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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대법제자가 사부님의 진수제자가 되다

[밍후이왕] 나는 올해 32세로 베이징 출신의 젊은 엄마다. 비록 5년 넘게 수련했지만 나는 자신이 아직 신 수련생이라고 느끼는데 지금까지 대법제자라고 자처하지 못했고 항상 대법제자의 표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1. 숨은 집착을 발견하다

나는 80년대 출생했으며 어려서부터 무신론 교육을 받았다. 내가 비록 인과응보를 믿기는 하지만 소위 말하는 인과응보는 현대 과학의 ‘왜냐하면 ~때문에’라고 하는 이론의 기초 위에서 형성된 것이기에 나는 결코 진정하게 신이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대법의 ‘좋은 사람이 되는 이치’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것은 남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동의일 뿐이었다. 나는 대법의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법리를 승인하지만, 이것은 내가 사람 속에서 대가를 지급한 것과 얻은 것에 대한 승인(동의)에 부합하는 것일 뿐이었다. 나는 사람의 관념으로 대법을 인식하는 데 머물러 있을 뿐이었지 대법을 본질상에서 진정으로 인식하지는 못했다. 마치 씬탕런(新唐人) TV 프로그램 진행자가 말한 것처럼 무신론자 그도 실제로는 사람에게 영혼이 있음을 믿지만, 그의 영혼은 ‘집’을 찾지 못한다고 한 것과 같았다.

내가 법을 얻기 전을 회상해 보니 당시 나는 한창 곤혹스러운 시기에 처해 있었다. 인생이란 무형의 큰 손에 의해 통제되고 있으며 사람은 운명 앞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일 뿐 자신의 일생을 바꿀 방법이 없다고 느꼈다. 이때 나는 대법을 만났고 수련만이 인생의 행로를 바꿀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기를 “이것은 유일한 방법으로서, 바로 이 사람이 이후부터 한 갈래 수련(修煉)의 길을 걷는 것이다.”[1]라고 하셨다.

당시 나는 희망을 보았지만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자기 운명에 대한 불만과 운명을 바꿔보겠다는 관념이 서로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진정 본질에서 수련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운명을 바꿔보려는 생각이었다. 바꿔 말하면 만약 당시 내 운명이 좋은 집안으로 시집가서 생활이 풍족하고 명예와 이익을 함께 누렸다면 나는 대법 수련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 속에서의 생활에 대한 불만과 또 바꿀 수도 없었고 출로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대법을 수련한 것이다. 결코, 진정으로 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았고 자신이 신으로 수련 성취한다는 것은 더욱 믿지 않았으며 진정으로 대법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았다. 어렴풋이 자신이 대법을 이용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자신의 이런 감춰진 근본 집착이 매우 깊이 숨겨졌고 고질적인 것을 발견했다.

2. 착실히 수련하며 조금씩 자신을 변화시키다

새로 수리한 집은 침대를 사야 했는데 남편이 산 침대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째는 내 생각에는 고를 수 있는 침대가 많은데 이렇게 급하게 결정해버리면 더 좋은 침대를 놓칠 것 같은 걱정이었다. 두 번째는 도면 책자(카탈로그)만 보고 실물은 보지도 않고 주문했는데 나는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고, 그에게 주문을 취소하게 하려 했다. 돈은 이미 지급했고 공장에서는 아직 제작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남편은 원래 취소하려 하지 않았지만 내게 원망을 듣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취소를 요청했다. 일이 끝나고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작할 때도 화를 내며 불평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공부를 하다가 부지불식간에 자신이 변한 느낌이 들었고 갑자기 깨달았다. 나는 남편에게 “그 침대 주문을 취소하지 말아요. 당신이 좋아하는 침대를 고른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깜짝 놀랐다. 자신을 심하게 트집 잡던 아내가 이렇게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사실 그도 아주 난처해했는데 침대를 파는 점원이 계속 취소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취소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듣자 그는 매우 기뻤다.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이처럼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바뀌어도 이처럼 쉽고 조용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자신의 본질이 완전히 수련인으로 변하지 않은 것을 보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여기 속인사회에 와서, 마치 여관에 투숙하듯이 며칠 좀 묵었다가 총총히 간다. 일부 사람들은 바로 이곳에 미련을 두고 자신의 집을 잊어버렸다.”[1] 장식하고 꾸미는 것에 대한 내 집착과 침대에 대한 집착은 사람의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사람의 집에 미련을 두며 어찌 수련을 말하는가? 반본귀진과는 상반되는 것이 아닌가?

또 하나는 사부님께서 매우 힘들게 애를 쓰고 계시다는 것과 법의 위대함을 깊이 체득한 것이다. 나는 줄곧 남편의 직업을 못마땅해했다. 그는 경찰인데 이런 공무원 직업을 나는 마음속으로 경멸했다. 능력 있는 사람은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며 공무원은 봉급이 적고 돈을 많이 벌려면 관리가 되어 직무를 이용해 뇌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직업을 바꾸게 하려고 생각했기에 그가 직업을 바꾸고 싶다고 하면 나는 기뻐했고 바꾸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을 보면 조급해했다. 모르는 사이 이런 집착은 날로 커져 그를 무시하는 것으로 변했고 자신이 결혼을 잘못했으며 그는 능력도 돈도 없다고 생각했다. 내 명리심이 이미 남김없이 죄다 폭로된 것이다. 나 역시 자신이 원래 이렇게 물질을 중시하는 사람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으며 또 자신의 질투심도 의식했다. 그러나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한 번은 내가 우리가 저축한 돈으로 고향에 집을 사자고 제의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고향에 우리 집이 없었고 겨울이면 노인이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하는 데다 현재 집값이 매우 빠르게 올라 집처럼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반대했다. 그는 이 돈으로 사업을 하고 싶어했고 수중에 가진 돈으로 투자하려 했다. 고향에는 자주 가지 않았기에 집까지 살 필요는 없으며 또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집만 가진 거지(하우스 푸어)로 고생스럽게 지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분노가 용솟음쳤으며 이전의 그에 대한 불만까지 더해져 하마터면 정말 폭발할 뻔했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 정념이 약간은 있었기에 책을 들고 법을 공부했는데 때마침 “수련하여 어느 한 층차 중에 이른 사람, 그는 단지 그 한 층차 중의 광경을 볼 수 있을 뿐, 이 층차를 넘어선 진상을 그는 보지 못하며 믿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이 한 층차 중에서 본 것만이 옳은 것이라고 여긴다. 그가 그처럼 높은 층차 중까지 수련하지 못했을 때, 그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으며 믿을 수 없다고 여기는데, 이것은 층차가 결정하는 것으로서, 그의 사상도 승화해 올라갈 수 없다.”[1]라고 하신 부분을 공부했다. 사부님의 이 부분 법은 마치 나에게 보여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해봤다. 내가 어떻게 자신이 옳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렇게 집값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남편이 하우스 푸어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나도 하우스 푸어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 아닌가? 나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닌가? 사업해서 돈을 버는 것은 나를 잘 살게 해주려는 것이 아닌가? 어찌 사사로운 견해로 다른 사람을 좁게 볼 수 있는가, 생각해보니 내가 줄곧 남편의 직업을 싫어하는 것은 편견에 따른 인식이 아닌가? 게다가 그러한 집착들은 모두 관념이며 모두 수련해 제거해야 할 것인데도 제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이런 것을 붙들고 놓지 않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정신과 물질은 일성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이러한 물질을 계속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문제와 부딪히면 ‘남편이 나쁘다, 팔자가 사납다, 시집을 잘못 왔다.’라고 하는 사상이 반영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의 배후는 실제로 속인들이 사람마다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생활을 추구하는 것으로 본질상에서 아직 수련인으로 바뀌지 못한 것이다.

나는 자신이 이전에 매우 옳다고 여겼던 관념들에 대해 혐오를 느끼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 중에서 또한 도덕 품성을 높일 수 있고, 진정한 선과 악ㆍ좋고 나쁨을 분별해내며 인류의 층차를 벗어남과 동시에, 비로소 진실한 우주 및 부동한 층차, 부동한 공간의 생명을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3]라고 하셨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잘못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아마 진흙탕 속을 뒹굴며 더러운 줄 모르고 힘든 줄도 몰랐을 것이며, 쇠뿔 끝을 파고들면서 피곤한 줄도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일생을 명리정(名利情)에 묶여 더욱 깊이깊이 빠졌을지도 모르며, 어쩌면 모르는 가운데 많은 잘못을 저질렀을 수도 있는데 도덕이 타락한 사회 속에서 바람을 피웠을 수도 있다. 모두 가능한 일이며 아마 지옥에 떨어져서야 비로소 자신의 일생에 무슨 짓을 했는지 자초지종을 알게 될 것이다.

3. 두려움을 버리고 본질적으로 신으로 변해 가다

나는 어려서부터 두려움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해 매우 신경 썼으며 허영심이 아주 강했고 자신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예 부딪치지 않으려 했다. 물론 이런 것도 대법을 수련한 후에야 비로소 의식한 것이다. 나는 두려움의 뒤에는 명(名)을 구하는 마음이며 작디작은 헛된 명성을 단단히 틀어쥐고 놓지 못해 갈수록 두렵게 되고 명을 구하는 마음은 더욱 커졌으며 자신의 내면을 빈틈없게 해야 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련 중에서 표현되기로는 내가 대법을 수련한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줄곧 모르게 했고, 다른 사람이 이상한 눈으로 볼까 두려워했으며, 자신이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워했다. 여기서 드러내자면 사실 나는 지금까지 수련을 정정당당하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금씩 돌파하고 있다. 매 한 걸음을 내딛기가 쉽지 않은데 어떤 때는 잘할 수 있으나 어떤 때는 매우 부족하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우리 과장은 보직이 바뀌어 우리 과를 떠나게 됐는데 매우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만약 진상을 알리지 않는다면 인연이 여기서 끝날 수도 있겠다고 의식했다. 나는 평소에 태도가 비교적 좋은 직원이었다. 물론 대법을 수련해서야 이런 일에 대해 자각이 있었고, 명리를 구하지 않고 사부님의 가르침만을 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과장이 나를 비교적 만족해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고 그에게 말하지 못했는데 내 생각에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사무실로 가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선물을 준비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그에게 진상 책자 두 권을 주었다. 그는 감동하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고 나는 “그동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하고 말했다. 비록 아주 간단했지만, 겁이 많은 내게는 아주 큰 돌파였다. 나는 책임 앞에서 계속 침묵할 수는 없었다. 최종적으로 그가 진상을 알게 될지는 알 수 없으며 또 그가 끝까지 착실하게 두 권의 진상 책자를 다 읽을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젊은 사람 중에도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젊은 사람도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4. 연공을 중시하자 신체가 신의 몸으로 변화하다

수련 중 나는 아주 큰 곤혹이 있었는데 연공하기 싫어하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나를 ‘나(懶: 게으름)’라는 딱 한 글자로 귀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왜 고요해지지 못하는가?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비결이 있는 것으로 여기면서, 그는 이름난 스승을 찾는다: 나에게 무슨 높은 수(高招)를 좀 가르쳐 주면 고요해질 수 있을 텐데.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밖에서 구하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당신 자신을 제고하려면 당신은 안에서 찾아야 하며, 당신의 이 마음에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당신은 그래야만 진정하게 제고할 수 있으며, 가부좌 중에서 당신은 비로소 고요해질 수 있고, 고요해질 수 있음이 바로 공(功)으로서, 정력(定力)이 얼마나 깊은가는 층차의 체현이다.”[1]라고 하셨다.

내 생각에 연공하지 않으려는 배후에는 ‘게으름’만이 아니었다. 이 배후의 마음을 찾아야 했는데 부단히 법을 배움을 통해 나는 공(功)에 대해 완전하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여기에는 무신론 사상이 아직도 있었으며 잠재의식 중에는 공능(功能)을 마치 신화 이야기처럼 여기고 있었다. 또 한 가지 큰 문제는 불가공과 불교를 혼동한 것이었다. 내 생각에 불교는 연공하지 않아도 되기에 파룬따파 성명쌍수 공법의 위대한 내포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층차가 높을수록 당신의 책임은 더욱 크며, 더욱 높을수록 더욱 방대한 천체의 더욱 많은 생명을 대표하는바, 당신은 장차 그곳을 책임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들 사람의 신체는 당신들이 끊임없이 수련함에 따라 끊임없이 개선되고 더욱더 좋게 변하는 동시에 신(神)의 신체로 전화된다.”[4]라고 하셨다. 나는 연공을 게을리한 뒤에는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고 중생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임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얼떨떨하게 연공은 곧 연공이라고 생각한 것은 자신을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못한 것이었다. 법을 배우는 것이 마치 이론을 배우는 것 같았는데 이것은 자신이 본질상에서 완전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 변하지 못한 한 부분이었다.

내 연공은 최근에 이전보다는 좀 좋아졌다. 나는 또 연공은 알람시계가 필요하지 않으며 연공하는 사람은 시간이 되면 일어날 수 있고 게다가 잠은 많이 잘수록 더 괴로운데 속인과는 반대로 된다. 최근 밍후이 편집부가 웨이신(微信: 중국 채팅방)을 삭제하라고 했는데 삭제 후 연공하니 훨씬 조용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예상한 것처럼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없었으며 오히려 나를 아주 칭찬했다.

여기서 밍후이왕 수련생들께 감사드린다. ‘밍후이주간’은 매우 좋으며 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밍후이왕은 대법제자의 집이다. ‘밍후이주보’도 더욱 새롭고 빠르며 내용도 아주 좋다. 나는 거의 주보마다 출력한다. 내 생각에 세상 사람이 만약 ‘밍후이주보’를 매 기 모두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큰 행운이겠는가! 하지만 여기에는 내가 되도록 빨리 심성을 제고하고, 두려움을 돌파해 자아를 내려놔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세인들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의 편견을 제거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저는 자비하신 사부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부님! 저는 정말 미혹이 아주 깊습니다. 그러나 저는 진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사부님께서 줄곧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 저를 보호해주셨습니다. 도덕이 타락한 사회 속에는 젊은이들에 대한 유혹이 아주 많지만,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거슬러 올라가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기연을 소중히 여겨 결코 위대하신 사부님의 간곡한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논어’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순회설법’

 

원문발표: 2019년 5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더 많은 수련체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18/3874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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