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늘 오전에 법공부하다가 제7강의 질투심에 관한 문제를 볼 때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질투심은 20여 년 수련하는 동안 괜찮게 수련됐다고 여겼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면 그를 위해 기뻐했는데 저는 다른 사람을 질투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사부님의 설법에서 질투심을 배울 때 왜 제 마음은 조용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한 번 다 본 다음 다시 한 번 보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질투심 이 문제에서 세상의 서로 다른 생활환경에서, 사람의 질투심은 각종 다른 표현 형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속으로 평형을 잡지 못한다.”[1]를 총 7번 사용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좋은 것을 얻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알고는 마음속으로 평형을 잡지 못한다.”[1]인데 이런 상황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한 사람이 상사가 칭찬하거나 어떤 이익을 얻었을 때, “다른 사람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잡지 못한다.”[1]인데 이것도 우리 중국인의 동방질투의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이 잘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1]인데 이런 전형적인 질투심은 우리 중국 대륙에서, 어려서부터 남김없이 다 드러납니다.
네 번째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강할 때, 중시를 받지 못하거나 승진하지 못할 때로, “그의 그 마음속은 평형을 이루지 못해 위아래로 다니며 불평하는데,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1]입니다.
다섯 번째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강하다고 여기고 우주의 이치를 알지 못합니다. 사람이 일생에서 무엇을 하면 모두 자신의 업력 크기에 따라 신이 배치하는 것이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배치하는 것이 아니며, 운명에 없으면 구해올 수 없고, 덕이 커야 높은 벼슬을 하고 큰 부자가 됩니다. 만약 덕이 적으면 평생 고생하며 힘들게 삽니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주 고달프고 아주 힘들다고 느끼며, 마음속은 늘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1]입니다.
여섯 번째는 사부님이 수련계의 질투심 표현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연공(練功)을 20여 년간 했지만 공능이 나오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은 연마(練)하자마자 공능이 나오게 되니, 그의 마음은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 내가 20여 년간 연공했어도 나는 공능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가 공능이 나오다니, 그는 무슨 공능이 나온다는 말인가? 그는 속으로 화가 나서 참지 못한다: 그의 그것은 부체고 주화입마다!”[1]
일곱 번째는 사부님께서 이야기를 하나 하셨습니다. “『봉신연의(封神演義)』 중의 신공표(申公豹)가 강자아(姜子牙)를 보니, 늙고 또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원시천존(元始天尊)은 강자아에게 봉신(封神)하게 했다. 신공표의 마음속은 곧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1]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1] “당신이 도달하려고 하는 목적은 더욱 높은 층차의 수련으로서, 질투심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1]
사부님의 설법에 대조하며 안으로 찾았습니다. ‘만약 내가 질투심이 없다면 질투심을 공부할 때 왜 마음속이 조용하지 않은 걸까? 여기에는 내가 닦아야 할 것이 반드시 있다.’
저는 법공부 팀에서의 자신의 표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의견을 발표할 때 어떤 수련생이 거세게 몰아붙이며 반문할 때, 비록 되받아치지 않고 그 수련생에 대한 좋지 않은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나중에 마음에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가 자주 나타났습니다. 저는 늘 제가 다른 수련생을 위해서 담담하게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수련생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의 오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할까요? 이것은 바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강할 때, 다른 사람의 중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의 그 마음속은 평형을 이루지 못해 위아래로 다니며 불평하는데,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1]
저는 계속해서 자신의 각종 표현을 찾아보았습니다. 딸은 현재 행복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본래는 좋은 일이지만 딸이 행복한 삶을 살며, 제게는 부모에 대한 효를 다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달간 전화가 한 통도 없을 때 있어 마음속에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질투심의 표현은 마음속에서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평형을 이루지 못하면 바로 질투심 때문입니다. 어쩐지 저와 딸의 관계는 좋았다 나빴다 하는데 바로 저의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이 어디 수련인답습니까? 수련이 너무 형편없습니다. 오늘 저는 이 질투심을 찾아내고 강대한 정념을 발했습니다. ‘그것을 가지지 않는다. 제거한다. 질투심 몌(滅)!’
일상생활 속의 각종 표현을 자세히 찾아보니 마음속에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이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진심으로 수련생과 함께 제고하기 위한 것인데, 인정해주지 않는 현상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때 만약 마음이 조용하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고, 만약 마음속에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이 나타나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합니다. 그때는 질투심을 갖고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질투심은 너무 교활합니다. 20여 년을 수련해도 질투심을 닦아내는 것을 중시하지 못했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왜 닦아낸 다른 마음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나 했더니, 바로 이 질투심을 닦아내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사부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1] 그러므로 이후부터 저는 반드시 주의해 질투심을 닦아낼 것입니다. 시시각각 어느 방면에서도 마음속에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현상이 더는 나타나지 않게 하며, 질투심을 철저히 닦아낼 것입니다.
개인의 인식으로 옳지 못한 곳은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5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17/3874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