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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에서 협조하면서 성숙해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기회와 인연이 되어 우리 지역의 신규 항목을 기획, 운영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지금까지 별 탈 없이 4~5년 해왔고 협력하면서 차츰 성숙해졌습니다. 제게 자기를 갈고닦을 수 있는 이런 환경과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대법제자 심득교류의 기회를 통해 최근 몇 년간의 소감과 해온 과정을 수련생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1. 시시각각 자기를 닦다

참여자의 수련 상태는 항목의 발전과 사람을 구하는 힘에 모두 반영됩니다. 제가 참여한 항목은 더욱더 그랬는데, 항목이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는 대부분 제가 심성에서 제고가 필요한 때였습니다. 이때 저는 시시각각 스스로 ‘안으로 찾으라’라고 일깨웠는데, 제가 집착을 제대로 찾아낼 때야 항목이 앞으로 추진되었습니다.

1) 서로 다른 견해 앞에서

항목에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토론하면 팀 수련생들은 늘 서로 다른 의견들을 꺼냈습니다. 특히 항목 초기는 기본 틀이 잘 잡히지 않았고 의견도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줄곧 협의하고 수정해야 했습니다. 이때는 의견이 많을 때였고, 이 과정에서 어떻게 더 좋은 방안을 찾을 것인지가 제 수련이었습니다.

저는 초기에 이런 제안들 사이에서 맴돌며 어느 부분이 좋고 어느 면이 부족한지 따졌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한데 모아 끼워 맞춘 것은 언제나 생명력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저는 자기의 심성을 제고해야만 항목의 전체적인 맥락을 똑똑히 보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착실하게 대량으로 법을 공부하고 팀 수련생들과 교류하면서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법제자의 항목은 세인들이 진상을 명백히 알게 하는 것이므로 속인의 처지에서 생각해야 하고 어느 방안이 그들이 진상을 받아들이는 데 더 적합한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반드시 이지적으로 말해야 하며 사람의 이념에 부합해서 말해야 한다. 만약 너무 초상(超常)적이고 불가사의하게 말하고 완전히 사람의 이념에 서서 말하지 않으며,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바로 파괴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며, 그렇다면 일으킨 작용은 바로 거꾸로 되는 것이다. 반드시 이지적으로 해야 하며 청성(淸醒)하게 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는 정도를 고려해야 한다.”[1]

항목을 하다 보면 자기감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렇게 표현해야 속인들이 중시할 것 같고, 이렇게 해석해야 속인들이 이해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사실 이렇게 나온 프로젝트는 속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더 많이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속인들은 신을 믿는 정도가 아주 낮고 현대사상의 영향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려면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어떻게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그들 마음속에서 진상이 공명을 일으킬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다시 수련생의 제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어떤 제안이 사람을 구하는 데 더 유리하고, 어떤 제안이 기점에서 다소 빗나간 것인지 똑똑히 보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항목의 전반적인 틀을 아주 빨리 구성했습니다.

가끔 수련생들이 다른 의견을 낼 때는 사실 항목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시는 사부님의 점화였습니다. 항목이 일정 수준에 다다랐을 때 저는 어렴풋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팀 수련생은 이 항목에 대한 다른 수련생의 평가를 완곡히 전달해왔습니다. 귀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정말 정곡을 찌른 말이었고 제가 오랫동안 찾지 못한 문제점들을 모두 말해주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정말 사부님께 감사드렸고 그 문제에 관해 아주 많이 조정하고 수정한 결과 다들 효과가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2) 저애 앞에서

항목을 하면서 팀 수련생들은 늘 각기 다른 면에서 애로사항을 겪었습니다. 직장에서 또는 집에서 또는 신체적으로 그러했습니다. 가끔은 다른 공간에서 오는 층층의 압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다들 심성에 공을 들이고 끊임없이 자신을 순수하게 하는 동시에 발정념을 많이 해서 이런 교란들을 제거했습니다.

저는 한동안 길을 걸을 때 다리가 천근만근이었습니다. 팀 수련생들은 이 항목이 사람을 구하는 힘이 크므로 부담도 더 클 것이라고 했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상생상극”[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이런 상태인 것에 대해 무언가 돌파가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저 이곳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부지불식간에 이 항목을 크게 보면서 이런 교란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주변 수련생들을 보면 모두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고 일이 다를 뿐 차이가 없습니다. 개개인이 오래전 역사상에서 이미 특장이 정해진 것이고 오늘날 제가 어떠한 능력과 기술을 가진 것은 오래전 이러한 서약을 했기 때문에 기술자의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매일 밖에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들은 얼마나 대단합니까? 하지만 저는 자기도 모르게 제가 하는 항목이 특별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런 사람 마음이 이런 물질을 불러온 것이었습니다. 이는 항목 자체가 사람을 구도하는 힘 및 효과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상생상극’의 이치를 절대적으로 여겼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상생상극(相生相剋)은 우주의 저층, 특히 삼계 내의 이치이다.”[3] 제가 이 마음을 내려놓고 평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순수하고 진지하게 이 항목을 대하자 이런 부담도 다 사라졌습니다.

3) 환희심과 과시심을 버리다

기술 관련 수련생들은 보통 자기만의 전문적인 노하우와 경험이 있는데 이는 장점입니다. 하지만 법의 기점에서 이 문제를 보지 않으면 이런 경험이 오히려 족쇄가 돼서 두 눈을 기만할 것입니다. 저는 이 항목을 한 경험이 적어서 늘 일하는 동시에 자료를 찾아 기술을 터득해서 곧바로 항목을 하는 데 썼습니다. 사부님의 가지로, 이런 기술이 생소하다는 느낌 없이 줄곧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환희심과 과시심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팀 수련생들이 차츰 제 능력을 인정하자 이런 마음들이 차츰 자라났습니다.

어느 날 저녁, 저는 스스로 매우 잘했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메일로 보냈고 팀 수련생들이 칭찬하겠거니 하고 남몰래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답신이 왔는지 확인하고 여러 번 메일함에 들어가 봤지만, 아무에게서도 답신이 없었습니다. 문득 저도 모르게 메일함을 확인하고 있는 상태에 깜짝 놀랐습니다. 과시심과 환희심이 말썽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까. 마음을 조용히 하고 그것들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날 수련생에게서 답신이 왔는데 제가 제작한 것이 효과적이지 않고 내용이 없다고 있는 대로 말했습니다. 수련생의 직설적인 말은 맑은 물처럼 제가 과시심과 환희심을 철저히 인식할 수 있게 일깨웠습니다. 그때부터 항목을 할 때면 제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인지 순수하게 사람을 구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되돌아보았습니다.

이후부터 여러 수련생이 항목이 효과가 좋다고 해도 저는 더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항목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주셨고 수련생들이 함께 협력했기에 이 모든 것을 잘한 것이고 사람을 구하는 목적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잘해야 하고 잘못했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2. 항목에서 협력하다

1) 다른 역할 간에 보완하다

이 항목은 안전문제로 타인이 알게 할 수 없었고 참여자도 아주 소규모인 비공개 형식이었습니다. 수련생 둘은 서로 얼굴도 몰랐고 거의 밍후이왕 사이트의 메일함을 통해 소통했습니다. A는 주로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고 C는 이 부문의 프로여서 여러 사람에게 일부 전문 사항을 코치했습니다. B와 저는 항목의 주요 실무자였습니다. 비록 적은 인원이지만 서로들 잘 협조했습니다. 비교적 심각한 충돌이 몇 번 있었지만 서로 솔직하게 교류하고 남에게 떠넘기거나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대법의 기점에서 해결방법을 찾았습니다.

저와 B는 늘 모여서 항목 관련 교류를 했는데 그는 사고가 이성적이라 저는 늘 제가 미숙한 부분과 한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지적해준 문제는 대부분 제가 제고해야 할 부분이었기 때문에 매번 교류하고 나면 항목 자체나 심성 제고 면에서 모두 확 트인 느낌이었습니다.

다들 함께 정진하고 제고해서 이 항목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고 항목의 수준과 사람을 구하는 효과도 보장할 수 있었습니다.

2) ‘협력’의 또 한 층 내포를 깨닫다

항목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주로 제가 책임지고 B가 보조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는 거꾸로 제가 그에게 보조를 맞췄습니다. 저는 예전에 ‘협력’을 상대방이 제게 무엇을 필요로 할 때 그것을 해주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어느 날 B와 의논하는데 그가 제게 의견을 묻자 저는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는 “왜 꼭 외부인이 말하는 것 같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에 와서 거듭 이 말을 되새겼습니다. 이제는 제가 수동적으로 질문을 받을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제작자로 여기고 이 항목을 생각하면서 만약 제가 책임자라면 어떻게 기획할지 생각해봤습니다. 다음번 모임 때 그가 제게 의견을 묻자 저는 바로 제 생각들을 남김없이 털어놨습니다. 속으로 이는 제가 아주 고심한 결과이며 제가 이 일에 충분히 신경을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회의 후에도 항목은 여전히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저는 스스로 아직 ‘협력’의 본질을 찾지 못했음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첫 번째 단계 때 B는 전심전력으로 줄곧 저를 도왔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온갖 방법으로 해결해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제 차례인데 어떻게 하면 협력을 더 잘할 수 있을는지? 대체 ‘협력’이란 어떤 심정이고 어떤 상태일까? 그 며칠간 제 머릿속에는 늘 이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어느 날 사부님께서 ‘협력[配合]’이라는 두 글자를 제 머릿속에 넣어주셨는데, 입체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순간 사부님께서는 제가 ‘협력’의 한 층 법리를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따뜻하고 유구하며 크나큰 흉금으로,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완전히 다른 사람을 성취시키는 사심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야말로 아름답기 그지없었습니다. 저는 마땅히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 깨달았습니다. 자기 생각을 모두 내려놓고 수련생이 기획한 것을 열심히 갈고 다듬으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내 것’ ‘그의 것’ 전혀 구분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여러 원인으로 제가 다시 이 항목을 맡게 되었는데 후기의 효과는 피드백이 괜찮았습니다.

이 몇 년은 길지 않았지만, 저의 수련 길에서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각종 요소를 이용해 저의 부족한 부분을 보여주셨고 빨리 제고할 수 있게 밀어주셨습니다. 매 한 차례 승화될 때는 언제나 한 층의 하늘이 열린 것처럼 한 층 또 한 층이 펼쳐졌습니다. 항목의 수요로 늘 밤새워 일했고 잠시 쉬고 출근했습니다. 하지만 종래로 고달프지 않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제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고 늘 바삐 보내는 모습만 볼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본 부족한 점을 당신이 묵묵히 잘 완성해 나가고, 묵묵히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잘하며, 당신이 그 한 가지 일 중 완전하지 못한 부분을 스스로 묵묵히 잘한다면, 뭇 신들은 크게 탄복할 것이며, 이 사람은 너무나 대단하다! 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가 해야 하는 것이다.”[4]

저는 늘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묵묵히 잘하면 아주 행복하다고요. 사부님께서 저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금생에 사부님의 제자가 되어 얼마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다시 한번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3년 애틀랜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누구를 위해 수련하는가’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베이징(北京)국제교류회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더 정진하자’

 

원문발표: 2019년 5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21/3876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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