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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90년대생이 감옥에서 법을 얻은 과정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90년대생으로 2016년 감옥에서 대법제자를 만나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알게 되어, 그해 말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하면서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수련 후 이전에 내가 겪은 모든 것에서 메시지를 얻었다. 나는 대법을 위해 왔던 것이다. 비록 한 마디 말이지만 몇 번의 생을 거치며 기다려왔다. 오래 전부터 내가 법을 얻은 신기한 경험을 글로 쓰려 했지만 줄곧 펜을 들지 못했다. 오늘 파룬따파의 날을 경축하는 기회에 글로 써서 사존에 대한 감은을 표현하고 더 많은 이가 대법의 아름다움과 수승함을 알면 좋겠다.

속세의 먼지 속에서 울적했던 마음

나는 어려서부터 내성적이고 말하기를 꺼려했다. 늘 막연한 문제에 빠져있었다. 사람은 왜 이 세상에 왔을까? 사람의 일생은 다 정해진 것일까? 학교에 가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며 한 세대 한 세대 반복하는 것일까? 사람이 세상에 옴에 마땅히 목적이 있어야지 않을까?

중고등학교 때는 매일 입시 준비로 바빴던 나는 대학생 때부터 노자와 장자를 공부했다. ‘장자’를 볼 때는 매일 밤 소등 전까지 마음가는대로 두 쪽 정도를 보았다. 우아한 문체와 초탈한 느낌에 마음이 즐거웠다. 나중에 노자의 ‘도덕경’을 보았다. 처음에는 봐도 몰랐지만 나중에는 철리가 있는 것 같고 나도 인생의 대도(大道)를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천지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련 후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난법말세(亂法末世)에 어떤 학자는 텅 빈 그 이치만 고집스레 틀어쥐고서, 경박하기가 마치 철리(哲理)의 근본을 깨닫기라도 한 듯하다.”[1] 바로 당시 나의 상태를 말씀하신 것 같았다. 현실에 직면해 무기력하고 자신이 바라는 초연한 생활을 실현하기란 한평생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나는 졸업 후 대도시에서 취직했다. 저임금에 답답한 환경이라 몸 상태가 나빴다. 그때 인터넷에서 건강에 좋은 운동을 찾아봤다. 처음에는 말뚝서기, 결가부좌를 했다. 결가부좌를 하니 가부좌가 편안한 느낌이라 속으로 생각했다. 조용히 몸조리나 하면 좋겠다. 그러나 물욕이 넘치는 사회에서 조용해지려 해도 조용해질 수 없었다. 식구들은 내게 집을 마련하고 결혼하라고 했다. 내가 매일 이런 것을 연습했더니 회사에서는 사람들이 내가 본업에 충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임금이 적고 압박감이 커서 이후에 결국 그만뒀다.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 나는 친구와 함께 살았다. 그러나 매일 침대에 누우면 인생이 아무 의의가 없는 것 같았다. 구인광고를 봐도 면접 보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모든 것이 귀찮았다. 좋지 않은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 상태에 관해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 갔더니 중증우울증 진단을 내렸다. 나는 이전에 우울증이 인류에 대한 제2의 살인이라고 알고 있어서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정신약물은 반응이 격해 처음에 토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1개월 지나서야 겨우 적응됐다. 면접을 보러 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된 뒤로 매일 아침 저녁으로 1알씩 먹었다. 복용을 잊어버리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답답하며 숨쉬기도 어려웠다. 나중에 취직한 회사는 연봉이 이전의 몇 배에 달했으므로 약 먹고 돈 쓰는 것은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이 약은 독성이 강해서 나는 점점 살이 쪘는데 매일 아침 깨어나면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이불이 축축했다.

돈에 집착하다 감옥에 가다

다시 취직한 뒤로 가상화폐와 ‘금융상호지원플랫폼’을 접촉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부자가 될 기회가 온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신속히 접촉해 돈을 빨리 벌었다. 내가 밑천만 있으면 1년에 수천만 위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미친 듯 돈을 빌렸다. 부모님 돈도 다 가져오고 은행대출도 하고 신용카드, 고리대금업자도 이용하는 등 돈을 빌릴 수 있는 경로는 다 시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한동안은 정말로 미친 것 같았다.

빌린 돈 80만 위안을 모두 투자했다. 처음에는 확실히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나 2015년부터 ‘금융상호지원플랫폼’에 폭풍이 일었다. 내가 투자한 돈 80%가 모두 묶였다. 그러나 나는 단념하지 않고 다른 플랫폼인 ‘다단계 게임’을 시작했다. 결국 빌린 돈을 모두 날렸다. 당시에는 일전 한 푼 없다는 것이 말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한동안 나는 도박에 눈먼 사람 같았다. 당시에 돈을 많이 벌었던 것은 다 나의 덕으로 바꿔온 것이다. 눈 깜짝할 새에 빈털털이가 돼서 아무것도 없고 빚이 수십만 위안이었다. 처음에는 친척에게 돈을 빌려서 막았지만 결국에는 돈을 빌리다 친척과 사이가 틀어졌다.

2016년 하반기에는 결국 신용카드 대출을 이용한 10만 위안을 QQ에서 사기당했다. 나는 이 돈을 되찾으려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기록만 하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후 내가 각종 방법을 써봤지만 돌려받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은행카드 건 때문에 은행이 신고해 구속됐다.

나는 붙잡혔지만 그다지 겁나지 않았다. 나는 되찾을 돈만 있지 사기 친 것이 아니니 기껏해야 기록만 하고 풀려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당초 공포된 은행카드 관련 법조항에 따라, 내 돈을 사기 친 사람은 법적 제재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그날 밤 구치소로 연행됐다. 구치소 대문을 보자 두렵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내가 구속된 줄 모르고 계셨다.

나는 어느 감방에 배치됐는데 20여 명이 함께 있었다. 다들 판자로 된 침상에 빼곡하게 누워 잤다. 가장 바깥에서 자는 우두머리가 내게 어떻게 들어왔는지 묻더니 “오늘은 늦었으니 먼저 자리 하나를 찾아서 자라. 내일 손봐줄 테니.”라고 말했다.

이튿날 기상하자 그는 각종 수단으로 우리를 괴롭혔다. 그 우두머리 죄수는 ‘반장’으로 불렸다. 내게 각종 규칙을 알려주면서 마음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속으로 불만이었다. ‘나는 사기당한 사람인데 어떻게 감옥에 들어올 수가 있지? 바깥일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고 회사도 모르고 부모님도 모르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걱정됐다. 안에 있던 한 사람이 위로했다. “여기 들어와서는 바깥세상과 전혀 관련 없어요. 다른 일에 신경쓰지 마세요. 날아갈 수도 없잖아요.”

운좋게 진상을 듣게 되어 대법과 인연을 맺다

당시 다른 사람들이 ‘사형’이라고 하는 이가 있었다. 착해보이고 40여 세 된 사람이었다. 그는 식사 때 내게 함께 먹자고 하면서 내 상황에 대해 물어보더니 말했다. “인터넷 봉쇄 돌파 소프트웨어 써보셨어요? 프리게이트요.” 나는 써본 적이 있었고 나중에 VPN도 구매했다고 말했다.

사악한 공산당에 세뇌당했던 나는 당시 좀 언짢았다. 왜냐하면 그 사이트는 국가지도자를 비방하는 반중 사이트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좋은 사람 같은 느낌이라서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는 또 저우융캉, 보시라이 사건 등 정황을 알려줬다. 나는 이전에 듣지 못한 일이라 흥미를 느꼈다.

나중에 그가 자신이 파룬따파(法輪大法) 제자인데 불법적으로 갇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감옥에 갇힌 지가 남들보다 비교적 오래된 지라 매번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파룬궁의 진상을 알렸다. 감옥경찰도 그가 알려주는 진상을 들은 바 있다. 그래서 이 감옥 사람들은 파룬따파에 대한 인상이 좋다. 진상을 알고 있는 ‘반장’은 “당신들 둘 다 대학을 나왔으니 이야기 나눠보오. 화제가 많을 것 아니요.”라고 말했다.

속으로 ‘와, 그는 20년 전에 대학생이었구나. 지금 대학생보다 훨씬 수준 높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후 한동안 이 대법제자는 내게 파룬따파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나는 도교와 불교에 관해 지식이 좀 있었지만 그가 말한 것은 참 신기했고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없었다.

어느날 나는 갑자기 그에게 “저도 수련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여기 사부님께서 쓰신 시가 있는데 보시겠어요?”라고 했고 나는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사물함에서 두꺼운 A4용지를 꺼냈다. 그가 외워 쓴 것이라는데 글씨가 보기 좋았다. 나는 매일 앉아있을 때면 시를 보았다. 사부님의 시가 각별히 이치가 있게 여겨졌다. 그중 한 편이 나를 감동시켰다. “명예를 위하는 자 평생 화내고 원망하며 / 이익을 위하는 자 육친마저 몰라보고 / 정을 위하는 자 스스로 번뇌를 부르나니 / 고달픈 다툼에 일생토록 업을 빚는구나.”[2] 내가 겪은 사랑, 육친정, 금전이 한순간에 텅 빈 것임을 보게 된 나는 이 시가 너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시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 대법제자는 많은 제자가 ‘전법륜’도 외운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외워달라고 부탁했다. ‘전법륜’은 나의 더욱 많은 미혹을 해결해 줄 것 같았다. 그는 나에게 ‘논어’를 외워주고 목차도 외워줬다. 그리고 출소하면 책을 잘 보라고 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비록 지금 빚이 많고 감옥살이도 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법을 얻기 위한 것이었을 거예요.”

당시 나는 내가 이미 법을 얻었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단지 우주의 법리가 원래 이렇게 크구나 하고 생각했다. 시를 외울 때 바깥세상에 대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모두 사라졌다. 그는 자주 불법적으로 심문받았는데, 돌아올 때면 나는 늘 그와 함께 앉아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참 선량한데 다른 대법제자들도 분명 더욱 좋을 거야. 그분 옆에 앉으면 따스한 느낌이 든단 말이야. 나는 그에게 이전에 내가 궁금했던 일부 의문에 대해 물어봤다. 또 대법이 전파된 이야기, 그 자신이 수련하면서 겪은 일부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려달라고 했다.

당시 다들 내 죄량이 가볍다고 생각했다. 내게 3일이면 나갈 수 있겠네, 7일이면 나가겠네, 15일이면, 37일이면 나갈 수 있겠다고들 했지만 결국 나는 나가지 못했다. 37일이 고비인데 나가지 못하면 법원으로 가야 했다. 이때가 되자 어떤 사람은 내가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가 선고받을 형기가 몇 년 될 것 같다고 가늠했다. 이 대법제자는 “분명 나갈 수 있을 거예요.”라고 나를 격려해줬다.

당시 생각했다. 형을 선고받으면 받지 뭐. 그러나 나는 꼭 이 대법제자와 함께 있을 거야. 그는 내 마음이 조용해지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와 함께 있으면 편안해. 이미 37일이 지난 마당에 더 이상 희망을 품지 않았다. 매일 결가부좌를 연습하고 파룬따파의 시사(詩詞)를 외웠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는 수년간 해외 대법제자가 걸어온 ‘삼퇴’ 관련 전화를 자주 받았는데 진지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 만약 이 겁난을 당하지 않고 잠시 수감되지 않고 이 대법제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돈 벌 생각만 했는데 대법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쉽게 바꾸고 법을 얻어 수련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49일째 되던 날 감옥경찰은 갑자기 나더러 짐을 정리해서 나가라고 했다. 당시 너무 기뻐서 이 대법제자를 포옹하며 말했다. “말씀이 맞았네요. 저는 법을 위해 온 것이군요?” 그는 기뻐하더니 나에게 출소 후 어서 빨리 책을 보고 법공부를 하라고 당부했다.

법을 얻고 수련하니 우울증이 사라져

출소 후 알게 되었다. 나는 보석으로 나왔고 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어머니는 친구분과 함께 나를 데리러 오셨는데 나를 보시더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이전에는 감옥에 갇히는 사람은 다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좋은 사람도 감옥에 가두는군요.”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의 인파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이 세계가 분리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해탈해서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수많은 중생이 바삐 걷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은 자기가 왜 바쁜지 알까.’

나는 구치소에서 나온 뒤 더 이상 우울증 약을 복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런 약이 해롭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돈이 없어 약을 살 수도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약을 먹지 않는다고 하자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이전에도 나는 집에 있을 때 한번 말하면 했기 때문이다. 약을 끊자 울렁거려서 식사를 조금밖에 하지 못했고 밤에 잠들기가 어려웠다. 10시에 누웠는데 새벽 5시가 되어도 잠들지 못했다. 나는 불면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낮에는 졸리지 않고 다만 머리가 좀 무거웠다.

집에 돌아온 나는 마침에 인터넷 봉쇄를 돌파했다. 나는 한 사이트에서 대법 자료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7일째 되던 아침에 ‘전법륜’ 전자책과 광저우설법 동영상을 받았다. 나는 ‘전법륜’을 보기 시작했다.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봤는데, 식사 때 외에는 책만 봤다. 책을 보고 나서 정말 신기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삶에 대한 모든 문제에 대해 답안을 얻었다.

그날 밤 나는 조용히 잠이 들었다. 잠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좋았다. 기뻐서 식구들에게 알렸다. 마침내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우울증이 나았다! 그 뒤로 나는 잠을 잘 자고 식사량도 정상이며 더 이상 식은땀이 나지 않았다. 온 세상이 더 아름다운 색채였다. 원래 우울증이 없으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이후 나는 집행유예 4개월을 선고받았다. 반드시 옛집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나는 4개월간 집에 있다가 나가서 직장을 구했다. 나중에 밍후이왕에서 알게 되었는데, 감옥에서 만난 그 선량한 대법제자는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에는 법공부 하기를 좋아했다. 법이 나의 많은 의혹을 풀어주는 느낌이었고 법공부를 하면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느껴서 눈물이 흘렀다. ‘보도(普度)’와 ‘제세(濟世)’ 음악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중에 나의 명백한 한 면이 눈물 흘린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도 다섯 세트의 공법을 배웠고 매일 연공을 했다.

수없이 많았던 신기한 일, 한두 가지를 말하다

‘전법륜’을 보고 우울증이 나은 뒤로 나는 생활상의 많은 문제에 대해서 생각이 바뀌었다. 더는 저조한 분위기로 남이 눈치보게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전에 양쪽에 신장결석이 있었는데 몇년 전 수술 때 하나만 찾고 나머지 하나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수만 위안을 썼는데 나중에는 통증이 없어 더 신경쓰지 않고 퇴원했다.

2017년 어느 날, 밤에 갑자기 허리가 불편했는데 이전에 병났던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 아파서 침대에서 뒹굴었고 땀이 비오듯 났다. 당시 나는 수련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병이 재발했나 싶어 겁이 났다. 왜냐하면 이제 막 취직했고 빚도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더는 수술할 여력이 없다. 당시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청했다. 이 병이 재발하지 않으면 좋겠고 반드시 잘 수련하겠다고 생각했다. 새벽 두세 시까지 통증에 시달리다 잠이 들었다. 이튿날 출근하는데 그때는 이미 통증이 없었다. 그런데 허리에 힘이 없고 솜뭉치를 넣어놓은 것 같았다. 점심 때 소변을 보는데 갑자기 ‘파’ 소리가 나더니 백색의 작은 돌이 나왔다. 기뻤다. 결석은 이렇게 배출됐다. 나는 바로 어머니께 전화했다. 어머니도 기뻐하셨다. 나는 두 손으로 허스[合十]하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이 시기에 대법을 수련하면서 고질병이었던 만성비염을 낫게 하려는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았더니 비염도 나았다.

나는 예전에 성격이 나빴는데 수련하면서 세상을 보는 방식이 바뀌었다. 매일이 기쁘고 시련에 부딪히면 심성을 제고하라는 것인 줄 안다. 마음이 괴롭지만 자신에게 강제로 참게 한다. 일이 생기면 안으로 찾고 나의 문제점을 찾고 나면 내가 당초에 화를 참아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법을 얻기 전에는 친척들이 내가 빚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나를 보는 시각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수련에서 제고되면서 지금은 다들 내가 많이 변했고 딴사람이 됐다고 한다. 이전에는 늘 마음대로 하고 다 내 생각대로 했다. 지금은 내 관념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대법제자의 선량함과 대법의 아름다움이 보이게 했다. 내가 감옥에서 만난 그 대법제자처럼 말이다. 당시 나는 감탄스러웠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단 말인가?” 물론 나는 차이가 많이 난다. 더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해야 한다.

나도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기 시작했다

수련에서 제고하면서 친척과 친구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8년 4월의 어느 날, 친구 두 명이 내게 밥을 사줬다. 당시 나는 그 친구들에게 어떻게 진상을 알릴지 생각 중이었다. 혹시 오해할까봐 두려웠다. 식당에 들어가자 갑자기 친구가 내게 물었다. “비염이 어떻게 나은 거야?” 내가 “어떻게 알았어?”라고 묻자 친구는 말했다. “너 예전에는 늘 손에 휴지를 쥐고 있었잖아. 말하면서 코를 닦고 있었거든.” 나는 이전에 친구들 앞에서 주머니에 다른 것은 몰라도 휴지는 꼭 있어야 된다고 말하곤 했다. 오늘 이것은 진상을 들으러 온 것이구나. 나는 한 공법을 배웠다며 식사하면서 알려주겠다고 했다. 친구는 좋다고 했다.

친구 둘이 다 왔다. 밥을 먹으면서 나는 친구들에게 알려줬다. “나 파룬궁 수련한다.”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한 명이 마시던 물컵을 내려놓고 외쳤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당시 나는 놀랐다.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시는구나. 나는 그 말이 맞다고 했다. 수련하면서 나 자신에게 있은 변화부터 톈안먼 분신 조작극, 그리고 대법이 세계에 널리 전파됐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식사 뒤에 한 친구가 말했다. “내 여자친구도 그런 비염이 있어서 늘상 콧물이 흘러. 그 책을 볼 수 있는 사이트 주소 좀 알려줘. 여자친구한테 보여주게.” 나는 사이트주소를 알려주면서 “국내에서는 차단돼있어서 인터넷 봉쇄 돌파로 접속해야돼.”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위챗에서 링크를 클릭하자 바로 접속이 되었다. 그는 말했다. “대단해. 이 사이트에 바로 들어갈 수 있네.” 나는 의아했다. 이는 절대적으로 법의 힘이고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시는 것이다. 다른 한 친구도 웃으면서 말했다. “파룬따파하오!”

친구는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서 취직할 것이라고 했다. ‘파룬따파하오’라고 말했던 친구가 떠날 때 나를 보러 왔다. 친구는 최근 몸이 불편해서 한 달간 약을 먹었는데도 낫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지난번에 진상을 알리고 나서 네가 몇 번이나 파룬따파가 좋다고 외쳤는데, 인연이 많은 것 같아. 우선 ‘삼퇴’를 해.” 그는 좋다고 말했다. 나는 인터넷에 그의 삼퇴성명을 올려줬다. 그리고 우선 책을 보고 수련하고 자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法輪大法好,真善忍好)’을 외우라고 했다. 다시 그와 연락했을 때 그는 상태가 이미 많이 좋아졌다.

진상을 알릴 때 순조롭지 않고 반박하는 사람, 비웃는 사람도 있다. 이 부분에서 내가 부족한 점을 볼 수 있었다. 마음이 급할수록 사로(思路)가 더 열리지 않고 효과도 좋지 않다. 대법제자가 박해당한 것을 말할 때면 나는 눈물을 참지 못해 한동안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한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대법제자가 당신들을 구하기 위해 박해당하는데 왜 빨리 삼퇴하지 않는 거야.’ 그러나 그럴 때 그들은 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한 번 진상을 알리는 것으로 그들이 구도되기를 바란 것이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지 못하고 마음이 급하고 속인의 정이 많았다. 익숙한 동료나 친구에게는 너무 높게 말한다. 그들이 삼퇴하지 않았지만 이제까지 들어본 적 없는 진상을 들었고 생각해볼 것이다. 이후에 진정으로 삼퇴를 위한 기초를 닦아놓은 것이다.

수련의 길을 줄곧 걸었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끊임없이 교란이 있고 계속 자기를 수련하면서 점차 감성에서 이성적으로 대법을 인식하게 되었고, 신사신법(信師信法)하면서 점차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에서 법을 인식하다”[3] 이 법리의 내포를 알게 됐다.

사존께 감사드린다!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드린다! 제자는 반드시 용맹정진하여 사부님께서 덜 수고하시고 안심하실 수 있게 하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공인가’
[2]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사람 되기’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 설법’

 

원문발표: 2019년 5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9/3859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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