴시켰습니다. 2018년, 딸이 출근하게 되어 우리 작은 외손자를 제가 데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 둘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나가서 진상을 알렸고, 9월이 됐을 무렵 400여 명의 사람을 권유해 탈퇴시켰습니다. 물론, 잘한 수련생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는 낙담하지 않고, 비교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착실하게 사람을 구했습니다. 과정에서 고발하려 하고, 막무가내이며, 돈을 요구하는 등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사부님의 가지(加持) 하에 놀라움은 있어도 위험은 없었습니다.
대면해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체득은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공부를 잘하는 것은 사람을 순조롭게 구하는 보장이라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저는 매일 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두 3~4리 떨어진 거리에 있는 우리 파트너 수련생 집에 가서 ‘전법륜’ 한 강을 공부하고, 11시 정도에 집으로 돌아와 12시 발정념을 마치고 다시 휴식합니다. 우리는 매주 또 두 차례씩 우리 마을의 큰 법공부 팀에 참가합니다. 또 한 가지 체득은 사람을 구하는 길에서 속인의 화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어떤 경황도 보지 않고,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장애에 부딪히면 제때에 안으로 찾아 법에서 자신을 바로 잡으며, 사부님께 청을 드리고, 발정념을 많이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지나치게 많은 논쟁을 일으키지 않고, 수련생 간에 다른 의견이 있으면 논쟁하지 않으며 돌아와 서로 의견을 더 나누고 두 사람이 한 곳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람을 구하는 것입니다. 아래에 우리가 마을을 나가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2017년 겨울, 하루는 우리가 한 집 앞 입구에서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그에게 벽걸이용 달력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저에게 몇 개 더 주세요. 집 안에 사람이 많거든요. 안 그러면 집으로 들어오실래요.” 우리는 그 사람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르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와 둘러앉았습니다. 알고 보니 두 무리 사람들이 마작하고 있었고, 구경하는 사람도 몇 명 있었으며, 그들은 모두 벽걸이용 달력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저는 우선 여러분께 이야기해드릴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삼퇴해 평안을 보장받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어떤 사람은 들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공산당이 정권을 찬탈한 후 장기적으로 운동을 벌이면서 사람을 괴롭혀 8천만의 중국인 동포를 박해해 살해했습니다. 삼반(三反), 오반(五反), 반혁명 진압, 반우파 투쟁, 문화대혁명, 대학생 진압, 주민의 집을 강제로 헐기, 주민의 땅을 강제로 점유하기, 장쩌민(江澤民)의 국토 팔아먹기, 부패치국, 파룬궁 박해, 대법제자 생체장기적출 등 일이 있습니다. 미래의 어느 날, 하늘은 반드시 중국공산당을 소멸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공산당,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 조직을 탈퇴하면 재난이 왔을 때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한 것은 완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벽걸이용 달력 외에, 우리는 매 사람에게 한 권의 진상 소책자를 더 나누어드리겠습니다. 시간이 날 때 여러분들이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당시에 여덟, 아홉 사람 정도가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평소에 우리는 삼퇴를 권유하면서 이름을 짓고 나서 상대방에게 알려주며, 잠시 후 노트에 다시 기록해둡니다. 그날 저는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노트를 꺼내 적읍시다. 안 그러면 기억하지 못해요.” 어떤 사람의 성씨는 획수가 많아서 수련생이 쓸 줄 모르면 본인이 한 획씩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었습니다. 세인이 구도를 받으면 우리는 기쁘고 안심이 되는 동시에 책임이 중요하고 크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2018년 7월, 우리가 한 새로 닦은 길가에서 아이를 달래고 있는 50대 전후의 남성을 만나 그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는 매우 통쾌하게 공산주의 청년단과 소년선봉대를 탈퇴한 후 말했습니다. “우리 중국에서 감히 진실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들 파룬궁뿐입니다. 가장 바른 것도 오직 당신들 파룬궁뿐입니다.” 이 말을 듣고 우리는 중생이 정말 각성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거주하는 곳과 멀지 않은 한 마을에 사악한 요소가 많다고 말하는 수련생이 있었습니다. 대법제자가 이 마을에 가서 몇 번 자료를 나누어주고, 진상을 알리다가 모두 장애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2013년, 우리도 이 마을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사람들에 의해 고발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부님 말씀에 따라 하면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고 단체를 겨냥하지 않으며 오직 사람 마음을 겨냥했습니다. 우리는 인연 있는 사람을 빠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다시 이 마을에 오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밭에서 일하고 있어 우리는 다가가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 여성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왜 남자에게 알리지 않나요?”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알립니다.” 이때 우리가 이미 삼퇴를 시킨 한 남성이 우리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누나, 또 오셨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래, 동생, 여기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는 우리를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공산주의 청년단과 소년선봉대에 가입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들은 나올 수 없어요. 그리고 제 아들도 이 일을 몰라요. 그들은 어떻게 하죠?”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자세히 진상을 알려줘요. 우리가 그들을 도와 탈퇴시켜드릴게요.” 그는 기뻐하며 “좋아요.”라고 말하고 가족들의 이름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우리를 찾아와 가족을 삼퇴시키네요. 이 마을에 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요!”
5. 사부님의 보호가 있어 놀라움은 있어도 위험이 없다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위험을 만나기도 하지만 사부님께서 모두 없애주셨습니다. 어느 해 여름 특별히 무더웠던 날, 우리는 이웃 현의 한 마을에 왔습니다. 한 70대 노인이 장을 보려고 나왔고 저는 노인에게 권유하여 탈퇴시켜드렸습니다. 저는 전기 오토바이가 있는 곳으로 가서 노인에게 진상 소책자 한 권을 주려 했습니다. 고개를 들고 보니 경찰차 한 대가 제 앞에 서 있었고, 한 경찰관이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한창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묘한 생각이 떠올라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오빠, 장을 보시고 일찍 돌아가세요. 날이 너무 더워요. 더위로 몸 상하게 하지 마세요.” 노인이 말했습니다. “아이고, 너도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잠시 있다가 돌아가!” 이렇게 서로 맞장구를 치다 보니 너무 자연스러웠고 사람들에게 마치 이 노인이 정말 제 오빠인 것처럼 생각하게 했습니다. 경찰관의 생각은 마치 억제된 듯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작은 목소리로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얼른 발정념을 해요!” 우리 둘은 조용히 발정념을 했고 잠시 후 경찰차는 떠났습니다. 우리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했습니다.
또 한 번은 저와 수련생이 100여 부의 현수막을 갖고 길가 나뭇가지 위에 걸고 있었습니다. 경찰차 한 대가 우리 쪽을 향해 다가왔고, 앞으로 20여 미터 지나서 급정차했습니다.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경찰관이 우리를 본 게 아닐까요? 어떡하죠?” 저는 말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경찰차 방향으로 가요. 경찰관의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말아요. 발정념을 하고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해봅시다!” 우리는 경찰차 옆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고, 경찰관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곳에 가서 현수막을 전부 다 걸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북유럽법회 전체 수련생에게’
원문발표: 2019년 4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19/3844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