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에게는 매우 완고한 것이 있는데 건드리기만 하면 화내고 말하기만 하면 폭발하며 통제하기 매우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한층 한층 수련하고 그것이 점점 약해졌다. 매번 한 단계를 지나갈 때 나는 마지막 뿌리를 제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 아닌 것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나는 간혹 자신을 폐쇄하고 필사적으로 법공부를 하는 한편 종종 혼자 다니고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수련생이 이해할 수 없어했다.
후에 나는 그것이 일생의 것이 아니라 구세력이 오랜 역사시기에 배치한 것이고 매우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한층 한층 타파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근본적인 집착을 찾는 것을 잊어버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러한 사상의 작용 하에서 대법(大法)의 문에 들어올 수는 있지만, 수련 과정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하여 이후에 책을 보고 법을 배우며 정진하는 중에서 자신이 입문할 때 어떤 생각으로 대법(大法)에 들어왔는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한동안 수련을 했지만, 아직도 당초 생각인지, 사람의 이 마음이 자신을 여기에 남아 있게 한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나의 제자로 여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1]
나는 애초 법을 얻었을 때를 생각해봤다. 나는 가난한 집에 태어났고 부모님이 지적장애다. 그저 초등학교만 나와 인생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감정도 무디다. 즉 가정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도 받지 못했다. 어릴 때는 버릇없이 막돼먹었다고 욕을 먹었고, 열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막노동하며 가정의 따스함과 사회의 온정을 느낄 수 없었기에 무뚝뚝했다. 고난 속에서 성장하면서 줄곧 공부하고 싶었고 성공하려고 몸부림쳤다.
나는 24세 때 병으로 거의 죽을 뻔했다. 다행인 것은 대법을 만난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참 착하다. 나를 깔보는 사람이 없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따스함을 느꼈다. 또 남편도 만났다. 그는 의사 집안이고 병원도 소유하고 있다. 남편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으며 내게 잘 대해주었다. 나는 일찍이 추구하고 동경했던 것들을 대법에서 쉽게 얻었다. 나는 그 속에 푹 빠졌고 이것이 근본적인 집착이라는 것을 몰랐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아는가? 지금 낡은 악의 세력이 대법(大法)을 박해하는 가장 큰 구실 중 하나가 바로 당신들의 근본적인 집착이 덮어 감춰진 것임을. 그리하여 이 난을 더 크게 해서 이러한 사람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1]
박해가 시작되자 나의 이 모든 행복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정은 산산조각이 나 뿔뿔이 흩어졌지만 나는 나의 근본적인 집착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또 아직도 자기가 확고함에 집착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사고하기 시작했고, 이 뿌리를 캐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그 명리심에 대해 이렇게 인식했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 속인 속에서 얻지 못한 것을 대법 속에서 얻었고 나의 이 명리심이 만족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인간 세상에 온 것이 이것을 위해서인가? 이 명리심을 끄집어내자 색욕이니 질투니 하는 모든 마음이 취약해진 것을 발견했다. 뿌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나는 생활에 근본적으로 변화가 생겼다. 일자리를 찾았다. 남이 보기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대형 식품회사에서 매장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구멍가게 업무에서 가맹점까지, 월마트 대형 가맹점까지, 내 관할 구역은 매출이 급증했고 빠져나갔던 가게를 쉽게 되찾아왔다. 나는 3개월 일했을 때 그곳에서 3년 일한 장기근무자보다 보수가 좋았다. 그들은 벌금 등 고객이 고소한 미해결 사항을 처리하라고 했고 나는 두말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했다. 나는 내게 이런 능력이 없고, 생명이 법에 동화되어 법이 가지해 준 것임을 알았다. 나는 이 일체를 이용해 중생을 구도하고 회사 사장부터 동료, 내 밑의 판촉 직원에게도 삼퇴를 권했다.
나중에 법공부와 교류 모임을 만들었는데 박해를 당했다. 나는 처음에 조직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주도적으로 했었다. 사람들은 내 말에 곧잘 감동했는데, 듣기에는 대부분 법에 있는 것 같았지만 실은 명을 구하는 마음이 깊이 있었고 법을 이용해 자기를 추켜세우려는 마음이 있었다. 당시에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셔서 손실을 최소로 감소할 수 있었다.
나는 좁고 어두운 감방에 갇혔는데 그들은 뒤로 쇠고랑을 채웠다. 그들은 내가 우두머리라며 교대로 심문했다. 나는 차례차례 삼퇴를 권하면서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명 한명 삼퇴를 했다. 마지막에 경찰 세 명이 들어왔다. 그들이 손도 대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압박감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런 공포는 다른 공간에서 왔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을 불렀다. 그들은 손대지 않고 한마디 했다. “감히 일하려고 하면서 책임은 감당하지 못하는군.” 그들은 갔다. 나는 곧바로 의자에 주저앉았고, 이 명리심에 대해 반성했다.
대법제자 속에 있으면서 이 명(名)이 있는바, 나는 이 물질을 배척하려고 노력했다. 마음속으로 명리심에 이끌려 대법에 끼친 손실, 사부님의 제자에게 갖다 준 고통에 대해 계속 참회했다. 나는 탈진해서 일어설 수 없었다. 약 반나절 이런 생각을 배척하고 법을 외웠다. 피로감과 공포가 사라졌다. 밖에서 들리던 소란과 욕하는 소리가 없어졌다. 얼마 후 한 수련생이 나를 도와주었다. 그는 내 근본적인 집착이 열등감이라고 알려주었다. “열등감이 있으므로 자기가 강하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 하는 거예요. 사실을 가짜이죠. 이 강하다는 것은 그 열등감을 감추려는 것이에요. 그래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마음이 너무 약한 것이지요.” 그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나는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듯 고통스러웠다. 왜냐하면, 그 생명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 수련생이 귀찮게 느껴졌지만, 입으로는 “당신 말이 맞아요. 그래요…….” 라고 말했다. 이때 나는 가슴 부위의 살점을 누가 뽑아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홀가분하고 그녀를 보는데 편안하고 귀엽게 보였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비할 바 없이 아름다웠다. 이것이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니었다.
얼마 뒤 또 색욕관을 넘게 되었다. 이전처럼 수련하면 근본적으로 수련할 수 없었다. 고민에 빠졌다. 나는 그것은 또 다른 생명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 날 사부님의 한 구절 법의 내포가 펼쳐졌다. “과학을 맹신하니 변이된 인류로다”[2] 설마 문제의 뿌리가 과학에 대한 맹신이란 말인가? 나는 아니지! 학교도 별로 다니지 못했는데 그것을 맹신하겠어?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늘 공부하고 싶고 출세하고 싶었다.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이 여자면 질투하고 남자면 숭배했다. 나는 줄곧 색(色)의 문제라고 여겼다. 사부님의 이 단락에 관한 법을 찾아보았다.
“종교 중에는 교주가 있고 목사가 있는데, 과학도 이런 직명 저런 직명이 있는 것으로 교장이 있고, 박사・석사・학사・교수・조교 등등이 있다. 게다가 그것은 대단히 완벽하고 체계적이며 존재하지 않은 곳이 없는 종교형식이다. 그것에 대한 사람의 신앙은, 당신들의 모든 종교에 대한 신앙을 초월하였는데,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되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잘 배우지 못하면 당신은 이 사회에 의해 도태되고,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없으며, 좋은 생활의 전망이 없다. 일반적인 종교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정신상에서부터 당신이 신앙하게 하고, 그런 후에 당신에게 보게 하고 듣게 하며, 실제적이고 진실한 신의 존재를 감수하게 한다. 그러나 이 과학이라는 종교, 그것은 당신이 물질상에서 인식하게 하고, 물질상에서 발전하게 하며, 정신적으로 그것에 의존하게 한다. 그것은 반대로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과학을 반대하지 않는데, 그것도 우주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당신들의 과학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과학은 결코 과학이 아니며 그것은 인류에게 아주 많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재난을 가져다주었다.”[3]
나는 알았다. 내가 줄곧 공부하고 싶었던 것은 좋은 일자리를 갖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고 차별대우를 받지 않으려는 것으로, 과학을 숭배한 것이다. 이 한 층 뿌리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자 내 주위의 색욕이니 질투니 하는 나쁜 물질이 썰물처럼 물러갔다. 그 미묘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법의 위력은 거대하다. 그러나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한 권의 책은 바로 백지에 검은 글자로, 매일 봐도 법을 볼 수 있다고 할 수 없다. 매 한 층에 모두 표준이 있고 매 한 층에 부동한 법이 있다.
이 단계를 지났지만, 이것은 마지막이 아니었다. 며칠 전 우리 부문에 온 지 얼마 안 된 관리자가 늘 화를 냈다. 나는 당시에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늘 그를 누르고 싶었고 그를 고치고 싶었다. 나는 뒤에서 그는 법을 배우지도 연공하지도 않는데 매일 화만 내니 마당이 좋지 않다며, 일이 생기면 그 사람 탓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법에서 소통할 수 없어 길에서 너무 많이 멀어졌다. 그는 매일같이 일만 하고 10년을 했는데 나는 여기서 일한 지 10개월도 안 된다. 됐다, 관두자. 그만 말하자. 순리에 맡기자! 이 공장의 주된 인력이 바뀌지 않으면 희망이 없고 누가 와도 안 된다. 당시 내 마음가짐은 이랬다.
어느 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자기를 수련하지 않지? 내게 문제가 있으므로 보게 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나는 너무 어렵고 어떻게 수련할지 모르겠고 이 한 층에 지도할 법이 없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고 있을 때 한 수련생이 내 옆을 지나가면서 말했다. “왜 이렇게 고집스러운 거야!” 그는 나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기계를 보며 한 말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어느 날 몸이 불편했다. 이때 다른 한 수련생이 내게 혹독하게 말했다. 나는 아주 날카로운 무기가 나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몸도 따라서 아팠다. 나는 아주 민감했다. 다른 공간을 보지는 못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넘어졌다.
그날 야근을 마쳤고 다음 날 쉬었다. 나는 24시간을 누워있었다. 열나고 감기 같은 상태였는데 연공하려 해도 서 있지를 못했다. 이런 상태가 1주일 넘게 지속했다. 나는 쉬지 않았다. 쉬면 정말 거꾸러질 것 같아서였다. 이때 나는 매우 강렬한 증오가 사상 속으로 악념을 내보내는 것을 발견했다. 일찍이 내게 상처 준 사람이 생각났고 증오스러웠다. 악한 경찰도 증오하지 않는데 왜 수련생을 증오할까…… 수련생은 사부님의 제자이다. 내가 수련생을 해치는 것은 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상해서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한번은 어떤 수련생이 나의 그 냉담함을 녹여주려고 내게 관심을 가졌다. 나는 그에게 화를 냈는데 의외였다. 이때 머릿속에 한 생명이 한마디 했다. “네가 이러면서 날 움직이려고?!” 당시 나는 매우 놀랐다. 나는 이 생명이 내가 아니지만, 줄곧 그것에게 좌우지 당했고 그것을 바꾸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밍후이왕에서 본 문장 ‘불진(不眞)의 슬픔’이 생각났다. 한 수련생이 보기에 진실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지적해주면 그는 주위 관계를 매끄럽게 처리하고 늘 싱글벙글하며 사람과 교제하는 그 수법을 쓴다. 다른 수련생은 그가 수련을 잘 하는 줄 안다. 한 수련생은 천목이 열린 채 수련하고 있다. 그는 자기의 한 경지 중에 큰 신이 있는 것을 보았고 그를 ‘불진(不眞)’이라고 불렀다. 그 수련생이 그의 거기까지 수련하지 못했기에 그는 개변되지 못했고 동화되지 못했다. 마지막에 그 신은 상심해 눈물을 흘렸다. 주체인 그의 수련이 따라가지 못하자 마지막에 그 수련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위의 생명도 따라서 해체되었고 구원되지 못했다.
이 문장이 내 마음을 건드렸기에 가끔 그 문장을 보는데 오늘도 봤다. 그가 의식했을 때만 그 생명이 바뀔 수 있고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영원히 개변하지 못한다. 어느 한 수련생의 표면상태는 모두 위와 대응돼 있다. 나는 내가 아직도 의식하지 못한 문제가 얼마나 있을까 싶어 착잡했다.
나는 그것을 닦기 시작하고 그것을 가지지 않으려 했다. 나는 ‘공산주의의 최종목적’에 나오는, 사람에게 조장한 증오 그 뿌리가 내 신체 내에서 해체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악마가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를 듣고 이전에 귀에 들어오지 않던 많은 것을 알았다. 나는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기 시작했다. 의식한 것이라면 놓치지 않았다. 그날 나는 한 수련생에게 관념이 있었다. 그가 나를 향해 다가왔는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착실히 수련하지 않는 거야. 매일 빈둥거리면서 왜 허리를 구부려 물건을 줍지 않냐고.’ 나는 즉시 또 다른 사람을 보고 자신을 수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상대방이 어떠어떠하다고 그들이 본 것으로 반대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4]
나는 내가 막 왔을 때 청소하고 정리한 것이 생각났다. 이 기계 두 대는 우리 인쇄공장의 명맥이다. 나는 깨끗이 닦았는데 지금은 왜 닦지 않는 거야. 일이 많아서? 어려워서? 이것도 한 면이다. 나도 해이해져서 어쩔 수 없었다. 소침한 생각이 내 머리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홍미(洪微)를 벗어나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으리라”[5] 나는 일어났다. 몸은 여전히 매우 고통스럽지만, 걸레를 찾아 기계에 끼인 기름을 닦기 시작했다. 이때 나는 갑자기 몸이 불편한 감각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일종 신성한 느낌이었다. 다른 공간의 생명은 모두 나를 주시하고 있다. 1주일 넘는 고통은 여기에서 끝났다. 그 증오의 물질도 따라서 없어졌다.
돌아가 법공부를 하자 또 법의 내포가 보였고 다음 일보의 수련을 지도했다.
주위 환경도 모두 변했다. 나는 관리자가 화내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말하는 것도 아주 부드러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走向圓滿)’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세계십악(世界十惡)’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캐나다법회설법’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시간과의 대화(和時間的對話)’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2-어려움’
원문발표: 2019년 5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1/3857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